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목도리/신대철
바람 부냐?
아뇨
누가 왔다 갔냐?
아아뇨.
머리맡 물그릇에 얼음 잡히는 밤. 아랫동네에는 객지로 나간 아이들 다 돌아온다고 살쾡이보고 오소리 너구리보고 혼잣말을 하시는 할머니. 할머니는 눈이 가매지도록 벽에 기대어 뜨개질한 하신다. 눈 맑히는 눈 왔다 가고 귀 트이는 눈 왔다 가고 조금씩 눈발이 굵어진다.
품속에 숨긴 털목도리
아시는 듯
불빛 등진 채
홑이불로 어깨 감싸고
뜨개질 하시는 할머니
천장에 기어드는 별빛 보고
천지사방으로 돌아눕다
납작한 몸
벽에 붙이고 주무신다.
내린 눈 쌓이지 않고
소리 내며 날아다닌다.
할머니 잠든 사이 눈 다시 내리고 나는 삼거리로 내려간다. 물푸레 숲속에서 주운 털목도리, 나무하러 갈 때 몰래 쓰고 품에 넣고 다닌 목도리, 사람 소리만 스쳐도 목줄기 지지는 목도리, 그 지글거리는 목도릴 나무 등걸에 얹어놓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찬 물소리 가슴으로 받으며 움막으로 올라온다. 검은 발자국에 휜 발자국 쌓인다.
휘잉휘잉 눈보라 속에 눈기둥 돌아다니고
흰 발자국에 검정 무늬 찍혀 나오는 새벽
나는 예와 아아뇨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바람 부냐?
예.
누가 왔다 갔냐?
목도리 땜에 형제끼리 싸움질하던 그 도벌꾼이냐?
예예.
흩어진 피붙이들 허공에 이어붙이고
내 품속의 목도리 얘기
물푸레 물길 밑으로
동네 소문 밑으로 가라앉히고
할머니는 잠결에도 꿈속을 비우신다.
처마에 시레기 쓸릴 때마다
가슴으로 목줄기로 후욱 불길이 스친다
<시 읽기> 첫 목도리/신대철
‘가슴으로 목줄기로 후욱후욱 불길이 스’치는 듯하다. 몰래 주어 감춰둔 산골 아이의 첫 목도리. ‘사람 소리만 스쳐도 목줄기 지지는 목도리’. 스산하고 무서운 밤들. ‘내린 눈도 쌓이지 않고 소리 내며 날아다니’는 밤들. 무서운 산골 마을이 무서운 목도리 ‘첫 목도리’
유년을 다룬 시에서도 신대철 시 특유의 차가운 광물성의 느낌,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하다. 실제의 정황이 얼마간 그러했기도 하겠으나 이것은 대개 시인의 시선이 지닌 차가움에서 오는 듯한데, 그 공간 속에서 죄의식과 외로움과 공포의 감각은 더욱 선명하다.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