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을 삶의 터전으로 삼던 나는 생업을 위해 부득이
포천시 신북에 주민등록을 이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번 20004년 4월15일에 실시되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난생처음으로 포천시민이 되어 주권을 행사하게 되어
어제밤부터 짬이나는 대로 이곳 포천의 역대 국회의원들을 알고싶어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을 통해 국회도 다녀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가보고 또 여러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보았다
사이트를 둘러보며 내가 느끼는 것은
포천출신의 국회의원 중에는 국무총리를 역임하신분부터,내무부장관,보사부장관,
교통부장관, 건설교통부 장관을 역임한 분들이
포천의 발전과 세력 확장에 남다른 노력을 하여
전국 어느 고장보다도 앞서가는 고장으로 만드는데 총력을 경주하여
군세가 철원보다도 못했던 포천이
이제 인구 15만이넘는 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시로 승격한 포천 발전에 역대 국회의원들이 많은 노력들이
참으로 대단하고 훌륭했다고 본다
물론 마무리가 좋치 않게 정치를 그만 두신분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포천은 참으로 걸출한 국회의원들이 있었던것이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또하나
검색을 하며 정리를 하며 느끼는 것은
그 훌륭했던 국회의원 모두는 공통적으로 젊은나이에 (지금 우리들 나이때)국회의원이되어
포천의 발전과 함께 그 분들도 성장했다는 점이다
천명기 (36세) 김영구(39세) 오치성 (41세) 김용채(41세) 홍성표 (45세) 이한동(47세)
이런것을 보면 시대가 변하고 있는 이때
젊고 유능하고 신선한 인물들이
국회진출을 꿈꾸는 것도 포천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인것 같다.
[참고]
5대 국회는 우리 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양원제를 채택하여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었다.
1961년 5.16 군사 쿠테타가 발생하여 10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해산하여
최단기 국회가 되었다. (참의원 임기6년 민의원 임기4년)
제6대에는(1963년 11월 26일 ) 선거구가 연천·가평군과 함께 형성되어
가평 출신의 홍익표(민주당. 53세. 경성제대 법과 졸. 2, 4, 5대 민의원)씨에게
포천출신 김용채(민주공화당 공천. 31세. 고대 경영학과 1년 수료. 육군 소령)씨가 3,446표차로 낙선되었다.
제7대에는 (67년6월8일) 포천·연천·가평을 포함한 선거구로 민주공화당 공천의
오치성41세(대졸)씨가 당선되었다.
제8대에는 (71년5월25일) 75061표를 얻어 80%전국최다득표율로
오치성(45. 6, 7대의원, 공화당 사무총장)의원이 당선되었다
[참고]
제 8 대 국회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의 국회와 정당을 해산하고
헌법 기능을 정지시킨다는 특별 선언 발표에 따라 1년 3개월 만에 해산되었고
비상 국무회의가 그 임무를 대신하게 된다.
제9대에는 73년2월27일(중선거구제)포천·연천·가평·양평을 선거구로 하는
경기도 8선거구에서 김용채(41세. 제7대 의원. 민주공화당 공천)의원이
천명기(36세. 서울법대 졸. 신민당 공천)씨와 동반 무투표 당선되었다.
[참고
유정회(유신정우회) : 제 7차 개정 헌법(유신헌법) 제 40조는
통일 주체 국민회의에서 국회의원 정원의 3분의 1(임기 3년)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고,
대통령이 일괄 추천한 후보 명단에 대해 찬반 투표만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이렇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유정회라는 교섭단체로 활동했다
[참고] 1
0대 국회는 10.26 발생 후 국민의 개헌 요구로 개헌 논의를 하던 중
5.17 비상 계엄 전국 확대 실시로 개헌 논의는 중단되고
1980년 8월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제10대 전두환 대통령의 등장과 함께
10월 제 8차 개헌이 확정됨으로써 새 헌법에 따라 해산하고 그 임무를,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8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대신하게 되었다.
11대 선거에는 (1981년3월25일) 경기도 제12선거구(가평·연천·포천)에서
이한동(47세. 민주정의당 공천. 서울법대 졸. 부장검사, 지법판사)의원이
가평 출신 홍성표(45세. 민주한국당.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씨와 동반 당선되었으며
첫댓글 감사 드립니다.......정확하게 알게 되었네요....
17대가 빠졌내요 열린우리당 이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