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東文選 제15권
칠언율시(七言律詩)
1기유삼월 체관후작(己酉三月褫官後作)
2이정부 지공이 차운하기에 다시 한 수를 지으며[李正夫之公見次復成一首]
3정재물이 이박으로 마땅히 벼슬이 승차되어야 하는데, 밑에 있는 자가 재물을 건너뛰어 상박이 되고 재물은 그대로 둘째에 있게 되니, 이는 옛날에 듣지 못한 일이다. 드디어 율시를 지어 받들어 드리다.[鄭載物以二博當遷而在下者越載物爲上博載物仍居其二此古未之所聞也遂爲唐律奉呈]
4이정부의 송별시에 차운하여[次李正夫贈別詩韻]
5송산서원에서 하과를 하다가 동암의 안문성공 향을 추모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며[在松山書院夏課次東庵追慕安文成珦所著韻]
6여러 교관들과 서한의 명현들을 나누어 읊는 중에 장량을 뽑아 얻었으매[與諸敎官分詠西漢名賢得張良]
7옛 마을로 돌아가 숨는 이림종 직랑을 보내며[送李林宗直郞歸舊隱]
8영호루(暎湖樓)
9송 홍민구 진사(送洪敏求進士)
10영호루(暎湖樓)
11여흥 청심루(驪興淸心樓)
12영명사 부벽루(永明寺浮碧樓)
13주상께서 태부 심양왕으로 제수하며[主上除太傅瀋陽王]
14상 최정승 종준 (上崔政丞 宗峻)
15통헌 이제현의 학사연을 하례하며[賀李通憲齊賢學士宴]
16송파 최정승 성지가 차와 종이를 선사함을 사례하며 2수 [謝松坡崔相國誠之惠茶紙 二首]
17연도에서 방경재 우선의 시에 차운하여 부쳐 드림[在燕都次方敬齋于宣韻寄呈]
18등제(登第)
19수원 운금루(水原雲錦樓)
20여흥 청심루 차운(驪興淸心樓次韻)
21증 손사경 진사(贈孫斯慶進士)
22한첨의 대순 만사(韓僉議大淳挽詞)
23천력 3년 5월에 강릉도 존무사의 임명을 받잡고, 그달 30일에 송경을 떠나 백령역에서 자는데, 밤중에 비가 오매 느낌이 있어[天曆三年五月受江陵道存撫使之命是月三十日發松京宿白嶺驛夜半雨作有懷]
24화주 본영에서 시를 차운하며[次和州本營詩韻]
25차 양주 공관운(次襄州公館韻)
26등주고성 회고(登州古城懷古)
27하 익재상국(賀益齋相國)
28등 태백산(登太白山)
29영명사 차운(永明寺次韻)
30환조하는 최어사 백연 선을 보내며[送崔御史伯淵璿還朝]
31모춘(暮春)
32정묘 중양(丁卯重陽)
33제 간성루(題杆城樓)
34평해 동헌(平海東軒)
35복주 영호루(福州暎湖樓)
36침봉현에서 조충 원수의 시에 차운하여[沉鳳縣次趙元帥冲韻]
37월광사 수헌차운(月光寺水軒次韻)
38여흥 청심루 차운(驪興淸心樓次韻)
398월 17일 배를 놓아 아미산을 향하며[八月十七日放舟向峩眉山]
40제갈공명 사당(諸葛孔明祠堂)
41사귀(思歸)
42촉에서 연으로 돌아가는 노상에서[路上 自蜀歸燕]
43함곡관(函谷關)
44이릉조발(二陵早發)
45감회(感懷)
46다경루에서 눈온 뒤에[多景樓雪後]
47다경루에서 권일재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으로 함께 지음[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
48고정산(高亭山)
49숙 임안 해회사(宿臨安海會寺)
50황토점에서 상왕(上王 忠宣王)이 참소를 입어 해명하지 못하심을 듣고[黃土店 聞上見譖不能自明]
51지치계해년 4월 20일 〈당시 서번에 계시는 임금(충선왕)을 뵈오러〉 경사를 떠나며[至治癸亥四月二十日發京師 上王時在西蕃將往拜]
52단오(端午)
53제 장안 역여(題長安逆旅)
54달존의 살구꽃 시 운대로[達尊杏花韻]
55환조하는 이한림을 보내며[送李翰林還朝]
56국재 권문정공 만사(菊齋權文正公挽詞)
57봉주 용추(鳳州龍湫)
58양화(楊花)
59양안보 국공이 옥연당에서 태위 심왕을 위하여 차린 잔치에서[楊安普國公宴太尉瀋王于玉淵堂]
60칠석(七夕)
61박지평의 시를 차운하여 안겸재에게 드리다[次朴持平韻呈安謙齋]
62차 보문사 각상시운(次普門寺閣上詩韻)
639월 9일에 청연의 시를 차운하여[九日次淸淵詩韻]
64정우곡의 시를 차운하여 홍민구 진사를 보내며[次鄭愚谷韻送洪敏求進士]
65진주 촉석루(晉州矗石樓)
66임오세 한식(壬午歲寒食)
67차운 답 순암(次韻答順庵)
68추우야좌(秋雨夜坐)
69계미원일 숭천문하(癸未元日崇天門下)
70칠석에 조금 마시며[七夕小酌]
71정조설(正朝雪)
72고한(苦寒)
73난경에서 송별하며 민급암의 시운을 쓰다[灤京送別用閔及庵韻]
74제 조계구곡각운선사 어서화시권(題曹溪龜谷覺雲禪師御書畵詩卷)
75증 곽검교(贈郭檢校)
76원조 동년에 마언휘 승지 부자통학사에게 편지를 겸하여 부치며[寄元朝同年馬彦翬承旨兼柬傅子通學士]
77송유사암(送柳思庵)
78동래에서 제생들을 작별하며[留別東萊諸生]
79서회(書懷)
80설날에 즉흥으로[元日漫成]
81영광 동쪽 자복사에 나그네로 묵으며[客寓靈光東資福寺]
82차 명원루 연집운(次明遠樓宴集韻)
83매계 원송수의 남성 주시를 하례하며[賀元梅谿松壽掌南省試]
84시중 행촌 이암을 곡하다[哭杏村李侍中嵒]
85자술(自述)
86여강루(驪江樓)
87영호루 차운(暎湖樓次韻)
88계림동정(鷄林東亭)
89상승 경효왕 만장(上昇敬孝王挽章)
90하남왕의 사자 검교 곽영석 구주를 보내며[送河南王使郭檢校永錫九疇]
91정선군 차운(旌善郡次韻)
………………………………………………………………………………
1.기유삼월 체관후작(己酉三月褫官後作)
최해(崔瀣)
새삼 게을러져 사립문 닫고 앉았으니 / 分將疏懶掩柴關
열흘에 한 번 한 사람도 다녀 가는 이 없네 / 十日無人一往還
옛것을 좋아하나 그 누가 알아주리 / 懷古誰憐空好古
한가함을 사랑하니 한가함보다 나은 것 없는 줄 알겠네 / 愛閑自覺不如閑
바람에 나무그림자는 처마에 닿아 어둑하고 / 風來樹影低簷暗
비온 뒤에 이끼는 섬돌에까지 오르누나 / 雨送苔痕上砌斑
옛날의 현철들을 생각하니 나는 참으로 한 자를 굽혔구나 / 尙友前修眞枉尺
이따금 책 어루만지며 고산처럼 옛사람을 우러르네 / 有時捬卷仰高山
[주-D001] 옛날의 …… 굽혔구나 :
진대(陳代)가 맹자에게 말하기를, “한 자를 굽혀서 열 자를 바르게 할 수 있으면[枉尺直尋] 하는 것이 옳지 않습니까.” 하였는데, 그것은 몸을 굽히더라도 제후(諸侯)를 보아서 세상을 구제하라는 뜻이다. 맹자는, “몸을 굽혀서까지 남을 바르게 할 수는 없다.” 하였다.
2.이정부 지공이 차운하기에 다시 한 수를 지으며[李正夫之公見次復成一首]
최해(崔瀣)
10년 진토에서 고향을 꿈꾸어 / 十年塵土夢鄕關
어주에 달을 싣고 돌아오던 것 상상했네 / 暗想漁舟載月還
뽕나무 밑에 붉은 삽살개 세 갈래 길이 고요하고 / 桑柘紅厖三徑靜
뽀얀 물결에 흰 새 나니 온 하늘이 한가하리 / 煙波白鳥一天閑
감 동산에 비 지나면 노랗고 붉은 것이 말랑말랑 / 柹園雨過金丹脆
밤 언덕에 서리치니 옥 껍질이 아롱아롱 / 栗塢霜飛玉殼斑
가을이 오면 청학동을 찾으려고 / 秋至欲尋靑鶴洞
말타고 함께 가기로 정평산과 언약했네 / 聯鞍相約鄭平山
외가의 고을 진양(晉陽)에 지리산(智異山)이 있고, 그 산에 청학동(靑鶴洞)이 있다. 가을에 정경(鄭鏡) 기권(機權)과 같이 진양에 가기로 언약했었다. ‘평산’은 경의 자호(自號).
[주-D001] 뽕나무 밑에 …… 세 갈래 길 :
한(漢)나라 장후(蔣詡)가 숨어 살면서 대밭 속에 세 갈래 길을 내어 놓고 양중(羊仲) 구중(求仲)과 왕래하였다.
3.정재물이 이박으로 마땅히 벼슬이 승차되어야 하는데, 밑에 있는 자가 재물을
건너뛰어 상박이 되고 재물은 그대로 둘째에 있게 되니, 이는 옛날에 듣지 못한 일이다. 드디어 율시를 지어 받들어 드리다.[鄭載物以二博當遷而在下者越載物爲上博載物仍居其二此古未之所聞也遂爲唐律奉呈]
최해(崔瀣)
장부의 행지는 하늘이 주장하니 / 丈夫行止有天公
일찍이 밭둑 위에 제비와 기러기를 탄식한 일도 있네 / 壟上曾嗟燕與鴻
나같은 사람은 냄새좋은 미끼 아래 헤매지만 / 任我自迷芳餌下
자네는 어이 아직도 장작더미 속에 있는가 / 怪君仍在積薪中
주고 빼앗음이 지금 사람에 달린 것 알았으니 / 已知與奪由今日
문장이 고풍을 이었다고 믿지 마세 / 莫倚文章繼古風
그래도 낫네, 계림의 미친 처사는 / 猶勝鷄林狂處士
10년 동안 앉아서 허공에 글자만 쓰던 것보다는 / 十年咄咄坐書空
[주-D001] 밭둑 …… 탄식한 일 :
진말(秦末)에 진승(陳勝)이 큰 뜻을 품었으나 가난하여 품팔이로 밭을 갈다가 밭둑에 앉아 쉬면서, “왕후(王侯)와 장상(將相)이 어찌 종자가 있으랴.” 하고 탄식하니, 곁에 사람이 비웃었다. 그가 말하기를, “제비가 어찌 기러기ㆍ따오기의 뜻을 알까보냐.” 하였다.
[주-D002] 자네는 어이 …… 있는가 :
한 무제(漢武帝)가 사람을 쓰는데 먼저 벼슬한 사람보다 뒤에 벼슬한 사람을 높여서 쓰니 급암(汲黯)이, “폐하의 사람쓰는 것은 장작을 쌓는 것과 같아서 뒤에 온 자가 위에 올라갑니다.” 하였다.
[주-D003] 10년 동안 앉아서 …… 쓰던 것 :
진(晉)나라 은호(殷浩)가 파면되자 온종일 공중에 글자를 쓰고 앉아 있었는데, 누가 엿보니, ‘돌돌괴사(咄咄怪事)’ 넉 자만 자꾸 쓸 뿐이었다.
4.이정부의 송별시에 차운하여[次李正夫贈別詩韻]
최해(崔瀣)
시골 마을에 여식하는 몸 기막히오 / 旅食荒村足斷腸
하물며 가는 세월은 빠르기도 하네 / 流年況復去堂堂
부질없이 묵느라니 새로 짓는 시만 늘고 / 謾留空自多新句
혼자 마시니 전날처럼 광태 부릴 수 없네 / 獨飮如何放舊狂
북으로 서울 바라보니 가을 나무가 머나먼데 / 北望王城秋樹遠
남으로 가는 물고장엔 저녁 구름이 길구나 / 南行澤國暮雲長
명군이 위에 계셔 속임도 가림도 없으니 / 明君在上無欺蔽
어찌 공연히 장한 뜻을 상하리 / 不用虛今壯志傷
5.송산서원에서 하과를 하다가 동암의 안문성공 향을 추모하여 지은 시에 차운하며[在松山書院夏課次東庵追慕安文成珦所著韻]
최해(崔瀣)
성인이 멀어진 이 시대에 누구를 좇으려는가 / 時當去聖欲從誰
모두 떳떳한 것 버리고 기이함만 찾는구나 / 盡棄常經竸好奇
어진 그 분이 나서 세상 인도 안 했다면 / 不是賢侯生命世
어찌 주자를 시켜 스승 높일 줄 알았으리 / 寧敎冑子復尊師
돈을 내어 장래 계획 끝이 없었네 / 抽錢慮遠資無極
함장의 깊은 공은 유위한 후배를 낳게 했도다 / 函丈功深進有爲
공자께 배향하자는 공론이 있는 이때 / 配祀宣尼有公論
비석을 먼저 깎아서 이 시를 새기시오 / 請先鎞石勒斯詩
[주-D001] 하과(夏課) :
옛날에 공부하는데 가을과 겨울에는 글을 읽고, 여름에는 글짓기를 일과(日課)로 하였다.
[주-D002] 어찌 주자(冑子)를 …… 알 았으리 :
주자(冑子)는 맏아들을 말한다. 태학(太學)은 귀족(貴族)의 맏아들과 선거(選擧)되어 온 선비를 교육하는 곳이다. 안 문성공(安文成公)이 태학(太學)을 다시 일으켰으므로 이렇게 칭하였다.
[주-D003] 함장(函丈) :
스승이 제자 가르치는 자리를 말한다. 함(函)은 용납한다는 뜻이니 스승과 제자의 앉은 자리의 거리가 한 발쯤 된다는 말이다.
6.여러 교관들과 서한의 명현들을 나누어 읊는 중에 장량을 뽑아 얻었으매[與諸敎官分詠西漢名賢得張良]
최해(崔瀣)
진시황을 빗맞히고 하비에 숨었을 때 / 誤擊秦皇匿下邳
포의가 어찌 제왕 스승 되길 바랐으리 / 布衣奚望帝王師
보시오, 천추에 다시 없는 그 공업이 / 請看功業無千古
다만 한때 명주를 만난 때문이라오 / 只爲遭逢在一時
병법은 일찍 황석공에게 받았고 / 兵法早從黃石受
선풍은 늦게 적송자와 놀려 했네 / 仙風晩與赤松期
한신ㆍ팽월 넘어지고 소하도 묶였으니 / 韓彭見躓蕭猶縶
처음부터 끝까지 지모 기특한 줄 알리라 / 須信初終計自奇
[주-D001] 진시황을 …… 숨었을 때 :
장량(張良)은 그의 조부와 아버지가 한(韓)나라 정승으로 있었는데 진시황(秦始皇)이 한(韓)을 멸망시키자 장량이 원수를 갚으려고 만금(萬金)을 아끼지 않고 역사(力士)를 구하여 진시황이 박량사중(博浪沙中)에 놀러 갔을 때에 역사를 시켜 철퇴로 진시황을 습격하였다가 맞히지 못하고 그릇 다음 수레를 맞혔다. 장량은 망명하여 하비(下邳)에 숨었다.
