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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새긴 향나무관에 역대 대통령〈노무현〉 모셨다”
불교식 장례업체 ‘연화회’
2014-08-25 하정은 기자
유재철 대표, 설립 20년째
광덕ㆍ정대ㆍ숭산ㆍ법정스님 등
전국 수백명 스님들 염습 맡아
노무현ㆍ최규하 장례식도 주관
수의에 ‘옴마니반메훔’ 진언 새겨
사천왕도 호위하는 관에 입관
‘반야용선’ 타고 극락세계로 인도
불교장례의 모든 것
2010년 법정스님을 모시고 송광사 다비식으로 향하는 모습. 좌측 검은색 양복을 입은 이가 유재철 연화회 대표. 법정스님의 유지대로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조촐하게 다비의식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유재철
2010년 법정스님을 모시고 송광사 다비식으로 향하는 모습. 좌측 검은색 양복을 입은 이가 유재철 연화회 대표. 법정스님의 유지대로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 않고 조촐하게 다비의식을 진행했다. 사진제공 유재철
‘장의업’ ‘장의사’란 직업을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죽은 사람의 몸을 씻기고, 이른바 염을 해서 옷을 입히고 입관하는 일련의 절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손쉬운 일이 아니면서도 그 일을 하는 이들을 낮춰보는 경향이 많았다. 과거 동네마다 검은 간판을 내건 장의사들이 한명씩 있었는데, 이들은 주로 염습하기 전에 술 마시고, 팁 뜯고, ‘부르는게 값’이라는 악습을 당연시했다. 그런 풍토가 ‘염장이’를 폄하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죽음’에 관한 인식이 확 바뀌었다. 죽음을 남의 일로 기피하거나, 먼나라 이야기로 취급하는 시절은 지났다. 죽음을 친근하게 바라보면서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죽음에 인식이 달라지면서 임종의례와 염습, 입관, 화장 등 장례문화 역시 비교적 친숙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다. 죽어서야 들어가는 입관의식을 체험하는 이벤트도 생겨났고, 장의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도 흥행이다. 사후세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리는 소설과 의학서적도 불티나게 팔린다. 이제 죽음은 무섭고 어렵고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당장 코앞에 닥칠 수 있기에 숭고하고 침착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친숙한 문화고 변모되고 있는 추세다.
‘대통령 염장이’로 잘 알려진 유재철(55) 대표는 불교장례토탈서비스업체인 연화회를 설립한지 올해로 딱 20년이 됐다. 그동안 광덕스님, 정대스님, 숭산스님, 법정스님 등 수백명의 스님들의 염습을 도맡았다. 최근엔 대행스님과 지관스님, 무진장스님을 비롯, 얼마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등진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 성안스님의 염습과 다비를 총주관했다. 스님들 뿐만 아니다. 최규하ㆍ노무현 대통령의 시신을 직접 닦고 수의를 입혔던 장본인이다. 독실한 불자인 유 대표는 조계종 포교사이자, 동국대서 장례문화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강단에서 임종의례 전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유 대표에 따르면 불교에서 임종이란 이 세상의 육신이 그 역할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육신에 묶였던 영혼이 자유로움을 갖는 시간. 이에 임종직전의 염불 뿐만아니라 임종후 3일 동안의 불교식 장례절차와 다음생의 준비기간인 49일 동안의 기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이다. 불교식 장례절차는 임종의례로 시작된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좌우에 관음보살 지장보살, 중앙에 아미타부처님의 손에 오색실을 걸어 그 한쪽 끝을 환자가 잡게 한 후 염불하거나 의례를 행한다. 임종을 마친 영가를 안치하고 인로왕보살님의 번과 금강경 탑다라니 등으로 빈소를 장엄한다. 장례 둘째날 시행하는 염습은 장례과정 중 가장 중요한 절차인 염을 하는 것이다. ‘극락왕생하는 이들은 연꽃속에서 태어난다’는 정토경전을 토대로 불자수의에는 관세음보살의 육자대명왕진언을 연화문으로 새겨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염원한다. 이 진언은 관 머릿부분에도 새겨넣는다. 관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대표적인 신중인 사천왕도를 그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오동나무 관을 주로 했지만 요즘엔 고가의 향나무를 관으로 쓰기도 한다. 최하 10만원 오동나무관부터 최대 300만원짜리 향나무관까지 다양하다. 유 대표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향나무관을 썼고, 관뚜껑에 반야심경을 조각으로 새겨넣었다. 불교식 장례의 마지막은 사바세계 고해로부터 아미타부처님의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이르는 ‘반야용선’을 형상화한 배를 타고 화장장, 선영, 납골당, 사찰 등 장지까지 모시는 절차로 마무리된다.
진언과 사천왕도를 새겨넣는 관.
진언과 사천왕도를 새겨넣는 관.
이같은 절차를 통해 불자들이 장례를 치르려면 일반적으로 200여만원의 비용이 책정된다. 스님들의 경우엔 불교장례의 독특한 문화인 ‘다비’를 선호한다. 지난 2008년 불교미래사회연구소가 실시한 ‘스님들의 장의시설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스님들의 약 85%가 다비장을 원하지만 실제로 다비로 장례가 진행되는 경우는 5%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다비를 하려면 넓은 다비장이 필요하고 1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비용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유재철 대표는 “다비는 스님들이 육신으로 펼치는 마지막 법문과도 같고, 영결식은 인연 중생들과의 마지막 인사나 다름없다”며 “평생 수행자로 살아온 스님들이 마지막을 여법한 다비와 영결식으로 회향하려는 마음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그럼에도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규모와 비용, 소요시간을 대폭 단축한 신(新) 다비문화를 만들어 제시했다. 현대식 연화단을 설계해서 공간을 축소하고 비용을 줄였고 밤샘다비를 4시간으로 단축했다. 연화회측은 스님의 수행사찰에서 여법한 다비와 영결식을 봉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다비는 400여만원의 비용이 들고 영결식제단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불교식 장례업체는 연화회를 비롯해, 불국토 등 10여곳이 운영되고 있다. 또 전국 장의사 규모는 약 1만명에 달한다. 죽은사람을 염하는 ‘염장이’를 터부시하는 문화가 길어졌던 터, 우리나라 염장이의 맥도 끊어질 판이다. 승가에서도 과거 염을 관장하는 스님들이 문중마다 있었지만 지금은 ‘염하는 스님’도 전무한 실정이다. 장례업이 젊은이충에선 ‘3D 업종’으로 취급될 수도 있지만 일단 장례업에 진출하면 전문대를 졸업해도 초봉 2500만원에서 시작해 10년 정도 지나면 5000만원선까지 올라간다. 이에 따라 예전에 비해 장례문화에 관심있는 취업생들도 조금씩 늘어날 전망이다.
부처님 가르침과 진언, 상징물을 새겨넣은 수의.
부처님 가르침과 진언, 상징물을 새겨넣은 수의.
20년 전 ‘동네 장의사’보다 뭔가 특색있는 장의사가 되고 싶어 조계사 앞에 처음 장의사를 시작했다는 유 대표는 “당시 큰스님 장례를 한번 치르면 손님이 수천명씩 왔다”며 “이런 대규모 5~7일장을 10년 넘게 하면서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염을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염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도와드리는 고귀한 일”이라며 “내 삶에 훨씬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죽으면 장례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말을 남길 것인지 등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엔딩노트(Ending Note)’를 작성하는 습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