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하나회 척결을 추진하며 사용한 말이다.
당시 군부의 거센 반발에도 개혁을 밀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표현으로,
오늘날에도 현실 정치에서 널리 인용되거나 응용된다.
그런데 당시 언론이 이 표현을 두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들을 개에
빗댔다며 비난하고 나섰다면 어땠을까.
하나회 척결이라는 개혁의 본질은 사라지고,
군인을 모욕했느냐는 표현 논란만 남지 않았을까.
정치인의
비유는 표현과 해석의 여지에 따라 본래 전달하려던 의도는 사라지고,
표현의 적절성만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장애인,
여성,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빗댄 비유는 아무리 전달력이 뛰어나더라도 인권
감수성과 차별 감수성이 부족하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가까운 예로,
최강욱 전 의원은 윤석열 정부 시절 민주당 모 의원의 북콘서트에서
“동물농장에도
보면 암컷들이 나와서 설치고 이러는 건 잘 없다”라고
말하며 김건희의 비선 내정 간섭을 비유해서 비판했다.
그러나
‘암컷’이라는
표현이 여성 혐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민주당은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유시민 작가
역시 지난 대선 기간 김문수 후보의 부인 설난영 씨의 도 넘는 행보를 두고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작가의 발언을 무조건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표현은 각각 여성 비하와 인신공격,
학력·계급적
편견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표현의 부적절성을 비판하는 것과 발언의 취지까지 외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표현은 그 자체로 평가하되,
발언이 겨냥한 대상과 맥락 역시 함께 살펴야 한다.
손가락의 모양을 따지는 데 그쳐 정작 손가락이 가리킨 달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됐음에도 관련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소방 재정을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라고
표현했다.
이후 언론과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발언을
‘소방공무원
비하’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재정
빨대’라는
표현이 부적절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표현이 거칠었다는 이유로 발언의 핵심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가직으로 전환된 소방공무원의 재정 부담을 왜 지방자치단체가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하는가.
추 지사의 발언에서 따져야 할 본질은 바로 이 질문이다.
표현 논란만 부각해 발언을
‘소방관
비하’로
규정한다면,
정작 답해야 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간 비용 분담 문제는 끝내 해결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소방관을
존중하는 일과 소방 재정의 불합리한 구조를 비판하는 일은 양립할 수 있다.
오히려 소방관의 헌신을 제대로 존중하려면 그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
장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부터 논의해야 한다.
추 지사의
비유가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집단에 상처를 주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언론과 국민의힘은 발언의 일부만 떼어 침소봉대하고,
그 의도와 맥락을
‘소방관
비하’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춰 발언의 의미마저 바꾸고 있다.
더욱이
프레임이 한 번 만들어지면 사과마저 그 틀 안에서 해석된다.
표현의 부적절함을 인정하면 발언의 본래 취지까지 잘못이었다고 시인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반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정치인으로 몰린다.
결국 사과는 갈등을 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프레임을 굳히는 수단으로 소비된다.
추 지사는
결국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그 사과는 예상대로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다.
표현의 부적절함을 따지는 일과 재정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별개다.
사과를 받았다고 재정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사과했다고 문제 제기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추 지사의
표현을 비판하더라도 그가 가리킨 재정 문제는 끝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손가락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달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소방관 비하’라는
프레임만 남고 소방 재정의 불균형이 묻힌다면,
정작 피해를 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기다리는 소방관들이다.
아무리 통찰력
있고 철학적인 비유라도 차별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표현의 잘못을 따지는 데 매몰돼 손가락을 탓하다 달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
첫댓글 고개숙일줄은 모르고...
소방관 재정 빨대.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