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7장 11-14절 권력자의 심문 앞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다보면 때때로 국가의 권력자들 앞에 서는 날이 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때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로써 그들에게 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7-20절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성령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신 그 때부터 여러분 안에 거하시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해오셨습니다. 그런 성령께서는 여러분들이 환난과 고난을 겪는 날을 피하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 환난과 고난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을 위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해서 일하시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일으키시며 세상 곳곳에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합니다.
미국의 인디언들을 선교하기 위해 인디언부족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브레이너드의 일기”가 세상에 책으로 나왔을 때 브레이너드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를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면서 선교에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고아의 아버지라고 일컬음을 받았던 죠지물러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하면서 고아원을 운영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을 고아원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죠지뮬러의 생애는 온 세상에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신다면 성령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밝히 드러내셔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삶이 여러분들 앞에도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끌려 그당시의 권력자인 로마의 총독 빌라도 앞에 서셨습니다. 예수님 앞에선 빌라도가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은 “네가 옳도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태는 앞뒤에 있었던 일들을 다 생략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가? 과연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하셨던 유대인들의 왕인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의 많은 질문들 가운데 핵심적인 질문만을 다룬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유대인의 왕으로써 어떤 행동을 하셨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대답하시자 주변의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흥분하여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입을 굳게 닫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고발에 대하여 대답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유대인들의 왕이라는 답변을 들었던 빌라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십자가의 예수님 위에 못박았던 죄목은 “유대인의 왕”이었습니다. 그것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에수님을 죽일 만한 적절한 죄목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죄없는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예수님의 머리 위해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를 써서 박아 놓았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말로 예수님을 고발을 하는데도 예수님이 아무 말씀이 없자 빌라도는 말합니다.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지만 예수님은 빌리도의 그 말조차 대답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자신은 하실 말씀은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재판의 내용이 예수님의 침묵으로 인해 예수님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용들에 대하여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총독은 크게 놀라워했습니다. 심지어 극악한 죄인들조차 자기들의 죄에 대하여 항변하거나 그럴 듯한 이유를 늘어놓으면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죄인들로부터 정죄받고 죽으셔야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또한 아버지의 뜻대로 온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신의 십자가 앞으로 모아 구원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따라 산다는 것은 때때로 이렇게 부당하고 억을한 일을 당함은 물론 억울한 재판과 판결을 당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들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그런 일들이 일어남으로 인해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 때문에 반드시 그 길을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썩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진리를 예수님이 스스로 보이셨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도들을 통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회를 통해 그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총독 빌라도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증명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서 구원받으면 자신은 사실 수 있지만 온 인류 가운데 죄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왕입니다.
이 세상 나라 왕들 가운데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대신 죽는 왕이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살기 위해 백성들을 회생물로 삼습니다. 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러한 억울한 희생은 나라마다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위해 죽는 백성들을 그것을 마땅하게 여기며 명예롭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문화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 맞이하게 될 좋은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6절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 년 동안 왕노릇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고난과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인내로써 그리스도를 따른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모든 만물 위에 높여주신 것처럼 높여주셔서 천 년 동안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를 받아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신앙이 주님으로부터 주어졌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여러분들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을 보면 앞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항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증거하셨을 뿐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목숨을 위하여 항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기회를 잡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위해 살다보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다가 후에는 법을 집행하는 세상 권세자들 앞에 서는 날도 옵니다. 사도 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줌으로 인해 그 상전들에게 미움을 받아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예수님을 세상 권세자들 앞에서 증거하기 매우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증거는 개인을 찾아다니면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런 여러분들을 광신도처럼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로 내정된 안창호위원장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가 완전하지는 못해도 자신의 신앙을 온전하게 고백한 것은 칭찬할만 합니다. 어쩌면 인권이라는 말이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것들을 자꾸만 주장하는 이 세대에 그런 그리스도인이 세움을 받았다는 것은 이 나라의 복일 것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이리들이 물어뜯는 것처럼 야당 위원들이 집요하게 물어뜯으면서 동성애를 옹호하고 진화론을 지지하면서 창조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후보자를 공격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의 머리에 철퇴를 내리실 날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을 지라도 두려우신 하나님이 심판의 칼을 들고 임하시는 날에 자신들이 난도질 했던 말들로 인해 난도질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악한 세대에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이 믿음을 지키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시면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의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강하게 증거하십시오. 설사 권력자들 앞에서 심문을 받는다 할지라도 성령이 그들의 입을 막으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므로 성령께서 그들 앞에서 진리를 증거하시기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들 안에서 진리를 선포하시고 세상의 모든 불의에 대한 입을 막으실 것입니다. 그로인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야당위원들이 인권위원장 후보에게 그러려면 인권위원장을 하지 말고 목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목사는 동성애 반대를 하는 설교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리고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이 맞다고 스스로 말한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목사들이 강단에서 동성애 반대설교를 하면 안된다”고 했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순이며 어리석음입니다.
무조건 순간만 이기면 승리하는 것으로 여기는 어리석은 자들의 머리 위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진노를 부으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로인해 참혹할 것입니다. 훗날 빌라도 역시 황제의 미움을 받아 귀향살이를 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도 역시 가룟 유다처럼 뉘우치기는 했지만 에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를 선포하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함께 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