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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기드온 찬양대 귀한 찬양 감사합니다.
오늘부터는 히브리서 강의를 시작을 합니다. 선교적 관점에서 히브리서를 읽어나갈 것입니다.
사실 신약 성경 전체는 선교 현장에서 쓰여진 기록입니다. 선교 문서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모든 성경은 선교적 안경을 쓰고 읽을 때 정확하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도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함께 읽으면서 이 선교적 성경 읽기입니다. 읽으면서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약 12주 또는 조금 더 상황에 따라서 더 할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레위기 또 히브리서를 신약의 레위기라고도 하고 또 구약의 레위기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들여다본 그런 책이 바로 히브리서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근간이 된 성경을 토라라고 합니다. 모세 오경 그 모세 5경 중에서도 진짜 알짜배기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 문서가 있습니다. 뭐든지 이게 중요하잖아요. 언약 문서. 집을 샀으면 집 문서, 계약 문서가 중요한 거예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 문서가 바로 레위기입니다. 레위기가 레위기가 구체적으로 역사에서 이루어지고 완성된 사건이 또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사건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구약의 레위기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고 특별히 히브리인들 오늘 이 성경을 읽고 있는 히브리인들에게는 이런 해석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히브리서를 읽고 강의를 듣는 동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의 복음의 실체가 무엇인지 흐릿하던 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인생길을 걸어가면서 빛과 안내자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선택해야 되는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갈림길에 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질문 앞에 서 보셨을 때가 있을 거예요.
하나님 지금 제가 여기서 무엇을 선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제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하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히브리서를 읽는 히브리서의 첫 수신자들 지금 바울이 썼다는 설도 있고, 여러 발신자 이 성경을 기록한 사람에 대한 설은 많지만 수신자 이 성경을 최초로 읽는 사람들은 분명합니다. 히브리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히브리인으로서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 슈데오 크레디앙 유대적 그리스도인들 이 사람들이 지금 이 성경을 잃게 됩니다. 이 사람들의 상황은 유대교와의 결별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요.
유대교는 어떤 거예요?
수천 년 동안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신앙의 기반입니다. 머리에서 발끝, 머리카락 그 깊은 곳까지 이 유대인들에게는 이 유대교라고 하는 구약의 여호와 신앙, 그 이후 포로 이후에 만들어진 유대교 슈다이즘이 뿌리 깊이 스며들어 있어요. 이것을 빼고는 자기들의 존재를 말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유대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기독교인이 되면서 유대교와 갈라서야 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거예요. 뭐가 옳은가 둘 다 가질 수는 없나 유대교를 버려야 되는가 복음이 뭔가 뭘 선택해야 되는가 아주 헷갈리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거예요. 거기다가 이 성경이 쓰여질 때쯤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이제 무너져야 되는 상황이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로마에 의해서 계속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 매우 혼란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그동안 붙들고 있던 신앙의 뿌리, 그리고 새로 믿게 된 복음 사이에서 이 유대인들이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큰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어요.
이게 뭐가 옳은 거냐 이거지 뭘 선택해야 되느냐 이거지
그들에게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복음 예수 그리스도 기독교 신앙을 선택하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계시의 결정이자 우리가 붙들어야 할 구원의 소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그렇게 갈등하고 갈림길에 서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분명한 해답이었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하고 최종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보면 아주 짧은 문장이에요. 1절에서 3절.
