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신춘희
나라를 잃으면,
천하(天下)에 제 무덤도 못 가진다.
들개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2024.7
신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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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한 행복/ 신춘희
봄볕 고물거리는 도심의 대공원
개모차에 실려서 산책 나온 말티즈
샴푸로 목욕을 해서 기분이 천국이다
햇솜 같은 털, 쪽빛의 나비 리본
자외선 차단 선글라스, 버선코 가죽 신발
화사한 블라우스가 몸을 곱게 품었다
가끔은 화단에서 셀카 사진 찍는다
치이즈, 외칠 때마다 벙그는 하얀 이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칭찬이 폭죽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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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신춘희
곤충 다리에 맺힌 이슬
창포 입술에 묻은 햇살
송사리 눈에 박힌 구름
속살 부푸는 달부리풀
모래알 정수리 치는 소나기
찬물에 낯 씻는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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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 신춘희
카페 유리창 밖 산수(山水)를 즐기며
주인의 가슴에 인형처럼 안겨서
간식을 오물거리던 호시절은 끝났다
기억을 지웠다, 오로지 살기 위해
근교의 쓰레기통 허겁지겁 뒤지고
가끔은 썩은 사체도 마다하지 않았다
깊은 밤 북한산 백운대에 올라
컹컹컹 짖으며 버려진 이유를
세상에 따질 때에는 증오가 솟구쳤다
그러나 이제는 기필코 살아남아
자유로 충만한 들개가 되려한다
야성을 회복하면서 하늘을 삼키면서
넘치는 아양과 과도한 비겁과
그 어떤 공포도 단숨에 제압하는
생존의 푸른 무기인 사냥술을 익히겠다
여우의 신중과 늑대의 강단으로
세상의 파고에 뜨겁게 저항하며
물밀듯 오는 평화를 지혜롭게 품겠다
초록 강둑에서 황토 밭이랑에서
교외 길섶에서 도심 골목에서
격렬한 짝짓기를 통해 무리도 늘리겠다
신도 부러워할 더불어 정신으로
백주의 도시로 거침없이 진입해
인간과 나란히 걷는, 그 꿈에 나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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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신춘희 시조집/ 들개/ 동학사/ 2024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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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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