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책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절망은 곧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라고 말했다. 해를 넘겨 계속되는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 혼란으로 온 나라가 절망의 그림자로 흉흉하다. 이런 때에 매일 아침 밀려오는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 사람은 독일의 히틀러가 600만의 유태인을 죽이며 광기를 부리던 시절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의사 빅터 프랭클이다. 다른 이들이 절망으로 삶을 포기하던 때에 그는 매일 한 노래를 읊조렸다. “나는 믿네. 메시야의 오심을 온전히 믿네. 그의 오심이 더딜지라도 나는 날마다 그를 기다리네” 이 노래는 ‘아니 마아민’(나는 믿는다)이라는 히브리어 노래였다.
매일 아침 프랭클은 숨겨둔 유리 조각으로 피가 나도록 면도하며 새날을 맞이했다. 수용소 간수들이 가스실로 보낼 이들을 선택할 때마다 그렇게 강렬한 눈빛으로 시퍼렇게 살아있는 그를 택하지는 못했다. 대개 가스실로 보내는 우선순위는 이미 삶을 포기한 이들이었다. 가스실 후보에서 제외될 때마다 그는 이 노래를 나지막하게 불렀다. 전쟁은 끝났고 그는 생존해 스페인에서 병원을 차려 개업의가 됐다. 이후에도 그는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이 노래의 가사를 조금씩 바꿔 다시 불렀다. “나는 믿네 … 메시야의 오심은 확실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서둘러 믿음을 포기한다네.”
훗날 공개된 그의 일기에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택하는 것은 가장 쉽고 나태한 방법이다. 죽음 앞에서 살아보려는 부활의 의지, 이것이 새로운 창조다”라고 적혀 있었다. 오늘 우리도 너무 쉽게 인생의 결론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