그런데 이 1절에서 3절은 원문에는 한 문장으로 됩니다. 이 한 문장 안에 이 저자는 기독교의 모든 진리를 다 담아버렸어요. 히브리서의 서문이면서 기독교 교리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그 이후에 1장 이후에 계속 펼쳐지는 이 히브리서의 모든 내용은 예수님을 설명하는 거예요.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대상이 되시는 예수님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는 거예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도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는 이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 예수님을 붙들고 그 예수님께 우리의 인생을 수렴시키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절 옛적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것은 구약 성경을 얘기합니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모세도 선지자 중에 하나예요.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신 계시의 말씀이라 이겁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말씀 계시는 아주 두 가지 중요한 방식을 통해서 나타나는데 오늘 첫 소절에 여러 부분으로 여러 방식으로 폴리메르스카이폴리트론 포스 여러 부분이라는 것은 여러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이런 뜻이에요. 계시의 점진성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맞게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계시해 주셨다는 거예요. 여러 방식으로는 하나님이 계시하는 방식이 다양하셨다는 거예요.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도 하셨지만 역사적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고 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율법으로 이사야를 통해서는 예언으로 다윗을 통해서는 시와 노래로 때로는 꿈으로 때로는 환상으로 불꽃으로 구름 기둥으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시가 어느 순간에 퍼즐 조각처럼 한 그림을 형성할 때가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퍼즐 맞춰보셨죠? 처음 퍼즐을 까면 막막합니다. 이게 도대체 뭔가 그런데 계속 맞추다 보면 점점 전체 그림이 나타나다가 마지막 하나 딱 맞추면 완성되는 것처럼 우리가 구약 성경을 들여다보고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 또 우리가 구약을 읽을 때도 이게 도대체 뭔 얘기인가 전체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요. 그래서 다양하게 해석합니다. 이러쿵저러쿵 그런데 그 구약 성경이 어느 순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순간이 왔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은 하나의 목표와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셔서 성육신 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은 퍼즐 조각과 같은 거예요. 어떤 사람도 인생의 의미 전체를 다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그때는 오해하고 헷갈리고 잘 이해하지 못해서 시험에 들고 절망하고 방황합니다. 이거 뭐냐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 내가 원하지도 않고 또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납니다. 이게 뭐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퍼즐 조각 하나를 들고 우리는 고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50이 되고 60이 되고 인생을 더 오래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에 그걸 이해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 그래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구나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 되고 잘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일어날 때 하나님의 큰 그림을 신뢰해야 합니다. 나 인생을 향하신 큰 그림도 있고 우리 가정을 향하신 우리 사회와 역사를 향하신 큰 그림이 있어요. 하나님이 그것을 지금 맞춰가고 계시다. 그래서 너무 작게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 더 너무 막 열받고 너무 고민하고 절망할 필요가 없어요. 흔들림 없이 우리 자리를 지키면서 나가다 보면 어느 날 그 놀라운 비밀을 깨닫는 날이 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와 인생의 방향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사실도 믿어야 합니다.
믿든 안 믿든 세상 사람들은 뭐 안 믿겠죠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성경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우리 인생과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방향을 가지고 있고 지금은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어느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지금 제가 드린 말씀이 맞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과 역사를 수렴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는 그날 여러분 역사는 완성됩니다. 우리 인생의 그림도 맞춰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이 그랬다.
구약은 선지자들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시대에 계시가 퍼즐처럼 계시가 되었는데 그 그림이 예수님이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가 오늘 1절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신약이에요. 이제부터 시작되는 신약 사실 신약은 한참 후에 몇 세기 후에 이제 27권이 만들어져요. 39권도 사실은 산발적으로 있는 성경이었어요. 그러다가 AD 90년에 냠니아에서 랍비들 회의를 통해서 239건 구약 성경을 정경으로 선택을 합니다.
특별히 여기 신약 성경 아직 이제 성경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주어진 복음, 그 복음의 계시를 담게 될 신약 성경은 어떤 것이냐 그 내용이 콘텐츠가 뭐냐 이것은 복음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완성된 계시의 말씀이라는 우리가 예수 믿고 크리스천이 됐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게시되고 완성된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놀라운 일입니다.