[주-D002] 포의(布衣)가 …… 스승 :
장량(張良)이 공을 이룬 뒤에 말하기를, “포의(布衣)로서 제왕의 스승이 되었으니 소원에 만족하다.” 하였다.
[주-D003] 한신(韓信) …… 묶였으니 :
한 고조(漢高祖)는 천하를 통일한 뒤에 공신(功臣)인 한신(韓信)과 팽월(彭越)을 반역죄로 몰아서 죽이고 승상(丞相) 소하(蕭何)도 조그만 혐의로 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주-D004] 처음부터 …… 기특한 줄 :
장량(張良)은 부귀(富貴)를 버리고 신선이 되겠다고 벽곡(辟穀)을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한신이나 소하처럼 화(禍)와 욕을 당하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지모(智謀)가 훌륭하였다고 칭찬한 것이다.
7.옛 마을로 돌아가 숨는 이림종 직랑을 보내며[送李林宗直郞歸舊隱]
최해(崔瀣)
나도 돌아가려 하나, 오래도록 못 돌아가는데 / 我欲歸歟久未歸
그대는 어이 가다가 다시 왔는고 / 君胡去矣復來斯
의관은 흡사 이까짓 배우의 차림새 / 衣冠恰似倡優戲
쌀 몇 말 녹으로 다투어 어찌 처자를 살찌게 하리 / 升斗爭敎妻子肥
부러워라, 그대는 나랏일 다하고 가네만 / 却羨已收匡國策
불쌍한 나는 산 살 밑천도 없네그려 / 自憐苦乏買山貲
아서라, 백 년 뒤엔 지음이 있으리니 / 百年後有知音在
시 쓸 때에 눈물 흘려 옷 적셔서 무엇하리 / 不用題詩淚滿衣
[주-D001] 산(山) 살 밑천 :
진(晉)나라 중 지도림(支道林)이 심공(深公)에게 숨어살 산을 사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8.영호루(暎湖樓)
우탁(禹倬)
영남에 여러 해 동안 두루두루 놀았으나 / 嶺南游蕩閱年多
이 호산의 경치를 내 가장 사랑하네 / 最愛湖山景氣加
풀 우거진 나루터에 나그네의 길이 나누어지고 / 芳草渡頭分客路
수양버들 푸른 뚝 가에 농가가 있네 / 綠楊堤畔有農家
거울에 바람자니 물 연기눈썹 비끼었고 / 風恬鏡面橫煙黛
오랜 세월 담 머리에는 흙꽃이 자랐구나 / 歲久墻頭長土花
비 갠 뒤 온 벌판에 격양가 부르는 소리 / 雨歇四郊歌擊壤
앉아서 저 수풀 끝에 밀려 있는 떼 보노라 / 坐看林杪漲寒槎
[주-D001] 격양가(擊壤歌) :
요(堯) 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 만에 민정을 살펴 보려고 미복(微服)으로 큰 거리에 나가 보았더니 한 노인이 배불리 먹고 흙덩이를 치며 노래[擊壤歌]하기를,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며, 농사지어 밥먹고 우물파서 마시니, 임금이 나한테 무슨 은덕이냐.” 하였다. 태평시대를 잘 형용한 말이다.
9.송 홍민구 진사(送洪敏求進士)
정자후(鄭子厚)
문헌공ㆍ문화공이 함께 시관 되었으니 / 文憲文和竝主文
글을 업삼은 여경이 고문에 넘쳤어라 / 業文餘慶溢高門
부자 두 중서령을 세상에서 일컫더니 / 世稱父子兩中令
운잉 외손을 이제 또 보겠구나 / 今見雲仍一外孫
자주(自註) : 문헌공 최충(崔冲)이 제일인(第一人)으로 급제하여 두 번 과거(科擧)의 시관[知貢擧]으로 벼슬이 중서령에 이르렀고, 그 아들 유선(惟善)이 또한 제일인으로 급제하여 또 두 번 시관으로 벼슬이 중서령에 이르렀으니, 시호(諡號)는 문화공이었다. 홍(洪)이 지금 그 10대 외손이다.
오래 객지에서 어버이 뵈올 생각 간절했으리 / 久客難禁歸覲意
늙은 내가 어찌 작별하는 말 주기를 아끼리 / 老夫何惜贈行言
북당에 헌수하며 다시 서쪽 향해 웃으렷다 / 北堂獻壽還西笑
전가의 그 ‘을장원’을 마땅히 이어야 하리 / 當繼家傳乙壯元
자주(自註) : 지금 최중령(崔中令)이 왕지(王旨)를 받들고 궁중 잔치에 들어가니, 유선(惟善)이 그때 상서령(尙書令)으로 자질(子姪)들을 거느리고 붙들어 모시었다. 평장사(平章事) 김행경(金行瓊)의 시(詩) 중에 이르되, “상서령이 중서령을 붙들고, 을장원이 갑장원을 붙들었네[尙書令擁中書令 乙壯元扶甲壯元].” 하였다.
[주-D001] 작별하는 말 주기 :
“부귀한 자는 재물(노자)로써 사람을 작별하고, 어진 자는 말로써 사람을 보낸다.”는 옛말이 있다.
[주-D002] 서쪽 향해 웃으렷다 :
서쪽 향해 웃는다는 것은 서울이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장안(長安)을 바라보고 서쪽으로 웃는다.”는 옛말이 있다.
10.영호루(暎湖樓)
정자후(鄭子厚)
다락을 지을 때 시안으로 무척 공력 들었네 / 起樓詩眼費功多
달 도끼 구름 자귀만은 역시 이에 더 할 수 없으리 / 月斧雲斤亦未加
올라오니, 예가 혹시 횡취각 그 아닌가 / 自訝登臨橫翠閣
누가 나를 날려 태청궁에 오르게 하였는가 / 誰敎飛上大淸家
봄 강의 푸른 물은 포도주가 넘치는 양 / 春江綠漲蒲萄酒
저녁 노을 붉게 타니 철쭉꽃이 만발한 듯 / 夕照紅酣躑躅花
지나가기 기다리노라니 행차 아마 가까운 듯 / 待過已知軒蓋近
이따금 나뭇가지에 까치 소리만 깍깍 / 樹頭時有鵲槎槎
[주-D001] 태청궁(太淸宮)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늘 위 삼청(三淸 : 玉淸ㆍ中淸ㆍ上淸 혹은 太淸).
11.여흥 청심루(驪興淸心樓)
정자후(鄭子厚)
북원(원주(原州)) 서쪽, 한강 남쪽 끝 / 北原西畔漢南端
내 옛날 이 다락에 올라 한 번 얼굴 폈었지 / 我昔登樓一展顔
발 밑에 아스라히 강이 성을 둘렀고 / 脚底蒼茫江繞郭
눈앞엔 넓으나 넓은 들이 산에 이엇것다 / 眼前平遠野連山
신선마냥 흰 구름 타고 삼청 밖에 노니는 듯 / 白雲仙想三淸外
휘영청 밝은 달에 팔영 시가 흥겨워라 / 明月詩情八詠閒
20년 동안이나 진토에 묻혀 살며 / 二十年來塵土下
이제껏 여기를그리는 꿈이 한가하지 못하였네 / 至今思夢不曾閑
[주-D001] 팔영(八詠) :
양(梁)나라 심약(沈約)이 동양 태수(東陽太守)가 되어 팔영시(八詠詩)를 지어 현창루(玄暢樓)에 썼는데, 후인(後人)이 그 누(樓)를 팔영루(八詠樓)라 하였다.
12.영명사 부벽루(永明寺浮碧樓)
형군소(邢君紹)
강 다락의 외로운 젓대가 용의 잠을 깨우는데 / 江樓孤笛動龍眠
취중의 풍류가 백일의 신선이로세 / 醉裏風流白日仙
먼 봉이 구름인 양, 구름이 봉인 양 / 遠岫似雲雲似岫
긴 하늘이 물에 둥실, 물은 하늘에 둥실 / 長天浮水水浮天
두 벼랑에 들락날락 높고 낮은 언덕 / 兩崖出沒高低岸
만 갈래로 모여드네, 크고 작은 냇물이 / 萬派朝宗巨細川
어디로 가는 일엽 편주의 손이 / 一葉扁舟何處客
아득히 석양 가로 혼자 가고 있나니 / 茫茫獨去夕陽邊
13.주상께서 태부 심양왕으로 제수하며[主上除太傅瀋陽王]
백원항(白元恒)
옥조가 벽루문에서 내리시와 / 玉詔傳從碧縷門
새로 태부로 제수하사 동녘 번방을 삼으셨도다 / 新除太傅作東藩
천 년만에 임금을 만나 산하로 맹세하고 / 千年遇主山河誓
삼 대째 근왕하여 우로의 은혜 받도다 / 三葉勤王雨露恩
토군의 뽕과 삼이 나라강토 보태주고 / 兔郡桑麻添國界
학성의 꽃과 달이 궁원으로 들어오네 / 鶴城花月入宮園
하객을 맞으시느라 날마다 바쁘신데 / 日迎賀客身無暇
또 부름 받자오시와 지존께 알현하시네 / 又被呼來謁至尊
[주-D001] 주상(主上) :
충선왕(忠宣王). 충렬왕(忠烈王) 34년(1308) 5월에 전왕(前王)으로서 원(元) 무종(武宗) 정책(定策)의 공으로 심양왕에 봉해졌다.
[주-D002] 천 년 만에 …… 맹세하고 :
천 년 만에 한 번이나 만날 수 있는 성군(聖君). 즉 여기서는 심양왕(瀋陽王)이 원나라 황제의 은덕을 입었다는 말이고, 한 고조(漢高祖)가 공신에게 땅을 봉해 줄 때에 그 맹세하는 글에, “황하수(黃河水)가 줄어서 띠만큼 좁아지고 태산이 달아서 숫돌만큼 되도록 영원히 나라를 지켜 자손에까지 전하자.” 하였다.
[주-D003] 근왕(勤王) :
왕사(王事)에 근로(勤勞)하였다는 말인데, 여기서는 심양왕이 원라에 공이 있다는 말이다.
[주-D004] 우로(雨露) :
초목(草木)이 비와 이슬을 맞고 자라는 것과 같은 은혜다.
14.상 최정승 종준 (上崔政丞 宗峻)
백원항(白元恒)
선관ㆍ타검으로 조반 머리에 서 계시니 / 蟬冠駞劍押朝班
높은 덕과 나이가 우러를수록 더욱 높네 / 德齒爭高仰莫攀
천 년만의 제회에 충성이 해를 꿰고 / 際會千年忠貫日
4대의 큰 공업, 명망이 산과 같네 / 功名四代望如山
금서만을 가지며 다른 완호 없었고 / 琴書素蓄無餘玩
궤장을 사양하여 아직도 바쁘신 몸 / 几杖曾辭尙未閑
임금님 신하에게 의견을 물으실 제 특히 공에게 귀기울이니 / 明主乞言偏注意
한 거울을 하늘이 두사 모든 인간 비추리라 / 天留一鑑照人間
[주-D001] 선관(蟬冠) :
관(冠)에다 대모(玳瑁)로 매미 형상을 만들어 꽂은 것인데, 삼공(三公)과 친왕(親王)이 조회(朝會) 때에 쓰는 것이다.
15.통헌 이제현의 학사연을 하례하며[賀李通憲齊賢學士宴]
윤혁(尹奕)
높은 문의 성사를 다시 말해 무엇하리 / 高門盛事復何言
젊어서 문형된 것 그뿐 아닐세 / 靑鬢提衡且莫論
한 잔치에 세 좌주(과거에 합격시켜준 시관(試官))가 함께 기뻐하고 / 一宴共歡三座主
네 술잔으로 두 댁 어른께 헌수하네 / 四觴齊壽兩家尊
앞에 뒤에 자리를 사양, 선관들이 옹위하고 / 讓前讓後蟬冠擁
북으로 남으로 맞아들이는 봉의 일산들이 펄럭이네 / 迎北迎南鳳蓋飜
자리에 찬 인재들 모두 아름다우니 / 賓從林林無可選
복숭아ㆍ오얏 사이에 난초ㆍ혜초가 섞였네 / 盡敎桃李間蘭蓀
[주-D001] 복숭아ㆍ오얏 …… 섞였네 :
당나라 적인걸(狄仁傑)이 인물을 뽑아 벼슬에 오른 이가 많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천하의 도리(桃李)가 모두 공(公)의 문중에 있다.” 하였고, 난초는 집안의 자제(子弟)를 말한 것이다. 진(晉)나라 사현(謝玄)이 그의 숙부 사안(謝安)에게 말하기를, “부형이 아름다운 자제를 원하는 것을 비유하면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내 뜰안에 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였다.
16.송파 최정승 성지가 차와 종이를 선사함을 사례하며 2수 [謝松坡崔相國誠之惠茶紙 二首]
홍약(洪瀹)
주신 선물 겹겹이 뜻이 더욱 깊으니 / 惠賜重重意轉深
낙노(차(茶))와 측리(종이(紙))가 금 한 상자보다 낫삽네 / 酪奴側理勝䕦金
용단(차 이름)과 봉병이 맛이 같고 / 龍團鳳餠堪同調
모영(붓)과 오규(먹)가 어찌 딴 마음이리 / 毛穎烏圭豈異心
양선(차의 명산지)의 유풍은 맑아 움켜 쥘만하고 / 陽羨遺風淸可掬
난정의 고사는 아득한 옛일일세 / 蘭亭故事杳難尋
옥천이 이미 멀고 우군(왕희지)이 죽었으니 / 玉川已遠右軍死
지금 어느 곳에서 이 풍류를 알쏘냐 / 何處如今覓賞音
골육도 이렇듯 깊은 정의가 어려우리 / 骨肉猶難契分深
느껴워라, 은애가 천금보다 중하여라 / 感公恩愛重千金
문사는 한구(한유와 구양수)의 학을 가졌고 / 文詞自有韓歐學
신의는 관포(관중과 포숙)의 마음을 누가 알리 / 信義誰知管鮑心
개평에 시종한 것 사책에 적을 만하고 / 侍從開平書可紀
진정을 모시고 놀던 일 꿈에도 서로 찾네 / 陪遊眞定夢相尋
못난 이 몸이 지나치게 밀어줌을 입었으니 / 吾生過荷吹噓力
은공 어이 갚으리, 부끄럽기만 하여라 / 只愧無由報德音
[주-D001] 난정(蘭亭) :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가 3월 3일에 벗들과 더불어 난정(蘭亭)에서 모여놀고 각각 시(詩)를 짓고 자신이 서문(序文)을 지어 그의 득의한 글씨를 서수필(鼠鬚筆)로 고치 종이[繭紙]에 쓴 것이 유명한 난정첩이다.
[주-D002] 옥천(玉川) :
당대(唐代)의 시인 노동(盧同)의 호. 그는 차[茶] 품평을 잘했으며 그의 다가(茶歌)가 유명함.
[주-D003] 개평(開平) :
개평부(開平府)는 원(元)나라의 지명인데 치(治)로 개평부를 둠. 최성지가 충선왕(忠宣王)을 모시고 그곳에 갔었다.
