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제가 사회란 곳에 나와 제일 먼저 일한 것이 마산 봉암동에위치한
롯데제과였습니다.
고2여름방학때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방학때는 바로옆 봉암동 콜라회사였습니다.
롯데제과에서 여름이라 아이스크림 창고안에서 길면 두시간 짧음 한시간
영하몇도되는 곳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내달줘야합니다.
그때...아이스크림은 절대로 안먹겠다고했지요.하하하하하
그해 겨울 콜라회사에 알바갔는데...이것은...롯데처럼 차에 실어주면되는 것인지 알았는데
실고 운전사 형들 옆에 타서 각 상점들로 찾아가 운반까지해줘야합니다.
그렇게 고2때부터 전 사회로 나왔습니다.
고 3학년때 고2때 힘들게 알바해서 번 돈으로 내가 그렇게 구입하고싶은 오토바이를 구입했습니다.
그때...그해...고3학년때 조금 더 큰 돈을 벌기위해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것..힘들더랍니다.
그리고 냉정하구요.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그해 고3학년때 서울로 갔습니다.
친구들은 대학입시공부한다 어쩐다할때 전 노가다판에서 추위속에서 이 악 물고
참고 견뎌냈습니다.
그해 대학입시원서 접수할 때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접수했습니다.
재수일까요? 운일까요? 떡하니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낯선 환경과 서울에서의생활은 왠지 익숙해지려고해도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지만..그때 그 당시 전 강화도가는 김포시청옆 새로 지은 작은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았습니다.
물론 기분 좋아라하시는 아버님의 후원으로 장만했습니다.
그것은 1년 채우지도 못하고 그해 여름 자퇴서내고 여름부터 마산 창원에서
주유소에서부터 가스배달업까지 통닭 음식배달까지 롯데리아 시장물건 배달까지
뭐든지 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그렇게 그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올때 부산대학교 국문과에
입학과 동시에 몰래 뭔가에 쫓기는 민수처럼 아무도 모르게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합격했기에 놀려간 줄 알았다고합니다.
보름동안 소식도 없고...걱정하는 차..집으로 날아온 소포...대한민국 해병이란 쌩쇼한 곳에서
날아온 아들의 옷가지를 보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치고....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잠들라할때 조교들이 저를 불러 따라가니
군인인 삼촌의 힘으로 부모님을 뵙게되었습니다.
군복을 부여잡고...짧은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 보았습니다.
전 불효자구나..했지요.
그때 어머니의 말씀...내 아들...내아들....
포항 오천읍에서 죽기위해 뛰어들어간 곳...
제일 위험하고 들어가면 쉽게 나오지 못하는 곳으로 배치시켜달라고
조교들과 장교들에게 부탁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깊은 곳으로 아무도 모르는 백령도 중에서 특수수색대로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전역을 할때..동기들이며 선배님들을 볼 때마다 전 이상하게 이상한 생각이 들더랍니다.
자랑거리가 아닌데..반지며 기수며 모든 것들을 자랑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반지는...서랍 깊은 곳에 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기수를 잊고자 살았습니다.
해병이란 이 두글자 또한 잊고자 살았습니다.
그냥 일반 군인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그게 쉽지 않더랍니다.
생활에서..책임감이 아주 강한 민수로변해버린 것입니다.
그해 전역과 동시에 전 대신증권이란 증권사에서 일하시고
부장이란 이름아래 잘 나가는 외숙모님의 힘으로 처음 입사한 곳이 증권사였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막대한 힘을 자랑하는 분이라 아들의 위상을위해 주식도 가입해주시니
친구분들이 줄줄이 주식을 사 주시니..월급도 오르고 외숙모님의 힘까지 얻어 승진을 앞둔
민수는 출근날 거리의 강아지 한명을 보고는...나를 보았습니다.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사직서를 내고 내가 가야할 곳은 바로 이런 곳이 아님을 알고는
내 발로 찾은 곳이 용접하는 철공소였습니다.
매일 늦은밤까지 쇠를 녹이고 두드리면서 그로인해 만들어지는 기계들을 보면서
증권사에서 느끼지 못한 보람도 알았습니다.
그후 대형차 자동차 정비업를 하다 입사한 곳이 대우 대형차 수리공으로 입사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민수가 결혼하고 작년 미혼모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삶이 너무나 힘들고 사회로 부터 구속받고 살아감을 보았습니다.
도와주고싶지만 정말 박봉중에서 박봉이오!!
지금 받는 월급으로는 아파트대출금에 완월동 아이들 후원금주는것만으로도 한달을 버티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곳이 볼보였습니다.
몸바쳐 일한 보람이 있는지 일요일도 없이 몸부셔지라 일한 보람으로 받은 처음 월급이
이백만원을 넘어선 월급을 보고는 기분도 좋더랍니다.
아내에게 사정을 말하고는 오지랖이 넓은 남편이라면 잔소리 듣고는
미혼모들에게 오만원씩 4명에게 주고 아이들에게 한달생활비20만원
노인분들의 한달 쌀값 30만원을 주고나니 뭐 남는 것도 없더랍니다.하하하하
세상사는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그때..간부들의 사회며 내가 보지못한 부분들을 보았습니다.
간부들이 매일 출근하면 여 사원들의 엉덩이를 건들리고 완전히 보란듯이 만지고
난리더만요.
물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인데 제가 뭐라합니까.
그런데..처음 입사한 여 사원...그런 행동을 싫어함에도
거부하니 "일하기 싫어?"란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 간부들을 보자니
울화가 치밀어 머리가 섭니다.
먹고 살려면 못본척해야한다?!
니기미..내 딸이라도 그럴 자신이 있습니까!!