2절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위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 마지막 날의 이 마지막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종말론적 계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시하시던 시대는 이미 갔고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일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신약은 뭐냐?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계시라는 거예요. 종이 준 종을 통해서 주신 말씀을 종의 영이라고 하고, 그리고 아들을 통해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아들의 영이라고 그래요. 그리고 우리는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 아들의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에요.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린 거예요. 구약의 모세 다윗, 수많은 선지자들보다 더 위대한 시대를 살게 되기 시작한 거예요.
저와 여러분들이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건 굉장한 사건입니다. 구약의 모세를 통해서 직접 계시를 받던 그 시대보다도 위대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어요.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주신 말씀 그게 계시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직접 전달자이면서 말씀 자체이기도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그게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늘 계시를 전달할 때 이렇게 말씀해요.
여호와께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절대로 선지자들은 자기 얘기를 하면 안 돼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구약 성경 읽어보세요.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성경에는 이렇게 말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거 엄청난 말씀이에요.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에고 에이미 헬라어는 그렇게 돼 있어요. 나는 누구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자기를 선언하는 말씀 방식이에요. 그래서 옛날에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서 불타는 가시나무 떨기 하나님 만나잖아요. 이름을 물었어요. 당신의 이름이 뭡니까? 그랬더니 나는 나다 이렇게 대답했어요. 신약으로 말하면 에고 에이에요. 아이엠 데 아이엠 나는 너다. 신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이다. 예수님이 지금 그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하나님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진리다 이거예요. 복음은 예수님이고 복음은 그가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걸 받은 거예요. 그러니 예수 믿었다고 하는 것은 정말 천지 창조 이래로, 아니 그전부터 따져도 가장 위대한 사건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멍청해서 그걸 모르는 거예요. 막 엄청난 보물덩어리를 이렇게 받았는데 이게 돌이여 뭐여 그리고 그냥 갔다가 아무 데나 쳐박아 두는 크리스천들이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한 사실인지 오늘 이제 쭉 나옵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서 하나님 자녀 된 것을 너무 소홀히 여겨요. 미련해서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냥 뭐 예수 뭐 그거 뭐 별거 있나 그래서 조금 기분 나쁘면 믿어 안 믿어 그러고 이거 버려 말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것만큼은 버려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모르는 거예요. 그걸 예수님 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복음이라고 하는 그 계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 예수님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말씀합니다.
만요의 상속자요. 창조자시다. 하늘을 다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만요. 여기서 만유라고 하는 것은 물리적 우주만이 아니라 시간과 역사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위임하셨습니다. 그는 역사의 주인이시고요. 그는 시간의 주인이시고 그는 모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그 만유를 놀라운 사건은 그 만유를 예수님 혼자 갖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나누시겠대요.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이 계시를 받은 거예요.
크리스천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들이다. 뭐 n분의 1로 나눌지 예수님 반 같고 우리가 다 나머지 가지고 나눌지는 몰라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n분의 1로 안 나눠도 최소한 지구 별 하나씩은 가질 거예요. 크기로 말하면 어마어마한 일이에요. 예수 믿는다는 게 그는 창조자십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그 창조의 손길을 벗어나는 존재는 없습니다. 저와 우리가 파리에서 살아가는 이 시간도 이 광야 같은 삶도 주님의 손 안에 있어요. 그분은 우리의 시간의 창조자이시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3절에 말씀합니다.
이걸 조직 신학적으로 이하고 데이 하나님의 형상 뭐 이런 것들을 풀면 너무 길어요. 그냥 이 메시지의 핵심은 뭐냐 태양과 태양, 빛이 본질 그 본질과 나타남이 결코 분리될 수 없듯이 한몸인 것처럼 하나님과 그 아들이 한몸이다. 전혀 다른 구분된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본질상 하나다. 이게 삼위일체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에요. 아버지와 독립적인 인격을 가졌지만 본질적으로 하나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셔요. 그리고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예수님을 알면 되는 거예요.