17.연도에서 방경재 우선의 시에 차운하여 부쳐 드림[在燕都次方敬齋于宣韻寄呈]
홍약(洪瀹)
백 년 사는 인생이 얼마나 되는고 / 百歲人生有幾分
날을 아껴 효도 못했다고 선친을 생각하누나 / 孝虧愛日念先尊
구경으로 업을 이어 삼사까지 겸하여 / 九經繼業兼三史
다섯 아들이 가지를 연하여 열 손자가 있네 / 五子連枝有十孫
글과 검으로 평생 뜻을 펴지 못했거니 / 書劍未酬平國志
기구로나 하늘 같은 은혜를 갚고자 / 箕裘欲報昊天恩
하늘 가[먼 곳]에 노니는 아들이 생각이 그지없어 / 天涯游子思無盡
이따금 고향산 향해 술 한 잔을 붓습네 / 時望家山酹一樽
[주-D001] 날[日]을 아껴 :
오래 할 수 없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라, 효자는 날을 아낀다[愛日]는 말이다.
[주-D002] 글과 검(劍)으로 …… 못했거니 :
항우(項羽)의 숙부 항량(項梁)이 항우에게 글을 가르치고 칼 쓰는 법은 가르쳤다. 문무(文武)의 학(學)을 말한 것이다.
[주-D003] 기구(箕裘) :
가업(家業)을 계승한다는 뜻. “훌륭한 대장장이의 아들은 반드시 갖옷 만들기를 배우고, 훌륭한 궁방(弓房)의 아들은 반드시 키를 만들기를 배운다.”는 말이 있다.
18.등제(登第)
민광균(閔光鈞)
네 아들이 함께 글공부를 하여서 / 四子同遊翰墨中
앞을 다퉈 계수를 높이 꺾었네 / 爭先高折桂林叢
두 형은 일찌감치 큰 그릇을 이루고 / 二兄早得成龍器
한 아우도 진작 과녁 쏘아 맞혔네 / 一弟曾收中鵠功
훤당 어머님의 녹 받들긴 넉넉하여도 / 縱薦萱堂慈母祿
금방 아버님의 풍을 누가 이으리 / 誰承金榜大人風
대붕이 여위었어도 남명 갈 날개 있으니 / 瘦鵬尙有圖南翼
운소를 멀리 바라매 만 리에 활짝 트였네 / 遙望雲霄萬里通
[주-D001] 대붕(大鵬)이 …… 날개 있으니 :
《장자》에, “북명(北冥 북해(北海))에 있는 큰 붕새[大鵬]가 남명(南冥)으로 옮기는데 9만 리(里)를 날아 오른다.” 하였다.
19.수원 운금루(水原雲錦樓)
설문우(薛文遇)
겹겹 푸른 숲 속에 다락이 솟았으니 / 樓在林巒積翠中
한 번 올라 바라보매 사방이 탁 트였네 / 登臨一望四方空
꽃 사이의 푸른 기와 비늘처럼 포개졌고 / 花間瓦影鱗鱗碧
돌 위의 이끼무늬는 점점이 분홍빛일세 / 石上苔紋點點紅
베개에 기대니 연잎에 빗소리 요란하고 / 荷葉亂鳴欹枕雨
발 걷으니 버들가지 바람에 하늘거리네 / 柳條輕颺捲簾風
귀양살이 간 곳마다 강산이 좋으니 / 謫來到處江山好
만사가 모두 새옹의 실마 그대로네 / 萬事皆從失馬翁
20.여흥 청심루 차운(驪興淸心樓次韻)
설문우(薛文遇)
손가락질하는 끝에 벌여진 온갖 경치 / 萬景森羅指點端
올라와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 자꾸 돌려지네 / 登臨不覺屢回顔
긴 강은 서로 흘러 바다에 들고 / 長江西去赴蒼海
겹친 영이 북에서 와 얕은 산을 둘렀네 / 複嶺北來圍淺山
고기들은 찬 비 속에 그물 뚫으며 뛰놀고 / 透網魚跳寒雨裏
해오리는 연기 속에 시름없이 서있네 / 忘機鷺立瞑煙間
한 평생 공명의 누를 다 벗어버렸구나 / 一生脫却功名累
부들삿갓 저 어옹들 스스로 한가하네 / 靑蒻漁翁也自閑
21.증 손사경 진사(贈孫斯慶進士)
곽균(郭㻒)
시름겨운 때 서생된 것을 한하노니 / 愁來却恨作書生
손군 그대는 이 마음 알 줄 아네 / 知有孫公共此情
사업은 오로지 관성자(붓[筆])에게 맡기고 / 事業渾歸管城子
공명은 내사 공방형을 몰라라 / 功名不識孔方兄
술잔 들고 이야기하니 국화도 때맞추어 피고 / 樽前好語菊花發
다락에 올라 시 읊으니 산빛이 갰구나 / 樓上新詩山色晴
지팡이 짚고 자주 찾아와 주소 / 杖屨莫辭來數數
글이 눈에 가득해도 작은 창이 밝으이 / 文書滿眼小窓明
[주-D001] 공방형(孔方兄) :
돈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말. 돈이 둥글고 가운데 모난 구멍이 있으므로 의인(擬人)하여 공방(孔方)이라 함. “세상 사람들이 형처럼 친한 자를 공방이라 했다.”는 구절이 진(晉)나라 노포의 〈전신론(錢神論)〉에 있다.
22.한첨의 대순 만사(韓僉議大淳挽詞)
곽균(郭㻒)
영한 바람 우수수 꽃상여에 불고 / 靈風肅肅動雲軿
붉은 명정이 반공에 높이 펄럭이네 / 絳節搖搖凌紫冥
가문의 충의를 뜻대로 다 못 이루고 / 忠義高門心未竟
뜬 세상 공명은 꿈을 훌쩍 깨네 / 功名浮世夢初醒
뜰 앞에 시를 듣는 이야 있지마는 / 庭中空有聞詩鯉
언덕에 난을 구할 할미새 누가 보리 / 原上誰看急難鴒
애달파라, 맑은 인품 찾을 길이 없으니 / 惆悵淸芬無覓處
수풀에 가득한 가을빛을 차마 못 보리 / 不堪秋色滿林坰
[주-D001] 뜰 앞에 …… 이(鯉) :
이(鯉)는 공자의 아들인데 공자께서 일찍이 혼자 계실 때 이가 추장하여 뜰을 지나니 공자가 묻되, “시(詩)를 배웠느냐.” 하였다.
[주-D002] 언덕에 난(難)을 …… 할미새 :
할미새[鶺鴒]는 형제에 비한다. 《시경(詩經)》에 형제를 할미새에 비유하여, “할미새 언덕에 날 듯이 형제는 환난(患難)을 서로 구하네.”라는 구절이 있다.
23.천력 3년 5월에 강릉도 존무사의 임명을 받잡고, 그달 30일에 송경을 떠나 백령역에서 자는데, 밤중에 비가 오매 느낌이 있어[天曆三年五月受江陵道存撫使之命是月三十日發松京宿白嶺驛夜半雨作有懷]
안축(安軸)
글읽어 도를 구해도 끝내 이룸 없었으니 / 讀書求道竟無成
밝은 시대 이 행색이 내 스스로 부끄럽네 / 自愧明時有此行
오소하나마 힘을 다하여 실학을 시행하리 / 但盡迂疏施實學
유다른 척 표방하여 허명을 도적하랴 / 敢將崖異盜虛名
도탄에 빠진 민생들을 내 어이 구하랴만 / 民生塗炭知難救
고황에 든 나랏병은 생각만 해도 놀라워라 / 國病膏育念可驚
베개에 기대어 잠 못 들고 누웠으려니 / 耿耿枕前眠未穩
밤중 산 비가 쏟아져내리는 소리뿐일세 / 臥聞山雨注深更
[주-D001] 고황(膏肓) :
《좌전》에, 진후(晉侯)가 병이 있어 이름난 의원을 청했더니, 의원은, “병이 벌써 고(膏)의 밑 황(肓)의 위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고(膏)는 심(心)의 밑이요, 황(肓)은 격(鬲)의 위이다.
24.화주 본영에서 시를 차운하며[次和州本營詩韻]
안축(安軸)
만 겹 산과 산이 사방으로 둘렀는데 / 萬疊山圍四望中
건너편에 동해물이 하늘에 닿아 있네 / 東溟隔岸水浮空
용처럼 싸우던 옛성에 달이 뜨고 / 龍爭古壘黃榆月
까마귀 우짖는 유허 늙은 나무에 바람 이네 / 鴉噪遺墟老樹風
옛땅 그리워 지키던 백성들 가엾고야 / 懷土重遷憐噍類
성을 버리고 모반한 간웅 지금도 말하네 / 棄城謀變說姦雄
당시 변경의 방책을 그 누가 쥐었던고 / 當時誰握籌邊策
슬프다, 융의(군복) 하나 입은 자가 없었구나 / 惆悵無人衣一戎
[주-D001] 화주(和州) :
영흥(永興)의 고려 초 이래의 이름. 현종(顯宗) 9년 화주 방어사(防禦使) 본영을 두었고, 고종(高宗) 때 이곳을 지키던 장수가 반란하여 원(元)나라에 붙었는데, 공민왕(恭愍王) 5년에 군사를 보내어 수복하였다.
25.차 양주 공관운(次襄州公館韻)
안축(安軸)
벼슬길 느릿느릿 앞서기 서두르지 않아 / 名途信步不圖前
이 다락에 왔다 간 지 벌써 두 해 / 來往斯樓已二年
난간을 덮은 대포기는 상쾌한 기운 나누고 / 覆檻竹叢分爽氣
문에 그늘진 용나무는 푸른 연기를 흔드네 / 廕門榕樹撼蒼煙
백성의 살림 두루 보니 내 나랏일이 딱하구나 / 歷觀民業憂吾國
임금의 은혜를 저버리니 저 하늘이 부끄럽네 / 虛負君恩愧彼天
재주가 옹졸하여 이로를 일으키지 못하니 / 計拙未能興利路
어쩌면 시내 골짝에 금샘을 솟게 할꼬 / 若爲溪壑湧金泉
26.등주고성 회고(登州古城懷古)
안축(安軸)
저문 날 성머리에 서서 옛일을 생각하나니 / 暮天懷古立城頭
단풍과 국화, 눈에 가득 가을일세 / 赤葉黃花滿眼秋
제 집 담 안에 화 감춰진 줄 모르고서 / 不覺蕭墻藏近禍
바닷섬만 믿고 깊은 꾀를 삼았구나 / 唯憑海島作深謀
백 년 언덕엔 무정한 풀만 더부룩 / 百年丘隴無情草
10리 연파엔 유신한 갈매기뿐 / 十里風煙有信鷗
멀리 북쪽 바라보며 헛 탄식 하노라니 / 遙望朔方空嘆息
어디서 일성 강적이 남의 시름 자아내느니 / 一聲羌笛使人愁
27.하 익재상국(賀益齋相國)
안축(安軸)
과장에 글제 내어 영재들을 얻고 / 文圍發策得英才
양대로 장시하여 수연을 열었어라 / 掌試傳芳壽宴開
백설 맑은 노래는 비파를 화답하고 / 白雪淸歌和寶瑟
자하주 신선 술은 금잔에 가득하네 / 紫霞靈液滿金杯
문생이 제 문생들을 거느려 오고 / 門生自領門生到
좌주가 몸소 좌주를 맞아들이누나 / 座主親迎座主來
상공의 겹친 경사를 하례하노니 / 多賀相公連喜慶
둘째 아들 마땅히 장원에 오르리 / 二郞當作桂林魁
28.등 태백산(登太白山)
안축(安軸)
장공을 바로 지나 자연 속에 들어서 / 直過長空入紫煙
그제야 알고 보니 절정에 올랐구나 / 始知登了最高巓
한 덩이 흰 해는 머리 위에 나직하고 / 一丸白日低頭上
사면의 뭇 산들은 눈앞에 떨어지네 / 四面群山落眼前
몸이 구름 쫓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 / 身逐飛雲疑駕鶴
길이 벼랑에 걸렸으니 하늘에 사닥다리인 듯 / 路懸危磴似梯天
비 와서 만 골짜기 물이 휘몰려 넘치니 / 雨餘萬壑奔流漲
오십 천 구비진 물을 어이 건너 갈거나 / 愁度縈回五十川
29.영명사 차운(永明寺次韻)
박의(朴義)
가벼운 배를 타고 절 찾아 오느라고 / 擬欲輕舟訪僧寺
광가ㆍ취무로 중류를 흘러왔네 / 狂歌醉舞流中流
대 앞에 넘실넘실 한 강의 수면 / 臺前瀲灔一江面
섬 밖에 들락날락 천 산의 머리 / 島外出沒千山頭
흥겨워라, 유객들의 지껄이는 소리 왁작 / 興多游子語擾擾
도 높은 늙은 중은 말씨도 조용하네 / 道高老衲言休休
월암봉 위에 뜬 둥그런 저 달은 / 月巖峯上一輪月
만 사람 고금 시름을 샅샅이 비추누나 / 照破人人今古愁
30.환조하는 최어사 백연 선을 보내며[送崔御史伯淵璿還朝]
양온(梁溫)
동한의 문물이 아직 쇠퇴하지 않았으니 / 東韓文物未陵遲
어사의 당당한 모습 뭇사람과 다르구나 / 御史魁梧邁等夷
늠름한 위엄은 치관(어사가 쓰는 관)을 높이 쓴 날 / 凛凛淸威峨豸日
훈훈한 화기는 까마귀(어사부)를 희롱하는 때 / 融融和氣弄烏時
충신과 효자를 겸했네, 훌륭한 그 골격 / 忠臣孝子佳名籍
덕과 나이 높으시니 특이한 그 골격 / 舊德耆年壽骨奇 /
하객이 경석에 참예할 길 없사와 / 下客無由參慶席
풍편에 채란 옛시를 높이 읊어 보내네 / 向風高咏採蘭詩
[주-D001] 채란(采蘭) 옛시 :
부모를 효도로 봉양하는 일을 읊은 시이다. 속석(束晳)의 남해(南陔)시에, “저 남쪽 언덕에 올라 그 난초를 뜯네.[循彼南陔 言采其蘭]” 하였다.
31.모춘(暮春)
허백(許伯)
하도 어지러운 눈앞 세상 일을 / 眼前世事劇紛紛
귀 씻고 몇 해째 들으려 하지 않네 / 洗耳年來不願聞
병중에 국화꽃은 나를 위로하는 듯하다마는 / 病裏黃花如慰我
시름 속에 드는 술잔으로 혼을 부르누나 / 愁邊白酒苦招魂
구슬픈 맘 출사표를 몇 번이나 읽었는고 / 悲來幾讀出師表
취한 뒤엔 조굴문을 읊고 또 읊어보네 / 醉後重吟弔屈文
한실을 중흥하려 삼고할 이 없으니 / 三顧無人問興漢
와룡(제갈량)이 해[歲]가 다하도록 초가집을 지키네 / 臥龍終歲守柴門
[주-D001] 귀 씻고 :
요(堯)가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사양하니 허유는 받지 않고 돌아서 영수(穎水)에 귀를 씻었다. 그것은 더러운 소리를 귀로 들었다는 뜻이었다.
[주-D002] 조굴문(弔屈文) :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직간(直諫)하다가 참소를 만나 귀양가 멱라수(汨羅水)에 빠져 죽은 충신 굴원(屈原)을 조상한 부(賦). 한(漢)나라 가의(賈誼)가 지었음.
