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여성시대 Au revoir
이 글을 읽기 전에 1편 격인 갈리귤라 이야기 읽고 와봐요~
(안읽어도 상관없음 그런데 이해해하기 쉬울려면 읽는게 좋음ㅋ)
내가 친절히 링크도 걸어 놓겠음ㅋ
로마폭군 황제-갈리귤라
자~ 오늘 이야기 할 분은 바로 이분
제정로마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아우구스투스의 양아들이자 티베리우스(2대 황제)의 동생인 네로 클라우디우스와
안토니우스 딸인 안토니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갈리귤라(는 또 티베리우스의 양아들)와의 사이는 숙부 조카 사이가 됨.
(이쪽도 족보가 참 꼬일대로 꼬여서-_-;;;
네로 클라우디우스는 클라우디우스 아버지고,
갈리귤라의 할아버지고, 네로의 증조할아버지고-_-
아따, 쓰는 나도 헷갈림ㅋㅋ 나중엔 모계쪽으로 가면 더 헷갈림.)
후대에 와서 용모는 여러의견이 분분하나
장애를 앓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고 함.
걸을때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체형도 좌우를 이루지 못하여
신체를 단련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인지
어릴때부터 병약하였고 심지어 말을 더듬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란 생각이 지배하던 시대였기에
황실에서는 이를 수치로 여기고 늘 골칫거리로 취급하였거나
심지어 어머니 안토니아에게 조차 사랑도 제대로 못받고 자랐음.
그런데도 이런 그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운빨(;)이 있었는지
유달리 각별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정반대의 형인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 (갈리귤라 친부)와
일찍히 그의 능력을 간파하여 끌어 올린 그의 스승 티투스 리비우스였음.
첫돌이 지나자 마자 아버지를 잃었고
신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많이 부족했던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이 책임감 강한 형(게르마니쿠스)은 최대 보호자로서 역할을 다 하였음.
티투스 리비우스
이 티투스 리비우스 아니었으면 그냥 쩌리가 되었을텐데
유달리 역사에 관심 많았던 클라우디우스의 능력을 알아채고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여
에트루리아나 카르타고 역사를 저술하여 역사가로서 역할을 하게 만들었음.
(뭔지 알고 싶다면 링크 걸어 놨으니 클릭하면 됨.)
젊은 나이도 아니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 들어서
이제 남은 생을 역사로 묻힌채 그냥저냥 끝났을 터인데
그런 그가 어째서 왕이 되었냐하면,
서기 41년, 폭력만 일삼던 갈리귤라에게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근위대장 카이레아가 반란을 일으켜 살해를 하자
궁전 안 책상 밑에서 벌벌 떨고 있다가 얼떨결에
정말 얼떨결에 근위대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서 황제가 되었음.
그때 그의 나이 50세.
(사실 갈리귤라가 살해 당했을때
원로원들은 제정을 없애고 다시 공화정으로 돌릴려고 했으나
실질적으로 클라우디우스가 근위대에 의해서 황제로 즉위 한것인지라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 이후로 로마는 황제를 군사력에 의해 결정이 되었음.)
황제가 된 클라우디우스가 제일 먼저 할 일은
갈리귤라를 살해한 카이레아를 처형하는 일이었는데,
필요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제정을 유지하기로 한 이상
황제를 죽인 자를 그대로 놔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음.
같이 공모한 대대장 사비누스는 자결을 하였고
20명 안팍의 근위대병사는 황제의 암살을 관여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직접적으로 관여를 한게 아니라서 죄를 묻지 않고 덮어주었음.
(어쩄거나 이런 식으로 끝이 났기에 갈리귤라 살해 사건은 깨끗히 해결 되었던거고)
그리하여 두번째로 그가 했던 일은 로마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 내기 위하여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여 갈리귤라에 의해 추방된 로마인들을 국내로 끌어 모았는데,
그 대상자 중에서 아그리피나가 있었음.
이 아그리피나는 형 게르마니쿠스와 아그피나-모녀가 이름이 같음-와의
사이에 난 딸 중 하나로 갈리귤라의 여동생이며, 나중에 클라우디우스의 부인이 되기도 함.
