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주례사
오늘 이처럼 좋은 가을날에 한 쌍의 원앙으로 화촉을 밝히게 된 신랑 장종훈 군과 신부 박지혜 양의 백년가약을 축하하며 이렇게 건강하고 훌륭하게 신랑신부를 잘 길러주신 양가 부모님께도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바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가끔씩 결혼주례를 청해오는데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자 원망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만 그 이유는 제대로 덕을 갖추지 못한 부족한 인격 때문이란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한국전력 재직 당시 중책을 맡아 어려운 전력사업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한 분이 있습니다. 그 선배께서 신부 박지혜 양의 아버지와 오랜 세월 동안 눈물겨운 인연을 맺어온 관계로 더 이상 사양할 수가 없어서 이 자리에 서고 말았습니다. 신랑 장종훈 군은 D대학교에서 레포츠체육학을 전공한 후 지금은 A생명 재무설계팀에서 맡은 업무에 진력하고 있는 성실한 일꾼이며, 신부 박지혜 양 역시 최고학부인 K대학교에서 사진학을 전공한 후 사진 관련 업체에서 알차게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 엘리트입니다.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주말의 황금시간을 기꺼이 내어 이 자리를 함께해주신 하객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신랑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아름다운 섬 제주가 고향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고 들었습니다. 신부는 부모님이 이웃에 사랑을 베풀며 사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직접 보고 자랐으니 그 자체가 살아있는 인성교육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신랑신부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농담 한마디를 하겠습니다. 예로부터 결혼주례는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를 신랑신부에게 주문해왔습니다. 그런데 저와 같은 대머리는 파뿌리가 될 머리카락조차 없으니 그저 검은머리 대머리가 될 때까지 백년해로해도 좋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으니 잘 이해하기 바랍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문으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 생전에 딱 두 번의 결혼주례를 맡았는데, 그분의 말씀은 알아듣기 쉬우면서도 따끔한 채찍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신랑신부가 결혼을 하면서 서로 따져보는 것은 상대에게 덕을 보자고 하는 심보이다. 그래서 덕 볼 수 있는 것들만 고르고 또 고른다. 신랑신부가 똑같이 30을 주고 70을 받으려고 하다 보니 다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덕 보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그러한 마음이 좀 적으면 어떨까. 내가 아내를 좀 도와줘야지! 저 사람 건강이 좋지 않으니 내가 보살펴 줘야겠다! 남편이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야겠다! 저 양반 성격이 저리도 괄괄하니 내가 꼭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줘야겠다! 이렇게 베풀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덕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 중에서 고르고 또 골라도 엉뚱한 걸 고른 결과가 된다.”
이렇게 큰스님답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쏟아놓고는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 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저 분이 나하고 살면서 그래도 덕 좀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줘야겠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일생을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은 상대의 허물을 덮어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보호막이란 사실을 신랑신부는 명심하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약점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늘의 신랑신부보다 앞서 결혼했던 어느 젊은이는 배우자를 자기 입맛대로 길들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랬으니 그 가정이 파경 직전까지 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갈등의 골은 깊어만 집니다. 사람은 길들여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상대가 자기 입맛대로 해주기를 바랍니다. 자기밖에 모르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잘하는 것은 기본이니 당연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다보니 못하는 부분만 크게 보입니다. 그래서 틀렸다고 비난하고 지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떨어지는 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서로 돕고 배려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가정은 행복의 집을 짓게 됩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강점은 물론 약점까지도 인정합니다. 약점은 수용하는 풍토에서만 개선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가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상대에게 없고 상대가 가진 것이 내게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100점짜리 둘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20점과 30점이 만나서 100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벌거벗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이가 부부입니다. 부부는 서로 결점을 감싸주는 사람입니다. 사랑은 또한 두 사람의 모자람과 넘침이 만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으로 감싸는 조화가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신랑신부의 앞날에 가장 큰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따뜻한 햇볕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에 대하여 따뜻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어 상대방인 배우자를 사랑하는 동시에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어 그러한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오늘 하늘이 맺어주신 신랑신부의 백년가약을 축하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두 사람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충만하시길 빕니다.
2013. 11. 16
주례 강 문 석
첫댓글 회장님 안녕하세요~~ 멋진 주례사 잘읽었습니다~~새출발하는 젊은이들이 생활의 지침을 삼아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합니다^^
젊은이들을 위한 좋은 주례사 말씀 제가 잘읽었습니다.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주례사님도 늘 행복하시고 축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