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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소유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
소리를 기록하고, 저장하고, 재생하기 위해 인류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유리관 속에 말을 한 뒤 마개로 막아놓았다가 다시 열어서 귀를 대보곤 했던 원시적인 방법에서부터 가수의 숨소리까지 전달하는 하이파이 오디오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만들어온 음향기기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짚어보고자 한다.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gh) - 1857
포노토그래프, 혹은 폰오토그래프라고 부른다. 1857년 프랑스의 레옹 스콧 드 마르탱빌(Leon Scott de Martinville)에 의해 발명됐다. 공기를 통한 전달로 음파를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장치이다. 스콧의 말에 따르면 이 장치를 고안한 것은 1853년 또는 1854년이라고하나, 문서화 된 기록은 1857년 1월로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됐다. 축음기의 발명을 에디슨이라 주장하는 미국은, 이 기기가 실제로 녹음까지는 성공했지만 녹음한 소리를 재생해 내는 데엔 실패했기 때문에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적절치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음기의 가장 초기단계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에디슨과 그가 두 번째로 만든 축음기
포노그래프(Phonograph) - 1877
우리에겐 '축음기'로 알려진 기기이다.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이 1877년 11월 축음기의 발명을 알리는 기사를 내면서 최초의 발명자로 알려졌다. 작은 원통에 아연포일을 얇게 둘러싸고, 원통을 돌리면 소리의 압력에 따라 움직이는 얇은 막에 달린 금속 바늘이 나팔관을 통해 전달된 소리를 아연 포일에 기록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에디슨이 처음 발명한 축음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턴테이블 형태가 아닌 원통형 실린더를 사용한 형태의 기기였다. 에디슨은 디스크 형태의 축음기가 기술적으로 원통형 실린더 형태의 축음기에 비해 소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런 판단과는 별도로 턴테이블의 특허 또한 그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에디슨이 포노그래프를 발명해 최초로 녹음한 소리는 "메리는 어린 양을 갖고 있었다 (Mary had a little lamb)"였다.
오르골(Orgel) - 1700년대
Orgel은 네덜란드어로 우리는 흔히 '오르골'이라 발음한다. 1770년대 유럽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해 인형상자나 콤팩트, 심지어 담배 케이스에까지 오르골을 장치하기도 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자동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를 뜻하며 조그만 상자 속에 쇠막대기의 바늘이 회전하면서 음계판에 닿아 음악이 연주되는 구조로 소리를 낸다. 자명금(自鳴琴; 스스로우는 악기)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뮤직박스(music box)라고 한다.
오르골은 녹음한 소리를 재생해내는 기기는 아니지만 자동으로 음악을 연주해낸 최초의 포터블 음향기기라 할 수 있다.
전기 스피커 실험 - 1861
독일인 과학자 요한 필립 라이스(Johann Philipp Reis)가 1961년 처음 전기를 이용한 스피커를 실험했다.
무빙코일 변환기를 사용한 스피커 - 1877
독일의 에른스트 지멘스(Ernst W. Siemens)는 1874년 자기회로 내에 원형 코일을 넣어 상하로 움직이게 하는 무빙코일 변환기(moving coil transducer)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고 특허를 신청했다. 지멘스의 이론이 실용화 된 것은 1877년의 일로 관악기의 관 형태로 생긴 진동판을 만들어 축음기에 사용해 호른(horn)형 스피커의 원조가 되었다.
SP(Standard - Playing Record) - 1880~1948
SP는 음향기기는 아니지만 모든 음반 매체를 통틀어 가장 장수한 매체였기 때문에 다뤄본다. 가장 초기형태의 SP는 그라모폰을 고안한 베를리너의 손에서 탄생했다. 처음 상품화된 SP의 지름은 12.5cm로 장시간 재생이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재생기기의 발달이 더뎌 이 음반으로 노래를 듣기 위해선 사람이 직접 자전거 페달처럼 생긴 손잡이를 계속 돌려야 했었다.
