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
김은정
아빠를 찾아 야생의 잠베지 강에 왔는데 여전히 아빠는 없었어요
없어서 혼자 터벅터벅 걷다가 파란 물웅덩이에 빠지고 진흙을 뒹굴다 악어한테 쫓기고 뱀을 만나 숨마저 빼앗기고
그렇지만 내 길은 언제나 아빠에게 물가로 이어진다는 빅토리아 폭포 소리가 또 들려왔어요
그 재주로 붉은 아까시나무 꼬투리열매를 따 먹고 다시 수천 년을 걸었나요?
신출내기 치타와 하이에나 고슴도치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춤추는 그 길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새의 무덤 앞에서 울기도 했나요? 사자의 포효에 두려워 떨기도 했나요?
협곡의 물안개 사이로 아빠의 증거 같은 무지개가 떠올라요 그 끝에 피어난 흰 꽃을 찾아 다시 룬데강으로 걸어요
걷고 또 걷지만. 거기에도 아빠가 없다는 것 아빠 자궁 속을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고 있다는 것과 바람 불 때마다 마주치고 있잖아요
아빠의 딸로 태어나 아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이 여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나를 앞질러 가는 아빠의 시간에 대해서도
믿음뿐인 이 여정에서
----김은정 시집 {아빠 찾기}에서
모든 종교에는 세 가지의 사회적인 기능이 있다. 첫 번째는 우리 인간들의 희망과 소원에 맞닿아 있고, 이 제의적 기능은 내세의 천국이나 극락의 세계에 맞닿아 있다. 두 번째는 우리 인간들의 삶의 지혜를 창출해낼 수 있는 교육적 기능에 맞닿아 있고, 우리 인간들은 이 교육적 기능을 통해서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사상과 이론의 정립)을 펼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우리 모두가 다같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수 있는 축제적 기능에 맞닿아 있고, 우리 인간들은 이 축제적 기능을 통해서 모두가 다같이 ‘일심동체’라는 공동체 의식을 발전시켜 나간다.
김은정 시인의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상승주의 미학’의 극치이며, 짐바브웨 코끼리의 딸인 시적 화자가 아빠를 찾는다는 것은 수천 년의 시간과 역사를 지닌 대서사시적인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동화적 상상력은 어린 딸인 시적 화자의 언어 속에 나타나고, 신화적 상상력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빠를 찾는 수천 년의 시간과 역사 속에 나타난다. 김은정 시인의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문자 이전의 노래에 속하며, 따라서 김은정 시인은 “아빠를 찾아 야생의 잠베지강에 왔는데 여전히 아빠는 없었어요”라는 구어체의 시구들로 그 시적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만일, 그렇다면 아빠란 누구이며, 도대체 왜, 아빠 찾기이며, “그 재주로 붉은 아까시나무 꼬투리열매를 따 먹고 다시 수천 년을 걸었나요?”라는 시구에서처럼, 아빠 찾기의 여정은 그토록 멀고 험난하기만 한 것일까? 아빠란 생물학적으로 어린아이의 아버지이지만, 그러나 이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역사 철학적으로 어린아이의 보호자라고 할 수가 있다. 어린아이는 나약하기 때문에 보호자가 필요하고, 따라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더없이 승화되어 신적인 존재가 된다. 브라만, 야훼, 제우스 등이 그것을 말해주고, 부처, 예수, 알라 등이 또한, 그것을 말해준다. 아버지는 전인류의 아버지이자 스승이고 최후의 심판관이며, 우리 인간들은 이 아버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신들은 아버지가 성화된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김은정 시인의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아빠를 찾아가는 ‘존재론적 모험’을 노래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전인류의 아버지이자 스승이며 최후의 심판관인 아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러나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고, 따라서 “아빠의 딸로 태어나 아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이 여정은 끝나지” 않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전지전능한 아빠의 존재를 믿어야 하고, 아빠의 존재를 믿어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상승주의 미학’ 속에서 그 모든 인식론적 장애물과 난관들을 다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높이 높이 끌어올리게 된다. 