32.정묘 중양(丁卯重陽)
허백(許伯)
늦가을 긴 바람이 만 리에서 오는데 / 秋晩長風萬里來
높은 데 올라 바라보니 생각이 어지러워라 / 登高極目思難裁
흰 술을 사양 말고 은근히 마시세나 / 莫辭白酒殷勤飮
아까워라 국화[黃花]가 난만히 핀 것이 / 可惜黃花爛熳開
고향 그린[戀] 육사형은 편지나 받았었지 / 懷土士衡猶得信
대에 오른 두자미는 슬픔을 못 이겼네 / 登臺子美不勝哀
옛날의 좋은 벗들 몇이나 남았는가 / 舊時高契今餘幾
느껴워라, 누구누구 모두 뼈에 이끼 돋았네 / 感嘆諸公骨已苔
[주-D001] 육사형(陸士衡) :
진(晉)나라 육기(陸機). 자(字)는 사형(士衡)인데 그가 낙양(落陽)에 있을 때 그의 애견(愛犬) 황이(黃耳)가 죽통(竹筩)에 넣은 그의 편지를 목에 걸고 고향인 오(吳)에까지 뛰어가 그의 집에 전하고 답장을 받아 걸고 돌아왔다.
[주-D002] 대(臺)에 오른 …… 못 이겼네 :
자미(子美)는 두보(杜甫)의 자. 그의 〈9월 9일 등고(登高)시〉시 셋째 연(聯)에, “만 리에 가을을 슬퍼하니 늘 나그네의 신세, 백 년에 병이 많아 홀로 대에 올랐네.”라 했다.
33.제 간성루(題杆城樓)
허백(許伯)
산과 물이 감돌고 경계가 그윽하니 / 山水縈回境靜幽
앉으매 마음속이 절로 맑아지누나 / 坐來心迹便淸脩
오경 새벽빛은 빈 각에 먼저 오고 / 五更曉色先虛閣
한 잎 떨어지자 가을소리 작은 다락에 가득하네 / 一葉秋聲滿小樓
물결 쫓는 갈매기는 멈출 바를 아는 듯 / 逐浪輕鷗知所止
숲에 드는 지친 새는 쉴 데를 얻건만 / 投林倦鳥得其休
내 이제 분주했어도 무슨 일을 이뤘는고 / 吾今役役成何事
동서로 몇 고을 지내왔을 뿐이구나 / 俯仰東西閱數州
34.평해 동헌(平海東軒)
신천(辛蕆)
마을마다 붉은 꽃, 짙푸른 녹음 / 亂紅濃綠遍村村
비온 뒤 넓은 들을 말 가는 대로 / 信馬平蕪雨後原
성을 두른 긴 내는 고향 마을 같으이 / 繞郭長川如故里
산밑의 대 숲은 뉘 집의 동산인지 / 倚山脩竹問誰園
벼슬 길엔 선착편 못하면서 / 宦途幾見鞭先着
객지로만 다니니 자리가 따스할 틈이 없네 / 客路多慙席未溫
요행 한가한 틈을 얻어 낮 베개에 기댔더니 / 幸得餘閑欹午枕
자고새 건너 숲에서 수없이 지저귀네 / 隔林無數鷓鴣喧
[주-D001] 선착편(先着鞭) :
유곤(劉琨)이 젊어서 지기(志氣)를 자부했는데 조적(祖逖)과 벗이 되었다. 적이 등용(登用)되자 친구에게 주는 편지에 말하되, “내가 창을 베고 새벽을 기다리며 늘 조생이 나보다 먼저 채찍을 칠까[先着鞭] 두려워했느니라.” 했다
35.복주 영호루(福州暎湖樓)
신천(辛蕆)
이 다락의 좋은 경치를 너무 말하지 마소 / 此樓佳致說毋多
명승을 찾기야 나보다 나을 이 누구인가 / 摘勝探奇莫我加
백 리 길 뽕나무 그늘에 들주막이 감추였고 / 百里桑陰藏野店
사면 산 푸른 솔이 관가를 둘러있네 / 四山松翠護官家
비 내리는 강가, 어두운 하늘에 닿은 풀빛 / 江頭雨暗連天草
마을에 연기 자욱한데 집에 갸웃이 뵈는 꽃 / 巷口煙濃出屋花
올라와 놀 줄만 알고 잠잠히 있으니 / 只解登臨如嘿嘿
시인의 생색 없음이 마른 떼와 비슷하구나 / 詩人沒彩也如槎
36.침봉현에서 조충 원수의 시에 차운하여[沉鳳縣次趙元帥冲韻]
방서(方曙)
높디높은 돌 잔도를 고삐 늦추고 가노라니 / 石棧高高信轡行
시내와 봉이 다한 곳에 성터가 남아있네 / 溪巒盡處有殘城
뽕나무 사이 자욱한 내 속에 달팽이 같은 오막집들 / 柘閒煙羃蝸廬小
나무 끝 나직한 하늘에 새길이 비꼈구나 / 木末天低鳥道橫
골에 가득한 이내는 그림폭을 대하는 듯 / 滿壑煙霞成畫態
한 구역 풍월은 시정을 자아내네 / 一區風月動詩情
내 며칠 동안 외로운 관에 묵느라니 / 我來數日留孤館
산빛과 물빛이 꿈에 들어 산뜻하네 / 水色山光入夢淸
37.월광사 수헌차운(月光寺水軒次韻)
한종유(韓宗愈)
10년 동안 황비에서 영명을 가졌더니 / 黃扉十載濫榮名
뜻밖에 이제 이 고장에 왔단 말인가 / 豈料今爲此地行
골에 드니 문득 봄 나무가 울창하고 / 入洞忽迷春樹影
구름을 격하여 저녁 종소리 들리네 / 隔雲還有暮鍾聲
산은 병풍처럼 천 겹이나 둘러 있고 / 山屛邐迤開千疊
물은 풍악인 양 구성을 아뢰누나 / 水樂訇豗奏九成
숙부 두 분 모시고 두 절로 오가면서 / 兩寺往來陪兩叔
며칠을 함께 묵으며 육친의 정을 말하네 / 留連數日話親情
[주-D001] 구성(九成) :
아홉 번 곡조가 변함. 음악에 한 곡이 끝남을 한 성(成)이라 하는데, 구성(九成)이 전곡(全曲)임. “소소(簫韶) 아홉 곡조에 봉황(鳳凰)이 와 춤춘다.”는 말이 《서경》에 있다.
38.여흥 청심루 차운(驪興淸心樓次韻)
신예(辛裔)
하늘이 아끼는 이 비경을 누가 여기 내놓았는가 / 誰使天慳露一端
등왕 높은 각(등왕각은 경치가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도 무색하구나 / 滕王高閣已無顔
뛰노는 고기들은 갠 물결을 불고 / 錦鱗戲躍吹晴浪
놀라 나는 갈매기는 푸른 산에 비치네 / 白鳥驚飛映碧山
이 경치를 임금님 앞에 바치과저 / 此景却思供闕下
벼슬살이로 진세에 있음이 부끄러워라 / 宦遊深愧在塵間
무슨 방법으로 곤궁한 민생들을 다 잘살게 하여 / 何方更化殘民業
태고적 희황(복희씨(伏羲氏))시절을 다시 이룩해 볼꼬 / 得致羲皇上世閑
39.8월 17일 배를 놓아 아미산을 향하며[八月十七日放舟向峩眉山]
이제현(李齊賢)
금강 강 가에 흰 구름 가을인데 / 錦江江上白雲秋
이구곡(이별곡) 부르고 나서 주루에서 내려오네 / 唱徹驪駒下酒樓
한 조각 붉은 기는 바람에 펄렁펄렁 / 一片紅旂風閃閃
어여차 노젓는 소리 강물이 넘실넘실 / 數聲柔櫓水悠悠
송아지는 비에 몰려 어점으로 돌아가고 / 雨催寒犢歸漁店
갈매기는 물결에 실려 객선에 다가오네 / 波送輕鷗近客舟
서생이 불우하다 그 누가 일렀던고 / 孰謂書生多不偶
내 노상 왕사로 하여 싫도록 놀며 다니거니 / 每因王事飽淸遊
40.제갈공명 사당(諸葛孔明祠堂)
이제현(李齊賢)
뭇 영웅들 봉기하여 천하의 일 어수선한데 / 群雄蠭起事紛拏
홀로 경륜 안고 초려에 누웠었네 / 獨把經綸臥草廬
삼고를 받고 난 뒤 나라에 몸을 바쳤고 / 許國義高三顧後
칠금 뒤에 출사의 꾀가 원대했네 / 出師謨遠七擒餘
목우 유마의 재주를 그 누가 알리 / 木牛流馬誰能了
윤건과 우선으로 나는 자약하였네 / 羽扇綸巾我自如
천고의 그 충성 해와 달처럼 걸렸으니 / 千載忠誠懸日月
그까짓 위와 진이야 지금 모두 폐허뿐 / 廻頭魏晉但丘墟
[주-D001] 칠금(七擒) :
제갈량이 위(魏)를 치고자 출사하기 전에 뒷 염려를 없애기 위하여 먼저 남만(南蠻 지금 雲南省)을 쳐 그 왕 맹확(孟穫)을 사로잡았다가 그가 열복(悅服)할 때까지 도로 놓아주기를 무릇 일곱 번 했으니,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주-D002] 목우유마(木牛流馬) :
제갈량이 위(魏)와 싸울 때 험준한 산길에 군량을 운반하기 위하여 썼다는 나무 소와 딸딸이말. 그 제작법(촌법)이 그의 집(集)에 자세히 적혀 있으나, 그 작용은 미상.
[주-D003] 윤건(輪巾)과 우선(羽扇) :
제갈량이 평소에 군중에서 항상 애용하던 흰 새털 부채[白羽扇]와 실로 짠 두건(頭巾).
41.사귀(思歸)
이제현(李齊賢)
편주로 떠도는 내 마음 서글퍼라 / 扁舟漂泊若爲情
사해가 다 형제라고 누가 일렀던고 / 四海誰云盡弟兄
기러기 소리 듣자 고향 편지 그립고 / 一聽征鴻思遠信
돌아가는 새를 보면 수고로운 신세 가엾어라 / 每看歸鳥嘆勞生
늦가을 청신(고을 이름) 나무에 궂은 비가 자욱하고 / 窮秋雨鎖靑神樹
지는 해 백제성에 구름이 비끼였네 / 落日雲橫白帝城
과연 순나물 국이 양젖보다 나으니 / 認得蓴羹勝羊酪
내 행장을 군평(유명한 점사)에게 물어 무엇하리 / 行藏不用問君平
[주-D001] 행장(行藏) :
공자(孔子)의 말에, “세상이 나를 쓰면 도(道)를 행(行)하고 나를 버리면 감춘다[藏].” 하였다.
42.촉에서 연으로 돌아가는 노상에서[路上 自蜀歸燕]
이제현(李齊賢)
말 위에서 촉도난(비파 곡조 이름)을 읊으며 / 馬上行吟蜀道難
이 아침에 비로소 또 진관에 드네 / 今朝始復入秦關
날 저문데 푸른 구름은 어부수를 격했고 / 碧雲暮隔魚鳧水
가을철 단풍은 조서산에 이었네 / 紅樹秋連鳥鼠山
문자는 천고의 한을 더하고 / 文字剩添千古恨
명리에서 일신의 한가함을 뉘 얻었던고 / 利名誰博一身閑
아아, 몹시도 그립구나, 저 안화사(경치가 좋다 한다) 앞길 / 令人最憶安和路
멋대로 죽장망해로 오가던것 / 竹杖芒鞋自往還
43.함곡관(函谷關)
이제현(李齊賢)
형승은 열두 제를 내려다 보는데 / 形勝平看十二齊
밑에는 길이 없고 위론 사다리도 없네 / 下臨無路上無梯
흙 주머니로 황하의 북을 막았고 / 土囊約住黃河北
지축은 백일 서쪽에 맞닿았구나 / 地軸句連白日西
하늘의 뜻은 이미 삼척검(한나라 고조(高祖))에 돌아갔지만 / 天意已歸三尺劍
인심이야 어이 한 덩이 진흙 뿐일까 / 人心豈特一丸泥
가을 곡식 이랑에 가득하고, 풍진이 고요하니 / 秋禾滿畝風塵靜
안장에 편히 걸터앉아 낮 닭 울음 듣노라 / 穏跨征鞍聽午鷄
[주-D001] 함곡관(函谷關) :
전국(戰國) 사대때 진(秦)에서 산동 육국(山東六國)으로 통하는 관문(關門).
[주-D002] 한 덩이 진흙 :
후한(後漢) 때 외효(隗囂)의 장수 왕원(王元)이 효를 달래며 말하되, “청컨대 원이 한 덩이 진흙으로 동으로 함곡관을 봉하리이다.” 하였다.
44.이릉조발(二陵早發)
이제현(李齊賢)
내가 성도(成都)로 가려 할 때에, 내한(內翰) 송설(松雪) 조자앙(趙子昂) 공이 고조(古調) 한 편을 보내었는데, “금성이 즐겁다 이르지 마소, 일찍 돌아옴이 좋은 계책일 것을[勿云錦城樂 早歸乃良圖].“이란 시구가 있었다. 10월에 북으로 돌아갈 제 눈온 뒤, 이릉 도중에서 문득 그 시를 기억하여 이를 지어 부쳐드렸다.
역정에 꿈이 깨니 새벽 등이 가물가물 / 夢破郵亭耿曉燈
말 안장 타려 하니 추위가 스산하네 / 欲乘鞍馬覺凌兢
노자가 단을 사르던터에 구름만 뭉게뭉게 / 雲迷柱史燒丹竈
문왕이 비를 피한 능에 눈이 펑펑 내리네 / 雪壓文王避雨陵
세사에 부닥치니 혼자 가슴에 덩이 생기고 / 觸事誰知胸磈磊
시 읊으매 머리털만 자꾸 헝클어질 뿐 / 吟詩只得髮鬅鬙
두건의 뿔 꺾이고 갖옷 해졌으니 / 塵巾折角裘穿縫
이 꼴로 용문에 가서 이응 어이 뵈올꼬 / 羞向龍門見李膺
[주-D001] 단(丹)을 사르던 :
신선되는 단약(丹藥)을 연(煉)하여 만드는 것이다.
[주-D002] 문왕(文王)이 비를 피한 능(陵) :
효(崤) 지방에 두 능[二陵]이 있는데 북릉(北陵)은 주문왕(周文王)이 바람과 비를 피하던 곳이다.
[주-D003] 가슴에 덩이 생기고 :
진(晉)나라 완적(阮籍)이 말하기를, “가슴에 생긴 불평 덩이가 있어서 술을 부어야 한다.” 하였다.
[주-D004] 이응(李膺) :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사람. 자(字) 원례(元禮). 성행(性行)이 고상하고 풍골이 준수하여 태학(太學) 중에서, “천하의 모범 인물은 이원례”라는 말이 있었고, 선비로서 그에게 접대를 받으면 “용문에 올랐다[登龍門].”고 말했다. 조자앙(趙子昂)이 당시 원조의 명사였고 작자가 그를 좇아 놀았으므로, 조자앙을 이응에게 비긴 것이다.
