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사상최고치인 2538억달러를 기록하며, 침체됐던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올해 역시 환율인하 등 악재에도 불구하고 1분기 동안 668억7200만달러를 수출해 전년대비 12.8%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배경에는 수출보험 역할이 주효했다. 지난해 수출보험 지원실적은 62조9000억원으로, 전체 수출의 18.8%를 차지했다. 중소기업 지원실적도 26조6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브릭스 등 신흥수출시장 개척에 앞장서 새로운 수요창출의 토대가 되는 한편 국가브랜드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액 2538억달러 가운데 IT산업의 비중은 약 30%에 달한다. 이중 최근 몇 년간 가장 괄목할 성장세를 보인 품목이 휴대폰이다.
휴대폰 수출은 95년도만 하더라도 4억800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87억2000만달러를 기록, 10년 만에 39배 성장했다. 품목별 수출실적도 자동차·반도체에 이어 3위로 뛰어올랐다.
우리나라 휴대폰이 실질적으로 세계무대에 신고식을 치른 것은 지난 96년 세계 최초로 CDMA 기술을 상용화하면서부터다. 이후 멀티미디어 기능을 휴대폰에 접목한 ‘컨버전스’ 제품으로 전 세계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면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휴대폰 사용자 4명중 1명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CDMA 종주국’이라는 기술적 자신감과 우리기업의 과감한 수출전략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96년 ’애니콜 신화‘를 일군 삼성전자의 미국시장 진출은 우리나라 수출 역사상 새로운 획을 긋는 사건이었는데, 여기에 수출보험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한국이 미국에서 통할까’ 편견에 도전 = 96년 9월 삼성전자는 미국 1위의 개인휴대통신(PCS) 업체 스프린트(SPRINT)사와 97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170만대(총 6억달러 규모)의 휴대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CDMA 방식 휴대전화 단말기를 OEM 방식이 아닌 ‘삼성’ 브랜드로 수출하는 조건이었다.
세계최초로 CDMA 방식 휴대폰 개발 및 상용화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노키아·모토로라 등 메이저 업체들의 각축장인 미국시장에 뛰어드는 발판을 마련한 것.
당시 미국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방식으로 휴대폰의 세대교체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기존 아날로그 시장은 모토롤라가 석권하고 있었고, 막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한 PCS는 CDMA 원천기술을 갖은 미 퀄컴사가 일본 소니사와 제휴를 통해 시장을 선점해가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만 해도 미국 내 중급정도의 브랜드 인지도를 갖고 있던 삼성으로써는 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국이 세계최초로 CDMA 휴대폰 기술의 상용화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과연 토종기술로 만든 휴대폰이 미국시장에서 제대로 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외상결제·수입자 신용불안 등 첩첩산중 = 삼성전자와 수출계약을 체결한 스프린트사는 미 연방통신위원회의 PCS 주파수 경매조치에 의해 미국 1위의 전국망 PCS 사업자가 된 가입자 규모 1억5000만명의 초대형 통신사였다.
당시 미국의 다른 통신사들은 유럽에서 사용되던 GSM방식을 2세대 휴대폰 표준으로 삼았는데 스프린트는 CDMA방식을 채택하고, 휴대폰 공급업체로 퀄컴과 삼성전자를 선정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의 1,2위 업체인인 모토로라와 노키아는 CDMA 휴대폰 시장에 참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후발주자가 선두기업을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기술혁신으로 인한 제품의 세대교체기라는 점을 고려하면)삼성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스프린트사와 6억달러 규모의 거래를 추진하는데 있어 ‘대금결제 조건’이 걸림돌로 작용했다. 양사의 수출계약서상 대금결제조건이 120일 외상조건 이었기 때문.
수입자인 스프린트사 입장에서는 외상기간동안 금융을 제공받는 것과 다름없는 조건이지만 수출자인 삼성전자로서는 거래기간 내내 대금 미회수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3년간 장기계약인데다, 스프린트사는 미국내 PCS 인프라 구축을 위해 15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입자 신용도에 대한 불확실성도 간과할 수 없었다.
◆수출보험공사 과감한 지원이 물꼬 = 삼성전자의 경우 미국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려면 스프린트사와의 거래가 절실했지만 외상거래에 따른 리스크를 감안할 때 불리한 거래조건을 무조건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삼성전자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 (외상수출거래에 대한)대금미회수 위험을 담보하는 ‘수출보험’이었다.
97년 5월 삼성전자가 스프린트사와 총 6억달러 규모의 수출계약에 대한 ‘수출보험’ 인수를 타진해 왔을 때, 수출보험공사의 보험기금규모는 5000억원 수준이었다. 수출보험공사 역사상 이렇게 큰 금액을 보험으로 인수한 적도 없었을 뿐 아니라 사고발생시 자본금 역할을 하는 기금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거래규모가 대형이었기 때문에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수출보험공사 관계자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도저히 인수결정이 내려질 수 없었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사회까지 개최하며 격론을 벌인 끝에 수출계약금액 전액을 인수키로 결정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처럼 과감한 결정이 내려진 배경에는 CDMA 휴대폰 사업이 우리나라의 21세기 전략 산업이란 점과, 스프린트사와의 거래를 전폭 지원하지 않을 경우 향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영원히 후발주자로 머무를 것이라는 거시적인 고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인 10명중 2명이 삼성 휴대폰 = 스프린트사와의 거래로 미국시장에 첫발을 디딘 삼성전자는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아 99년 미국의 또다른 CDMA방식 통신사업자 VERIZON과 거래를 시작했다. 그 결과 미국내 시장점유율 6위(6.5%)를 기록하게 된다.
이후 CDMA에서 확보한 브랜드 인지도와 수출보험공사의 지원을 등에 업고 2001년부터 GSM방식의 휴대폰을 미국 T-MOBILE 앞으로 수출하기에 이른다.
2003년에는 미국 5대 통신사업자 AT&T·CINGULAR와 거래를 하면서 2004년 판매대수 2400만대·매출액 37억달러로 미국시장에서 노키아, 모토로라에 이어 3위(19.8%)로 급부상 했다. 매출액 규모만으로는 2위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수출증대에 비례해 수출보험지원실적도 지속적으로 증가해 97년 1억3000만달러에서 2004년 37억달러를 기록했다.
세계 최고시장인 미국에서 인정받은 삼성전자는 세계 각국 시장을 꾸준히 개척, 지난해
100여개국 이상에 8000여만대를 수출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인도·중국·북미 시장에서는 시장점유율 1~2위를 기록하며, 최고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애니콜 신화’의 지속은 수출보험공사라는 파트너에게 대금미회수 위험을 맡겨놓고, 현지화 전략에 따른 공격적 마케팅을 전념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