크리스천 가운데도 하나님을 알고 싶어가지고 자꾸 파고들다가 이상한 걸 만나는 경우가 많아요. 영성이라는 게 있어요. 영성가들이 있어요. 기독교 영성가들 중에도 신 중심적 영성이라는 게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빼고 절대자 하나님을 중심으로 막 영성을 파고들다가 그 하나님이 계시해 준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게 아니고 그 인류 보편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신을 만나 그래서 우상숭배에 빠지고 신비주의에 빠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가장 정확하게 아는 길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는 거예요. 예수님을 알면 그분이 바로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리아 내가 너 어떻게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빌립이 자꾸 아버지 좀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답답해서 하신 말씀이 나하고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아직도 모르냐?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 거다. 이거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성품,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의 능력 예수님을 깊이 연구하셔야 돼요. 그분을 사랑하셔야 돼요. 그분과 친밀해지셔야 돼요. 그러면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길이에요.
또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단번에 이루시고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창조자시지만 창조하고 그냥 이 피조물에게 어떤 법칙을 제공하고 알아서 돌아가도록 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거예요. 그런 이단들이 있어서 이걸 떼이즘이라고 합니다. 이실론 하나님이 만물의 법칙을 창조하시고 만물의 법칙을 부여하고 하나님 멀찍이 이렇게 서가지고 그냥 바라보시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가 창조한 모든 피조물의 존재에 개입하십니다.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방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우리를 구속하시고 보존하시고 그리고 지금은 하늘에서 우리를 통치하고 계시다. 그래서 이 성경의 전체를 요약하는 창조 보존 구속 통치라고 하는 개념이 예수 그리스도 사역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없는 게 없어요.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그 외 것을 어디 뭐 더 좋은 게 있나 하고 기웃거리다가 우리는 이단이 되고 악한 영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성육신과 부활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의 정점이면서 또한 일반 역사의 오메가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 성경의 사건은 그냥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일반 역사의 주관자이시기도 하시다. 이거 일반 역사 안에 있는 구속의 역사가 성경에 있고 하나님은 이 성경의 역사만 개입하시는 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고 계시는 거예요.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이 역사는 오메가 포인트를 만나게 돼요. 역사의 종점에 이르게 돼요. 완성. 우리는 수소 폭탄 수백 개가 터지면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수만 개가 터져도 하나님이 정점을 찍지 아니하시면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뭐 AI를 만들고 영생을 꿈꾸고 기가 막힌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래서 역사는 영원히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끝 하고 결정 내리시면 끝나는 거예요. 우리 인생이 그렇지 않아요. 건강하게 100살까지 살겠다고 막 운동하고 뭐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는 여기까지 그러면 그날 하루아침에 끝나는 거예요. 우리 친구들도 벌써 많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저거 얼마나 살까 저 사람 얼마나 살까 하지만 골골 100년이라고 하나님께서 계속 너는 사명을 더 감당해라 하고 유지시켜주면 90 100도 사는 거예요.
인생이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인생이 누구 손에 하나님 손에 이게 받아들여져요. 젊은이들은 아직 몰라.
근데 여러분 확실한 건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우리 미래도 하나님 손에 있고 너무 세상 돌아가는 일로 우리도 막 돌도 던져보고 분노도 해보고 밤잠도 못 자고 그런 시절들을 보냈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다 그놈이 그놈이고 너무 그렇게 그런 걸로 애쓸 필요 없어요.
역사를 방관하자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우리가 믿어야 돼요. 그래서 기도해야 되고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면 세상도 뒤집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다른 더 좋은 계시가 어디 있는가 하고 기울거릴 필요도 없어요. 요즘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예수 믿으면서도 컬컬하다는 거예요.
교회 나와도 컬컬하고 뭐가 그렇게 칼칼합니까? 우리가 세상에 제일 좋은 예수님을 받았는데 뭐가 그렇게 공허합니까?
