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약물도 본질적으로 중독성은 없다. 마약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중독현상은 약물의 약리적 문제가 아니라 냉혹한 사회와 같은 사회적 요인 때문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란 책에 나온 브루스 알렉산더라는 심리학 박사의 주장이다. 마약엔 본질적으로 중독성은 없다 마약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정책이 맞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매우 흥미롭지만 또한 당혹스런 주장이다. 마약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서 법으로 금지해야 함을 증명하는 실험결과들이 많기 때문이다. 실험실의 동물들이 먹이 대신 마약에 중독되어 굶어 죽는다든가, 흰쥐들이 중독성 약물을 먹기 위해 강한 전기 충격이 가해지는 자기장을 고통을 마다 않고 건너는 실험들 앞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알렉산더 박사는 그 실험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실험의 결과가 아니라 환경을! 약물 중독 실험에 사용되는 쥐들이 갇혀 있는 우리는 대체로 더럽고 비좁았다. 어떤 쥐들은 등의 털을 민 채 실험용 관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다. 박사는 자신도 그런 곳에서 지낸다면 가능한 흥분 상태로 지내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 하긴 나라도 그럴 것 같다. 박사는 그 우리가 제거될 때, 환경이 좋게 바뀐다면 그래도 똑같은 약물중독 현상이 나타날지 궁금해 했다. 그리고 '쥐공원'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충분히 돌아다닐 만한 널찍한 공간을 공원처럼 꾸며 쥐 16마리를 집어넣었다. 비교 실험을 위해 다른 16마리는 비좁고 격리된 우리 안에 가두고 약물 중독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좁고 격리된 우리 안의 쥐들은 처음부터 모르핀이 든 달짝지근한 음료에 달려들었다. 반면 쥐 공원의 쥐들은 가끔 모르핀 물을 마시기는 했지만 일반물을 더 좋아했다. 우리 안의 쥐가 쥐 공원의 쥐보다 모르핀 물을 최대 16배나 더 마셨다. 이 놀라운 연구결과는 쥐들이 '쾌적한' 공간에 있을 때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약물들을 피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쥐들은 모르핀이 든 단물을 좋아했지만 마약에 취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의 기존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박사는 역사적 사례들을 들며 자신의 주장을 확신하다. 베트남 전쟁 때 헤로인에 중독된 군인의 90%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조용하고 간단하게 약의 복용을 중단하였다. 문명사회에 수용되기 전까지 캐나다 인디언들의 마약 중독률은 대단히 낮았다. 양귀비를 재배하는 문화에 중독자들이 우글거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마약 중독은 약 먹게 하는 냉정한 사회가 원인 알렉산더 박사는 마약중독자가 느는 것은 구입 가능성이 높아져서가 아니라 자유시장 사회의 결과로 생겨난 혼란스러운 삶의 이동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자유시장 사회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 사람들을 이리저리 쫓아내고, 옮겨 다니게 하는 상품으로 취급했다. 이런 냉혹하고 불안한 사회가 마약을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에 발표하고 싶었으나 게제를 거부당했고 학계의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의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이 실험이 인체생리학에 미치는 환경 효과를 추적하는 유명한 연구들을 가능케 한 비공식적인 실험모델이라는 의의를 부여해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의 하나로 선정했다. 그 10장면은 인간의 행동이 보상과 처벌에 의해 좌우됨을 증명한 B.F. 스키너의 상자 실험, 불합리한 귄위에도 복종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기계 실험, 스킨십이 사랑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 해리 할로의 철사 원숭이 실험 등 심리학의 역사가 된 실험들이다. 그 역사들 속에 별로 주목받지 못한 쥐공원 실험을 넣은 것이다. 심리학의 역사만 놓고 본다면 쥐공원 실험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다. 그러나 마약 문제를 약의 문제로만 보기 힘든 현대사회의 현실을 볼 때 저자의 선택은 오히려 타당해 보인다. 글로벌 마약정책위원회 '마리화나를 비범죄화 하라' 약물중독 문제를 약의 문제로만 보았을 때 나올 가장 타당한 정책은 마약을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이다. 40년 전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이란 말을 사용한 이후, 미국은 마약과 전쟁을 해왔다. 1989년 부시 전 대통령도 취임일성으로 78억 달러를 들여 마약퇴치를 위한 전쟁에 나서겠다고 했다. 내년엔 마약 관련 예산으로 262억 달러를 요구 중이다. 막대한 돈을 들인 전쟁의 결과는 글로벌 마약정책위원회가 지난 6월초 낸 보고서가 말해준다.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전직 대통령들과 조지 슐츠, 폴 볼커 등 미국 전직관료들이 참가하고 있는 위원회의 보고서는 "지난 수십 년간 벌여온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했다"고 결론 내렸다. 1998∼2008년 10년 동안 아편 인구는 1290만 명에서 1735만 명으로 34.5%, 코카인은 134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27% 증가했다. 마리화나도 1억4740만 명에서 1억6000만 명으로 8.5% 늘어났다는 통계를 보면 실패는 너무 뚜렷해 보인다. 보고서는 단속과 체포, 처벌과 감금 등 억제 위주의 정책은 인권 유린과 빈곤의 악순환 같은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만 낳았다며, 마리화나의 비범죄화 등을 제안했다. 마약과의 전쟁이 실패한 현실에서 마약문제는 사회의 문제도 살펴보아야 함을 일깨워 준 '쥐공원 실험'은 분명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이 실험이 왜 당시엔 주목받지 못했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마약은 관두고 노래도 금지하는 우리 현실 쥐공원 실험이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생각하려다 보면 답답함부터 앞선다. 마약은 관두고 가사에 술과 담배가 나왔다고 '19금' 금지곡으로 지정하는 현실을 보면 말이다. 약물중독의 문제가 약의 문제인지 약 먹게 하는 사회가 더 큰 문제인지는 토론의 여지가 있겠지만, 약물 중독 자체가 유해하다는 점엔 이견을 달기 힘들다. 하지만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결정된 노래들에 설사 중독된다고 해서 어떻게 해로운지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이장희의 '한잔의 추억'을 꽤나 불러댔지만 알콜 중독은커녕 음주의 유혹으로도 이어지지 않았던 나에겐, 10cm의 '아메리카노'나 2PM의 '핸즈 업'이 요즘 청소년에겐 그토록 유해한 노래인지 의문일 뿐이다. 이건 권력이 유해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금지하고 막아 건전사회를 만들려 했던 유신시대로의 퇴행이다. 금서 논란에 이어 금지 가요까지 구시대의 유물들이 좀비처럼 다시 활개치는 마당에 약물중독이 약의 문제인인 사회의 문제인지를 논의하려는 것은 정말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과 사회에 관심이 많다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읽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저자가 심리학의 역사가 된 실험들을 단순히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험 이후와 반대적인 측면까지 포함해서 깊이있게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수상한 저자다운 빼어난 글솜씨가 가을날 독서의 재미를 더한다. |
첫댓글 사회적 스트레스가 마약으로 이끄는 현상에 대한 이론은 일면 타당해 보임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있는 현상은 경제가 악화될수록 술 소비량은 급격히 늘어난다는 통계가 나와있으니 까요
술과 담배도 금지만 안할뿐이지 중독성에 대해서는 마약과 별반 다를바 없지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