베를리너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태엽 구동 방식을 구상했고, 뉴저지의 엘드리지 존슨이라는 기술자의 스프링 모터를 축음기에 도입했다. 이때부터 음반의 정속 개념이 생겨나 SP의 재생 속도가 78RPM으로 정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78RPM이 공식적인 표준이 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1903년에는 25cm와 30cm 판이 나와 각각 3분과 4분 30초에 이르는 재생시간을 가지게 됐고, 이후 직경 40cm에 이르는 콜럼비아의 대형 디스크가 나왔지만 물리적인 크기를 키워 재생시간을 약간 늘린 정도여서 크고 무겁다는 이유로 방송국 녹음용 정도로만 쓰였다. SP판은 재생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라모폰의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가 개량 연구 중에 있다.
그라모폰(Gramophone) - 1887
에디슨이 만든 포노그래프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지만, 깡통 속에 홈을 파고 재생하는 종진동 방식이라 대량 생산에 불리하고 마모가 심하다는 문제가 있어 판매 실적은 영 좋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독일 출신의 미국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가 둥글고 넓적한 원판에 소리홈을 새긴 틀로 음반을 찍어내는 방식인 횡진동 방식의 음반을 제작했는데, 이 음반과 재생기를 그라모폰(Gramoghone)이라는 이름으로 1887년에 특허를 받았다. 1895년엔 세계 최초의 전업 프로듀서인 프레드 가이스버그와 그라모폰 컴퍼니를 설립해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에디슨을 비롯한 종진동 방식의 음반 사업과의 경쟁에서 완승을 거두었다. 이 그라모폰 컴퍼니의 축음기가 영국에서 히트를 쳤고, 지금은 우리나라가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고 칭하듯 영국에선 지금까지도 축음기를 흔히 그라모폰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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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털 라디오 발명 - 1904
라디오 수신기의 역사는 발명가, 과학자들의 특허 분쟁으로 화려하다. 그 가운데 가장 초창기에 만들어졌던 라디오는 흔히 광석 라디오로 알려진 크리스털 라디오(Crystal Radio)다. 1904년께 인도 과학자 찬드라 보즈와 미국의 발명가 그린리프 위티어 피카드 등이 만들었으며, 전력이 없이도 동작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만들어 내는 신호가 스피커를 구동하기엔 미약한 신호였기 때문에 임피던스가 높은 전용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한 사람 내지 두 사람 정도만이 청취할 수 있었다.
플레밍 밸브 발명 - 1904
플레밍이 1904년에 최초로 발명한 2극관이다. 무선 전신의 검파관으로 사용되었다.
초창기 오디온 라디오 리시버 가운데 하나이다.
최초의 프로토타입 오디온
3극 진공관 발명 - 1906
미국인 리 드 포리스트(Lee De Forest)가 향후 라디오 수신의 핵심 부품이 된 3극 진공관을 발명했다. 초창기 플레이트금속과 필라멘트금속 2극으로 만들어진 진공관이 오디온(audion a vacuum tube)이며 이 사이에 다시 그리드(Grid)로 불리는 제3의 전극을 집어넣은 것이 3극 진공관인 트라이오드(Triode)이다. 포리스트가 발명해 낸 진공관으로 작은 신호를 크게 증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거리 유선, 무선통신과 방송을 다시 증폭해 들을 수 있었다.
초창기 헤드폰 - 1910년대
초창기 헤드폰의 내구성이 강하지 않았던 탓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제품이 거의 없다. 그렇다보니 정확히 헤드폰의 시초를 찾아보기 어렵고 남아있는 기록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1910년 미국 유타주의 너대니얼 볼드윈(Nathaniel Baldwin)이 작은 전기신호를 재생하는 현대적 의미의 헤드폰을 발명해 해군 관계자에게 보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해군은 필요한 10개를 우선 주문했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00개의 헤드폰 제품을 더 주문했다. 볼드윈은 볼드윈라디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150명의 직원을 고용해 1920년대 괜찮은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진공관 라디오 - 1910년대
초기의 진공관 라디오는 지금의 세탁기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발전을 거듭해 1940년대 말에는 휴대가 가능한 여성용 핸드백 크기로 줄어 들었고, 상용 전지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납축전지나 건전지를 사용해 들을 수 있는 휴대용 라디오 시대가 열렸다.
