봤습니다.
몇 달 전 아픈 동안에 말이지요.
무어 여러번 본 건 아니고 딱 한 번 봤는데
그 느낌이 강렬해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군요.
나온 지 거즘 8년 정도 된 거고 흥행에도 성공한 영화라
보신 분들도 있으시리라 봅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전쟁 속에 피어난 비극적인 사랑
얘기이지요.
영퀴방에 들어가면 <영국인 환자>라고 하지요.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이탈리아의 외딴 수도원에
이름과 과거를 모르는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그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한나라는 간호사가 있습니다.
두 사람 다 상처를 안고 있지요.
알마시 같은 경우 사랑한 여인을 잃고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졌습니다.
한나는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이 모두 죽자 자신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번민하죠.
그리고 양엄지를 모두 잃은 의문의 사나이(윌렘 데포라는 배우인데
극중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요)가 수도원에 옵니다.
영화는 알마시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지요.
과거의 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캐서린이라는 영국인이었는데 유부녀였지요.
알마시는 헝가리인인데요.
사고로 얼굴과 몸에 화상을 입으면서 그의 존재를 증명해 줄 사람이 없어지고,
또 그가 과거에 대해 함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그를 영국인으로 알죠.
알마시와 캐서린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호감을 갖지만 조금 거리를 두죠.
그러다 사막을 여행하다 서로에게 끌리는 걸 인정하고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관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캐서린은 번민하게 되고
먼저 이별을 고하고 맙니다.
하지만 알마시는 인정하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서린의 남편인 제프리가 둘의 사이를 눈치채고 비행기에
캐서린을 태운 채 알마시에게 돌진하죠.
사고로 제프리는 죽고 캐서린은 갈비뼈가 부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되죠.
알마시는 캐서린을 동굴에 남겨두고 꼭 돌아오겠다며
사막을 삼일 밤낮으로 걸어 영국인 진지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신분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는데다 난동을 부려 첩자로
오인받아 갇히는 신세가 되죠.
감시하던 이를 따돌리고 그 근방의 사막의 지도를 독일군에게 넘겨가며 캐서린에게 돌아가지만 그녀는 이미 싸늘히 식은 주검으로 있죠.
한편 한나는 지뢰를 제거하던 인도 출신의 킵과 사랑에 빠지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 그는 홀로 떠납니다.
사실 그렇게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환 아니었어요.
감독이 안소니 밍겔라인데 이 사람 영화가 이상하게 보고 나면
사람 뒤골 땡기게 만드는 구석이 있더군요.
캐릭터들이 묘하게 저의 반감을 불러 일으키더라구요.
일단 한나(줄리엣 비노쉬)의 대책없이 순진무구한 캐릭터가 맘에 안들더군요.
왜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대책없이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
한나는 순수한 것보단 순진무구가 아무래도 더 어울릴 듯 하네요.
그리고 알마시는 난폭하고 그러면서도 순수하고 열정적이죠.
하지만 그것 역시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배우들의 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환자일 때 환자가 나오는 영화를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영국인 환자(알마시)의 감정에 저도 모르게 빠져 들게
되더라고요.
영화 중간에 의문의 사나이(?)가 한나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을 사랑하죠?”
그러자 그녀는 대답하죠.
“아뇨. 그는 과거의 유령을 사랑해요. 저도 그렇고요.”
그랬죠. 알마시와 한나 모두 박제된 기억에 기대 살고 있었죠.
그것만이 그들에게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요.
미래가 없는 사람들은 유령을 사랑할 수 밖에 없죠.
과거에 함몰된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나중에 한나는 그런 범위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갑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한 건대 같은 환자인 나, 그리고 알마시.
자꾸 등치공식으로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차이가 있죠.
저는 유령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과거는 종잇장이 펄럭거리는 것과 같은 의미 외에는
더 큰 의미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알마시처럼 과거가 자기 전체를 지탱하는 힘으로
다가오진 않았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앞을 보는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미래라고 할 수도 있고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뒤돌아볼 것이 없다는 것과 되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
그것 역시 슬픈 자화상입니다.
POSTSCRIPT
알마시와 캐서린 역으로 각각 분한 랄프 파인즈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에게 필이 꽂혀 그네들의 필모그래피를 열심히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너무 멋진 배우들이예요. -0-
rainlove님 저는 왜 그 장면 있잖아요. 캐서린이 알마시에게 이별을 고하고 야외극장을 나가다가 무슨 나무기둥에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이요. 참 사실적이면서도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 같아요. ^^;;/베토벤님 <애수> 하니까 저는 비비안 리가 먼저 생각나네요. ㅎㅎ; 추천해주신데로 함 보고 싶네요.
첫댓글 오래전에 봤었는데..저두 참 아주 인상깊게 봤죠..아직도 장면들이 하나하나 떠오르네요.. 이번주말에 한번 더 보고싶네요....
96년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강남역 시티극장에서 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밍겔라>감독을 참 좋아했었는데.... 랄프 파인즈 배우가 나온 <애수>라는 영화도 있어요, 한 번 보셔도 괜찮은데....
rainlove님 저는 왜 그 장면 있잖아요. 캐서린이 알마시에게 이별을 고하고 야외극장을 나가다가 무슨 나무기둥에 머리를 부딪히는 장면이요. 참 사실적이면서도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 같아요. ^^;;/베토벤님 <애수> 하니까 저는 비비안 리가 먼저 생각나네요. ㅎㅎ; 추천해주신데로 함 보고 싶네요.
아~! 그 따분한 영화! 으~!
코이노니아님, 따분할 수도 있긴 하죠. 러닝타임이 좀 길어서. ^^;
배경이 너무 멋져서 로맨스 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 강추. 그런데 사실과는 꽤 다르다고 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