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어느 한 명문대학에 한 학생이 있었다.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주변으로부터 인망이 두터운 학생이었으나,
집안이 가난한 지라, 학비를 충당하지 못하여 학자금을 대출받아서 공부를 하는 신세였는데,
그것이 군대 포함해서 자그마치 6년이었다.
어느 날 감사원에서 감사를 나왔는데, 재무기록을 살펴보던 감사관이 대노하여
"어느 놈이 감히 대학의 돈을 이리 많이 가져다 썼단 말이냐, 내 이놈을 치도곤을 내리라."
학장은 감사관에게 사사로운 향응을 제공하여 무마시키려 했으나 워낙 완고하여 구두로 경고만 하는 선에서 절충했다.
학장은 난처했다. 학자금은 학자금대로 독촉하는게 당연한 이치지만 학생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다.
학장으로부터 대출받은 학자금을 독촉받은 학생은 별 뾰족한 수가 없어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가족들도 푸념밖에는 할게 없었다.
"평생 앉아서 글만 읽었는데, 이제는 학자금 갚을 방도도 없게 되었구려, 그 명문대라는 것이 한푼의 값어치도 없는 것이구려"
한편 어느 이름난 부자 하나가 살고있었는데 명문대 출신도 아닌 빈천한 고졸이었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과를 즐기며 담소하는데,
마침 그 가난한 학생의 이야기가 나왔다.
"고졸로 사는건 참 고달픈 일이란 말이야, 수도권 지하철을 타면서 캠퍼스 라이프를 즐겨보지도 못하고
취직을 하는것도 항상 뒤에서 밀려나고, 사회에서도 명문대생을 만나면 코를 바닥에 끌듯이 하고 다니니.
마침 어느 가난한 학생이 하나 있어 학자금을 갚지 못하여 홍표(紅票, 빨간딱지)가 붙게 생겼으니
내가 그 학생의 학자금을 대신 내주고 명문대 졸업장을 받아보는게 어떻겠는가."
의논을 매듭지은 부자는 즉시 학생을 찾아가서 학자금을 대신 갚아주겠노라고 하였다.
학생은 매우 기뻐했다.
약속대로 부자는 다음날 대학 부속 은행에 가서 가난한 학생의 학자금을 모두 상환해주었다.
학장은 영문도 모르고 놀라서 그 학생을 찾아가 연유를 물었다.
학생은 학장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며, "학장님, 이 미천한 것은..." 하며 감히 대면하려고하지 않았다.
학장이 이상히 여겨 영문을 물으니, 학생은 더욱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황송합니다. 사실 학자금은 제가 학교 졸업장을 팔아서 학자금을 갚은 것입니다.
이제는 저 동네 아파트에 사는 부자가 학장님 학교의 학생입니다. 어찌 제가 옛일을 생각하며 감히 교만을 부리겠습니까?"
"참으로 군자고 양반이구나,
이런 각박한 세상에 부자가 되었음에도 갑질도 안하고,
어려운 이웃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하여 은덕을 베풀었으니 이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구나.
그러나 명문대라는 이름을 사사로이 파는데 증서같은걸 만들지 않고서는 차후에 법적 분쟁 일어날지 모르니, 사람들을 두루 모아놓고 증인으로 삼고 증서를 삼아야겠소."
그렇게 되어 학장은 한날 한시에 대학 내의 사람들을 두루 모았다. 그 밖의 학교 청소노동자와 경비들까지 모두 모이라 하였다.
부자는 학장의 오른편에 앉고, 변호사와 공증인은 왼편에, 가난한 학생은 저만치 떨어트려 놓았다.
그리고는 작성한 증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모년 모일에 이 증서를 만든다.
명문대 졸업증을 팔아서 학자금을 갚았으니 그 액수가 ****이나 된다.
원래 명문대생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순수인문학을 연구하는 학생을 문과라 하고
자연과학과 우주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생을 이과라고 하며
신체의 단련과 수행을 연구하는 학생을 체대생이라고 한다.
병사를 다루고 병법을 연구하는 학생은 사관생도라고 한다.
이 중에서 그대는 아무거나 고르면 된다. 허나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노니
절대로 상스러운 일에 엮이지 말며 옛 현인들을 본받아 그 숭고한 뜻을 숭상하여야 한다.
