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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에서 믿음으로
로이드 존스
머리말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성경은 결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문제와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의 대적이 늘 도사리고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고자 우리의 마음에 다양한 유혹들을 제시한다.
지금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역사의 신비함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20세기의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흔들렸으며, 우리의 신앙마저도 쓰라린 시험을 겪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런 사건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말하는 성경의 가르침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문제는 그 누구에게든 불만이나 혼란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은 역사의 문제에 관한 혼란을 매우 명백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하여 혼란스러워 할 필요가 없다. 왜 사람들은 이 문제로 혼란스러워하는가?
가장 주된 이유는, 사람들은 성경을 매우 좁은 의미로만 사용하여 개인의 구원에 대한 교과서 정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성경의 가장 주된 주제 중 하나이나 이것만이 성경의 주제는 아니다. 성경은 개인의 구원 문제를 넘어 더 넓은 의미의 구원을 다루고 있다. 궁극적으로 성경의 주된 메시지는 온 세상의 상황 및 그 운명과 관련되어 있다. 성경은 인간의 창조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이 세상의 창조에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성경의 특별한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의 일들이 절망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성경 전체를 바르게 읽으며 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성경 안에 역사를 이해하는 깊은 철학과 특별한 세계관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나 있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의 위대하고 숭고한 가르침은 온 세상과 그 운명에 관한 총체적인 질문에 관심을 둔다.
하박국의 선지자는 역사에 대한 완벽한 예를 제시한다. 그는 역사의 문제를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고민의 차원에서 다룬다.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일들과 자신이 믿는 바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한다. 구약 시편과 모든 선지자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의 문제를 다룬다. 이와 같은 질문이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이처럼 ‘역사의 문제’가 성경의 핵심 주제라는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를 그토록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일들이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을 성경의 가르침, 특히 하나님의 존재와 특성에 대한 가르침에 충실하게 해석하려 할 때 부딪히게 되는 혼란과 동일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매우 타락한 이스라엘을 보았다. 죄와 부도덕과 악덕이 퍼지고, 무법이 만연하였다. 도덕과 정치의 전반적인 타락에 이어 아주 심각한 종교적 타락이 나타났다. 선지자는 마음의 고통 속에 크게 외친다(합1:2-4). 그는 왜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허용하시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합1:2).
하나님께서는 그의 불평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을 주셨다(합1:5-6).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 알았다! 나는 너의 기도를 지금까지 항상 들어 왔다. 이제 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킬 것이다”. 선지자에게 이제 하나님께서 보잘것없는 이방 민족을 일으켜 자신의 백성을 벌하고 땅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5-11 -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자신이 행할 일에 대해서 알려 주신다. 이스라엘의 대적으로 하여금 파괴적인 결과를 낳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또한 그 대적의 교만한 행위에 대해서 묘사하신다.
1:12-2:1 – 선지자가 이 문제로 괴로워한다.
2:2- 20 – 하나님께서는 선지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성경적 철학과 역사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주시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 및 위대하심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를 알려 주신다.
3: -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선지자의 반응이 나타난다.
제 1 장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방법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아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에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그들은 두렵고 무서우며 당당함과 위엄이 자기들에게서 나오며,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그들의 마병은 먼 곳으로부터 빨리 달려오는 마병이라 마치 먹이는 움키려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그들은 다 강포를 행하러 오는데 앞을 향해 나아가며 사람을 사로잡아 모으기를 모래같이 많이 할 것이요, 왕들을 멸시하며 방백을 조소하며 모든 견고한 성들을 비웃고 흉벽을 쌓아 그것을 점령할 것이라,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합1:1-11).
신비한 하나님의 방법
1) 하나님의 침묵 – 하나님은 매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이상하게 침묵하거나 아무런 행동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왜 오늘날 기독교가 이런 모습인가? 왜 하나님은 신성모독을 행하고 신앙을 부인하는 사람들, 심지어 그 일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조차도 그냥 내버려 두시는가? 또한 왜 하나님은 자신의 신실한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수년 동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왜 응답하시지 않는 것인가?