AM 라디오 - 1920
상업허가를 받은 정규 음향방송이 1920년에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시절의 라디오는 높은 품질의 사운드를 재생해내는 선도적인 매체였다. AM 라디오는 대역폭이 10kHz로 제한됐었기 때문에, 대역폭과 앰프 신호가 일치하지 않는 청취자들에게 하이파이 품질의 사운드를 제공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짜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에 레코드 시장이 한 때 암흑기로 들어갈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직접 방사식 스피커 특허 출원 - 1924
영구 자석에 구리선을 감아 자석 주변을 감싸는 가벼운 코일을 만들어 끼우고, 코일의 한쪽에 종이, 플라스틱, 금속 등의 재질로 만들어진 진동판을 동그란 모양으로 달아서 만든 현대적인 무빙 코일 스피커 특허가 체스터 라이스(Chester W.Rice)와 에드워드 켈로그(Edward W. Kellogg)에 의해 출원 됐다. 이들이 고안한 직접 방사식(direct radiation) 유닛은 현재까지 사용되는 라우드 스피커의 기본 모델이다.
자기 테이프 발명 -1928
프리츠 플로이머가 얇은 두루마리 종이에 래커 칠을 한 뒤 고운 산화철 가루를 묻혀서 역사상 최초의 자기 테이프를 발명했다.
전기로 동작하는 전축 등장 - 1920 후반
이전의 축음기들은 대부분 기계식으로 태엽을감아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192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야 전기로 동작하는 전축이 등장했다.
오픈릴 테이프(Reel-to-reel tape) 플레이어
오픈릴 테이프 - 1920년대 후반 릴에 감아서 사용하는 녹음테이프. 현존하는 아날로그 오디오 매체 중에서 가장 음질이 좋은 매체이나 대중화 되진 못했고, 테이프리스 시스템 이전의 방송국에서 사용됐다. 1920년대 후반 영국의 기술자 루이스 블래트너가 블래트너폰을 만들었고 이후 BBC에서 방송용 장비로 사용됐지만 장비가 워낙 무거운데다 녹음에 필요한 강철 와이어가 지나치게 많이 필요해서 음반 제작에는 사용되지 못했다. LP음반은 물론이고 90년대까지 한국 대중가요 음반 제작에 사용됐던 마스터 테이프도 이 오픈릴 테이프였다.
혼 스피커(Horn Speaker) 대량 생산 - 1930년대
혼 스피커는 대부분 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형 그대로를 보존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2WAY 스피커 개발 - 1931
벨연구소에서 고역대는 혼, 저역은 무빙코일 콘 방식의 '대역별 분할(divided range)'이라는 2WAY 스피커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로부터 2년 뒤인 1993년에는 영화를 위해 3WAY 시스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FM라디오 발명가 하워드 암스트롱이 신혼여행에서 그의아내와 세계 최초의 포터블 라디오로 방송을 듣고 있는 장면이다.
FM라디오 - 1934
1918년 에드윈 하워드 암스트롱(Edwin Arm strong)이 FM라디오의 특허를 냈다. 하지만 첫 FM 시험 방송이 시작된 것은 이부터 한참 후인 1934년의 일이다. 미국 뉴욕시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85층에서 RCA(Radio Corporation of America)의 주관으로 첫 FM 방송이 송신됐다.
마그네토폰 - 1935
첫 자기 테이프 레코더가 마그네토폰(Magnetophon)이라는 이름으로 1935년 베를린의 방송기술 박람회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 장비는 당시의 독일이 나치 집권기였던 탓에 독일 밖으로는 퍼지지 못했는데, 세계 2차 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자 미국이 이 마그네토폰을 압류해 본국으로 들여와 빠르게 개선작업에 들어갔고 1946년 봄부터 마그네토폰의 개량형 테이프와 녹음기를 시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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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Long Playing Record) - 1948
SP가 한창 팔리던 무렵에도 SP의 짧은 수록시간에 대한 불만은 있어왔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온갖 개량과 실험들이 있어왔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재질을 크게 개선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중화학공업이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었고 고분자 물질인 플라스틱이 세상에 나왔다. 콜럼비아 레코드의 에드워드 윌러스타인과 기술자 빌 바흐만은 이 플라스틱에 주목했고, 레코드를 개량하기 위한 실험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플라스틱 가운데서도 염화비닐 수지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으며, 정밀하게 소릿결을 새겨 넣을 수 있는 프레스 기기도 같이 개발했다.
