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1일 천하장군은 214회 정기답사로 동해의 외딴섬 울릉도를 다녀왔습니다. 원래 2박3일로 계획했던 여행이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않아 이틀 더 묵다 6월 25일에 돌아왔습니다. 여행 내내 날씨가 궂었던 것은 아니어서 화창한 날에서 비바람 치는 날까지 울릉도의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지요.
발목을 살짝 다치신 분도 있었고, 해안산책로를 걷다 파도가 덮쳐 물을 뒤집어 쓴 분들, 그 과정에서 가볍게 찰과상을 입은 분도 있었습니다. 낙석으로 해안도로가 끊겨 아슬아슬하게 바닷가를 지나온 부부, 울릉군에서 급파한 행정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온 분 등 4박5일간의 울릉도 여행은 다사다난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면 발 벗고 나서서 돕는 회원들이 있어 문제도 해결하고 마음도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사건과 에피소드를 남긴 이번 2011년 울릉도 여행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행 첫날인 6월 21일, 새벽 6시에 양재를 출발해 묵호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오션플라워호를 타고 울릉도로 향합니다. 바다는 잔잔해 아무도 멀미하는 분 없이 울릉도에 잘 도착했습니다. 울릉도 오징어를 넣고 끊인 싱싱한 오징어국과 부지깽이, 취나물, 머우대 등 울릉도산 나물들로 한상 차려진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고는 해안도로를 타고 울릉도 답사에 나섭니다.
해안가에는 모습도 기기묘묘한 기암절벽들이 우리를 반깁니다.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울릉도는 해안가가 모두 깍아지는 절벽이라 해안도로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차 한대만 지날 수 있는 좁은 터널이 꽤 많았습니다. 터널 앞에 신호등이 있어 파란불이 켜지면 지나갈 수 있게 돼 있는 것도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곳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는 태하등대 전망대입니다. 등대 앞에서 바라보는 현포해안과 대풍령 해안절벽은 과연 이곳이 왜 한국의 10대 비경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절벽 아래로 에머랄드빛 바닷물이 빛나는 아름다운 풍광입니다. 대풍령 해안절벽에 자생하는 천연기념물 향나무 군락은 향나무의 원종이 보존돼 있어 학술적가치도 높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태하등대 옆으로는 티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인간시대>에도 나왔던 노부부의 집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짐을 오르내리던 도르레도 구경해 봅니다.
현포마을, 천부마을을 지나 나리분지에 도착합니다. 성인봉 화산이 폭발한 자리인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하게 너른 평야로 예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면서 섬말나리 뿌리를 캐먹으며 연명했다고 하여 나리골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투막집과 나리집을 구경하고 갖가지 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과 감자전으로 식사를 하고는 숙소인 대아리조트로 돌아왔습니다. 투막집을 촬영하던 한 회원이 가볍게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바로 여기 나리분지에서 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에 한의사와 양의사가 있었는데, 그들의 조언으로 울릉도 보건소에 들려 다리상태를 확인한 뒤 반깁스를 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재빠른 대처로 악화되지 않고 조기에 적절하게 처리한 것은 모두 함께한 분들의 협력 덕분이었습니다.
울릉도의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오전에 봉래폭포와 내수전일출전망대를 산책하고 오후에는 독도탐방이 예정된 날입니다. 내수전일출전망대는 관광버스에 내려서도 꽤 가파른 길을 20여분 올라가는데 전망대에 오르면 저동항과 죽도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멋진 곳입니다. 삼단으로 이뤄진 봉래폭포는 하루 분출량이 3000톤으로 물 좋기로 소문난 울릉도에서 울릉읍 주민들의 식수원이기도 합니다. 봉래폭포를 내려오는 길에는 천연에어컨으로 불리는 풍혈에 들려 땀을 식힙니다. 오전 일정을 순조롭게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는데 충격소식이 전해집니다. 어제까지도 순조롭던 독도탐방이 기상악화로 어렵다는 통보. 섬여행은 이렇게 변수가 많은가 봅니다. 어쩔 수 없이 독도탐방 대신 울릉도 섬일주 유람선을 알아보기로 하고 그동안 해안산책로 탐방을 하기로 합니다.
