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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 고양이 사육 일기
김 선 구
어느 날 웬 여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실험실에 고양이를 키우시지요?” “예, 그렇습니다만.” “고양이가 새끼 낳는 기계입니까?” 첫마디부터 시비쪼다. “무슨 말씀인지요?” 당황하여 되묻자. “교수님 기르고 있는 고양이가 무려 세 번이나 새끼를 낳았잖아요.” “그렇지요, 제 때에 새끼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그렇지만 고양이가 너무 가련하지 않으세요?” 작심하고 따지려는 태도여서, 학생들에게 자세한 내역을 물어보고 전화하겠다하고 끊었다.
실험실에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은 뜻밖이었다. 지인으로부터 고양이를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였다. 사연인 즉 직장생활 하는 아들이 혼자 있기가 적적하다며 고양이 한 마리를 사다 키웠다. 그런데 근무부서가 바뀌면서 출장 갈 일이 많아지자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고 집으로 가져왔다. 그의 어머니가 처음에는 펄쩍 뛰었지만 관리해주다 보니 차차 정이 들었다. 그렇지만 계속하여 집에서 키울 입장이 못 되고, 아무에게나 넘길 수도 없었다. 믿고 맡길 만한 새 주인을 찾아 달라고 부탁해 왔다.
할 수 없어 실험실에 있는 대학원생인 L군에게 사정을 설명했더니 자기가 책임지고 잘 키울 터이니 데려와 달라고 했다. 실험실 한 귀퉁이에 고양이 집을 마련하였다. 실험실에 고양이를 입주 시켰더니 소문이 학과 전체에 퍼져 학생들의 방문이 잇따랐다. 젊은 학생들이 고양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또한 대단하였다. 고양이는 혈통이 등록되어 있어 비싼 고양이었다. 이름은 “마루“이고, 몸이 길쭉하여 날씬하고, 푸른 사파이어 눈에 얼굴은 역 삼각형의 샴 고양이었다.
샴 고양이는 일찍이 태국에서 왕궁의 수호를 위하여 사육되었다. 그래서 족보 있는 고양이들 중 가장 역사가 길다. 강한 자존심과 오만하고 무례한 성격, 그리고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노인들 보다는 일거리가 없어서 적적한 사람들에게 적합한 고양이로 알려졌다. 샴 왕국에 근무하던 영국의 영사가 왕궁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유럽에 소개하였고, 그 후 엄청난 인기를 획득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고양이를 처음 본 영국의 여왕이 사파이어 색 눈에 매료되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마루와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선 잠자리와 화장실 그리고 발톱갈이 판을 마련하였다. 모든 고양이가 그렇듯이 마루는 용변을 반드시 화장실에서 봤다. 이것은 고양이들의 생태적 습성이다. 화장실 모래 속에 배설물을 숨겨버리기 때문에 가끔씩 주걱으로 골라내 버리면 되었다. 고양이는 청결한 동물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앞발에 침을 발라 세수를 하고 까칠까칠한 혓바닥으로 빗질하여 몸을 단정하게 정리하였다. 그러한 모습들이 귀여웠다. 어린애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실험실에 가서 가까이 해보려고 부르면 딴전을 피우고 멀리 가버렸다. 모른 채 하고 앉아 있으면 슬며시 다가와서 무릎위에 앉았다. 껴안아주면 눈을 살포시 감고 행복한 모습을 지었다. 왜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좋아하게 되는지 이해할만 했다. 어린이들은 신기하다는 호기심에서, 노인들은 귀엽다는 선입감에서 좋아하게 마련이라 생각되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고양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들여다 볼 뿐이었지만 L군은 목욕시키고 빗질해주며 온갖 정성을 쏟으며 귀여워했다.
나는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었다. 어렸을 때 살던 집은 화장실이 멀리 있었다. 밤에 화장실에 가려면 뒤뜰에서 들리는 도둑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불길한 귀신소리 같아 무서웠다. 또 동화에서 읽은 고양이는 재앙을 가져오는 동물로 묘사되었다. 그래서 고양이를 키운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마루를 가까이 하면서 고양이에 대한 나의 선입관이 서서히 퇴색되어 갔다.