아빠 찾기는 자아 찾기이며, 자아 찾기는 자기 스스로 아빠가 되고,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속의 신도 그의 분신에 지나지 않으며, 미켈란젤로의 그림 속의 신도 그의 분신에 지나지 않는다. 베토벤의 음악 속의 신도 그의 분신에 지나지 않으며, 호머의 대서사시 속의 신들도 그의 분신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부처는 없고 중만이 있으며, 예수는 없고 목사만 있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아빠 찾기는 자아 찾기이며, 자아 찾기는 자기 스스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짐바브웨의 어린 코끼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야생의 잠베지강을 건너고, “혼자 터벅터벅 걷다가 파란 물웅덩이에 빠지고 진흙을 뒹굴다 악어한테 쫓기고 뱀을 만나 숨마저도 빼앗”긴다. “빅토리아 폭포”를 지나 “그 재주로 붉은 아까시나무 꼬투리열매를 따 먹고 다시 수천 년을 걸었”고, “신출내기 치타와 하이에나와 고슴도치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춤추는 그 길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새의 무덤 앞에서 울기도” 했던 것이다. 사자의 포효 소리에 두려워 떨기도 했지만, 이 모든 악전고투 끝에 “협곡의 물안개 사이로 아빠의 증거 같은 무지개”를 보았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아빠는 없었던 것이다. “걷고 또 걷지만. 거기에도 아빠가 없다는 것, 아빠 자궁 속을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지만, 그러나 “아빠의 딸로 태어나 아빠의 품에 안길 때까지 이 여정이 끝나지 않는다는” ‘아빠 찾기’는 어린 딸아이의 동화적 주제에서 이제는 김은정 시인의 ‘신화적 주제’로 수직 상승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은정 시인의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동화적 상상력에 기초한 우화이기 때문에 더없이 밝고 명랑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 ‘아빠 찾기’가 단순한 생물학적인 아빠 찾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을 찾는 과정이기 때문에 역사 철학적이고도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그 깊이를 더하게 된다.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야생의 잠베지강에서 천하제일의 빅토리아 폭포까지, 천하제일의 빅토리아 폭포에서 룬데강까지 그 무대배경도 장중하고 화려하며, 잠베지강, 악어, 치타, 하이에나, 고슴도치, 사자 등의 등장인물도 다양하고, 상징과 은유 속의 이야기와 그 반전 속에, 수천 년의 시간과 역사적 전통을 전개시킨 대서사시적인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김은정 시인의 [짐바브웨 코끼리의 아빠 찾기]는 ‘미래의 나’를 찾는 존재론적 모험이며, 미래의 ‘나’는 존재의 탈을 벗고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신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아빠는 잠베지강에도 없고, 빅토리아 폭포 속에도 없다. 아빠는 아빠의 증거같은 무지개 속에도 없고, 룬데강 속에도 없다. 아빠는 무지개이고 환영이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이상과 믿음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아빠는 동화 속에도 존재하고, 아빠는 신화 속에도 존재한다. 아빠는 시와 예술 속에도 존재하고, 아빠는 정치와 경제 속에도 존재한다. 모든 아빠 찾기는 ‘미래의 나’인 아빠 찾기이며, ‘미래의 나’인 아빠는 두 아이를 낳으면서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첫 번째 아이는 생물학적인 아이(후손)이고, 두 번째 아이는 정신적(철학적)인 지혜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되고, 새로운 인간의 시대는 새로운 사상과 이론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시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빠 찾기는 ‘미래의 나’를 낳고, ‘미래의 나’는 육체적인 아이와 정신적인 아이를 낳으며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간다.
아빠 찾기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기 위한 ‘입문의례과정’이며, 이 세상의 최고급의 예술은 ‘상승주의 미학’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