도동항부터 출발해 행남등대를 경유해 저동항 촛대바위까지 걷는 해안산책로는 바닷가 절벽을 따라 걸으며 코앞에서 바다를 즐기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우리의 독도탐방을 가로막은 울릉도 바다는 점점 거칠게 바다를 흔들고 있지만 파란하늘과 출렁이는 거친 파도가 만들어내는 풍광은 우리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합니다. 절경에 취해 해안산책로를 반쯤 걸었을 때 접한 소식은 유람선도 기상악화로 통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회원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2개 팀으로 나뉘어져 한 팀은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나머지 한 팀은 해안산책로를 끝까지 걷기로 합니다.
저는 끝까지 걷는 팀을 인솔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도동항으로 돌아가던 우리 회원들 중 일부가 거칠어진 파도가 해안산책로를 덮치는 바람에 물벼락을 막고, 혹은 가벼운 찰과상을 입기도 한 것입니다.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인명사고도 날 수 있다고 하니 그만한게 천만다행이고, 변화무쌍한 울릉도 날씨에 따라 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도동항으로 돌아가던 회원들이 물벼락을 막고, 연이어 취소된 독도탐방과 유람선에 아쉬하며 숙소로 돌아간 반면, 해안산책로 완주를 강행한 15명은 행남등대에 올라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하고 촛대바위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해안산책로에 감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산책을 마친 15명은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시내버스를 이용해 자유여행을 즐기기로 하곤 무작정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를 타고 거칠어진 바다를 구경하며 달리는 해안길 드라이브도 멋집니다. 기사아저씨의 조언을 받아 현포에 있는 조각공원 예림원에 들러 아름다운 분재와 조각상들을 구경하고 저녁식사를 하기로 한 도동항 횟집에서 전체일행과 합류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울릉도의 두 번째 날도 저뭅니다.
6월 23일 목요일, 울릉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아 외출준비를 하는데 또다시 긴급소식이 전해집니다. 묵호배가 결항되어 울릉도를 떠날 수 없다는 것. 급히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현재 있던 대아리조트에서 개별적으로 이동이 용이한 도동항에 있는 숙소로 옮기고는 오후에는 약수공원과 독도박물관, 케이블카로 오르는 전망대에 다녀왔습니다. 이제부터는 배가 떠 울릉도를 떠날 때까지 자유일정입니다. 우선 혈압약 등 개인 복용약이 부족한 분들은 보건소에 들려 약을 타고, 다리를 다친 회원은 침을 맞고 뜸을 뜨기도 하며 며칠이 될지 모를 울릉도의 생활에 대처해 나갑니다.
6월 24일은 울릉도에 추가로 체류하게 된 첫날입니다. 아침부터 비가 쏟아집니다. 꽤 양이 많습니다. 자유일정이지만 몇몇은 저와 함께 울릉도옛길 트레킹에 나서기로 하고, 몇몇은 박원순 대표와 함께 예림원 답사에 나섭니다. 석포부터 내수전까지 이어지는 5km정도의 울릉도옛길은 울창한 원시림 사이로 난 오솔길인데 길도 완만하고 숲이 깊어 비가 많이 와도 걸을만 했습니다. 이 길은 울릉도의 해안일주도로 중 유일하게 도로가 놓이지 않은 구간으로 예부터 울릉도 사람들이 넘어 다니던 길이라고 합니다. 날이 화창하면 멀리 독도가 보이고, 앞바다로는 죽도가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예림원을 방문한 팀은 석포까지 드라이브하며 삼선암을 둘러보고 예림원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현포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자에서 막걸리 잔술에 먹던 부지깽이전 맛은 꿀맛이었다고 합니다. 기상악화로 어쩔 수 없이 섬에 체류해야 하는 상황도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며, 다른 분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던 많은 회원들 덕분에 울릉도에서의 하루도 그렇게 지나갑니다.