내 어머니라도 그럴 자신 있습니까!!
민수는 저렇지 못합니다.
한대 때리고 싶지만.휴대폰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경찰서가니 더욱더 기차데요.
알아서 법원에 제출하라네요. 입구에 뭘 도와드릴까요? 란 글이 무색하게
도움은 주지않고...울화도 치밀어 회사도 안가고 창원 법원도 가서 소송금 내 돈으로 지불하면서
신고하고나니 보름만에 성추행범으로 벌금형이되네요.
고작..벌금형...그리고 보란듯이 내 이름..고소자의 이름앞에 김 민수란 이름도 나오데요.
회사에서 한바탕했지요.
그래도 버티다 안되겠데요. 욕듣고...천하의 김 민수가 저런 놈에게 욕들어가면서 일해야하나
생각하다 한날 이판 사판 싸우고 나왔습니다.
보름만에 나온 회사라..그들이 뭔짓을 했는지...뭐 월급도 기대안했습니다.
그리고 보름정도 알바로 조선소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보름이란 계약이 끝내기전 일거리는 없고 사람들은 많다보니
아직 절단이며 용접 특수용접을 못하는 일반 잡부인 민수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토요일 어제부로 사냥하던 그 조선소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이제 당분간 쉴까합니다.
힘들게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거든요.
몇칠 오백이랑 꽃구경도가고 그동안 올리지 못한 사진도 올리고 마음도 다시 정비해야할 듯 하구요.
사회란 곳...더 깊이 들어갈수록 정직과 진실은 번퇴와 오지랖속에서 허망함을 가져다 주는 것
같구요. 거짓과 위선이 살아남는데 제일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전 정 안되면 포장마차라도 할까합니다.
인생 죽어라는 법 있습니까.
완월동 아이들과 미혼모들에게 먹거리라고 무한정 줄 수 있는 붕어빵집이나
포장마차...그것도 생각합니다.
천하의 김 민수!
백령도에서 그 힘겨움 날들도 이겨낸 사나이인데 이정도 일에...
힘들때마다 전 말합니다.
"야..힘듬!고작 이정도야!이정도로 날 이겨보겠다고..더 해봐!더 해보라고!!
내가 못하겠다고 생각들게...날 넘어지게해보라고..고작 이정도로는 어림없어!!
자.덤벼봐!!"
전 앞으로도 정직과 진실로 바른 것은 바르다고 말할 것이며
그것이 설령 내 목숨을 앗아갈지라도 전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김 민수란 이름이 비석에 새겨진다해도
난 정식 진실하게 살아갈 것이며 내 고생한만큼의 이득을위해
난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아내를 보호하고, 사회의 그늘진 곳의 약자를 지킬것이며
그들의 행복을위해 난 노력할 것이다.
내 몸에 내 피가 흐르는 그날까지 난 내 부모와 내 아내와
내가아는 약한 자들을 지켜낼 것이다.
난......
김 민수다!
첫댓글 "흐르는 섬"님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고맙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나라........
셤 님이 꿈꾸는 그런세상.........
쉬는 동안 건강 잘 살피고 마음맞는 직장이 꼭 있을겁니다.........
아마 지금 그런 나라에서 살아가나봅니다.
그래서 생각같았음 다 정리하고 농촌에 들어가 농사짓고 잡일 도와주면서 생명부지하면서 살고싶은데요.
아내가 그렇게 안할려고합니다.하하하하하 이러다 혼자 들어가야하나 고민 조금 합니다.하하하하
아우님아 쉰다는것은 재 충전의 기화라는것을 잊으면 안되고 사회라는게 그리 말랑말랑만 한게 절대로 아니라는것 잊으면 안되지.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골빈 집단들의 서식처 라고 본다면 아우님이 꿈꾸는 세상은 아직은 좀더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만 세상에 흡수는 되지말고 순응도 하지말자 그러나 타협은 필요하다란 말에 공감해 주는게 좋지 않을까? ㅎㅎㅎ
민수 아우님 아직도 우리나라를 잘 모르는것 아닌가? ㅎㅎㅎ
이래도 저래도 욕듣는 세상인가봅니다. 재충전은 좋은데...그 충전의 기회가 길어지면 그게 문제겠지요.
수요일 아님 금요일 날잡아 한번 올라가겠습니다. 이때 아니면 또 언제볼까요.하하하하하
그려 와 얼굴한번 보제~이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을 것을. 조금만 방법을 바꾸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이렇게 충고하는 나도 직장생활 할 때 상급 간부들 하는 짓거리가 눈꼴시어 두들겨 팼다가 광주로, 남원으로 유배생활을 했다는...
내가 아닌 남을 배려하는 민수씨 정신은 알겠는데 그걸 더 오래도록, 더 깊이있도록 하기 위하여는 조금만 더 누그러 뜨리고 살아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네요. 민수씨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더 많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많은 곳에 도움을 주려면 철저히 나를 버릴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네요. 사회의 한 구석,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등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이 사회가 야시꾸리합니다.
가지만 몇갈래 자르고 나무 모두를 뽑아 버린 양 엄살을 피우는 행동 자체도 이해가안됩니다.
참고자했지만 도저히 민수란 사람의 이해력안에서는 이해의 한계를 넘어선 듯합니다. 여사원이 싫다고했음에도 매일 매시간 엉덩이며 가슴을 만지는 간부들을 볼 때 그자리에 때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민수는 이미 많은 것을 참다못해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고발했는데..벌금몇만원이 전부입니다. 그기다 고발자의 비밀보장이라더니 거짓된 말로 저의 김민수란 이름까지 떡하니 있었니...
참 아이러니합니다.형님의 말씀 마음깊이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