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교 교탑...프라하 13 성문을 이 교탑을 본따서 만들었다고 하며 화약탑도 이런 모습이다.
카를 4세의 동상 이곳에서 한 시간 후인 8.40분에 만나기로 한다....카를교가 끝나는 구시가지쪽에 있고 뒤에 보이는 건물은 카를
교 박물관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카를교 쪽으로 가서 카를 4세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 8.40분에 다시 모이기로 하고 한 시간 동안 자유시간을
준다.
프라하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날이 어두워져야 불이 들어오는데 5.18일로 하지가 가까워서 해가 일찍지지 않는다.
저녁 9시쯤에 불이 들어올 것 같다고 하여 8.40분에 모여서 이곳에서 프라하성의 야경을 보고 숙소로 들어간다고 한다.
오전에는 카를교를 그냥 지나오기만 했기 때문에 한 시간의 자유시간 동안 카를교를 천천이 건너면서 사진도 찍고 주변도 둘러본
다.
다리 위에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모이는 장소에서 건너본 프라하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이곳이 소위 야경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아가씨들과 자물쇠..........아마도 열쇠는 블타바 강물에 던졌겠지
카를교를 올라가서 교각을 보면서 구경을 하고 간다....이런 조각이 30개가 있다고
카를교 하류쪽
카를교 상류쪽...유람선도 떠 있고.
카를교 전체 길이는 약 520m, 폭은 약 10m이며 30개의 성상들이 좌우 난간에 각각 마주보며 서 있고 말라스트라나쪽과 구시가지
쪽으로 양끝으로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각각 서 있으며 카를교 위의 성상들은 원본도 있지만 복제품의 원본은 국립 박물관과 비셰
흐라드 포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카를교 ..위키백과에서
카를교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발길을 멈추
게 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준다고....
또한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은 늘 소원을 비는 관광객
들로 붐빈다고 한다.
성상 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도 있다.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상한 포즈를 취하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러는지...
일행들도 한가하게 다리를 걸어 본다...교탑은 양쪽 끝에 있는데 앞에 보이는 교탑은 프라하 성쪽에 있는 교탑이다.
네포무츠키는 1393년에 프라하 대교구장 요한 젠슈타인 대주교의 총대리로 임명되었으나 그해 3.20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블타바 강에 손이 묶여셔 강물에 던져져서 죽었다.....머리 위의 다섯개의 별은 물속에 잠긴 그의 시진 위에 다섯개의 별이 빛나는
바람에 시신을 찾게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얀 네포무츠키는 1345년경에 태어나 1393년 3월 20일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살해를 당한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이다.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왕이었던 바츨라프 4세에 의해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익사를 당하였는데 성 요한은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
신부였었다. 왕비의 불륜을 의심한 왕이 왕비의 고해성사의 내용을 밝히라는 왕의 요구를 거부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순교를 당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또한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고 한다.
네포무크의 요한의 초상은 보통 사제복 위에 소백의와 영대를 착용하고, 오른손에는 십자고상을 들고 왼손으로는 입을 막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고해의 비밀을 누설하라는 강요를 당하고도 단호히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머리에 있는 후광은 다섯 개의 별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블타바 강에 빠지고 난 다음 날 강 위에 다섯 개의 별과 같은 광채
가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 광채가 난 곳으로 가서 성 요한 네포무츠키의 시신을 발견하여 수습하고 비투스 대성
당에 안장하였다.(위키백과에서 발췌)
이곳에서 물에 던져진 듯...물에 빠져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다.
일행과 떨어 져서 프라하 성쪽으로 걸어가 본다....
본래 카를교는 10세기경 나무로 만든 목조 다리였으나 12세기에 들어와 프라하에 대홍수가 나면서 블타바 강의 물이 넘쳐 다리가
쓸려나갔고 한다. 12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유디트교는 독일에 이어서 유럽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돌다리였지만 200년 후인
1342년 겨울에 생긴 얼음 덩어리로 인해 다리가 무너졌다고 한다. 이후 1357년 카를 4세가 프라하 성 내 성 비트 대성당을 건축했
던 건축가에게 이 다리의 건축을 맡겼고, 그는 겨울에 얼음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다리 밑을 거대한 교각으로 받치고 달걀 노른
자를 섞어서 돌과 돌 사이를 접착시키는 공법으로 매우 강하고 튼튼한 다리를 1407년에 완성하였다고 하니 40년이 걸려서 건축한
다리로 카를 4세 사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다음백과에서 발췌)
교탑옆 문으로 들어가보고...
이런 골목이 나온다.
카피와 굴뚝빵을 파는 집...줄을 많이 서 있는 것을 보니 맛집인 듯
체코에는 굴뚝빵이 유명하다고
길가의 식당들..
얼음 덩어리나 나무들이 교각을 들이 받지 못하게 충격방지하는 것을 만들어 교각을 보호하고 있다.
교각마다 보호를 해 놓았다.....1342년 겨울 얼음덩어리 때문에 교각이 무너진 적이 있다고 한다.
중동 사람인 듯한 사람들이 시끄럽게 노래를 한다.
상류쪽의 보와 물고기 길
유람선이나 배들은 오른쪽에 있는 물길로 다닌다.
까를교
일행들이 모임 장소에 모여 있다....오른쪽의 교회 건물은 아시시의 성프란시스 교회이다.
건너편의 야경을 기다리는 사람들
아홉시가 되어 가지만 아직 어둡지가 않다.
9시가 되어도 제대로 어두어지지 않아 불빛도 선명하지 않다. 더 오래 욌어봤자 더 선명하게 밝아지지도 않을 것 같고 내일도 관광
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숙소로 들어간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지만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버스가 기다리는 쪽으로 걸어가고 ...가로등이 빛나기 시작하고
프라하 성에 불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야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보는 야경
버스를 타고...우리가 오전에 프라하로 들어오던 곳이다.
이런 야경을 보려고 했었는데...아마도 겨울이아여 가능할 듯
프라하 시내에서 또 하나 유명한 것은 화약탑으로 1475년 블라디슬라프 2세가 초석을 놓고 카를교의 탑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하
며 원래는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의 성문(城門)중 하나였기 때문에 프라하 시내에는 이와 비슷한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화약탑
이라는 이름은 17세기 초 연금술사들의 연구실 겸 화약 창고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화약탑’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며 18세기 중
반 프러시아 전쟁 때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1876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서 가보지는 못했다.
화약탑
카를교 교탑과 닮았다....연금술사들 때문에 화약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를 둘러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다시 이 도시를 방문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