6월 25일, 토요일은 묵호로 나가는 배가 뜬다는 소식입니다.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혹시나 묵호배가 못 뜨면 포항 배라도 타고 나가겠다는 일부 회원들이 아침부터 포항으로 나가는 배표를 구한다고 어수선하기도 했습니다. 어찌되었건 무사히 오후 1시에 묵호로 가는 배가 떴고 우리는 모두 집으로 잘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천하장군이 섬여행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예정에 없는 체류를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백령도가 그랬고, 최근에는 외연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2박은 처음이었습니다. 울릉도가 육지에서 160km나 떨어져 있는 외딴 섬이란 것을 톡톡히 실감했습니다. 섬에 발이 묶여서 주말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저의 문자메시지에 “일생에 로망, 섬에 갇히는 것! 피할 수 없는 상황 즐기세요!”라는 답변처럼 여행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즐기고 모험하고 도전하는 데서 그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려운 일을 함께 겪어선지 모두가 더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저 만일까요. 힘들 때 도와주는 손길이 더 빛나듯이, 복용약이 떨어지고, 다리를 다치고, 연차를 내고 온 직장에 며칠 더 빠지는 어려움 가운데도 여행을 즐기고 서로를 배려해 주신 회원여러분들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사건사고도 많았지만 그래서 더욱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이번 울릉도 여행에 동행한 우리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울릉도 섬백리향)
울릉도 여행의 기쁨이 다시 돌아온 일상의 작은 활력이 되길 바라며, 여행의 피로가 남지 않도록 푹 쉬시기 바랍니다. 7월에는 시원한 계곡으로 떠나는 진안 운일암반일암 계곡 답사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2011년 6월 28일
천하장군문화유적답사회 정지인
첫댓글 초록별님, 울릉도 트레킹 인도하느라고 수고많았습니다.
천하장군에서도 트래킹 즐길 회원들이 꽤 있을것 같으네요.
초록별님 울릉도에서 기상조건때문에 늘어난 여행일도
무리없이 잘 진행하시느라 수고많으셨읍니다.
참석치않은 저도 여행후기 읽으며, 좋은 사진 보면서
같이 참석한듯 잘 보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이 무사히 마무리된 뒤에 들으니 이런 일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는 부럽기까지 하군요^^.
수고많았고 모두들 잘 돌아오셔서 천만다행입니다. 스릴만점의 섬여행,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되는군요.
어쩌면 이렇게 후기를 잘 쓸까요?
쭉 읽어내려가면서 다시한번 머리속에 울릉도가 지나가네요
천하장군님과 초록별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이렇게 멋진 경험을 하게 해주셔서요...
그리고 역시 천하장군 회원님들의 수준에 다시한번 감탄하였습니다
여행을 알고 즐기시는 그 모습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트레킹위주로 한번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그 때 독도를 가볼 수 있다면 더욱 좋고요...이런 기회 한번 만들어 주세요.
이번 울릉도 여행은 힘들기도 했지만 모험도 해보고 스릴있었어요.^^
몇분과 의논하기도 했는데, 정말 언젠가,, 가을에 울릉도에 단풍이 곱게 들고, 해국이 만발할 때쯤
울릉도의 숲과 원시림, 그리고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트레킹 추진을 적극 검토해 볼까 합니다.
걷기 위주로 하되, 힘드신 분은 선택관광이 가능한 방법도 찾아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초록별님은 글도 잘 쓰시네요. 다녀온길을 차분하게 회상했습니다.
우비를 입고 초록별님과 함께 옛날길을 걸은 숲속길이 너무좋았습니다. 다른분들은 좋은 기회를 놓진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알찬여행을 제공해주신 천하장군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