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사랑 최상의 행복,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의 소중함
2023년 9월13일
17세 이은현
팡세의 6장에서 13장까지는 현상의 이유부터 위대, 모순, 오락, 철학자들, 최고선, 포르로아얄에서(A.P.R), 시작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는 조각글로 이루러져 있다.
특히 이 조각글은 여러 가지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서 어느 한 조각글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좋은 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내 눈에 들어온 조각글의 내용은 11장 12장이였다.
11장의 181번에서 나오는 조각글은 이 에세이를 쓸 수 있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11장 181번에서 말하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오랜 세월 전부터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리고 있는 이 목표 지점에 아무도 신앙 없이는 도달하지 못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조각글에서는 사람들이 마무리 목표에 도달하려고 해도 신앙 없이는 아무도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글을 보고 이것이 세상 사람등과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임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토록 원했던 영원한 행복과 목표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에세이를 쓰면서 더 고민 되었다. 그래서 제목을 ‘사랑, 행복, 하나님과 연합 하는 것의 소중함’으로 정했다. 참 행복과 참 사랑을 찾고 싶은 마음을 이 에세이 제목과 내용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의 처음 주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참 행복이다. 반대로 세상이 주는 행복은 참 행복이 아님을 삶을 살면서 기도하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주는 행복은 만지면 사라지는 구름 같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한번 먹는 것이 소원이여서 그 음식을 구매해서 먹는 다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 음식을 먹은 그 때는 만족하지만 그 후에는 더 맛있는 음식을 찾고 싶은 욕심이 찾아올 것이다. 이 예를 삶을 살면서 매번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주제는 목표를 이룬 후에 만족이다. 팡세 11장, 181번에서 나온 ‘사람들이 끊임없이 노리고 있는 목표는 그 목표까지 도달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만약에 반대로 그 목표 중 하나라도 이루었다고 해도 만족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번 더 예를 들자면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글쓰기, 건강한 습관 만들기라면 일상생활에서는 유익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목표가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목표를 이룬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살면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참 행복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라는 물음말이다.
내 물음에 파스칼은 어떻게 대답 했을까? 팡세 12장, 182번에서 말하길 ‘그들의 최상의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영원히 그분과 연합하는 데에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구름과 수증기처럼 허무하게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세상의 것은 영원히 있는 행복이 아니지만 내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알고 영원히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과 영원히 연합하며 그분을 아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것이 실천되기는 어려웠다. 하나님과 연합하지 못하는 방해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팡세 12장 182번에서는 ‘그들의 주된 질병은 그대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오만과 그대들로 하여금 세상의 것에 짐작하게 만드는 사욕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은 그들에게 집착하게 만드는 사욕이라는 가짜 행복의 자석을 심어 놓는다. 내가 그 심은 곳에 가까이 갔을 때 그곳에 꼼작 없이 붙었고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자석이 있는 곳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해야 하는데 말이다.
내가 이것을 알고 몸부림 쳤을 때 하나님은 뜨거운 사랑의 물방울을 그 자석에 떨어뜨리셨다. 그 후 자석은 녹아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이 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임을 알았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하는 것에 대해 파스칼은 어떻게 생각 했을까? 팡세 12장 182번에서 대답해 주고 있다. ‘신이 우리와 연합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비참을 알고 있을 때만이 가능해 진다.’ 라고 대답해 주고 있다. 이 문장이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되었다. 그래서 팡세 12장 182번에서 다시 답해 주고 있다. ‘그러나 만일에 그대들이 우리들의 비참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을 깊이 있게 살펴보도록 하라. 그리고 우리들은 실제로 너무 비천하기 때문에 우리들 스스로는 그분의 자비가 우리들로 하여금 그 분과 연합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하라’ 었다.
나 스스로는 예수님의 자비가 나로 하여금 그분과 연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것은 내가 비참하기 때문이고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우리 교회 중고등부 목사님이 말씀하셨던 설교 내용이 생각났다. 내가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찾아오신 다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 죄 가운데 노인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직접 찾아오신다는 것이 너무 감사 했다. 최상의 행복과 하나님과 연합함의 소중함을 잊지 않게 나를 붙잡아 주시는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싶다. 내 스스로는 죄에 눌릴 수밖에 없지만 유일한 희망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팡세를 읽으면서 점차 깨달아 갔다. 팡세 12장 182번에서는 ‘그리고 자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열어 주시기를 원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유일한 희망이며 최상의 행복, 참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