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부활을 위하여
... 용산참사, 쌍용차 노동자들, 4대강, 제주 구럼비를 기억하며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이 땅에는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모두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들입니다. 개발독재의 폭력으로부터 선량하고 죄 없는 서민들이 내몰리고 고통 받고,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은 회사가 잘 될 때는 이윤만 챙기더니 경영이 조금 나빠지면 노동자들에게 그 탓을 돌리고 정당한 노조의 단체행동을 매도하며 용역깡패들을 동원하여 마구 때리고 짓밟고 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 공권력은 이러한 폭력사태를 제지하거나 처벌하기는커녕 용역들의 무자비한 처사를 묵인하거나 비호하고 있는 실정이니, 노동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넋을 잃을 지경입니다.
탄압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철퇴를 놓고 있습니다. 정보기관과 경찰, 정부 핵심 조직들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는 민간인 사찰 문제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침해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대선 후보까지 거론되는 사람이 사찰당하는 정황이 폭로될 정도이니 도를 넘어도 너무 넘었습니다.
한동안 학교 폭력문제가 떠들썩했는데 요즘은 난데없는 성범죄 사건으로 뉴스를 잠식하며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물밑으로는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하면서 밖으로는 독도방문으로 국민의 공분을 자극함으로써 이른바 레임덕 현상을 극복해 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참으로 졸렬해 보입니다.
모 정당의 ‘함께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보면 참담한 생각이 들다가 허탈한 웃음이 나옵니다. 자신들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까지 국민들의 환심을 사 보겠다는 것인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전해줄 따뜻한 우리들의 메시지마저 선점당하고 언어마저 오염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어와 목적어가 없습니다. 누가,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인과 기업가가 함께 잘 해먹어 보겠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미사를 두고 간혹 이의를 제기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미사는 거룩한 곳에서 드려야지 왜 번잡한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느냐? 왜 혼란스러운 길에서 미사를 봉헌 하느냐는 이야기입니다.
미사는 무엇입니까? 세상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고 그분의 사랑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첫 미사가 이루어진 곳은 품격 있는 장소가 아닌 어둡고 외진 다락방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 로마 박해시대 미사 장소는 가난한 이웃들이 있는 그들의 거처였고, 심지어 죽은 이들의 시신이 썩어 가는 지하무덤에서 미사가 봉헌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의 성찬과 함께 그분의 삶도 역시 거룩하고 고귀한 이들과 높이를 맞추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한 이들, 죄인, 세리, 병자, 여인, 마귀 들린 부정한 이들, 즉 아나뷤들이라 일컬어지는 이들과 함께 하시고 그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이 필요 없다는 이들보다 절실하게 당신을 찾고 섬기며 당신께 희망을 거는 이들을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바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미사에서 이토록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던 그리스도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기리며 그분의 친구이며 그분 자신과 동일시 되는 우리 시대의 아나뷤들을 기억하고 함께 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미사 장소는 거룩하지도 품격 있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이 길 위의 미사는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 예수님의 미사에 가깝습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불의한 제물이 아닌, 예물보다 공정과 정의를 더 기쁘게 받아 주시는 그리스도의 미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기도와 미사가 하늘에 닿기를 원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듯이 간절한 우리의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키기를 원합니다. 힘이 없어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혼자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하기에 자신의 터전을 잃고 절규하며 낙담하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위해 기도드립시다.
주님, 많은 이들이 낙심하고 있나이다. 어떤 이들은 한숨 속에, 어떤 이들은 한 맺힌 외침으로, 어떤 이들은 당신께서 주신 귀한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우리 고통 헤아려 달라고, 우리 억울함 풀어달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절망의 시대를 처절하게 살아가야 하는 당신의 가난한 백성을 어여삐 보시고 어루만져 주소서. 불의한 이들은 자기의 부른 부를 배를 토닥거리면서 더 큰 욕망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고, 힘없는 이들의 고충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더 많이 좀 더 많이 만을 외치며 으르렁대고 있나이다. 타인의 고통을 볼모로 무한한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그들의 죄과를 벌하시고, 뜻 모를 폭력으로 고통 받는 당신의 벗들에게 한없는 위로와 힘을 주소서. 그리하여 이 땅에 당신의 정의를 이루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