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정치 Political Mirror
노순택展 / NOHSUNTAG / 盧純澤 / photography
2009_0514 ▶ 2009_0616 / 월요일 휴관
노순택_배후설, 메가바이트산성의 비밀#05_피그먼트 프린트_100×140cm_2008
초대일시_2009_0514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월요일 휴관
트렁크갤러리_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128-3번지
Tel. +82.2.3210.1233
www.trunkgallery.com
트렁크갤러리는 2009년 5월 노순택,“거울정치 Political Mirror”를 전시한다. 지난 2월 중앙일보는 한국의‘2009년 미술계 기대주 10명’을 50명의 미술계인사들이 선정했었다. 그 10명 중 사진, 영상을 대변하는 작가로 노순택과 데비 한 그리고 정연두, 이 3명이 뽑혔다. 트렁크갤러리는 이미 2007년 10월 북한을 소재로 한 “The Voyeurs"전을 통해 백승우, 이정의 작업과 함께 노순택의 작업을 소개했었다. ● 지금의 한반도는 남북문제가 굉장히 예민한 시기이다. 세계가 하나같이 국제화로 치닫고 있는 이때, 남북한이 어떤‘이데올로기 늪’에 빠져있다는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본래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이상적’이라 믿는 ‘어떤 것’에 대해, 한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붙잡혀 있는 상태로, 이데올로기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형성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자기가 믿는 것만 옳고, 남의 생각은 옳지 않다. 라고 하는데서 문제성이 유발된다. 그래서 “늪에 빠져있다” 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지금은 21세기이다. 다양성이 옹호 받는 시대다.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내 마음을 열고 내 시각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각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다름’에 대한 긍정과,‘고정관념’에 대한 해체를 논하게 시대라는 말이다. 노순택의 ‘거울정치’가 바로 그 어떤 이데올로기들의 해체를 요구 하고 있다. ■ 박영숙
노순택_붉은 틀, 펼쳐들다#19 Red House I_피그먼트 프린트_90×128cm_2005
거울정치 Political Mirror ● ‘거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거울을 본다’는 행위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지점에서, 소유와 사용은 배반의 관계를 맺는다. 지적 능력의 소유가 지적 행위로 이어질 거라는 낭만적 확신이 직면한 상황은, 파국이다. 아! 친절한 금자씨의 코맹맹이 속삭임은 얼마나 섬뜩한가. “너나.... 잘하세요....”
노순택_붉은 틀, 펼쳐들다#24 Red House I_피그먼트 프린트_90×128cm_2005
1. 동물이 거울을 인식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놓고 오랜 시간, 세계 도처에서 진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많은 동물들은 거울을 인식하지 못했다. 대개는 거울에 속았다. 또는 거울에 관심이 없었다. 아주 적은 수의 침팬지와 오랑우탄, 돌고래 등이 우스꽝스런 시행착오를 거쳐 거울에 익숙해졌고, 거울 속의 존재가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평상심을 되찾았다는 관찰결과가 간헐적으로 보고되었다. 거울의 인식여부는 인간에게도 중요한 지표가 된다. 자크 라캉이 제시했던 이른바 ‘거울단계’는 아이가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거울의 인식’이 가지는 의미를 세밀하게 조명한다. 거울의 인식과정은 아이들의 시선을 ‘조각난 신체’에서 전체로 옮겨주는 동시에, 주체와 타자, 재현된 허구를 알아차리는 핵심기재로 설명되고 있다. 고등동물만이 겨우 인지할 수 있거니와, 그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한 거울 거울 거울.... 어찌보면 거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을 표상하는 동시에, 인간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눈금자가 아닌가.
노순택_애국의 길#25 Patriotic Road_피그먼트 프린트_90×128cm_2004
노순택_붉은 틀, 펼쳐들다#01 Red House I_피그먼트 프린트_90×128cm_2005
2.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김남주 시인의 피 끓는 외침은, 분단의 공간적 해석만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분단은 특정시간, 특정공간만을 점유하지 않는다. 분단은 부유한다. 분단은 스며든다. 익숙한데도 낯설고, 낯선데도 익숙한 기시와 미시의 교차상황. 분단은 이런 식으로 우리 몸과 시간과 공간을 훑고 있다. 기억과 망각, 안도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조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조!장!’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정교하건 어설프건 ‘과장’을 동반한다. 과장된 슬픔이 웃음을 불러오듯, 과장된 희극이 비극을 반영하듯, 분단은 분열된 자아를 드러낸다. ● 3. 거울이라는 기표는, ‘빛의 반사를 이용하여 사물의 모양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라는 단일한 기의에 독점되지 않는다. 김남주를 변주하자면, 거울은 거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울은 노트에도 있고, 땅에도 있고, 물에도 있고, 나무에도 있으며, 마음속에도 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타인의 얼굴에 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도 거울은 있지만, 내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며 경악하는, 바로 그 자의 얼굴이야말로 나의 거울이다. 거울은, 자기의심의 터널을 지나는 반성로가 된다. ● 4. 북녘을 떠올린다. 김정일은 질주하는 욕망덩어리다. 남녘을 떠올린다. 이명박은 돌격하는 욕망덩어리다. 라캉의 말을 빌리면 “욕망은, 욕망을 욕망한다”는데, 그렇다면 “김정일은 이명박을 욕망하고, 이명박은 김정일을 욕망한다”고 말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허나 내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분단정치인의 내면이며, 분단정치시스템의 작동방식이다. 분단정치는 닮았다. 구성원을 동원하고, 공포를 주입하고, 왜곡된 희열을 장려한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서로는 반영된다. 2년전, 나는 북한에 관한 세 가지 시선을 보여주는 책 ‘Red House ; 붉은틀’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1장 펼쳐들다-질서의 이면’, ‘2장 스며들다-배타와 흡인’, ‘3장 말려들다-전복된 자기모순’이라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는 각 장의 사이에 이런 말들을 삽입하였다.
노순택_붉은 틀, 펼쳐들다#15 Red House I_피그먼트 프린트_90×128cm_2005
현미경의 욕망 : 현미경을 들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보라. 망원경의 욕망 : 망원경을 들기 전에 먼저 거울을 보라. / 처신의 규율 : 강화된 증오와 공포가 정치권력의 유지기반이 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처신의 규율을 알아서 습득하고 기꺼이 동반자가 된다. 교만과 다르지 않은 긍지가 꽃을 피운다. / 거울의 외면과 수용 : 나는 너의 거울이며, 너 또한 나의 거울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 5. 김정일이 거울을 본다. 거울 표면 위로 이명박이 떠오른다. 이명박이 거울을 본다. 거울 표면 위로 김정일이 떠오른다. 기표의 거울에서 두 절대자는 다르지만, 기의의 거울에서 서로는 구분을 불허한다. 재등장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코맹맹이 속삭임. “거울.... 보셨어요? 너나.... 잘하세요....” ■ 노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