이렇게 해서 1948년 6월 21일에 뉴욕의 월도프 아스트리아 호텔에서 Long-Playing Record, 약칭 LP의 발표와 시연회가 개최됐다. 이 발표회에서 발표자 골드마크가 SP를 수북히 쌓아놓고 LP 한 장을 가지고 나와 "여기에 쌓인 SP에 녹음된 곡들이 제가 가지고 나온 새로운 음반 한 장에 모두 녹음돼있습니다."라며 LP의 긴 재생시간을 선전했다. LP는 또한 기존의 SP에 비해 재생 가능한 음역대가 넓어졌기 때문에 소리의 명료도 또한 한 층 향상됐었다. 참가한 이들이 개선된 사운드에 모두 놀라워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LP는 LP턴테이블과 함께 시장에 나오자마자 대성공을 거뒀고, 1년 만에 미국의 모든 레코드사에서 LP로 음반을 낼 정도로 엄청난 속도로 보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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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지스터 라디오 - 1954
흔히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장 먼저 만든 회사를 소니로 오인하고 있는데, 인류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I.D.E.A.에 의해 공동 개발됐다. 최초로 시판된 모델은 리젠시 TR-1(Regency TR-1)으로 크기는 7.65X12.7X3.1mm에 무게는 340g이었으며 당시 가격은 49.95 달러로 현재로 치면 약 400달러 정도 였었다. 초기엔 FM 방송이 인기가 없어 AM방송만 들을 수 있는 모델로 출시 됐었고, 1956년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총 15만 대 정도 팔렸다고 한다.
카세트테이프 - 1963
네덜란드의 필립스가 1963년에 발명한 음원 저장매체이다. 긴 테이프에 자기를 띄게 해 음원을 저장한다. 카세트테이프의 대량생산은 1964년 독일 하노버에서 시작됐다. 필립스의 자회사였던 머큐리 레코드에서 1965년 후반 음원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었으며, 이것이 1966년미국에서 발매됐다. 이후 1970년대 음반시장을 완전히 잠식하면서 8트랙 카트리지를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8트랙 카트리지 - 1964
오픈릴테이프가 너무 크고 비싸서 음악의 주 소비층에서는 이 매체를 접할 수 없었는데, 이를 소형화해 자동차에 탑재 가능한 사이즈로 만든 제품이 '스테레오 8', 훗날 8트랙 카트리지로 더 많이 불렸던 제품이다.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가 개발단계에서부터 지원을 했기 때문에 개발되자마자 라디오와 함께 카오디오의 기본 장비로 장착됐다. 하지만 먼지에 약하고 잡음과 떨림이 심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CD - 1976
CD는 1976년 필립스와 소니가 발표한 CD-DA(CD- Digital Audio)라는 기술을 토대로 만들어진 오디오 매체이다. 1978년엔 60분정도 녹음할 수 있는 CD가, 1982년엔 레드북 규격의 의해 상용 제품이 처음 등장했다. 기존의 LP판이나 테이프보다 깨끗한 음질을 들려줘 호평을 얻었다. 1983년 국제표준제정기구(ISO)에서 공식 기준으로 인가를 받아 ‘ISO-9660 REDBOOK’ 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이 규격이 레드북인 이유는 규격서의 표지가 빨간 색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CD는 지름이 12cm 밖에 되지 않지만 Compact라는 말이 뜻하듯 촘촘하게 방대한 양의 정보를 담아냈다. 74분 2초 정도를 담아낼 수 있으며, 44.1kHz로 녹음할 수 있어 소리가 깨끗하다. 음악을 녹음해 출시한 최초의 CD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나 테스트까지 포함하면 1981년 독일의 하노버의 Polydor Pressing Operations사에서 출시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Eine Alpensinfonie (알프스 교향곡)이 CD형태의 최초의 음반이었다. 녹음된 교향곡은 베를리너 필하모닉이 연주하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했다.
휴대용 스테레오 카세트 레코더 - 1979
1979년 소니에서 휴대용 스테레오 카세트 레코더인 워크맨을 출시했다. 처음 발매된 소니의 워크맨은 'TPS-L2'였으며 이후 라디오, 녹음 기능이 추가됐다. 출시 이후 워크맨의 판매 누적 대수는 1억대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초창기 카세트 플레이어는 녹음과 휴대성을 위해 설계됐기 때문에 오디오 퀄리티가 음악 감상용도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한다.