45.감회(感懷)
이제현(李齊賢)
촌점에 팔 베고 누우니 밤은 삼경인데 / 枕肱茅店夜三更
금대를 바라보니 갈길이 몇 리인고 / 矯首金臺路幾程
괴로운 신세는 탄협하는 손과 같고 / 苦節頗同彈鋏客
한창 나이는 유를 버린젊은이를 지났네 / 芳年已過棄繻生
궁달은 천명이나 어버이 늙음은 슬프구나 / 窮通有命悲親老
완급에 재주 없으니 밝으신 임금께 부끄럽네 / 緩急非才愧主明
필경 내 행장을 누구더러 물어볼꼬 / 畢竟行藏誰與問
창에 가득한 서릿달만이 내 정을 알아주네 / 滿窓霜月獨鍾情
반세에 조충 공부 장부로서 부끄럽더니 / 半世雕蟲恥壯夫
중년에 말을 타 먼 길에 지쳤소이다 / 中年跨馬倦征途
희미한 등불 밑에 배반이 초초하고 / 杯盤草草燈花落
외로운 새벽달 아래 관새가 멀고 머네 / 關塞迢迢曉月孤
화표의 학은 천 년 만에도 아직 안 돌아왔네 / 華表未歸千載鶴
상림 까마귀에게 누가 한 가지 빌려줄까 / 上林誰借一枝烏
돈 있으면 술 사 마시고 불평한 속을 씻으리니 / 有錢徑買澆腸酒
구태여 시를 지어 머리 희어 무엇하리 / 莫使詩班入鬢鬚
장경이 촉 떠날 때 기둥에 글을 썼고 / 長卿去蜀曾題柱
추자는 양에 놀며 옷자락을 끌었네 / 鄒子遊梁得曳裾
분주해도 공은 없으니 벼슬 버려야 하리 / 奔走無功合投劾
꿈같아라, 사귀던 벗들은 어디서 사는지 / 交遊似夢惜離居
도롱이ㆍ삿갓 차림으로 갈매기 따라 못 노니 / 未拚蓑笠盟鷗鳥
도서 속에서 좀벌레나 될 신세로다 / 已分圖書養蠹魚
고향을 바라보며 때로 혼자 웃노니 / 一望鄕關時自笑
인생이 백 년 사는 천지가 이 역시 여사(旅舍) 아니리 / 百年天地亦蘧廬
[주-D001] 유(繻)를 버린 :
한(漢)나라 종군(終軍)이 약관(弱冠)에 장안(長安)으로 내려가고 제남(濟南)에서 걸어서 관(關)에 드니, 관리(關吏)가 “비단과 유(繻)를 맡겨두라.” 했다. 군이, “왜 그러느냐.” 물으니, “뒷날에 관(關)을 나올 때에 유(繻)와 맞추어 보아야 한다.” 했다. 군이 말하되, “대장부 서(西)로 가는데 마침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고 유(繻)를 버리고 갔다. 그 뒤에 과연 사자(使者)가 되어 절(節)을 가지고 관(關)을 나왔다.
[주-D002] 조충(雕蟲) :
좀 글공부[雕蟲)]는 벌레를 아로새기는 것 같은 조그만 재주, 즉 사부(詞賦)와 같은 말예(末藝).
[주-D003] 상림(上林) 까마귀에게 …… 빌려줄까 :
당(唐) 이의보(李義父)가 임금 앞에 불려 나가 뵈옵는데, 태종(太宗)이, “‘까마귀’를 두고 시를 지으라.” 하니 그가 읊되, 끝 구에, “상림(上林) 엔 나무도 많건만, 깃들일 한 가지도 안 빌려주는구나.” 하니, 태종이 말하기를, “장차 온 나뭇가지를 네게 빌려주리니 어찌 다만 한 가지뿐이랴.” 하였다. 뒤에 등용되어 벼슬이 상위(相位)에 올랐다.
[주-D004] 장경(長卿)이 …… 글을 썼고 :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처음 촉(蜀)에서 서(西)로 갈 때 승선교(昇仙橋)를 지나다가 다리의 기둥에 쓰기를, “높은 수레와 사마(駟馬)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지나지 않으리라.” 했다.
[주-D005] 추자(鄒子)는 …… 끌었네 :
추자는 한나라 추양(鄒陽). 그는 오(吳)나라 양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 되어 말하되, “어느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랴.” 했다. 왕후(王侯)의 문객(門客)을 말한 것이다.
46.다경루에서 눈온 뒤에[多景樓雪後]
이제현(李齊賢)
높은 다락에 오르니 공중에 가득한 눈이 반갑더니 / 樓高正喜雪漫空
갠 뒤에 바라보니 더 한층 기관일세 / 晴後奇觀更不同
만 리 하늘은 은세계를 둘렀고 / 萬里天圍銀色界
육조의 산들은 수정궁을 안았네 / 六朝山擁水精宮
창해에 솟는 햇빛은 거나한 눈을 흔들고 / 光搖醉眼滄溟日
초목 휩쓰는 바람이 시 짓는 창자에 스며드네 / 淸透詩腸草木風
우스워라, 구구이 무슨 일에 골몰하여 / 却笑區區何事業
10년간 번잡한 거리 땀 흘리며 다녔나 / 十年揮汗九街中
47.다경루에서 권일재를 모시고 옛사람의 운으로 함께 지음[多景樓陪權一齋用古人韻同賦]
이제현(李齊賢)
양자강 남쪽, 옛 윤주 / 楊子津南古潤州
환락은 몇 번이고 시름은 얼마였던고 / 幾番歡樂幾番愁
고기가 미끼를 탐하듯 나랏일 본 영신들 / 佞臣謀國魚貪餌
새가 모이를 기르듯이 백성 걱정하는 간리들 / 黠吏憂民鳥養羞
바람에 풍경이 뎅겅, 밀물이 포구에 들고 / 風鐸夜喧潮入浦
어둠속에 누역 오뚝, 비가 다락에 휘뿌리네 / 煙蓑暝立雨侵樓
중류에 돛대를 침은 내 일이 아니로세 / 中流擊楫非吾事
하늘 가 범려의 배를 한가히 바라보네 / 閑望天涯范蠡舟
[주-D001] 중류에 돛대를 침 :
진(晉) 조적(狙逖)이 원제(元帝)에게 청하여 군사를 통합해서 북벌(北伐)할 때 양자강을 건너며 돛대를 치면서 맹세하기를, “중원을 밝히지 못하고 다시 건너면 이 강과 같으리라.” 했다. 드디어 그가 석륵(石勒)을 격파하고 황하 이남의 땅을 회복했다.
[주-D002] 범려(范蠡)의 배 :
범려(范蠡)가 계교를 써 오(吳)를 멸한 뒤에 벼슬을 버리고 미인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떠 놀았다 한다.
48.고정산(高亭山)
이제현(李齊賢)
강녘의 산들은 아미를 엷게 단장한 듯 / 江上山如淡掃眉
인가 울타리엔 무궁화가 곳곳에 피었네 / 人家處處槿花籬
배 멈추고 송림 속의 절 어딘지 묻다가 / 停舟欲問松間寺
지팡이 짚고 대 아래 못 먼저 엿보네 / 策杖先窺竹下池
돛 그림자는 황혼에 멀리 초원을 이었고 / 帆影暮連芳草遠
종소리는 새벽에 천천히 구름에서 나오누나 / 鍾聲曉出白雲遲
난간에서 바라보니 삼오가 손바닥만 / 憑欄一望三吳小
장군이 말 세웠던 때를 상상하여 보노라 / 像想將軍立馬時
[주-D001] 고정산(高亭山) :
“백운(伯韻) 승상(丞相)이 군사를 주둔했던 곳.”이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49.숙 임안 해회사(宿臨安海會寺)
이제현(李齊賢)
절의 전각이 멀리 높직이 솟아 있는데 / 梵宮臺殿遠嵯峨
모래톱에 배를 대고 밤에야 찾아 갔네 / 沙步移舟夜始過
산협의 달은 복도로 돌아 나막신 소리를 따르고 / 峽月轉廊隨響屐
시내 바람은 문에 들어 패옥을 울리누나 / 溪風入戶動鳴珂
산은 동파로 이름난 지 오래고 / 山因蘇子知名久
전왕적부터 숱한 일을 겪었네 / 樹自錢王閱事多
언덕 위에 봄 돌아와 꽃은 적막한데 / 陌上春歸花寂寂
골짝의 새 우는 소리가 촌 노래를 화답할 뿐 / 唯聞谷鳥和村歌
맥상화(陌上花) 곡(曲)은 바로 이 땅의 일을 노래한 것
[주-D001] 동파(東坡) :
송(宋)나라 시인 소식(蘇軾)의 호. 그가 항주(杭州 송대의 임안(臨安)의 지부(知府)로 좌천되었을 때 그곳 산수를 몹시 사랑하여 많은 유적(遺蹟)을 남겼다.
[주-D002] 전왕(錢王) :
오대(五代) 때 오월(吳越)왕 전씨(錢氏). 시조 전유(錢鏐), 그 손자 숙(叔) 송(宋)에 항복하기까지 3세(世), 5주(主) 84년간(895~978) 왕이라 일컬었다.
50.황토점에서 상왕(上王 忠宣王)이 참소를 입어 해명하지 못하심을 듣고[黃土店 聞上見譖不能自明]
이제현(李齊賢)
별의별 세상일을 차마 들을 수 없구나 / 世事悠悠不忍聞
황폐한 다리 위에 말 세우고 말조차 막혔네 / 荒橋立馬忽忘言
어느 때 청천백일이 심사를 밝혀주리 / 幾時白日明心曲
이곳 청산에서 눈물 혼자 뿌리옵네 / 是處靑山隔淚痕
잔도 사른 장량이 어이 믿음을 저버리리 / 燒棧子房寧負信
예상의 영첩은 진작 은혜를 알았네 / 翳桑靈輒早知恩
상한 마음이 몸에 날개나 돋쳐 / 傷心無術身生翼
운소에 훨훨 날아 궐문 밖에 외치지 못함이 한이로세 / 飛到雲霄一叫閽
쓱쓱 공중에 글을 쓰며 시름하고 앉았노니 / 咄咄書空但坐愁
고생하시는 우리 임 어디 가 몸 쉬시리 / 式微何處是菟裘
10 년 동안 가진 고난은 천 리를 올라온 고기 / 十年艱險魚千里
만고의 흥망 역사는 한 언덕의 담비 / 萬古升沈貉一兵
해는 서로 달려가니 혼이 끊어지고 / 白日西飛魂正斷
강물은 동으로 흘러가니 눈물 먼저 흐르누나 / 碧江東注淚先流
수많은 문객들 중 닭 소리 개 도적도 없는가 / 滿門簪履無鷄狗
은덕 입은 나같은 자는 죽어도 면목 없네 / 飽德如吾死合羞
창자 속에 얼음과 숯이 들볶는 듯 / 寸腸氷炭亂交加
연산을 한 번 바랄 때 아홉 번 탄식 / 一望燕山九起嗟
뉘 알았으리 고래가 개미에게 시달릴 줄을 / 誰謂鱣鯨困螻蟻
앙큼하구나 이와 서캐가 개구리를 중상하다니 / 可憐蟣蝨訴蝦蟆
난을 미리 못 막으니 얼굴이 붉을 만하고 / 才微杜漸顔宜赭
전복된 것 바로잡을 무거운 책임 머리가 희어지네 / 責重扶顚髮易華
만고 금등에 끼친 글이 엄연하니 / 萬古金縢遺冊在
관채숙 유언이 주실을 그르치지 못하리 / 未容群叔誤周家
[주-D001] 예상(翳桑) :
땅 이름. 춘추(春秋) 시대 때 진(晉) 조돈(趙盾)이 예상에 사냥갔다가 영첩(靈輒)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밥먹여 살렸더니, 뒤에 영공(靈公)이 갑사(甲士)를 매복시켜 돈을 죽이려 하므로 첩이 마침 공의 무사가 되었다가 창을 거꾸로 하고 막아 돈이 죽음을 면하였다.
[주-D002] 고생하시는[式微] :
《시경》의 〈식미(式微)편〉은 임금이 나라를 잃고 남의 나라에 가서 살면서 고생하는 것을 읊은 시다.
[주-D003] 한 언덕의 담비 :
한(漢)나라 양휘(楊揮)의 말에, “예와 이제가 한 언덕의 담비와 같다.” 하였으니, 동류(同類)란 말이다.
[주-D004] 수많은 문객(門客)들 …… 개 도적 :
전국(戰國) 시대 때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秦)에 들어가니 진 소왕(昭王)이 가두어 죽이려 했다. 맹상군의 문객 중에 개도둑질 잘하는 자가 있어 흰 여우 갖옷[狐白裘]을 훔쳐 왕의 총희(寵姬)에게 바쳐서 그곳을 벗어나 밤중에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는데 관문이 닫혀있었다. 그러자 객 중에 닭의 울음을 잘 흉내내는 자가 있어 닭울음 소리를 내니 뭇 닭이 다 울어 관문이 열고 드디어 탈출했다.
[주-D005] 고래가 개미에게 시달릴 줄을 :
한(漢)나라 가의(賈誼)의 굴원을 조상하는 부[弔屈原賦] 끝 구에, “강과 바다에 비낀 전어와 고래가 개미에게 욕을 본다.”는 구절이있다.
[주-D006] 금등(金縢) :
주(周)의 무왕(武王)이 병이 있어 주공(周公)이 대신 죽기를 청하여 신(神에게 고하고 그 들을 금등(金縢)에 넣었다. 무왕이 죽자 주공이 섭정(攝政)하였더니, 그의 형제인 관숙ㆍ채숙이 유언(流言)으로 비방하자 성왕(成王)이 주공을 내쫓았으나 뒤에 금등을 열어보고는 깨달아 다시 주공을 맞아왔다.
[주-D007] 관채숙(管蔡叔) 유언(流言)이 …… 못하리 :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은 주 무왕(周武王)의 아우요, 주공(周公)의 형들로 《사기》에 이르되, 무왕이 붕어하고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했으나 나이가 어린 탓에 주공이 섭정하니 관ㆍ채가 나라에 말을 퍼뜨리되, “공이 장차 어린애에게 이롭지 못하리라[管蔡流言放國曰 公將不利於孺子].” 해서 주공이 황공하여 동도로 피했더니, 뒤에 성왕이 주공을 맞아 돌아오매 그들이 모반하였다. 왕이 주공에게 토벌을 명하여 그들을 잡아 죽였다. 《史記 管蔡世家》
51.지치계해년 4월 20일 〈당시 서번에 계시는 임금(충선왕)을 뵈오러〉 경사를 떠나며[至治癸亥四月二十日發京師 上王時在西蕃將往拜]
이제현(李齊賢)
태산 같은 임의 은혜 보답하지 못했으니 / 主恩曾未答丘山
만 리를 달리는 것 어이 어렵다 하오리 / 萬里驅馳敢道難
검을 퉁겨본다, 어찌 아녀와 이별을 하랴 / 彈劍不爲兒女別
잔을 들어서 친구의 정을 실컷 받으려네 / 引杯聊盡故人歡
돌아보면 오색 구름 금궐을 덮어 있고 / 五雲廻首籠金闕
다정한 조각달은 옥관을 비치리라 / 片月多情照玉關
오직 맘에 걸리기는 백발이 눈과 같은 어머님 / 唯念慈親鬢如雪
두어 줄 맑은 눈물이 안장 위에 떨어지네 / 數行淸淚洒征鞍
52.단오(端午)
이제현(李齊賢)
경사 와서 여식한 지 열 봄이 지났는데 / 旅食京華十過春
서쪽으로 와 또 길손이 되었구나 / 西來又作問津人
공명 때문에 반생을 이미 그르쳤네 / 半生已被功名誤
객지에 오래 머무르니 명절이 놀라누나 / 久客偏驚節物新
부평 같은 나그네 종적은 청해의 달 밑이요 / 萍梗羈蹤靑海月
고향에 돌아갈 꿈은 태봉 먼 고장 / 松楸歸夢泰封塵
술집 찾아들어 창포주를 마시노니 / 旗亭且飮菖蒲酒
술 안 먹고 읊조리는 굴원 안 배우네 / 未用醒吟學楚臣
[주-D001] 술 안 먹고 읊조리는 굴원(屈原) :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못가에 다니며 읊조리다가 어부를 만나, “뭇사람 다 취하되 나는 홀로 깨었네.” 하였다는 말이 있다.
