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닿는 곳마다 보석처럼 빛나는 섬..
바람과 파도와 태양이 만들어내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홍도는 섬 전체가 홍갈색을 띈 규암질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해질 무렵이면 섬 전체가 타오르듯 붉게 물든 비경을 연출해 낸다.
깃대봉에 오른 후 2구마을 등대까지 왕복했는데...에너지가 고갈되어 죽다가 살아났다.
남북 6.7km, 동서 2.4km의 길이인 홍도는 허리가 잘록한 누에고치 모양이다.
다르게 보면, 남북으로 길게 누운 여인의 자태 같기도 하다.
홍도는 목포에서 115km, 흑산도에서 서쪽으로 22km 떨어진 섬이다.
첫 번째 경유지인 비금도, 도초도까지는 안쪽 바다여서 물결이 잔잔한 편이다.
이곳을 벗어나면 바로 망망대해인 외해(外海)로 접어든다.
이내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하며 외해로 나갈수록 배가 요동을 친다
아침 7시 50분에 출항한 동양골드호는 도초도, 흑산도를 거쳐 10시 40분에 홍도에 도착했다
성수기를 지난 홍도는 입도하는 관광객이 적어서 한산한 편이었다.
관광객이 몰려들 경우를 대비하여 기둥에 번호를 븥여 놓았다
업소마다 기둥 번호가 정해져 있어서 그곳에서 예약 손님을 기다린다.
우리는 1번 기둥 앞에서 예약한 숙소에서 마중나온 스쿠터에 짐을 실었다.
대한모텔
인터넷을 통하여 예약한 숙소인데 대만족이었다
주인 아줌마가 서글서글하고 인심이 후하며 요리솜씨가 일품이었다.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방값은 1박에 5만원, 식사비는 1끼에 1만원을 받는다.
나오는 날에는 산행을 마친 후 샤워까지 하고 가라며 방 열쇠를 주었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마을 구경에 나섰다.
1965년에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되었다.
6.47㎢(약 190만 평)에 달하는 섬 전체가 천연보호구역이다
한반도 서남단 섬을 대표하는 덕분에 살아있는 자연박물관으로도 불린다.
여객선 터미널 앞에 여러 개의 이정표와 안내도가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이곳으로부터 왼쪽 방향으로 나아가며 마을 탐방을 시작하였다.
1구마을
폭 400m에 불과한 허리 부분에 자리한 1구마을에 대다수의 가구가 몰려 살고 있다.
주민들의 극소수만이 어업에 종사하고, 대부분은 해상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골목마다 들어서 있으며 그 사이로 면 출장소, 성당, 우체국, 탐방지원센터 등이 들어섰다
마땅히 땅이 없으니 홍도의 집들은 전부가 바위 절벽 위에 서 있다.
죽항(竹項)당산
양산봉 방면의 골목길로 접어들면 갯마을의 정취는 끝나고 거짓말처럼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바로 홍도1구 죽항 당산이다.
1구마을은 죽항마을, 2구 마을은 석촌마을로 불린다
범상치 않은 자태를 보여주는 고목나무에서 신기(神氣)가 느껴졌다
슬쓸한 당집
주민들이 안녕과 무사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제를 올렸던 곳이다.
당제를 올리던 주변은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숲의 울창함이 하늘을 가린다.
1970년대 당제가 중단된 후 허물어진 채로 남아 있던 제당터는 지난 2007년 복원되었다
이미 신들이 떠나버린 당집은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다.
홍도관리사무소 건물의 벽에 홍도원추리가 그려져 있다
원추리의 기운을 받은 여인의 미소가 아름답다
홍도 원추리
육지의 원추리에 비해 꽃이 유난히 크고 아름다우며 질감이 곱다.
같은 노란색이지만 옆 흑산도 원추리와는 색감이 또 다르다.
홍도 사람들은 이 원추리 잎으로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서 배고픔을 견뎠다고 한다.
7월에는 원추리 축제를 할 정도로 많이 피는데 이젠 거의 시들어버렸다.
게으른 고양이
성당 공소를 찾아가는데 담장 위에서 고양이가 졸고 있었다.
게으른 고양이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조용히 지나갔다.
1구마을 공소
마을 공소는 마을의 맨 꼭대기에 애처롭게 서 있었다.
아랫쪽은 땅값이 비싸서 위로 밀려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까지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고맙기도 하였다.
공소 안에는 신자들이 쓰던 미사책과 성가책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우리가 섬에 머물고 있는 동안 좋은 날씨를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유람선을 타다
홍도의 지형은 바다에서 봐야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람선 투어를 홍도 여행의 백미로 꼽는다.
‘남해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홍도의 해안은 기암절벽들의 전시장과 같다.
요금은 1인당 2만 8천원인데 모텔 주인이 미리 예약해서 3천원을 할인 받았다.
남문바위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남문바위 앞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꺾쇠 모양으로 구멍이 뻥 뚫린 남문바위 옆에 칼바위가 솟아 있다.
사진을 찍기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면 가이드가 일일이 촬영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남문바위는 유람선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모양이 변하였다.
실금리굴
어떻게 이름을 붙이기 불가능할 정도로 기기묘묘한 암벽이 이어진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기기 아까운 비경이다.
옛날 홍도로 유배 온 선비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타고 여생을 즐겼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기둥바위
기둥바위는 홍도 전체를 받치고 있는 기둥 역할을 한다.
이 기둥바위의 힘으로 홍도를 지탱하고 있으며, 이 기둥이 무너지면 큰 변이 난다고 한다.