그러니까 이 또한 숙부와 조카가 결혼을....;; 족보가 참...ㅋㅋ
(웃긴게 섬에서 유배 생활로 인해 많이 초췌했을거라 생각했던 아그리피나는
아주 씐나~하면서 더더욱 원기왕성해서 때깔 좋게 나타남. 도대체 섬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이후로 클라우디우스는 소신 있는 정책으로 재정을 튼튼히 하였고
갈리귤라가 남발한 막장을 달리던 정책이나 법령을 폐기 시키고
해방노예나 이민족을 중심으로 한 관료집단을 만들어 통치하게 끔 하였음.
어쨌거나 이런 탁월한 수단(?)을 발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되는 의견도 있는데,
역사가 가이우스 수에토니우스에 의하면
"그는 교활하고 잔혹한 사람."이다고 함.
서기 42년, 새 항구를 건설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였는데,
같은 시기 클라우디우스가 원로원을 의심하고 무차별로 죽이던 때라
달마치야의 총독이 클라우디우스에게 숙청을 당할까 두려워
먼저 선수 쳐서 반란을 일으켰음.
그러나 반란은 신속하게 진압이 되었고
다시 한번 많은 원로원들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었음.
클라우디우스는
황위에 올라서 세번째 부인을 맞아 들이는데
그 유명한 메살리나.
메살리나 - 한스 마카르트 작품
클라우디우스가 50살이었고 메살리나가 15살에 결혼을 하였는데
어찌되었던 이 황제는 아름다운 부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고
끼리끼리(?) 만난다고 메살리아 조차도 나이 많고 볼품 없는 남편에게
무시하거나 아예 관심 조차도 없었음.
뭐 듣기로는 메살리나가 넘쳐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여
po 잤잤 wer 콘테스트를 열었다나 어쨌다나-_-;;;
어쨌든 이쪽도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많은데,
메살리나의 이중 결혼이 발각되어-불법임-
메살리나는 나르키소스에 의해 23살때 살해 당하였음.
(참 지지로도 아내 복도 없지-_-;;)
자,이제 메살리나의 자폭으로
그 유명한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가 등장함.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아내 복도 없지-_-;;)
여튼, 권력욕이 강하고 야망이 큰 아그리피나는
메살리나가 죽자 이때 다 싶어서 클라우디우스에게 접근하기 시작함.
어찌저찌하여 아그리피나의 끈질긴 유혹은 견디지 못한
클라우디우스는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내고 결혼을 하게 됨.
아그리피나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자기 아들을
클라우디우스의 양자로 들이기로 결심하는데,
클라우디우스의 입장에서는 메살리나가 낳은
아들인 브리타니쿠스가 있어서 (그 와중에 아들은 낳고 갔네염)
굳이 양자를 들일 필요가 없었지만
끈질긴 아그리피나의 설득때문인지 어쨌는지 결국
서기 50년, 아그리피나와 전남편 사이에서 나온 아들인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를 양자로 들이게 됨.
(이름 생각이 안나서 검색하고 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참, 이름 한번 길다~ 긴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읭?)
이제 차근차근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던 아그리피나는
종점에 서 있는 클라우디우스를 암살하기로 결심을 하게 됨.
클라우디우스가 죽기 전에 성인이 될
브리타니쿠스를 견제하기 위해서고
나르키수스가 브리타니쿠스를 옹립하기 위해서
끈임없이 황제를 설득시키니 더 늦기전에 이 같은 일을 실행하게 되었음.
나르키수스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이때다 싶어서
클라우디우스가 좋아하는 버섯을 이용해 독살을 하는데 성공을 함.
그의 나이 62세.
그 후 아그리피나는 자기 세력을 규합하여
루키우스를 황제로 옹립하기 전까지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을 공표하지 않았고
루키우스가 근위대를 이끌고 나타나자 드디어 클라우디우스의 죽음을 공표하게 됨.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데로 루키우스가 황제에 오르니
그가 그 유명한 역사상 가장 폭군이었다는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투스 게르마니쿠스
즉, 네로 황제이다.
네로 황제
이제 끝.
반응 좋으면 다음엔 메살리나를 들고 오겠음.
첫댓글 이쪽집안얘기도 막장인게 재밌다 ㅋㅋㅋㅋ
헐 여기도 족보가 쩌네 ㄷㄷㄷㄷ;;;; 서양애들은 진짜 복잡함 ㄷㄷ;;
오오 언니 재밌다!!!!!ㅋㅋㅋ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ㅇㅇ언니가 알고 있는 그 네로 맞아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서양사 전공아니야ㅋㅋㅋㅋ 로마인 이야기도 한번도 본적없구 그냥 좀 관심이 있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