53.제 장안 역여(題長安逆旅)
이제현(李齊賢)
지친 나그네 다시 오니 진의 나무도 늙었구나 / 倦客重遊秦樹老
고운 임 가신 뒤에 농서의 구름만 멀고 머네 / 佳人一去隴雲賖
두옹의 3년 피리를 시름 속에 들으면서 / 愁聽杜叟三年笛
장후의 만 리 떼를 구슬피 바라보네 / 悵望張侯萬里槎
꿈속의 내 고향은 혜초 장막 비었으리 / 夢裏家山空蕙帳
술 끝나자 낙숫물 등불을 떨어뜨리네 / 酒闌簷雨落燈花
벼슬의 정은 엷어 가을구름 같다마는 / 宦情已似秋雲薄
한 치쯤 붉은 노을이 가슴에 아직 남아 있네 / 胸次猶餘一寸霞
해동의 기자나라 예의의 고장 / 海上箕封禮義鄕
진작 직공을 바쳐 황제님 은혜를 입었네 / 曾修職貢荷龍光
황하 태산 두고 만세토록 동맹의 나라 / 河山萬世同盟國
우로 받은 삼조의 성 다른 왕 / 雨露三朝異姓王
참소배를 누가 잡아 늑대에게 줄까 / 貝錦誰將委豺虎
선운두고(仙韻豆古)를 이름
싸움은 할 수 없이 참상에까지 이르렀구나 / 干戈無奈到參商 조적(曹迪)이 형제를 불화(不和)케 함을 말함
종묘의 신령이 도와 부지하리니 / 扶持自有宗祧力
송도의 왕업이 다시 흥하고야 말리 / 會見松都業更昌
충성이면 하늘도 움직일 줄 믿어 왔더니 / 早信忠誠可動天
성군이 간사함을 용납할 줄 뉘 알았으리 / 孰云仁聖竟容奸
닭의 홰의 새벽은 양곡(해가 뜨는 동쪽 땅)에 환히 펼쳐지고 / 鷄竿曙色開暘谷
봉궐의 봄빛은 설산에까지 이르네 / 鳳闕春光到雪山
날 궂으려고 못 개구린 떠들며 싸우려는데 / 讖雨池蛙喧欲鬪
공(功)을 요행히 세우려는 간당(奸黨)들을 말함
하늘 높이 우는 학은 지쳐서 돌아가려네 / 唳雲臯鶴倦思還
민지(閔漬)ㆍ허유전(許有全) 두 노신(老臣)이 충선왕(忠宣王)의 일로 상서(上書)하여 진걸(陳乞)하려다가 방해하는 자가 있어 두 분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귀국하려 함을 이름.
조그만 오와 설은 무엇이기에 / 區區吳薛何爲者
아가리 턱을 놀려 황제의 귀에까지 들렸는고 / 自鼓嚨胡徹帝關
[주-D001] 두옹(杜翁)의 3년 피리 :
두보의 〈청적(聽笛)〉시에, “3년 피리 속에 관산의 달이요, 만국 병장기 앞에 초목 바람[三年留裏關山月 萬國兵前章木風].”라고 하였다.
[주-D002] 장후(張侯)의 만 리 떼[槎] :
한(漢)나라 장건이 뗏목을 타고 은하(銀河)에 올랐다(실은 멀리 천산(天山) 길을 뚫어 서역에 가는 것을 말한다.
[주-D003] 혜초 장막[蕙帳] 비었으리 :
공치규(孔雉珪)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산 사람 가고 없으니, 혜초 장막 비었네[山人去兮黃帳空].”라고 하였다.
[주-D004] 참소배[貝錦]를 …… 줄까 :
《시경》에, “참소하는 사람을 늑대 호랑이에게 던져 주리라.” 한 구절이 있다.
[주-D005] 참상(參商) :
옛날 고신씨(高辛氏)의 두 아들 알백(閼伯)과 실침(實沈)이 서로 화복하지 못해 날마다 간과(干戈)로 싸우므로, 임금이 알백을 상구(商丘)에 옮겨 상별[商星]을 주장하게 하고 실침을 대하(大夏)에 옮겨 참별[參星]을 주장하게 하였다. 《左傳》
[주-D006] 민지(閔漬) :
원본에는 민청(閔淸)으로 되어 있으나 《고려열조등과록(高麗列朝登科錄)》에 의거하여 민지(閔漬)로 수정.
54.달존의 살구꽃 시 운대로[達尊杏花韻]
이제현(李齊賢)
봉성 서쪽의 한 그루 살구나무 / 一株仙杏鳳城西
봄빛을 독차지하고 버들 뚝에 서 있네 / 占斷春光傍柳堤
자욱한 자색 연기는 원근에 어려있고 / 翳翳紫煙迷遠近
찬란한 붉은 해는 높고 낮은 데를 비추누나 / 離離紅日照高低
그윽한 향내가 이슬 머금어 벌꿀을 보태고 / 暗香帶露添蜂蜜
떨어진 꽃송이 바람에 날려 제비집 붙네 / 亂點隨風着燕泥
문득 생각나누나, 금파정 아랫길에 / 忽憶錦波亭下路
꽃 그림자 속에 취하여 붙들고 잡고 하던 일 / 滿身淸影醉扶携
따스한 봄날, 작은 마을 서쪽에서 / 淡蕩春光小卷西
담을 의지해 말 없이 긴 뚝을 굽어보네 / 倚墻無語俯長堤
붉은 납으로 단장된 꼭지를 바람이 불어 꺾고 / 蔕裝絳蠟風吹拆
단사로 뭉친 꽃을 비가 나직이 눌렀구나 / 花蔟丹砂雨壓低
예쁜 여인 금한발(비파 끝에 붙인 장식)에 놀라 떨어지고 / 驚墮佳人金捍撥
노니는 말의 비단 장니에 공교히 묻어가네 / 巧黏游騎錦障泥
녹음 되고 열매 열면 속절없이 슬퍼지리 / 綠陰靑子空惆悵
꽃놀이 실컷하며 헤어지지 마세나 / 滿意尋芳莫解携
어구(궁궐에서 흘러 나오는 개울) 남쪽 가 화교 서녁에 / 御溝南畔畫橋西
한가한 틈 타 푸른 뚝에 거닐었더니라 / 記得偸閑步綠堤
당 밖에 내민 몇 가지는 봄비가 지난 뒤 / 出屋數枝春雨過
성을 두른 천 그루에 석양이 나직했지 / 繞城千樹夕陽低
대모 자리에 붉은 초 녹아 떨어지는 듯 / 玳筵錯落啼紅燭
임금님 조서에 자니가 젖은 듯 / 鳳詔淋漓濕紫泥
긴 가지를 꺾어 꽃을 자세히 보려 하나 / 欲折長條賞天巧
꽃이 스쳐 떨어져 손에 들지 못할까 염려로세 / 却愁零落不堪携
[주-D001] 비단 장니(障泥) :
호화스러운 사람들은 말의 발굽에 비단으로 장니(障泥)를 만들어 타고 다닌다.
[주-D002] 자니(紫泥) :
임금의 조서(詔書)는 무도(武都)의 붉은 진흙으로 봉한다.
55.환조하는 이한림을 보내며[送李翰林還朝]
이제현(李齊賢)
출중한 그대 풍골을 내 일찍이 알았더니 / 早知毛骨異凡流
청운에 득의하는 때를 눈을 닦고 보았네 / 刮目靑雲得意秋
삼급 풍뢰가 한사의 집에 일어나고 / 三級風雷起蓬蓽
구천의 우로가 조상 무덤까지 적시었네 / 九天雨露洽松楸
압록강 푸른 버들은 이별을 아끼리만 / 鴨江柳暗牽離思
금원에 핀 꽃들은 좋은 놀이를 기다리리 / 鼇禁花開待勝遊
술잔 들며 언제 다시 회포를 논해볼까 / 樽酒論懷更何日
백발인 내 신세를 산수간에 부치려네 / 白頭身事付蒼洲
56.국재 권문정공 만사(菊齋權文正公挽詞)
이제현(李齊賢)
청직 화직 다 지내고 상태에 올랐으니 / 揚歷淸華到上台
임금께선 나라의 대들보로 여기셨네 / 君王獨倚棟梁材
시서가 집에 가득하고 번소는 없었으며 / 詩書滿屋無樊素
벼슬 높은 자손 중엔 노래자도 있었네 / 簪履盈門有老萊
천 년 만에 학은 삼교 달에 돌아갔고 / 千歲鶴歸三嶠月
구연의 용이 오경 우레에 변화했네 / 九淵龍化五更雷
서투른 재주로 청덕을 옳게 명하지 못하니 / 才疏未足銘淸德
옥경대 옛날 생각에 눈물을 뿌리네 / 淚洒當年玉鏡臺
[주-D001] 상태(上台) :
하늘의 삼태성(三台星)을 삼정승(三政丞)에 비하는데 상태(上台)는 수상(首相)이다.
[주-D002] 번소(樊素) :
백거이(白居易)의 시희(詩姬). 노래를 잘했다.
[주-D003] 노래자(老萊子) :
춘추(春秋) 시대 때 효자로, 나이 70에 오색 색동옷을 입고 어린애 놀음을 하여 그 부모를 즐겁게 했다.
[주-D004] 서투른 재주로 …… 못하니 :
작자(作者)가 국재(菊齋)의 비명(碑銘)을 지었다.
[주-D005] 옥경대(玉鏡臺) :
진(晉)나라 온교(溫嶠)가 결혼할 때에 옥경대(玉鏡臺)로 예물을 삼았는데, 작자(作者)는 국재(菊齋)의 사위 때문에 이것을 인용하였다.
57.봉주 용추(鳳州龍湫)
이제현(李齊賢)
산 앞에 푸르른 두 돌문[석문]이 열렸는데 / 山前翠石雙扉啓
돌 밑에 맑은 소가 만 길이나 깊구나 / 石底澄潭萬丈深
햇빛을 밝게 받아 눈부시게 반짝반짝 / 明浸日光紛閃閃
서늘한 숲그림자 잠겨 침침하여라 / 冷涵林影淨沈沈
이 백성들 탕 임금 때 가뭄에 비를 바라거니 / 斯民政要滋湯旱
어느 정승이 부열의 장마를 내릴 만한가 / 彼相誰堪作說霖
나드는 작은 고기들아 살펴보지 말아라 / 出沒魚兒休察見
아마도 용이 널 보내 인심 시험하는 듯하니 / 龍應先遣試人心
[주-D001] 탕(湯) 임금 때 가뭄 :
은(殷)의 시조 탕(湯) 임금 때 7년 동안 큰 가뭄이 있었다.
[주-D002] 부열(傅說)의 장마 :
은(殷) 고종(高宗)이 현상(賢相) 부열을 얻어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 고종이 부열에게 명하는 사(辭)에 “만일 해가 너무 가물거든, 너를 써 장마비를 지으리라[若歲大旱 用汝作霖雨].” 하였다. 《書傳 說命》
58.양화(楊花)
이제현(李齊賢)
꽃 비슷 눈은 아닌데 어찌 그리 하늘대나 / 似花非雪最顚狂
넓은 하늘 솔솔 바람에 더욱 헤매는구나 / 空闊風微轉渺茫
갠 날 깊은 후원에 펄펄 날리고 / 晴日欲迷深院落
작은 못[池] 봄 물결에 둥둥 떠있네 / 春波不動小池塘
나부껴 섬돌에 앉으니 사뿐 그림자도 없고 / 飄來釦砌輕無影
불어 사창에 드니 향긋한 냄새 / 吹入紗窓細有香
문득 회상되네, 동고에서 글 읽을 때 / 却憶東臯讀書處
낙화와 반쯤 섞이어 빈 상에 지던 일 / 半隨紅雨擈空床
59.양안보 국공이 옥연당에서 태위 심왕을 위하여 차린 잔치에서[楊安普國公宴太尉瀋王于玉淵堂]
이제현(李齊賢)
호수 위 화려한 별장이 듣던 바와 같은데 / 湖上華堂愜素聞
국공께서 잔치를 열어 우리 님을 즐겁게 하네 / 國公開宴樂吾君
한 말에 만전짜리 좋은 술이 노자잔에 가득 / 十千美酒鸕鷀杓
이팔 가인들이 비취색 치마를 떨치누나 / 二八佳人翡翠裙
연꽃 향내 풍겨오는데 지나가는 빗소리 / 菡萏香中聽過雨
부들풀 그림자 사이로 가는 구름이 보이네 / 菰蒲影際見行雲
생가가 끝나기 전에 거마가 왁자하니 / 笙歌未歇輪蹄鬧
어느덧 서산의 해가 저물려 하는구나 / 漠漠西山日欲曛
60.칠석(七夕)
이제현(李齊賢)
빤히 바라보아도 만나보긴 어려운 터 / 脈脈相望邂逅難
하늘이 오늘 저녁엔 단란 한 번 허하네 / 天敎此夕一團欒
오작교는 은하수 멂을 한했었지만 / 鵲橋已恨秋波遠
원앙 베개엔 밤 누수 다해감을 어이 견디리 / 鴛枕那堪夜漏殘
인간에야 어이 모였다 헤어짐 없으랴마는 / 人世可能無聚散
신선도 역시 슬픔과 기쁨이 있는 것을 / 神仙也自有悲歡
예의 아내 영약을 훔쳐 마시고 / 猶勝羿婦偸靈藥
만고에 홀로 광한전 지킴보다야 낫지 / 萬古羇棲守廣寒
[주-D001] 예(羿)의 아내 …… 훔쳐 마시고 :
하우(夏禹) 때 유궁후(有窮后) 예(羿)가 불사약(不死藥)을 얻어다 감춰 둔 것을 그 아내가 훔쳐 먹고 신선이 되어 월궁(月宮)에 도망가 항아(姮娥)가 되어 홀어미로 광한전에 거처한다는 전설.
