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이 각본을 쓰고 제작한 '풍산개'라는 영화를 보았다. 전재홍이라는 감독은 잘 모르지만, 김기덕 아래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한 사람이라니, 게다가 김기덕이 쓰고 제작한 작품이라면 김기덕이 만든 영화나 다름 없다.
김기덕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는 이유는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발하고도 독특한 발상 때문이다. 즉,
소재의 특이성 때문이다. 내가 영국 작가 서머세트 모옴의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도 인간의 내면에 있는 복잡한
요소, 즉 '인간성'을 소재로 하여 무릎을 치게 하는 점 때문이다. 극작가 김수현에게도 인간의 내면을 몇 줄 안 되는 대사
로 드러내는 그 특별함이 좋다. 전혀 공허한 상상만이 아닌, 있을 법한 일이기에 그들의 뛰어난 두뇌에 또한 매료되는 것
이다. 이들에게는 모두 도덕도 양심도 비껴간다. 이러한 공통점을 가진 이 사람들에게 끌리는 나에게도 도덕과 양심을 비
껴나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 된다.
'풍산개'는 김기덕 영화 중 가장 이해하기가 쉬웠고, 그리고 드물게 분단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김기덕에게
이런 점도 있었던가. 뭐야, 분단된 조국과 이념의 차이로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한심한 현실을 고발하고, 평화 통일
조국을 이룩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건가. 물론 결론은 그러하다.
죽음의 휴전선을 넘나들며 무엇이든, 주로 이산가족의 사연을 배달하고 돈을 버는 택배기사 윤계상이 남한으로 망명한
북한 고위층 간부의 애인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점차 사랑으로 변화되면서 사건은 복잡해진다. 결국 이들의 사랑은 죽음
으로 끝나고, 남는 것은 슬픔과 허무함.. 뿐이다.
북쪽과 남쪽 정보원으로부터 공통으로 듣는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대하여 주인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못 한다. 사
실 그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돈을 벌기 위함이었는지 몰라도, 나중에는 사랑을 지키기 위하
여 위험 속을 넘나들었으므로 주인공에게는 사상이니 이념 같은 문제는 아예 없었던 게 분명하다.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남측 정보원과 북측 간첩 두 쪽 인간들을 죄다 지하실에 집어 쳐 넣고 총과 수류탄을 넣어주면서 서로 싸움질하게 하
는 장면이 잘 증명하지 않는가.
결국 영화는 분단과 이념, 증오라는 것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때로 잔인하게, 때로 간절하게, 때로 우
스꽝스럽게 말한 것이라고 결론내리고 싶다. 감독은 말했다. "6.25를 생각하는 차이만큼 풍산개를 이해하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라고. 과연 그럴 것 같다.
휴전선을, 그것도 장대로 높이뛰기를 하면서 넘나드는 것이나, 주인공이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는 침묵 캐릭터인지, 아니
면 정말 벙어리인지, 그런데도 용케 소통이 되는 비현실적인 부분이 군데군데 있고, 때로는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장면들
이 여러 번 나오지만, 그러한 허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이나 말을 잊었다. 아무 말도 하기 싫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저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멍멍하기만 했다. 이 나라, 우리나라를 어떡하면 좋은가!
* 윤계상이 작업을 끝내고 지하실 같은 자기 방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휴식을 취할 때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외국가곡이
있었다. 놀랍게도 성악가 출신의 감독 전재홍이 불렀다고 한다. 슈만의 ‘연꽃(Die Lotosblume). 산뜻하고 인상적이었다.
* 다이아몬드를 꺼내기 위해서 여자의 배를 갈라낸 시체 장면을 보여주면 어쩌나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김기덕
은 보여 주지 않아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 남자는 왜 다른 일도 아닌 이런 위험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까? 그리고 왜 굳이 이산가족의 사연을 배달하게 되었을까?
왜 말을 안 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정말 벙어리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벙어리로 정했을까? 왜 그의 이름은 풍산개일까?
우리는 남자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윤계상의 연기이다. 옛날 'GOD' 그룹에 속한 가수로 알고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 정말
재주도 많지. 노래에, 춤에, 외모에, 연기력까지 갖추다니. 이젠 연예인과 '아이돌'에 대한 편견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대사라고는 단 한 마디도 없이 후반부에 사랑하는 사랑하는 여인이 죽을 위험에 놓였을 때 비명 한 번 지르는 게
전부이고, 순전히 표정과 동작뿐인데, 그런데도 대사 이상의 언어였다. 놀라웠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다이아몬드에
눈이 먼 놈들에 의해서 배가 갈라진 여자의 시체를 보았을 때 그 표정은 압권 중의 압권이요, 소름 돋는 감동이었다.
대체 이 청년 을 주인공으로 쓰자고 애초에 제안한 사람이 누구일까. 다시한번 보고 싶은 영화이다.
분단과 대립을 극복하고 통일과 화합으로 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김기덕이 그려 냈다는 사실이 반갑다.
이렇게 좀
이렇게 좀 쓰고 나니까 아까 영화가 끝난 뒤 내내 미치게 치밀어 오는 슬픔과 아픔, 멍멍멈함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이렇게 단숨에 쓰고 나니까 아까 영화가 끝난 뒤 내내 치밀어 오던 슬픔과 아픔, 먹먹함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첫댓글 너무나 내용이 드러나있어서 안봐야지.....하고 있던 영화인데 ㅎ
보러 가야지~하는 생각을 합니다 ㅎ
고맙습니다^^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이 생각나네요. 달희님 글을 읽고 나니 영화가 보고싶어졌어요.
저도 한번 보고싶단 생각이 드네요
저도 글 읽고나니 . 갑자기 풍산개 영화를 보고싶어졌네요 ..
요즘 어디서 할까 ? 인터넷으로 ..
느낌을 아주 잘 표현해 주셔서 빨리 보고싶네요.광주 갈려면 1시간 넘게 가야 합니다.댓가를 치뤄야 보게 되겠죠?
달희님의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오늘 당장 가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분단의 아픔이 더 커질까요?
반갑습니다. 결국은 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현실이라는 생각에 아득한 슬픔을 느낍니다.
<의문에 대해 전재홍 감독 대답>1. 윤계상이 침묵만 하는 이유 : “만약 윤계상이 북한 사투리를 하게 되면 관객들은 자연히 북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고, 서울말을 하면 남한 사람이 된다. 때문에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인물로 표현하기 위해 이와 같이 설정했다. 2. 윤계상이 장대 하나로 휴전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한가지, 또 수많은 방법 중에 장대로 휴전선을 넘는 이유 : "땅굴을 판다든지 철조망을 끊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마치 새처럼 철조망을 뛰어 넘는 이미지를 통해 통일에 대한 열망, 자유로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왜 침묵 혹은 벙어리로 설정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단박에 풀렸다. 대단히 일리 있고 현실성 있는 대답이다. 그런데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대단히 상대적이다. 죽음을 넘나드는 본인에게도 과연 휴전선이 자유로웠겠는가. 또 왜 그 젊은 남자는 유독 이산가족의 사연을 전하는 위험한 일을 하며 돈을 벌게 되었는지, 그 이유도 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