“깨어라.”는 아침에 어린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부모들이 자녀에게 잠에서 깨어날 것을 명령하는 문장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에 우리의 부모님으로부터 그런 말을 수없이 듣은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당일 밤에서 익일 아침까지 수면을 취하는 중에 우리는 잠에서 아직 깨지 못하고 잠을 더 자고 싶을 때 그런 말을 듣곤 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조 중에서 “동창이 밝았느냐”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그 시조를 여러분에게 소개코자 합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넘어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이 시조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주님을 알지 못하는 저의 모친께서 저에게 그 시조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외우라고 당부하셨던 시조 입니다. 이 시조는 전자의 경우의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지만, 우리 크리스챤에게 영적인 교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이 시조를 여러분에게 소개 코자 드리는 바 입니다.
이 시조의 영적인 의미를 고찰해 보면 “깨어있는 믿음”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챤에게 있어서의 “깨어있는 믿음”은 우리의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한 것 입니다. 7절의 말씀에서 살펴본 것 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실 날은 머지않아 다가 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7절의 말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졌다는 것”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이기에 우리의 신랑이신 주님과 결혼할 준비를 해야하는 것 입니다. 마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신부가 결혼에 대한 여러 준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 각성”은 7절 후반부의 말씀에서 살펴본 바처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라는 것 입니다. 기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더불어 마귀 사탄과 대적하기 위함과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위해 주신 주님의 선물이요 무기입니다. 매사에 기도없는 삶은 마귀사탄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는 것 가지고 우리에게 “술 먹고 취한 미친놈”, ”정신분열증”이라고 우리에게 그렇게 불려도 우리는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가 생활화되지 않은 크리스챤은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매사에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상호간의 대접과 봉사”는 9~10절의 말씀에서 살펴본 바처럼 ‘원망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며,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하되 그 원칙은 11절의 말씀(“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것 같이”)대로 하라는 것 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사와 달란트는 각기 다릅니다. 마치 군에서 군인 개개인마다 자신이 소속된 부대장으로부터 부여받는 군사특기가 다른 것 처럼 입니다. 교회 내의 부서도 각기 받은 은사와 달란트에 따라 구분되어 집니다. 가령, 성가대란 교회부서는 자신이 찬양을 부르고 싶어서 구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찬양에 대한 은사와 달란트를 주님으로부터 받은 지체들이 모여서 된 부서입니다. 이유가 없이 찬양을 부르고 싶어서 성가대에서 찬양을 부르는 지체들이 성가대란 부서를 이룬다면 나름대로의 조화가 깨어져 주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주님을 섬기고 있는 구세군 충청지방 서대전 교회서 성가대에 지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현재로선 성가대원으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아니며, 주님께서는 저에게 찬양에 대한 은사와 달란트를 주지 않으셨고, 교회를 섬기는 것을 주님께서는 저에게 그런 달란트와 은사를 주셨기에 저는 만일 주일예배에 결석하면 주님께 혼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주일예배에 결석하면 저의 직분인 교회(성전)청소 및 관리를 누가 합니까?
우리는 각자 소속된 직분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직분은 주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달란트에 의해 주님께서 결정하시는 것 이지, 교회의 담임목사가 자신에게 결정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담임목사를 통하여 성도를 그 직분에 임명하십니다.
각자의 직분에 충실하는 것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것 입니다. 만일 그가 담임목사의 칭찬,집사~장로들의 칭찬을 받기 위한 것 이라면 그는 바리새이 인과 피차 다를 바 없습니다.
아무리 자신의 직분을 알아주는 이들이 없다 해도 주님께서는 그의 직분을 알아주시는 분 이십니다. 그가 그 직분에 충성을 다하면 주님께서는 그에게 칭찬하시며 그에게 영생의 상급을 주실 것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직분에 또한 비천하다는 생각을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직분은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한 달란트 받은 일꾼이 자신의 품삯에 불평불만 하다가 주인에게 자신이 받은 품삯을 뺏겼다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의 직분이 비천하다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볼품없고 형편없다.”라 비춰지겠지만, 주님의 눈으로 보면 그의 직분은 “결코 비천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 이다.”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은 교회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직분 뿐만이 아니라 가정,직장에서 맡은 바에 주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것이야 말로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을 주님의 자녀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복음에 대해 무지몽매하기 때문에 우리의 행실을 보고 우리의 믿음을 평가합니다. 대신에 우리 크리스챤들은 이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있어서 우리 크리스챤들을 죄악에 빠뜨리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마치 어린이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려 할 때 그의 부모가 “깨어라.”라고 명령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깨어날 것을 명령 하십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크리스챤은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챤 보고 “미친놈”이라고 해도 우리는 상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우리 크리스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주님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이란 우리는 영적교훈을 상기하여 주님 오실 날까지 영적으로 깨어있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