61.박지평의 시를 차운하여 안겸재에게 드리다[次朴持平韻呈安謙齋]
백문거(白文擧)
새해엔 길조가 많다고들 말하더니 / 盡道新年多吉兆
경사로운 가문에 영광이 모였네 / 端知慶閥萃榮光
전해오던 낡고 검소한 선인 댁이 / 傳來古儉先人宅
화하여 풍류학사당이 되었구나 / 化作風流學士堂
우스워라 늙은 내가 백발이 성긴 주제에 / 自笑老夫華髮短
노래하는 기생의 푸른 눈썹이 귀엽단 말가 / 猶憐歌妓翠眉長
이보게 내게 파려(유리)잔을 들라 하소 / 請公命把玻瓈盞
한평생 들끓는 속을 씻어볼까 하옵네 / 澆我平生氷炭腸
62.차 보문사 각상시운(次普門寺閣上詩韻)
석선탄(釋禪坦)
평생에 울툭불툭한 산길을 다녔으니 / 山石平生犖确行
이 절이 10년의 정을 담았구나 / 此軒贏得十年情
앵무주 가의 풀에 비가 침침하고 / 雨昏鸚鵡洲邊草
바다 위의 부용성(신선이 사는 성)에 구름이 걷히었네 / 雲卷芙蓉海上城
모래톱 어선의 등은 연기 밖에 멀리 뵈고 / 沙岸漁燈煙外遠
달 비친 다락 사람의 말소리는 밤 깊어 고요하네 / 月樓人語夜深淸
어쩌면 노상 갈매기를 짝하고 / 若爲長伴江鷗去
누워서 물결 소리를 싫도록 들어볼까 / 飽聽蒼波落枕聲
63.9월 9일에 청연의 시를 차운하여[九日次淸淵詩韻]
석선탄(釋禪坦)
금루의 한 곡을 소리질러 노래하며 / 一曲高歌金縷衣
국화에 간 곳마다 술취해서 돌아가네 / 黃花無處不扶歸
강호에 보내는 세월은 술과 거문고 좋건만 / 江湖日月琴尊好
시냇절 누대엔 인마가 드물구나 / 溪寺樓臺人馬稀
만 골짜기 비 자라자 단풍이 한창이요 / 萬壑雨驚紅樹遍
사면 산봉 아침에 흰 구름 날아가네 / 四山朝見白雲飛
난간에 기대니 눈에 가득 슬픈 가을빛 / 倚欄滿目悲秋意
해마다 낙엽 질 때엔 뜻과 일이 틀리네 / 木落年年心事違
64.정우곡의 시를 차운하여 홍민구 진사를 보내며[次鄭愚谷韻送洪敏求進士]
우길생(禹吉生)
일찍 최공이 과시를 맡았을 때 / 崔公當日秉斯文
급제가 한 가문에서 연이어 났네 / 捿第連科起一門
12문도의 이름이 후세에 전하고 / 十二徒名傳後代
5백 년 경사가 여러 손자에 푸짐했네 / 半千年慶洽諸孫
유를 갚을 날이 짧으니 먼저 효도할 것 / 報劉日短宜先孝
한을 도울 때가 왔으니 하고픈 말씀 다 해야 하네 / 佐漢時來可盡言
백화를 읊으면서 부지런히 효양하며 / 吟詠白華勤敬養
이따금 기책을 바쳐 황원(원나라)을 도우소 / 何妨獻策輔皇元
[주-D001] 12문도(門徒) :
고려 때의 사학(私學)에 십이도(十二徒)가 있어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내었다.
[주-D002] 유(劉)를 갚을 날이 짧으니 :
진(晉)나라 이밀(李密)이 조모의 손에서 자랐고 조모가 90여 세가 되었는데, 조정에서 밀을 벼슬로 불렀다. 밀이 조모를 모시기 위하여 사양하여 올리는 글에, “신이 폐하께 절개를 다할 날은 길고, 조모 유(劉)를 갚을 날은 짧습니다.” 하였다.
[주-D003] 백화(白華) :
《시경》의 편명. 효자의 결백을 노래한 것인데, 본시(本詩)는 없어졌다.
65.진주 촉석루(晉州矗石樓)
정을보(鄭乙輔)
저 황학루가 어찌 혼자 으스대리 / 黃鶴名樓彼一時
최군이 수다스러워 우연히 시에 머물렀지 / 崔君好事偶留詩
올라보니 경치는 변함이 없는데 / 登臨景物無增損
편액의 글 품격은 성쇠가 보이누나 / 題詠風儀有盛衰
옥 술잔을 높이 드니 강달이 솟아나고 / 玉斝高飛江月出
주렴을 반쯤 걷으니 영에 구름 드리웠네 / 珠簾半捲嶺雲垂
난간서 고개 돌리매 천지가 작아 뵈니 / 倚欄回首乾坤小
알리라 우리 골 경치 특별히 기이한 줄 / 方信吾州特地奇
[주-D001] 최군(崔君) :
당나라 시인 최호(崔顥). 그가 황학루에 올라 명작시를 써 걸었다.
66.임오세 한식(壬午歲寒食)
이곡(李穀)
벼슬길이 전부터 시비가 많은 터에 / 宦路從來足是非
늙으신 어버이를 멀리 떠나 있으리만 / 更堪親老遠庭闈
이미 객지에서 한식을 만났으니 / 已從客路逢寒食
서울 먼지 흰 옷을 물들인 대로 / 也任京塵染素衣
가랑비가 문득 오니 철 바뀐 것 놀라와라 / 細雨忽來驚節換
낙화도 쓴 듯 하니 이 봄도 늦어지리 / 落花如掃惜春歸
가난해도 명절이면 놓치지 말고 취할 것이 / 忍貧要趁良辰醉
다정한 젊은 시절에 어긋나는 내 심사 / 鬢髮多情心事違
[주-D001] 서울 먼지 …… 물들인 대로 :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시에, “서울에 풍진이 많으니 흰 옷이 변하여 검어지네[京洛多塵素衣化爲緇].”라는 구절이 있다.
67.차운 답 순암(次韻答順庵)
이곡(李穀)
반평생을 정든 고향 떠나 사니 / 半生光景屬離居
객지에서 밥 먹는 신세 다른 원이 없사외다 / 旅食從來不願餘
창밖의 파초잎은 밤비에 흐뭇했고 / 窓外芭蕉饒夜雨
소반 위의 거여목 봄나물이 푸짐하네 / 盤中苜蓿富春蔬
집이 가난해도 단표의 즐거움을 가졌도다 / 家貧自有簞瓢樂
생계가 서투르지 문필이 짧기 때문은 아니로세 / 計拙非因翰墨疏
이따금 절을 찾아 선탑 앞에 이르러 / 時到煙花禪榻畔
좌망하면 인생이 거려 같은걸 / 坐忘身世等籧廬
[주-D001] 단표(簞瓢)의 즐거움 :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집이 가난하여 한 바구니 밥과 한 바가지 물을 마시면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였다.
[주-D002] 좌망하면 …… 같은걸 :
좌망(坐忘)은 《장자(莊子)》에 있는 말인데 수양(修養)으로 앉아서 모든 것을 잊는다는 것이며, 거려(蘧廬)는 객관(客館)인데 한 번 자고 지나면 그만이란 뜻으로 인생에 비한다.
68.추우야좌(秋雨夜坐)
이곡(李穀)
찬 구름이 쌀쌀히 저녁 까마귀를 보내는데 / 寒雲作色送昏鴉
홀로 서창에 기대어 철 바뀌는 것 느끼노라 / 獨倚書窓感物華
늦가을에 강산이 한창 쓸쓸하고 / 秋晩江山正搖落
밤 깊은데 풍우가 다시 불어치네 / 夜深風雨更橫斜
명리가 무슨 맛인가 괜히 나그네만 되었지 / 利名少味徒爲客
꿈조차 무정하여 고향집에 못 이르네 / 魂夢無情不到家
새벽 종 소리에 백발이 정녕 더 나리니 / 曉鏡定應添鬢髮
어이 다시 여윈 말 타고 모래 먼지 무릅쓰리 / 羸驂肯復傍塵沙
69.계미원일 숭천문하(癸未元日崇天門下)
이곡(李穀)
설날 아침 대명궁을 활짝 열어놓으니 / 正朝大闢大明宮
만국의 의관이 예로 다들 모이네 / 萬國衣冠此會同
호랑이ㆍ표범 문을 지켜 안팎이 엄숙하고 / 虎豹守閽嚴內外
봉새ㆍ난새 서반을 갈라 동ㆍ서가 엄연하네 / 鴛鸞分序肅西東
헌수 잔에 둥실 봄빛이 떠오르고 / 壽觴灔灔浮春色
시위들이 겹겹이 새벽 바람에 서있네 / 仙仗摐摐立曉風
나도 일찍 조복 입고 홀 들고 반열에 섰었더니 / 袍笏昔曾陪俊彦
천문에 머리 돌리매 그지없는 옛 생각 / 天門翹首思難窮
70.칠석에 조금 마시며[七夕小酌]
이곡(李穀)
평생에 발자취 뜬구름 같았는데 / 平生足迹等雲浮
만 리 밖에 서로 만남도 인연이 있네그려 / 萬里相逢信有由
하늘 위의 풍류는 견우직녀 만나는 날 / 天上風流牛女夕
인간에도 아름답고 번화한 서울에서 / 人間佳麗帝王州
푸짐한 담소에 술이 바다 같구먼 / 笑談款款尊如海
깊숙한 주렴 장막에 비가 가을을 보내오네 / 簾幕深深雨送秋
걸교와 옷 말림[曙]은 내 할 일 아니로세 / 乞巧曝衣非我事
한두 구 시나 지어서 풋시름을 잊으려네 / 且憑詩句遣閑愁
[주-D001] 걸교(乞巧)와 옷 말림[曙] :
걸교는 칠석날 부녀자들이 색실을 맺어 놓고 일곱 바늘에 꿰어 바느질 잘하게 되는 솜씨를 비는 것인데, 거미가 외[瓜] 위에 그물을 치면 성공한 것이라 한다. 옷 말림은 칠석에 옷을 내어 뜰앞에서 말리는 것인데 진(晉)나라 이래의 옛 풍습. 부귀한 집에서 능과 비단옷을 내어 말림에 대항하여 완함(阮咸)이 긴 장대 끝에 고쟁이[犢鼻禪]을 꿰어 말렸음은 유명한 고사이다. 《荊楚歲時記》
71.정조설(正朝雪)
이곡(李穀)
제야에 내린 눈이 설날 아침까지 이르러 / 雪從除夜到正朝
불어오는 새 봄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녹는구나 / 旋入春風不禁消
쌍궐의 의장은 그림자도 희미한데 / 扇影未分雙闕仗
오문 다리엔 가죽신 소리 벌써 들리네 / 靴聲早集五門橋
늘어선 하정 반열의 조회에 옷이야 젖어도 / 從敎賀列朝衣濕
춤추는 궁인들의 소매에 어울리리 / 好傍昭容舞䄂飄
금년 새해엔 진작 서기 많사오니 / 便是新年多瑞氣
초주(초백주(椒柏酒))를 가득 드리며 민요 함께 바치과저 / 願隨椒酒進民謠
72.고한(苦寒)
이곡(李穀)
북풍이 휘몰아치는, 해도 저무는 날씨에 / 朔吹搖空歲暮天
우수수 낡은 집에 글읽는데 싸늘한 담요 / 颼颼老屋讀書氈
추위가 뼈에 사무치니 무엇으로 녹일까 / 一寒到骨那能解
만사가 맘에 뒤설레나 혼자서 애탈 뿐 / 萬事關心只自煎
밤이 깊어 눈이 내리니 이불이 차기 쇳장 같고 / 衾鐵夜深明積雪
나무시장 가까우나 불기는 끊겼구나 / 樵山市近絶炊煙
시인이 추위 견딤 이제나 예나 같거니 / 詩人耐冷今猶古
어즈버 시냇물 가로 매화를 찾아가려네 / 擬訪梅花澗水邊
73.난경에서 송별하며 민급암의 시운을 쓰다[灤京送別用閔及庵韻]
이곡(李穀)
새벽 성동 송별연에 이슬이 함뿍 적셨는데 / 曉餞城東露浥筵
바라보니 난경 백 리에 풍경도 좋을시고 / 灤京百里好風煙
집집이 준마 있어 활쏘기도 편리하고 / 家家駿馬便弧矢
곳곳 누대에 풍악소리도 요란하네 / 處處高樓鬧管絃
유보 살던 집 골짝엔 구름만 가득 / 劉保舊居雲滿谷
이릉의 유적은 풀만 하늘에 닿았구나 / 李陵遺迹草連天
급암의 시를 당할 이 없으니 / 及庵好古詩無敵
오늘에 본 이 장관을 자세히 꼭 전하게 / 壯觀應須子細傳
[주-D001] 이릉의 유적 :
이릉(李陵)은 한(漢)나라 장수로 흉노(凶奴)와 싸우다가 항복하였는데 그의 친구 소무(蘇武)가 흉노에 억류되었다가 돌아올 때에 서로 하양(河梁)에서 작별하면서 시를 지었는데 아마 난경(灤京)에 그 유적이 있던 것 같다.
74.제 조계구곡각운선사 어서화시권(題曹溪龜谷覺雲禪師御書畵詩卷)
이인복(李仁復)
우러러 뵙는 어필이 선림(절[寺])을 환히 비추니 / 仰看奎畫照禪林
새로 주신 그림과 글씨가 고금의 걸작이외다 / 新賜圖書冠古今
여덟 법(여덟 가지 필법(筆法))이 다 같으니 과연 체를 얻었고야 / 八法旣均眞得體
두 스님이 화상과 꼭 닮았으니 마음을 전할 만하네 / 二師惟肖可傳心
이 천교에 비하면 고ㆍ륙(중국의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愷之)와 육탐미(陸探微))은 겨와 껍질 / 粃糠顧陸天機妙
깊으신 필의는 종ㆍ왕(중국의 명필가 종요(鍾繇)와 왕희지(王羲之))이 신복일세 / 臣㒒鍾王筆意深
산문에 유진하면 영광이 뻗치오리니 / 留鎭山門有榮耀
임금님 내리신 은혜 천금보다 중할 뿐인가 / 上恩奚啻重千金
75.증 곽검교(贈郭檢校)
이인복(李仁復)
금대의 상객이 마침 또 사신 / 金臺上客是詞臣
왕명 띠고 동에 놀아 바닷가에 이르렀네 / 奉使東遊到海濱
깃발이 펄렁 이어 온 길이 달포 넘고 / 旌旆聯翩行閱月
배반이 질펀한데 자리에 가득한 봄 기운 / 杯盤錯落座添春
왕사에 수고하니 이름 더욱 무거웠고 / 獨賢鞅掌名尤重
국교에 전대할 제 그 기운 더욱 떨치누나 / 專對縱橫氣益振
다행히 이 아침에 잔치가 즐거우이 / 幸遇今朝堪燕樂
그 누가 구구한 예로 자리 다툼 할쏘냐 / 區區爭席亦何人
[주-D001] 증 곽검교(贈郭檢校) :
“검교가 하남왕(河南王) 이 총병(李摠兵)의 명(命)을 받들고 우리 조정(朝廷)에 빙문(聘問)왔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주-D002] 금대(金臺) :
연 소왕(燕昭王)이 대(臺)를 쌓아 그 위에 황금(黃金)을 놓고 천하에 어진 사람을 구하였다.
[주-D003] 자리 다툼 :
옛날에 중국과 외국에 사신이 왕래할 때에 흔히 좌석의 높고 낮은 문제로 다툰 일이 있었다.
76.원조 동년에 마언휘 승지 부자통학사에게 편지를 겸하여 부치며[寄元朝同年馬彦翬承旨兼柬傅子通學士]
이인복(李仁復)
몇 번이나 한림원에서 함께 취해 돌아왔었나 / 每向瓊林憶醉歸
따스한 봄날 어사화 꽂고 건들건들 / 賜花春暖影離離
작별한 뒤 두터운 교정을 더욱 느끼네 / 別來更覺交情厚
늙어가니 세상일 내 어이 알리 / 老去安知世事非
노둔한 말이 외양의 콩을 아직도 그리워하네 / 駑鈍尙慙懷棧豆
멀리 나는 붕새가 뱁새가 깃들이는 울타리를 다시 돌아보리 / 鵬飛誰復顧藩籬
그대는 부디 동이가 누하다 웃지 마소 / 請君莫笑東夷陋
바다위 삼산(금강산ㆍ지리산ㆍ한라산)에 푸른 빛 솟아있네 / 海上三山聳翠微
[주-D001] 노둔한 말이 …… 그리워하네 :
“노둔한 말이 외양의 콩을 그리워하면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晉書》
[주-D002] 그대는 부디 …… 웃지 마소 :
공자가 구이(九夷)에 살고자 하니 어떤 사람이 말하되, “누(陋)하리이다.” 공자가 말하되, “군자가 살면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하였다.
