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 개봉 / 132분 / 미성년자관람불가>
=== 프로덕션 노트 ===
감독 : 틴토 브라스
출연 : 말콤 맥도웰 & 테레사 앤 사보이 & 헬렌 미렌
에로 영화의 거장 틴토 브라스 감독
인류 역사상 최대의 엽기적 폭군 칼리큘라 황제와, 세계 최고의 성인포르노 메신저 펜트하우스 사가 완성한 완벽하고 리얼리티한 세기말적 포르노 그라피...
악명높은 로마 황제 칼리큘라는 모든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황제가 된후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가 있으면 가차없이 숙청을 한다. 그는 매일 사치스럽고 난잡한 파티를 열어 자신을 즐겁게 하지 못하면 잔인한 형벌을 받게 한다. 그의 성도착적인 행위가 계속되고, 급기야 성적 흥분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누이와도 관계를 맺는데...
AD 37년,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피터 오툴 분)의 폭정 시절, 황제가 입양아인 칼리큘라(Caligula: 말콤 맥도웰 분)보다 친손자인 제멜리스(Gemellus: 브루노 브라이브 분)를 더 귀여워하자, 칼리큘라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면 죽음을 당할 것임을 알고, 꼭 살아남아서 황제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황제의 심복이며 칼리큘라를 싫어하는 네르바(Nerva: 존 질거드 분)는 그가 황제가 되면 로마가 망한다며 자살을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칼리큘라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고, 궁정의 수호대장 메크론(Macro: 구이도 마나니 분)은 아내마저 칼리큘라에게 바칠 정도로 그에게 충성하지만 칼리큘라는 그 또한 믿을 수가 없다.
어느날, 티베리우스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침대 위에 누워만 있는 신세가 되자, 칼리큘라와 메크론은 누워있는 그를 베개로 눌러 죽이고 25세에 로마 황제로 즉위한다. 처음에는 치정에 전념하던 그도 점점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고, 측근들을 사소한 트집으로 하나씩 제거하면서 서서히 광기를 드러낸다. 여동생 드루실라(Drusilla: 테레사 안 사보이 분)를 동생 이상으로 사랑하여 동거하는가 하면 음란한 왕비 케소냐(Caesonia: 헬렌 미렌 분)가 낳은 딸을 아들이라고 우긴다. 칼리큘라는 또한 웅대한 이집트풍의 연극을 기획하고 부인과 함께 직접 출연하기도 한다.
칼리큘라의 폭정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드루실라가 열병으로 죽자 급기야는 황실 안에 커다란 매음굴을 만들어 성의 향연장으로 변모시킨다. 계속되는 실정으로 국고도 바닥나는 가운데, 거의 정신병자가 되다시피한 그는, 새로 부임된 수호대장 세리아의 배반으로 결국 그의 칼을 맞는다. 하지만 칼리큘라는 피를 흘리면서도 "나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땅을 기어간다. 칼리큘라의 뒤를 이어 새로 선언된 황제는 정신박약증세의 클로드로였다.
=== 인물 정보 ===
칼리굴라 Caligula
12.08.31 ~ 41.01.24 / 재위 37~41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Gaius Caesar Germanicus)이며 본명은 가이우스 카이사르(Gaius Caesar)이다. 칼리굴라는 로마 남쪽 해변도시 안티움(현재: 안치오 Anzio)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이고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의 손녀인 아그리피나(Agrippina)이다. 그리고 위로는 두 명(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의 형이 있었다. 칼리굴라는 그가 어렸을 때 로마제국의 국경인 라인강 방위군 사령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병영에서 자랐다. '칼리굴라'의 이름은 당시 로마군 군화인 칼리굴라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유아용 구두를 신고 다녔는데 그 모습을 보고 병사들이 붙혀준 별명에서 유래했다. 아버지 게르마니쿠스 카이사르의 시리아 안티오키아로 근무지를 바뀌게 되자 칼리굴라도 그곳에서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말라리아로 사망하자 로마로 돌아왔다.
할아버지 티베리우스Tiberius)가 황제였지만 어머니 아그리피나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어머니와 두 형은 모두 국가반역죄로 유배형을 받아 사망했다. 21세가 되어 첫 공직은 회계감사관이 되었으며 첫번째 부인은 아기를 출산하다 아기와 함께 사망하였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죽자 원로원의 추대를 받아 황제에 즉위했다. 당시 로마제국은 카프리섬에 은둔하며 지낸 티베리우스 황제에 비해 젊은 황제의 등장을 환영했다. 즉위 초 칼리굴라가 시행한 정책은 민심수습책으로 세금을 축소하고 검투사시합과 전차경주대회를 부활하는 등 원로원 ·군대 ·민중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칼리굴라는 앞선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가 다져놓은 제국의 통치 기반을 그대로 계승하였고 급격한 정책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때문에 로마제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이 인간세계에 나온 신(神)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최고의 신으로 숭배되는 유피테르와 같은 인물로 생각했다. 그리고 로마시민들의 인기를 모으기 위해 추진한 정책은 국고의 무모한 낭비와 증여로 재정을 파탄시켰다. 게다가 군사를 이끌고 갈리아를 거쳐 게르마니아 국경까지 순행하였지만 뚜렷한 목적과 결과가 없이 돌아와 개선식을 치르고 재정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외적으로는 갈리아와 게르마니아 등 속국들과 분쟁없이 평온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신권통치를 주장하며 이스라엘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리스인과 유대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칼리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대중을 위한 선심성 정책을 추진했는데 국가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뗄감에 세금을 징수하는 등 국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한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런 일련의 일 때문에 선심정책을 추진했음에도 그의 인기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칼리굴라는 선황제 티베리우스에 비해 일반 대중앞에 나서는 일이 많았다. 서기 41년 로마에서 한 연극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최측근 근위병 대대장인 카이레아 등 몇몇 병사들에게 살해되었다. 칼리굴라가 살해된 직접적인 동기는 전하는 기록이 없어 알려지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칼리굴라 [Caligula]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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