휴대용 CD 플레이어 - 1984
최초의 휴대용 CD 재생기는 소니의 Discman D-50(동시에 출시된 D-5 모델은 북미 등 일부 시장에서 판매됐다)이다. 이후 1990년대 중후반에 CD 워크맨 시리즈로 편입됐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에 비해 음질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부피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보다 크고 진동이나 충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Osca Bonello 교수
MP3(MPEG Audio Layer-3) - 1987
MPEG, MP3 등의 손실압축은 198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의 Osca Bonello 교수의 초기 연구에 기본을 두고 있지만 손실압축 음원 포맷 가운데 가장 보편화된 MP3의 역사를 짚어보고자 한다. MP3는 MPEG1의 오디오 규격으로 개발된 손실 압축 포맷으로 압축이 돼있지 않은 PCM 음원보다 용량을 1/10로 획기적으로 줄인 음원 포맷이다. AT&T 벨 연구소, 톰슨사와 함께 독일의 프라운호퍼 직접호로 연구소에서 1987년 개발됐다.
미니 디스크 - 1992
1992년 소니가 개발한 음원 저장매체이다. 미니 디스크(Mini Disc)를 줄여 MD라고 부른다. 카세트테이프를 대체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크게 흥행하지 못했다. ATRAC이라는 독자적인 방식의 음성 압축 알고리즘을 사용해 음원을 기록했다. MP3와 비슷한 손실압축을 하지만, 기본 비트레이트가 292kbps이기 때문에 같은 시대의 MP3 음원보다 음질이 좋았다.
SONY의 MZ1은 최초의 MD플레이어이다.
MDP, MDR - 1993
미니디스크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는 두 종류가 있었다. 플레이만 가능한 MDP, 녹음까지 가능한 MDR 두 가지로 나뉘어 생산됐다. MDP가 MDR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고 사용시간도 길고, 초박형에 디자인이 우수한 제품이 많아 인기가 있었다. 일본 내수에서는 나름 선전했으나 2000년대 MP3플레이어가 등장하고부턴 사멸하기 시작했다.
DVD(Digital Verstile Disc) - 1996
CD의 후속으로 등장한 미디어로 일본에서 1996년에 개발됐다. 기본 4.7GB에 최대 17GB의 대용량을 담을 수 있다. 그 시초가 영화 감상 용도였기 때문에 음향기기 매체로 다루기 애매하지만 DVD-Audio라는 규격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DVDAudio는 고음질과 멀티채널 오디오를 기록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일부 고음질 애호가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CD 정도의 음질이면 충분히 만족할 만 했고, 일반 DVD 플레이어에서 바로 재생이 되지 않는 등의 문제를 안고 있어 활성화 되진 못했다. 규격이 다름에도, 비슷한 외형 때문에 CD로 싸잡혀 통칭되고 있기도 하다.
디지털 오디오 플레이어(MP3 플레이어) - 1998
대한민국에겐 통한(痛恨)의 음향기기다. 양산에 성공한 최초의 MP3 플레이어는 1998년 3월 독일 하노버의 세빗(CeBIT)에서 공개된 새한정보시스템의 MP3플레이어인 엠피맨F10(MPman F10)이다.
이후 MP3 사업부분을 분리시켜 엠피맨닷컴으로 분사했고 2003년 7월 회사가 부도나면서 2004년 11월 경쟁사였던 레인콤(지금의 아이리버)에 흡수 됐다. 하지만 이후 레인콤도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 관련 특허권을 미국 기업에 넘겼다. 2010년대 아이리버가 MP3 Player의 원천 특허권을 사서 재보유 하게 됐지만, 관련 기술과 핵심기술은 이미 돌고 돌아 엉뚱한 회사만 이익을 봤다. 이후 MP3 플레이어에 여러 기능들이 탑재되면서 동영상 재생 기기인 PMP와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FLAC(Free Lossless Audio Codec) - 2003
2003년 1월 29일 발표된 Xiph. Org 재단에서 개발한 오디오 데이터 압축을 위한 무손실 압축 포맷의 한가지이다. 오픈소스(별도의 로열티를 지급 하지 않아도 된다)이기 때문에 APE나 Loseless WMA 등의 다른 무손실 압축 포맷에 비해 굉장히 널리 보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