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밀직부사 진평중(陳平仲) 고려사 사적원본 ▲
고려사 137권 열전 제50 신우 무진 14년 (1388)
左 5列 중간 ▶[본문] 六月甲辰禑遣『前密直副使陳平仲』以書諭諸將曰受命出疆旣違節制稱兵向闕又犯綱常致此... 以下省略
【본문내용】1388년 6월 갑진일. 신우가 「전 밀직부사 진평중(陳平仲)」을 파견하여 서면으로 여러 장수들을 타일렀는데 그 글에 이르기를
"왕명을 받고 국외로 출정하다가 이미 상부의 절제(節制)를 위반하고 병력을 이끌고 대궐로 향하였으며 또 강상(綱常)을 위반하여 이런 사단을 일으켰으니 이것은 나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는 고금의 통칙인데 그대들은 평소에 독서를 좋아한 사람이거늘 어찌 이것을 모르는가?
하물며 나라의 강토는 조상에게서받은 것이거늘 어찌 쉽사리 남에게 주겠는가? 군사를 일으켜 싸우는 것만 같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여러 신하들에게 모의(謀議)하였더니 모두들 가하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 어찌 감히 이의(異議)를 가질 수 있겠는가?
비록 최영을 지적하여 구실을 붙이나 최영이 나를 보위하는 것도 그대들이 아는일이요 우리 왕실을 위하여 충실한 것도 그대들이 다 아는 바이다.
이 교서(敎書)를 받는 날로 그릇된 견해를 버리고 허물을 다 고쳐서 부귀(富貴)를 함께 누리도록 힘쓰라!
나는 진실로 이것을 바란다.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라고 하였다. 또 설장수를 군영으로 보내 장수들에게 술을 주고 그들의 의향을 탐지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여러 장수들은 더 나아가서 서울의 성문 밖에 주둔하였다. 그리고 동북 지방의 주민과 여진족(女眞族) 중에서 평소에 종군하지 않던 자들도 태조(이성계)의 회군 소식을 듣고 앞을 다투어 모여서 밤을 낮에 이어 달려온 자가 천여 명이었다.
[출처]진씨사랑방|작성자"해송(海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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