77.송유사암(送柳思庵)
이인복(李仁復)
인간엔 기름불 스스로 끓이거늘 / 人間膏火自相煎
그대 같은 명철 한 분은 역사에 전할 만하외다 / 明哲如公史可傳
위태로운 시국에 사직을 편안히 하고 / 已向危時安社稷
평지에서 그대로 신선이 되는구나 / 更從平地作神仙
반드시 오호의 푸른 물결 꿈이 벌써 끊어졌고 / 五湖夢斷煙波綠
삼경 깊은 가을에 들국화 곱게 피리 / 三徑秋深野菊鮮
나는 부끄럽네, 벼슬 버리고 못 가는데 / 媿我未能投紱去
요사이 두 귀밑머리에 눈이 나부끼니 / 邇來雙鬢雪飄然
78.동래에서 제생들을 작별하며[留別東萊諸生]
전숙몽(田叔蒙)
동래 고을 주민들 지상선 그 이던가 / 萊郡居民卽地仙
반 년 동안 무사히 함께 노닐었네그려 / 半年無事共盤旋
남포의 연기 바라보며 소금집을 찾았지 / 望煙南浦行鹽戶
달빛 아래 동호에 떠서 술 실은 배도 저었다 / 泛月東湖棹酒船
해운대 짙푸른 산에 진달래꽃 만발했고 / 積翠海雲春爛熳
장송 꽃길에 풀이 우거졌던걸 / 長松花路草芊緜
가벼운 몸으로 다시 서울로 향하는 나 / 身輕更得朝天去
고마우이 그대들 함께 온천에 와 목욕시키니 / 謝子相携浴檻泉
79.서회(書懷)
장천익(張天翼)
늙으신 팔순 양친께서 고향에 / 八旬雙鶴老家鄕
오마(태수(太守))로 뵈오러 오니 흐뭇하구나 / 五馬歸寧興更長
수주를 드리니 하액이 넘치는 듯 / 壽酒獻來霞液溢
반의로 춤추는 곳에 비단 자리 향기롭네 / 班衣舞處錦筵香
한가한 몸이 꽃밭에서 취함도 좋으리라 / 身閑正好醉花塢
태평한 세상에 초당에 누운들 어떠리 / 世治何妨臥草堂
맑은 강에 나가 곧은 낚시 드리우려 하노니 / 欲向淸江垂直釣
후일에 머리 세어서 문왕을 만나고저 / 白頭他日遇文王
80.설날에 즉흥으로[元日漫成]
윤여형(尹汝衡)
작년 설날은 서울서 맞았더니 / 去歲正朝是洛陽
올해 원조는 남방 시골이로세 / 今年元日又南荒
탄협하는 풍환은 늘 나그네 신세 / 馮驩彈鋏長爲客
다락에 오른 왕찬은 하도 고향을 그리워했네 / 王粲登樓苦憶鄕
연한 바람에 버들가지는 겨우 빛을 하늘거리고 / 風軟柳條纔弄色
따스한 햇살에 매화꽃은 향기를 못 가누네 / 日姸梅萼不勝香
새 봄이 와도 머리털은 아는 체 만 체 / 鬢絲不管新春事
하늘 가 만리 타향에 거울 가득 서리로세 / 萬里天涯一鏡霜
[주-D001] 왕찬(王粲) :
자(字) 중선(仲宣), 한말(漢末)의 문인(文人). 난을 피하여 형주(荊州)에 있으면서 고토(故土)를 그리워하여 유명한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다.
81.영광 동쪽 자복사에 나그네로 묵으며[客寓靈光東資福寺]
윤여형(尹汝衡)
고을 성 동쪽에 있는 동림사(중국에 있는 절인데 백거이(白居易)가 있었다) / 東林寺在郡城東
괴나리 봇짐 들고 와 이 안에 몸 부쳤네 / 牢落行裝寄此中
만가지 나그네 시름은 헌 솜처럼 엉켰는데 / 萬種羈愁紛若絮
10년간 떠다닌 종적은 쑥대[뿌리없이 바람에 날아다니는 풀]와도 같았구나 / 十年遊跡蕩如蓬
저녁빛을 띤 구름은 바위 나무에 나직하고 / 雲含暝色低岩樹
가을 소식 전하는 비는 우물 가 오동잎을 때리누나 / 雨報秋聲打井桐
장돌뱅이처럼 묵고 다니는 신세 / 到處賈胡留底事
세월 흘러 머리는 희고 주머니는 비었네 / 流年催鬢客囊空
82.차 명원루 연집운(次明遠樓宴集韻)
최원우(崔元祐)
날마다 올라와 놀아 돌아가길 잊노니 / 登臨日日却忘回
눈앞에 기관이 차례로 열려지네 / 傍眼奇觀次第開
구름 밖에 나오는 건 어느 먼 산인고 / 何處遙岑雲外出
들에 이따금 몰려오는 소낙비 / 有時飛雨野邊來
저녁녘에 기둥에 기대니 바람이 모자에 서늘 / 晩涼倚柱風生帽
고요한 밤 퉁소를 부니 달이 잔에 가득하고야 / 夜靜吹簫月滿杯
흐르는 물도 사람의 애착을 아는 듯 / 流水亦知人着愛
다락 앞 곧장 와서는 짐짓 감도는구나 / 樓前直到故徘徊
83.매계 원송수의 남성 주시를 하례하며[賀元梅谿松壽掌南省試]
최원우(崔元祐)
성대의 인재가 여느 때와 다르니 / 盛代人才獨異常
구름처럼 모여들어 왕에게 손이 되네 / 藹然雲會用賓王
문형을 잡은 묘함 감식 더욱 밝고 / 提衡妙鑑尤淸絶
구에 들어온 뭇 선비가 모조리 쓸 만한 재목 / 入彀群材盡善良
공평함은 진작 천품으로 받았으매 / 已是公平由稟受
고열해서 비로소 정한 것 아니로세 / 不因考閱始精彊
받자온 우로은을 그 누가 견주오리 / 一身雨露誰能似
입에 문 계설향은 10년이나 되었네 / 鷄舌猶含十載香
[주-D001] 왕에게 손이 되네 :
《주역(周易)》 관괘(觀卦)에, “나라에 관광(觀光)하여 왕에게 손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후세에는 이것을 과거 보는 선비에게 인용했다.
[주-D002] 구(彀)에 들어온 :
당 태종(唐太宗)이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열을 지어 나오는 것을 보고, “천하의 영웅이 모두 나의 구(彀) 가운데 들었구나.” 하였다. 구(彀)는 활을 쏠 때에 화살이 미치는 범위이다.
[주-D003] 입에 문 계설향(鷄舌香) :
상서랑(尙書郞)은 계설향을 입에 물고 일을 아뢴다. 《漢官儀》
84.시중 행촌 이암을 곡하다[哭杏村李侍中嵒]
전득량(田得良)
곧은 절개 높은 품격이 세상에 뛰어난 분 / 直節高標冠世人
한 몸으로 충과 효, 임금ㆍ어버일 섬기셨네 / 一身忠孝事君親
녹야당(당나라 현상(賢相) 배도(裵度)의 별장)을 열어 맑은 흥취를 부쳤고 / 堂開綠野遣淸興
백련사를 이어 모아 좋은 인연 닦았도다 / 會續白蓮修勝因
뜰 아래 지란들은 여러 대로 번성하고 / 庭下芝蘭繁奕葉
문전의 도리(문하생)들은 아직도 청춘이네 / 門前桃李尙靑春
풍류 노재상은 이제 어이 가는고 / 風流耆舊今何處
먼지 쌓인 금서를 차마 어이 보란 말가 / 忍見琴書撲素塵
85.자술(自述)
이원지(李元之)
송도의 여섯 익이 감히 앞을 모도하리 / 宋都六鷁敢圖前
달팽이 집에 자라처럼 움츠리고 해 보내네 / 鼈縮蝸廬度歲年
늘그막에 병 얻으니 무슨 힘으로 건지랴마는 / 老病相侵何力濟
한가히 그렁저렁 몸이나 온전히 하리라 / 優閑自任要身全
길 궁한 신세는 말 앞에 남관의 눈 / 窮途脚底藍關雪
오산은 가슴속의 기국의 하늘 / 謬算胸中杞國天
거북같이 둔한 몸이 다행 포숙을 만나서 / 龜木幸逢知我鮑
머리가 다 희어지도록 귀전부를 못 짓네 / 白頭猶未賊歸田
[주-D001] 송도(宋都)의 여섯 익(鷁) :
《춘추》에, “여섯 마리 날아 송나라 수도를 지나가다[六鷁退飛 過宋都].”라는 기사(記事)가 있는데, 여기의 뜻은 출세하지 못하고 후퇴(後退)만 한다는 것이다.
[주-D002] 남관(藍關)의 눈 :
당(唐)나라 한유(韓愈)가 불골표(佛骨表)를 드리고 멀리 조주(潮州) 8천 리를 귀양가서 지은 시의 한 연(聯). “구름이 진령(秦嶺)에 비꼈는데 집은 어디에 있는고. 눈이 남관(藍關)에 쌓였는데 말도 걸음을 못 걷는다[雲橫泰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 했다.
[주-D003] 기국(杞國)의 하늘 :
기국의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 몸을 부칠 때가 없을까 조심하여 침식을 폐하였다는 옛말이 있다.
[주-D004] 포숙(鮑叔) :
춘추(春秋) 시대 때 제(齊)나라의 대부(大夫)로 관중(管仲)과 친하여 가난한 그에게 재물을 나누어주고 그가 갇히었을 때 환공(桓公)에게 천거하여 석방되게 하고, 환공을 도와 패업을 이루게 했다. 관중이 술회한 말에,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며, 나를 알아준 자는 포숙이다.” 하였다.
86.여강루(驪江樓)
허옹(許邕)
이바지하는 경치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 景物來呈非一端
이곳에 올라오니 얼굴에 펼 만하네 / 登臨是處可開顔
좋은 바람 가랑비는 나무에 서늘히 생겨나고 / 好風微雨涼生樹
지는 해 돌아가는 구름이 반쯤 산에 걸렸구나 / 殘照歸雲半隱山
해객의 뗏목은 은하수로 통하는 듯 / 海客査通銀漢上
신선의 피리소리가 하늘에서 내려오네 / 仙人笙降紫霄閒
가엾어라, 늙도록 벼슬 고삐에 얽매여서 / 可燐老被名韁縛
이 좋은 다락에 와서 겨우 반나절 즐기다니 / 只得樓中半日閑
[주-D001] 여강루(驪江樓) :
여주(驪州) 청심루(淸心樓)
[주-D002] 해객(海客)의 뗏목 :
해변(海邊)에 8월이 되면 어디선지 떼배가 왔다가 간다 한다.
87.영호루 차운(暎湖樓次韻)
전녹생(田祿生)
북으로 송도 바라보니 산이 겹겹 / 北望松都疊嶂多
누각이 높으니 나그네 한이 새삼 더해지네 / 樓高客恨轉來加
중선은 부를 지어 내 땅 아니라 했거니 / 仲宣作賦非吾土
강령은 돌아가길 생각하나 집에 정작 못 갔네 / 江令思歸未到家
버들도 흔드누나 시름속의 잔 가지를 / 楊柳自搖愁裏線
개나리가 피었군 난리 뒤의 첫 꽃이 / 辛夷初發亂餘花
어쩌면 저 강물을 봄 술로 변하게 하여서 / 若爲江水變春酒
가슴속에 쌓인 찌꺼기를 활활 씻어 버릴꼬 / 一洗胸中滓與査
[주-D001] 중선(仲宣) :
왕찬(王粲)의 자. 다락에 올라 고향을 생각하는 그의 〈등루부(登樓賦)〉에, “〈강산이〉 아름다우나, 내 고향이 아니로세.”라는 구절이 있다.
[주-D002] 강령(江令) :
육조(六朝) 양(梁)나라의 문인(文人) 강엄(江淹)이 동무령(東武令)을 지냈으므로 강령(江令)이라 한다. 고향에 못 돌아감을 슬퍼하는 시를 많이 읊었다.
88.계림동정(鷄林東亭)
전녹생(田祿生)
공문서 더미 속에 온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가 / 終日昏昏簿領閒
우연히 손 맞으러 성밖에 나왔네 / 偶因迎客出郊關
가는 물을 굽어보며 흐르는 세월 탄식하고 / 俯看逝水歎流景
청산을 마주 대하니 내 얼굴 부끄러워라 / 坐對靑山多厚顔
반월성 비었는데 강달만 희고 / 半月城空江月白
고운선이 간 뒤에 들구름이 한가하구나 / 孤雲仙去野雲閑
다시금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어 보노니 / 更尋陶令歸來賦
천고에 그 높은 풍을 뉘라서 따르리 / 千載高風未易攀
[주-D001] 고운선(孤雲仙) :
고운(孤雲)은 최치원(崔致遠)의 호인데, 그가 신선이 되어 갔다는 전설이 있다.
89.상승 경효왕 만장(上昇敬孝王挽章)
박상충(朴尙衷)
연저(원나라 왕의 저택)에 용잠하실 때부터 인심 쏠려 / 龍潛燕邸萃人心
첫 정사 어진 명성이 고금에 뛰어나셨네 / 初政仁聲冠古今
경연에서 홍범편의 지론을 듣자왔고 / 洪範經筵聞至論
종묘의 주현(종묘에 제사 지낼 때 쓰는 비파. 줄이 붉다.)은 끼친 음악을 듣자오네 / 朱絃淸廟聽遺音
적막한 산릉엔 슬픈 바람이 불고 / 山陵寂寞悲風起
처량한 전각에 백일이 잠겼구나 / 殿閣淒涼白日沈
24년 동안 성택에 젖사온 / 二十四年濡聖澤
신자들 어이하오리 눈물이 옷깃에 가득 / 可憐臣子淚盈襟
[주-D001] 경효왕(敬孝王) :
공민왕(恭愍王)
90.하남왕의 사자 검교 곽영석 구주를 보내며[送河南王使郭檢校永錫九疇]
박상충(朴尙衷)
하남에 정사를 나눠 맡아 군사를 통솔하니 / 分政河南獨總戎
중흥의 여러 장수들 모두 그 아래 서네 / 中興諸將盡趨風
천지가 정돈되어 높낮음이 나뉘었고 / 乾坤整頓分高下
강한이 조종하여 여러 나라 회동하네 / 江漢朝宗有會同
중한 책임 담당하는 이윤의 뜻 누가 알리 / 任重誰知伊尹志
시절이 위태하니 공명의 충성을 바치려 하네 / 時危自許孔明忠
돌아가거든 좋게 평남책을 협찬하소 / 君歸好贊平南策
청사에 꽃다운 이름 길이 전하리 / 靑史應傳不世功
[주-D001] 강한(江漢)이 조종 :
강수(江水)과 한수(漢水)가 바다로 모여든다[江漢朝宗于海]”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여러 제후(諸侯)들이 천자(天子)를 우러러 보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91.정선군 차운(旌善郡次韻)
허소유(許少由)
궁벽한 땅에 뉘 능히 다닐쏜가 / 地僻誰能取次行
며칠 달려서 겨우 이 강성에 왔네 / 驅馳倂日得江城
개 이빨마냥 뻗친 길을 고단역(춘천(春川))이 얼마인고 / 犬牙當路高丹遠
미인 눈썹 공중에 뜬 듯 태백산이 비꼈네 / 娥黛浮空太白橫
냉담으로 기쁨 삼으니 시속과는 어긋나나 / 冷淡爲歡違俗尙
한가롭게 자적함이 이 나의 진정이네 / 優游自適是眞情
박토에 세는 무거워 살길 없는 백성들 / 土墝賊重流亡遍
집집이 산벌 꿀 짜는 걸 차마 눈으론 못 보리 / 忍見家抽石蜜淸
…………………………………………………
제15권 끝.
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