새벽에 일어나 전공과 교양서적을 읽어야 하는데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박카스를 들고 있어야 하느니라.
교수가 알려준 시험범위를 얼음위에 조롱박을 굴리듯이 술술 외워야 하느니라.
논술형 답안지를 쓸 때에는 종이 한면이 가득 차도록 써야하는데
문장의 흐름이 수리가 비상하듯이 거침이 없어야하며 학의 깃처럼 부드러워야 하느니라.
술을 마실 때에는 끊어 마셔서는 안되며 단숨에 잔을 비워야 한다.
담배를 필 때에도 볼이 불거지도록 빨아서도 아니되며 항상 자기 불은 지니고 다녀야 하느니라.
동기들이 한날 한시에 모일 때에는 중병이나 가정사라도 빠져서는 아니된다.
족보를 만드는데 있어서 정성을 다해야 하며, 그것을 공유하는 것은 미풍의 양속이니 지켜야 한다.
위의 사항에 하나라도 어김이 있으면 이 문서를 가지고 가서 고칠 것이니라.
이것을 학장이 읽고 나서, 변호사와 공증인이 서명하고 공증을 마쳤다.
부자가 이것을 보고 한참을 갸웃거리다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명문대생이라는게 고작 이런 것입니까, 명문대생은 구름 탄 신선과도 같다고 하는데, 조금 좋게 고쳐주실 수 없습니까."
이에 학장은 문서를 찢고 다시 써서 읽었다.
하늘의 도리에 따라 사람의 신분이 정해졌으니,
이중 가장 귀한것이 명문대 졸업생이요 이보다 더 존귀한 신분은 없다.
빈천하게 몸을 굴리는 일을 안해도 되고 사사로이 장사를 할 필요도 없다.
시험만 잘 보면, 인성에는 상관없이 적게는 공무원 나아가서는 변호사나 국회의원도 가능하다.
명문대생은 명문대에 들어만 가도 모든 직업에 우선권을 가진다.
명문대 과 잠바를 입는 것 만으로도 북풍의 한기를 막을 수 있으며
명문대 졸업반지를 끼고있는 것 만으로도 하늘의 영광을 몸소 받을 수 있다.
궁한 처지에 있어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있으니,
청소용역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어도 비난하는 사람은 없으며
고졸 노동자들을 데려다가 내 집 온돌부터 먼저 깔 수 있게하는게 가능하다.
어린 후배들로부터 졸업반지 값을 내라고 돈을 수금하는게 가능하며
MT 혹은 수학여행 비용을 부풀려서 중간에서 가로채는게 가능하다.
자금운용의 청렴함을 밝히기 위해 자금 이용내역을 밝히라는 사람을 모함하는것도 괜찮으며
여린 후배들을 집합시켜놓고 몽둥이로 치도곤을 쳐도 원망하는 이 없으며
행여 후배들 중에 누군가가 몸이 크게 상하더라도 학교에서 중재를 서 주므로 걱정할 것이 없다.
부자는 그 증서를 보자마자 손사래치며 말했다.
"그만 두십시오, 저를 무슨 시정 잡배보다도 못한 놈으로 만드시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그 자리를 허겁지겁 달아나 버렸다. 그러고는 죽을 때가지 명문대-라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첫댓글 옹춘문예(앙춘문예) 초대당선작 짝짝짝
상으로 뭐 없나요? (치명상 말고 찰과상 말고 부상 말고 중상 말고 화상 말고 열상 말고 자상 말고 총상 말고)
@PANDA 동상요ㅎㅎ
@데미르 이런 눈치 채지 못하다니
@PANDA 상으로 자작으로 승작시켜드립니다.
(아 그리고 쪽지확인좀. ㅋ)
@PANDA 밥상이요
@쏠로몬대왕 제길, 2콤보 ㅋㅋㅋ 밥상 ㅋㅋㅋ (잔칫상과 제사상은 예측했다)
@PANDA 밉상은요?
@쏠로몬대왕 아 이런. 3타격
으잉 근데 이거 원문은 먼가요?
박지원의 양반전입니다.
적절하군요.
몇몇 사항은 제가 실제로 겪거나 목격한 일이죠
명문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