바위 사이사이 동굴에는 이 섬의 업(큰뱀)이 살고 있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도승바위
어부가 기르던 개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죽었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도승이 애처롭게 죽어간 개의 넋을 빌어주기 위하여 부처석상을 세웠다
지금도 태풍이 부는 날이면 주인을 부르는 개짖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섬의 경사면과 바다 위에 솟은 바위가 홍갈색을 띤 규암이기 때문에 홍도로 부른다고 한다.
여기에 석양이 비치면 섬은 온통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
붉은 바위에는 수많은 거북손과 홍합들이 붙어서 자라고 있었다.
일설에는 붉은 동백꽃이 섬을 뒤덮고 있어 홍의도(紅衣島)라 불렸다고 한다.
2구마을
바위 절벽에 붙어있는 1구마을과는 달리 아늑한 곳에 들어앉아 있었다.
1구와 달리, 2구의 한적한 마을 주민들은 어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을배가 뱃시간에 맞춰 1구마을까지 하루에 2번 운항한다고 한다.
홍도 등대
홍도2구 마을 윗쪽 산중턱에 있는 등대가 보였다.
등대와 마을을 이어주는 길은 아주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하얀 등대는 가히 한 폭의 그림 같다
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89m에 이르는 고지대에 있다.
독립문바위
모양이 서울에 있는 독립문과 꼭 같아서 3.1만세 이후 독립문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이 마을에서는 북쪽에 있다 해서 북문이라 부르고 구멍바위라고도 한다.
수평으로 쌓이고, 빗금으로 층을 이룬 온갖 형상의 ‘바위 꽃’이 바다에 흩뿌려져 있다.
선상 휴게소
유람선 관광의 마지막 파티는 선상 휴게소에서 이루어진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어선이 쪼르르 달려와서 바로 회를 떠서 여행객에게 판매한다.(1접시 35,000원)
가이드가 내려가서 돈을 받고, 사진사가 회를 뜨는 것으로 보아 모두 한 통속으로 보였다.
깃대봉 가는 길
숙소에서 아침밥을 먹으며 대충 도시락을 싸가지고 등산길로 나섰다.
길 따라 식당과 숙박업소들이 정렬되지 않은 채 난립해 있다.
골목을 지나자 바로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장이고 이곳에서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학교 아래는 홍도 서쪽 해변인 빠돌해수욕장이다.
돌이 파도에 씻기고 씻겨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홍도 사람들은 '빠돌'이라고 부른다.
청어미륵
깃대봉 탐방로 4~5부 능선에 세워진 2기의 돌이 보였다
이 돌은 청어미륵(靑魚彌勒)이라 부르는데 그 모양이 특이하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조금 짧은데 둘 다 둥글게 생긴 자연석이다.
홍도의 죽항 사람들은 이 미륵을 각각 긴 것은 남미륵, 짧은 것은 여미륵이라 부른다.
홍도비비추
홍도에 자생하는 비비추의 일종으로 예쁜 보라색의 꽃이 핀다.
1982년 미국인 Yingeri S. Jones가 홍도의 식물 탐사활동을 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잉거는 이 비비추를 미국으로 가져가 ‘잉거비비추(Hosta Inger)’라고 명명하여 특허 등록했다.
그리고 높은 가격에 판매되는 원예종으로 만들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당국은 홍도에 자생하는 비비추를 찾아 ‘홍도비비추’라고 명명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남의 나라 식물이 되어버린 후라 아쉬움이 크다.
깃대봉(368m)
관광객들 대부분이 깃대봉까지는 오르지 않아 산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기만 하다.
날씨가 후텁지근하여 산기슭을 타고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숲길은 동백나무, 소사나무, 물푸레나무들로 군락을 이룬다
정상은 짙은 안개에 휩싸여 있어서 근처에 있는 흑산도, 가거도, 태도군도가 보이지 않았다.
지친다. 지쳐~
숲길에는 바람 한점 통과하지 못해 숨이 턱턱 막힌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온몸에서 기운이 싸악~ 빠져나간 느낌이다.
그래도 등산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청아한 새소리와 군데군데 마주하는 원추리가 생기를 북돋아 준다.
대개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되짚어 내려가지만 우린 2구마을로 향하였다.
2구마을
깃대봉에서 능선은 북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차츰 자세를 낮춰 바다로 자맥질한다.
2구 마을은 능선 중간에서 좌측으로 꺾인 구릉의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부산한 1구마을과는 달리 그야말로 한적한 어촌마을의 모습이었다.
홍도등대(1)
2구마을 교회 사모의 도움으로 등대로 가는 길을 찾았다.
등대문화유산 3호인 홍도등대는 1931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홍도등대’란 이름으로 처음 불을 밝혔다.
일제가 물러간 뒤에는 한동안 등대 건설에 동원됐던 마을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기도 했다.
내부에서 등탑으로 올라가는 주물 사다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홍도등대(2)
등대는 1931년 2월에 석유백열등으로 점등을 시작했다.
일제 때 마을 주민들이 노무자로 동원돼 지어진 등대이다
지금은 해양수산부 직원이 상주하며 등대를 관리하고 있다.
식수가 떨어져 힘든 상황이었는데 직원이 시원한 물을 내주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2구마을 공소
이곳 조그마한 마을에도 공소가 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흑산성당의 신부님께서 1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미사를 집전하신다고 한다.
공소에 들어가서 다시 기도하였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좋은 날씨를 주시라고...
그래야 흑산군도의 작은 섬들을 탐방하려는 계획을 완성할 수 있다
죽다 살아나다
2구마을에서 다시 깃대봉을 넘어 1구마을로 돌아왔다
더운 날씨에 땀을 많이 흘린 탓으로 기운이 빠져서 죽다 살아났다
1구마을의 활짝 핀 분꽃의 미소를 보니 다시 기운이 살아났다. ㅎㅎ
첫댓글 계속 같은 모델 입니다. 전속이 편하고 말 잘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