2)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응답 –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의 기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응답을 주신다. 바로 이 사실이 하박국을 가장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오랜 시간 응답하지 않으시다 답을 주셨을 때, 응답하지 않으신 것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존 뉴턴은 자신의 경험을 시로 표현했다. 그는 하나님을 깊이 알게 해 달라고 구했으나, 도리어 여러 달 동안 이해할 수 없는 유혹과 시험에 시달렸다. 그것이 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를 아주 깊고 낮은 자리에 이르게 함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가 이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하나님은 그를 시험에서 건져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일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때로는 상황이 좋아지기 전에 훨씬 더 나쁜 상황을 허용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또한 우리가 기대한 바와 정반대로 행하시기도 한다. 우리는 항상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과 신앙 여정의 기본 원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하여 더 나쁜 것을 허용하신다는 희망을 가질 뿐이다.
3) 하나님의 특이한 도구 –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와 백성을 바로잡는 데 때로는 이상한 도구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많은 민족 중에서 하필이면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겠다고 하신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의 실태를 깨닫고 그 부당성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면 오늘날 교회에 가장 적대적인 세력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2. 하나님의 방법에 대한 오해
1) 종교적이고도 무관심한 사람들의 오해 – 하나님은 무관심하고 게을러진 이스라엘의 불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1:5). 그들은 그런 위험한 일은 진짜로 일어나지 않는다. 선지자들은 항상 우리에게 경고하고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우리를 협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노아의 홍수때도, 소돔과 고모라도 마찬가지였다. 하박국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동일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갈대아 사람들을 일으키셨고, 이스라엘은 결국 정복당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참하게 포로로 끌려갔다.
행13:16-41에서 사도 바울은 본문을 인용하여 그 당시 상황에 적용한다. 그 후 주후 70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성전을 파괴했으며 유대인들은 오늘날까지 흩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시온에 편히 머물러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절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2) 세상의 오해 -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1:11). 갈대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이 강한 군사력 때문에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그 능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곧 그들의 능력으로 이긴 것이 아님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킨 것처럼 그들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다.
현대의 과학적 진보나 정치체계를 자랑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예이다. 대적들은 교회가 점점 쇠약해지는 데 반해 자신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의 승리의 영광을 ‘자신들의 신’에게로 돌린다. 그들은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넘어져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3) 선지자의 오해 – 선지자도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앞의 두 부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응한다. “여호와여 내게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1:-3).
3. 성경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원리
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 온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 궁국적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는 세력은 하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 되신다.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메뚜기 같다(사40:15,22).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고, 그 역사를 지배하며, 시작하신 그분이 결국 끝내실 것이다. 우리는 이 중요한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2)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전개되는 역사 – 세상의 일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역사에는 분명한 계획이 있고, 태초부터 모든 것이 미리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시초부터 종말을 보시는”(사46:10) 하나님이 모든 일에 목적을 두셨으며, “때와 시기”(행1:7)를 아신다. 하나님은 언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려야 할지, 또 언제 복을 내리지 말아야 할지를 아신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역사의 모든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자기만족에 취해 세련된 설교나 지식을 자랑하는 사역은 좋아하면서도 회심이나 성령의 사역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19세기 교회의 모습을 보라. 과학에 대한 믿음, 그리고 계시를 언제든 철학과 바꾸려는 태도에 주목하라. 신약성경의 참된 의미가 얼마나 자주 거부당하는가? 이러한 19세기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20세기 교회의 모습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 가운데는 분명히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3) 하나님의 때를 따라 전개되는 역사 –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이 있다. 하나님은 거기에 따라 행하고 일하신다.
4)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역사 – 세계 역사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에 있다. 구약성경에서 이방 나라들은 오직 이스라엘의 운명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오늘날에도 모든 역사는 궁극적으로 오직 교회의 역사와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그리고 인간이 타락한 후에도 계속해서 이 세상에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하셨다. 그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관련될 때 중요성을 갖게 된다.
- 그러므로 아무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넘어지는 대신 “이 사건이 하나님의 나라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시는가?”라고 생각해 보라. 그 의미를 깨달을 때 비로소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올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단번에 우리가 원하는 방법대로 들어주셨다면, 우리는 매우 빈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에서 우리가 더욱 완전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고도 영원하며 영광스러운 목적의 빛 안에서 이 모든 사건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