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들어간다, 한국의 음주문화＜1＞ | 문학으로 만나는 한국의 음주문화

[춘수]

우리 문학은 술로부터 시작됐다. 왜일까? 술은 취함을 통하여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러한 몽환적 성격이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문학과 상당히 맞닿아 있기때문에, 문학은 술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최초의 시가라고 하는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바로 술에 취해 머리를 풀어 헤친 늙은이가 술병을 가지고 물에 빠지면서 이루어졌다. 죽음이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는 술병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말리느라 뒤쫓아 온 아내는 공후라는 악기를 들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 빠져 죽자 서글프게 공후*를 타며 노래를 부른 뒤, 남편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공후는 하프와 비슷한 동양의 옛 현악기)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들이 소중하게 들고 있었던 술병과 공후는 두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증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의 세계로 서슴없이 들어가는 이 두 인물을 술의 신과 음악의 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불멸의 존재인 신은 물속에 들어가도 그 신상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신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곽리자고라는 인간이 목격하였다. 인간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곧 죽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이를 신(神)의 시대가 가고 인간의 시대로 바뀌어 감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동명왕편>이 수록된 《동국이상국집》 ⓒ부평역사박물관

고구려를 건국한 동명왕의 탄생 또한 술과의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다. 이규보가 지은 <동명왕편(東明王篇)>은 하느님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유화의 사랑을 기록하고 있다. 해모수는 유화를 아내로 맞아 후계자를 낳기 위하여 유화를 술에 취하게 하였고, 하백은 딸을 해모수와 함께 하늘로 올려보내기 위하여 또 해모수를 취하게 하였다.

유화는 술에 취하여 하늘의 존재인 해모수와 결합하였고, 그래서 동명왕을 낳을 수 있었다. 유화를 하늘로 올려보내고자 했던 하백의 전략은 실패하였고, 그래서 우리는 신의 후예가 건국한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이처럼 동명왕에 의하여 고구려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여기에서 술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술의 몽환적 기능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모습은 <구운몽(九雲夢)>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구운몽>의 사건은 성진과 팔선녀가 수정궁에서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러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용왕이 권한 술에 성진이 취하였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성진은 팔선녀를 만난 후 수도승인 자신의 처지를 성찰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한다. 인간세계로 내려온 성진과 팔선녀는 지극한 호사를 누리다가 다시 본래의 곳으로 돌아간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그리고 저 세계에서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옴에 있어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술이었다. 이처럼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항상 술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것은 술이 가지고 있는 제도적 관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탈과 망각을 꿈꾸는 시간

우리 고전문학에서 술과 연관하여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인으로는 아마도 송강 정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정철은 술을 지나치게 사랑했던 문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 흐르듯 매끄러운 그의 문학은 술의 유장함을 닮았지만, 이와 달리 그의 정치 활동은 술의 폐단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여립 사건 처리의 책임자가 되어 수많은 선비를 죽게 한 기축옥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오죽하면 선조도 명을 내려 하루에 석 잔만 마시라고 하였고, 친한 벗인 이이와 성혼은 틈만 나면 그에게 절제를 권하였다고 한다. 그런 정철이니, 성혼의 술 초대가 아주 반가웠을 것이다.

재 너머 성권롱 집 술 익단 말 어제 듣고
누은 소 발로 박차 언치 놓아 지즐 타고
아해야 네 권롱 계시냐 정좌수 왔다 하여라

술을 즐겨 하는 사람이 술 되어간단 말을 듣고 기다리는 조급한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지는 시조이다. 아마도 긴 밤을 그는 술과 술자리를 생각하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술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래도 체면 차리느라 하루를 기다렸지만, 그 하루는 아마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의미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를 박차며 타자마자 벌써 벗의 집에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술 좋아하는 벗에게 술이 익었다는 기별을 해준 벗과 또 흥겹게 달려간 인간관계가 있어 이 작품은 더욱 흥청거린다.

