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브란트, 〈십계명 돌판을 들고 있는 모세〉, 1659, 169×137cm, 베를린국립미술관
모세의 머리 위로 십계명 돌판이 들려 있다. 돌판에는 히브리어로 제6계명부터 10계명까지 새겨져 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출 20:13-17).
십계명 돌판을 높이 쳐든 모세의 눈이 슬프다. 렘브란트는 금송아지를 만든 사람들 때문에 분노하는 모세를 그리지 않았다. 렘브란트의 모세는 분노하지 않고 슬퍼한다. 던져 깨뜨리려 한다기보다 무거운 돌판을 든 채 벌서는 듯하다. 그저 돌판을 들고 서 있는 모세의 슬픈 표정과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슬픈 표정이 겹친다. 모세와 렘브란트가 닮았다.
제분업자의 아들 렘브란트는 고위 공직자의 딸 사스키아와 결혼했다. 사스키아는 결혼 지참금으로 4만 길더를 가져왔다고 한다. 사스키아가 병으로 일찍 죽게 되어 렘브란트에게 유산을 넘겨주며 조건을 달았는데, 렘브란트가 재혼하게 되면 유산을 아들 티투스에게 즉각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렘브란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가 아니라 유산을 지키기 위해 법적으로 재혼하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 약관의 나이에 이미 명성을 떨쳤지만 파산의 위험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초상화를 주문한 중산층이 드러내고 싶은 허세가 아니라 렘브란트가 들여다본 주문자의 내면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포장된 허세가 아니라 허약한 내면을 그대로 초상화에 반영하자 주문이 끊기고 새로운 실험을 위해 의상과 소품을 사는 데 재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렘브란트는 사스키아의 유산이 없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렘브란트는 가정부였던 헨드리케를 사랑했고, 렘브란트와 헨드리케 사이에 딸도 태어났다. 렘브란트는 간음죄로 교회 재판에 기소되었고 “참회 명령과 무기한 성찬 예식 참석 금지, 기타 도덕적, 사회적 매장을 야기하는 징계” 판결을 받았다. 저명한 화가 렘브란트가 교회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매장된 것이다. 사별한 아내의 유산을 포기할 수 없어 헨드리케와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던 렘브란트는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범한 죄인으로 평생 살았다. 렘브란트는 평생 돌판을 어깨 위로 든 채 살아야 하는 벌을 받은 것이다.
모세로 분한 렘브란트의 표정이 슬프다. 돌판을 들고 서 있는 슬픈 모세는 내 초상화이기도 하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내 은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다. 드러내고 싶은 포장된 허세가 아니라, 감추고 싶은 허약한 내면을 렘브란트가 꿰뚫어보았다. 나는 렘브란트에게 그림 값을 치르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렘브란트에게 그런 속사정이 있었군요;;
드러내고 싶은 포장된 허세가 아니라 감추고 싶은 허약한 내면을 그린 진짜 화가..
슬프네요...
그림의 눈이 왜 슬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