그래서 뭐 더 좋은 거 기가 막힌 거 없나 특히 한국 사람들이 그게 심해. 그래서 한국이 이단 공화국이 되는 거예요. 전문가들에 의하면 한국에서 성공한 재림 예수가 50명이래요. 일가를 이루는 그리고 자칭 재림 예수라고 이 핵가닥 해가지고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에요.
아프리카에 가보면 한국 이단들이 진출해 이 사람 돈이 많으니까 우리는 가가지고 거기 서민들 약한 사람들을 찾아갔는데 이 사람은 딱 와서 대통령 만나 건물 하나 딱 짓고 시작하니까 이게 세상적으로는 참 게임하기가 어려워요.
왜 한국에 이렇게 이단이 많아요 예수로 만족하지 않고 뭔가 더 기가 막힌 것이 있는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렇게 되는 거예요. 안 믿는 길거리에 사람 세상 사람들이 이단에 빠집니까? 다 믿는 사람들이 빠지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더 좋은 게 없나 더 좋은 거 없어요. 예수님 안에 모든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아멘이십니까? 이 시대는 이 놀라운 복음을 저버렸습니다. 초대교회도 이미 저버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21세기는 많은 특히 서구사에 2천년 동안 얼마나 복음의 은혜를 입었어요. 그런데 저버리고 있어요. 복음을 저버린 그 빈자리에 대안적 영성 대안적 진리가 채워지고 있어요. 그래서 뉴에이지 세속적 인본주의, 또 다른 종교 혼합주의, 동성애 예수님으로 만족 못하고 뭔가 마약처럼 뭔가 다른 걸 자꾸 기웃거리다 보면 이게 중독이 돼가지고 나중에는 그냥 정상적인 것으로는 그게 채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아주 비정상적인 프랑스도 동성애가 합법화됐기 때문에 이런 설교 하면 또 잡아갈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성경은 그걸 정상적이지 않다 죄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기웃거리는 이유가 복음을 버렸기 때문에 영적으로 공허한 세상은 이런 것들에 열광합니다. 여기에 얼마 전에 BTS가 와가지고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어요. 하루에 9만 명씩 모여가지고 축구 결승전을 해도 그만큼 안 모여 저는 그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저는 그걸 잘 모르지만 첫째는 참 대단하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이런 시대가 왔구나 가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아들도 같더라고 다 이 시대에 하나의 문화 현상이니까 가서 보고 같이 즐거워하고 하는 건 그거 절대 문제 될 건 아니에요. 그런데 가서 팍 울고 막 소리치고 그런 건 조금 안 하면 좋을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면서 가서 팍 뛰다 눈물이 팍팍 쏟으면 되겠어요.
그런데 이 시대 사람들이 왜 그런 히어로들에게 열광하는가?
저는 공허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참 훌륭하다. 한 번 가서 실컷 한 번 놀 수는 있지만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것도 괜찮지만 그거 없어도 만족하는 사람들. 거기 안 가도 가도 좋지만 안 가도 전혀 마음에 공허함이 없는 사람들. 아멘 그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방황이 멈춰집니다. 그 안에 모든 게 다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 하늘의 은혜로 가득한 사람들이에요. 하늘의 은혜, 상상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교회는 뭐냐? 이것을 세상에 전하는 기관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이 놀라운 소식, 이 놀라운 이름,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서 세상에 증거하는 일을 해야 돼요. 이 큰 구원의 소식을 세상을 향해서 증언하기 위해서 세워진 존재가 교회다.
우리 파리 선한 장로교회가 오늘 이 파리 땅에 존재해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복음을 누리고 이웃과 나누고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아직도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유럽과 열방을 향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구속 계시 예수 그리스도 복음 최종 말씀을 온 땅에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워주셨어요.
교회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복음을 깨달은 사람은 가슴이 막 벅차올라서 이 복음을 들고 나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는 선교적일 수밖에 없어요. 선교적 인생, 선교적 인간, 그리고 선교적 교회가 돼야 정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주신 말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여러분 땅 끝까지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