이처럼 술에 과도하게 탐닉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정철은 이에 대한 생각을 <장진주사(將進酒辭)>에서 제시한다.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술과 꽃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술을 마시자는 권유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곧이어 나타나는 것은 죽고 난 뒤의 적막하고 쓸쓸한 현실이다. 거기에서 누가 술 한 잔 먹자할 것인가. 그때가 되어서야 뉘우친다면 무엇하겠는가. 흔히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 모든 반찬은 안주이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 모든 안주는 반찬이라고 한다. 술에 탐닉한 사람에게 있어 술은 다른 어떤 식품보다 우위에 놓이는데, <장진주사>는 살아 있고 술이 있으니 마음껏 마시자고 하여 음주를 살아 있음의 표지(標識)로 승격시킨다.​

절제된 언어 사용으로 한국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윤선도는 "잔 들고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 그리던 임이 온다 반가움이 이리 하랴 / 말씀도 웃음도 아녀도 못내 좋아 하노라"라고 하여 흥취와 망각, 무념의 세계로 가는 길목에 술을 위치시키고 있다. 요즘 '멍때린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라는 뜻인데, 현실을 벗어나 아무 하는 일 없이 그냥 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윤선도의 무념무상을 현대적으로 그려준 것 같아 흥미롭다.

술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다양한 세계로의 진입은 문학의 본질적 성격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현대문학에서도 다양하게 형상화되고 있다. 오히려 고전문학의 전형적인 성격을 벗어나 다양하고 개성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현대문학에서의 음주문화라고 할 수 있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라고 한 박인환은 실제의 삶이 술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다. 변영로나 오상순, 양주동은 자신들의 호쾌한 음주 모습을 시나 수필 속에서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고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공감하였다. 이때 술은 엄혹한 현실을 공격하는 소극적인 몸부림이었기 때문이다.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를 통하여 술을 마시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그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술을 통하여 문학 바라보기

술은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 불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물과 불의 양면적 성격을 가진다. 문학 작품에 형상화된 술은 상황에 따라 물을 선택하기도 하고 불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물의 수평적 흐름이 선택되었을 때 술은 유유자적한 취흥을 드러내고, 불의 수직적 흔들림이 선택되었을 때 술은 불안과 격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물이라 하여, 또 불이라 하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서 긍정·부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가치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귀설화(志鬼說話)>에서 불은 대상을 활활 태우는 파괴로 나타나지만, 선덕여왕을 향한 사랑의 모습은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존재이다. 대상이란 이렇게 양면성을 지닌다. (*지귀설화에서 지귀는 짝사랑하던 선덕여왕을 잠에 빠져 직접 보지 못하자 마음속 불에 몸을 불살라 불귀신이 된다.)

술은 이러한 양면성을 그 형질 속에 가지고 있어 현실의 다양한 삶을 표현하는 데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과도한 음주가 빚는 망각까지도 축제에서 용인된 것은 긴장 속의 현실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혜에서 비롯되었다. 몽환의 세계를 꿈꾸면서 이완과 일탈의 자유를 느끼는 것 또한 세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 반드시 요구되는 우리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의 삶을 그리는 역사와 달리, 문학은 현실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꿈에 봉사한다. 이루어진 역사만이 진실이 아니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심정적 진실 또한 그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학은 바로 그러한 우리의 바람을 실현하게 해 주는 구체적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술은 문학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술이 문학 형상화의 중요한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에서 차지하는 술의 역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에 탐닉하여 폐인이 되는 것까지도 문학은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그것이 문학을 문학으로 보는 바른 태도이다. 독자는 문학에서 교훈이나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고, 작자가 제공하는 꿈의 세계를 소요(逍遙)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것을 원하는 독자라면 문학 외의 다른 곳에서 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술의 기능이 변하지 않는 한, 술은 앞으로도 문학의 중요한 파트너라는 위치를 영원히 갖게 될 것이다.

정병헌(판소리연구가)

[석촌]

참 오랜만에 귀한 글 읽습니다.
공무도하 공경도하...
그런데 술 생각 나나요?
일요일에 마켓패, 인사동패, 술판도 있다는데...ㅎ

[춘수]

ㅎ 선배님 ~
왜 저를 혹하시나요?
주님과 함께 한다면
기꺼이 가겠나이다~
물론 미녀는 기본이지요~~

[석촌]

뭘 멀리 가나요?
여기도 주선들이 많은데?
미녀라면 또~~~
하긴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ㅎ

[호뱐청솔]

격이 다른 깊이있는 글,
내가 언제부터 춘추님의 글을 접했나?
그 순간부터 머리에 깊이 각인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