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朝鮮朝) 대제학(大提學) 문형록(文衡錄) '문형'은 '온 나라의 학문을 바르게 평가하는 저울'이라는 뜻으로 '대제학'의 별칭인데, 학문의 권위가 높다고만 해서 되는 관직이 아니었다. '문형'이 되자면 문과(文科) 대과(大科) 급제자로서도 원칙적으로 호당(湖堂) 출신이라야만 가능했다. 조선조에서 '호당'이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 젊고 재주 있는 문신(文臣)으로서 임금의 특명(特命)을 받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을 가리키며 그러한 특전으로 학문을 하는 것을 사가독서(賜暇讀書)라 하였다. '대제학'으로서도 '문형'의 별칭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한정되어 있었는데, 반드시 홍문관(弘文館) 대제학과 예문관(藝文館) 대제학 및 성균관(成均館)의 대사성(大司成) 또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 등 나라 전체의 학문 관련 세 가지 최고 직위를 모두 겸직하는 경우에 한하였다. 그리하여 '문형'은 위 3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위이므로 학자로서 최고의 명예로 여겼으며 품계(品階)는 비록 판서와 동등한 정이품(正二品)이었지만 삼공(三公) 곧 삼정승이나 육조(六曹) 판서보다도 높이 대우하였다. 또 조선의 벼슬들은 국법에 따라 모두 임기의 기한이 있었는데, '문형'은 본인 의사에 따라 종신직이었다. 조선조의 '문형'은 도합 133명인데 우리 역사상 여러 벼슬에서 최연소의 기록을 세운 이는 광주이씨(廣州李氏)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이었는데, 20세에 문과에 오르고 23세에 호당에 들었으며, 31세에 문형이 되었고, 38세에 우의정, 42세에 영의정이었다. 참고사항 (1) 조선조의 '문형' 133명 중 2명 이상을 배출한 씨족은 모두 29씨족이고, 5명 이상 배출한 씨족은 광산김 7명, 연안이씨 7명, 전주이씨 7명, 신안동김씨(장동김씨) 6명, 달성서씨 6명, 의령남씨 6명, 덕수이씨 5명 등 7씨족뿐이다. (2) 일문 7대제학 한 씨족에 7대제학이 난 집안은 광산김씨 외에도 전주이씨와 연안이씨가 있으나 연안이씨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의 자손은 6대제학으로 3대 대제학, 부자 대제학이 났으므로 한 사람의 자손으로 7대제학은 사계 선생 가문이 유일하다.
(3) 조선 역사상 3대 대제학이 배출된 집안으로는 광산김씨 사계 자손, 연안이씨 월사 가문(정귀廷龜―명한明漢―일상一相) 외에도, 전주이씨 밀성군파(密城君派)의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자손으로 '민서敏叙 ―관명觀明―휘지徽之' 달성서씨 약봉(藥峯) 서성(徐渻)의 자손으로 '유신有臣―영보榮輔―기순箕淳(1791-1854)' 등이 또한 그러하였다.
[출처] 조선조(朝鮮朝) 대제학(大提學) 문형록(文衡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