드디어 마루가 어른으로 성숙하여 짝을 찾기 시작 하였다. 수컷을 찾는 구애의 목소리는 시끄럽고 듣기가 거북했다. 이 때문에 때로 고양이들이 부정적인 동물로 묘사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L군이 인터넷에서 신랑감을 물색하여 중매역할을 하였다.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를 주는 조건으로 혼사가 이루어졌다. 마루가 부산 시댁으로 가서 신랑과 함께 3일 간 신방을 치르고 돌아왔다. 그로부터 두 달 후 마루가 여섯 마리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맹목적으로 어미젖을 빨다가 10여일 후 눈을 떴다. 생명체의 약동을 보는 듯하였다. 아장아장 걷거나 고단하여 잠든 모습, 자라면서 형제들 간에 장난치는 모습들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이런 모습들을 사람들이 보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애완동물을 사육할 때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들이 조사 발표되었다. 우선 청소년들에게는 정서를 함양시켜주고, 노인들은 소외감을 해소시켜주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고 했다. 또한 가족 간에 가교역할을 통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환자들에게는 생존기간을 늘려준다고도 했다. 특히 청소년들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키워주고, 양노원의 노인들에게 삶의 의욕을 북돋우어 준다고 했다. 고양이를 매체로 우리 실험실도 화기가 돌았다.
이제 어미로부터 젖을 뗄 때가 되었다. 새끼를 낳고 40여일이 지나면 어미의 젖이 마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어미 고양이가 다음 번식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젖을 뗀 새끼들을 분양한다고 광고 하였다. 암컷은 한 마리에 25만원, 수컷은 20만원이라고 인터넷에 띄우자 곧 분양이 이루어졌다. L군에게는 목돈이 생겼다. 나는 실험실에서 고생하는 L군에게 이런 부수입이라도 올릴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음 번식 기에도 새끼 고양이를 여섯 마리 낳았다. 한 번 번식요령을 터득하더니 L군 혼자서 잘해내었다. 이제 그는 고양이 사육전문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마루를 실험실에 두지 말고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게 하였다. 고양이를 실험실에 키우고 보니 발톱으로 실험대와 의자들을 흠집을 내어 놓았다. 혹시라도 고가의 기자재를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이로써 마루와 나의 관계는 마무리 되었다고 여겼다.
그런데 듯밖에 고양이를 학대한다고 항의전화를 받았다. L군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는 마루를 집에 데리고 가서 다시 번식을 시켰다. 그리고 분양광고를 내면서 연락처를 나의 실험실로 하였다. 유심히 광고를 살펴보던 어느 동물애호가(?)가 내게 항의 전화를 한 것이 분명했다. 실험실에 고양이를 키우면서 무리하게 번식시키고, 부수입이나 챙기는 몰상식한 교수로 오해 받은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하였다. 더 이상 나의 실험실과 마루를 연결시키지 말도록 당부하였다.
그 이후 마루에 대하여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제 마루도 갱년기를 거쳐 노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평생 동안 얼마나 많은 자식을 생산했는지, 번식을 잘하여 주인에게 더 많은 소득을 올렸는지, 아니면 그 이후 번식을 중단 했는지 알지 못하였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이렇게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은 것은 특별한 인연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L군 대학원을 수료하여 모 기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그를 만나면 샴 고양이 마루에 대한얘기를 화제에 한 번 올려볼 참이다.
첫댓글 세상에는 남의 고양이 번식하는 횟수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나 봅니다. 아마도 애완동물도 잘 보살피려면 다른 일은 포기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샴 고양이에 대하여 많이 배웠습니다. 보살핌 덕분에 샴 고양이 가족들도 널리 퍼져 주인에게 기쁨을 선사해 주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애완동물을 사육할 때 인간 생활에 미치는 영향 이 여섯가지나 되는 유익함이 있군요. 그리고 부정적인 문제점도 연구해야 할 부분일 듯 합니다.저는 개, 고양이, 소들을 귀여워한 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냄새를 싫어 했으니... 그림 잘 그리는 친구가 그려 준 천사나 예쁜 사람들 그림을 가위로 오려 책갈피에 넣어두고 수시로 꺼내보는 것이 내 낙이었던 것 같은데....
애완동물의 가장 큰 문제는 배설물 처리와 소음 그리고 동물유기가 될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법적 제도적 통제와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고양이에 대하여 잘알지도 못하면서 선입견이 좋지았는데 많이 해소 되었습니다. 농협 양곡창고등에 고양이를 배치한 경험은 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지금 길고양이가 들판을 헤맨답니다. 남편이 들에 나가면 먹을걸 가지고오는지 기다린다고 합니다. 들에 나가는 남편에게 밥 한덩어리 생선 찌꺼기 챙겨보내니 차가 서면 쫓아온다고 합니다저러다 새끼 낳으면 어쩔꼬 걱정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샴 고양이에 대한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