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는 조선을 식민지 보다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처럼 서로 타협해서 같이 발전하는 연합국가를 생각했던 같아요. 사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된데에는 스코틀랜드와의 불필요한 대립과 전쟁을 피하고 갈이 손잡고 인도로 미주로 아프리카로 진출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많은 아일랜드인도 영국 식민지 건설에 동참했고 그 결과 그들도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되었지요. 인도주둔 영국군의 80% 이상 아일랜드인이고, 식민지 관리인들은 모두 스코틀랜드인. 이토가 생각했던 것은 조선과 일본이 동반자되는것이 더 큰 이익이라 생각했던 같아요.
매우 다루기 힘든 소재였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선생님께서 다루신 내용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실제로 일본내에서도 이토히로부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어왔고 그가 입양되기전 본래 출신이 조선계였고 그에따라 조선에 우호적이었다고 분석하는 일본학자들도 있는걸로 압니다.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을 이해한다면 이토가 설치한 통감부가 후에 설치되는 총독부와는 성격이 전혀 다름을 알수가 있지요. 조선의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조선의 군대를 육상병력 중심으로 근대화 시켜 러시아의 남하와 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 부합하죠. 그것이 이토의 이상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역시도 사카모토료마와 같은 심부름꾼일 거라생각합니다.
안그래도 안중근 아들이 이토 아들을 찾아서 과거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걸 들었을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네요... 요즘들어 이런 내용을 알게 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제가 아는 역사 지식과의 괴리감이 커서 과연 내가 얼마나 왜곡된 역사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알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합병하지 않은 것은 당시 일본의 경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서 지금 북한과 남한의 통일이 어렵듯이 조금 더 성장한 후에 합병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정한론자들에게도 그렇게 이유를 대며 불만을 잠재워 왔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봤던 것이 오래되기도 해서 제가 틀릴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금 더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조선에 비교적 호의적 이었다 해도 결국은 속국화 하려고 헀고 그 부분에서 자국(일본) 에 이득을 취하려고 한 양반이에요 이건 변하진 않음 한반도를 병합하는데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이토 스스로 말헀듯 많은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수 있었고 동시에 직접 경영은 일본으로서도 경영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 해서 임 투자 비용 대비 이득이 크지 않아서 죠 (일본도 경제 상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음 직접 통치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줄수 있죠 식민지 통치는 쉬울거 같아도 결코 만만 하지 않음) 직접 통치 않으려고 했다고 한반도의 번영과 안정을 바란건 아니라고 봄. 뭐 그럼에도 이토를 너무 미화하거나 나쁘다고 탓할 인물은 아님.. 열강 시대에 일본에서 나온 위인은 맞지
우선 우연히 이 채널을 접하고 여럿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후에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내가 왜곡된 역사를 배운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이 영상을 보고 그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설명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위하고 아끼는 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이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급진적인 한일병합을 반대했던 거지 한일병합 자체를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영상에서 설명한 것과 달리 한국 병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뒤 통감 자리에서 사임했으며 4개월 뒤에 하얼빈 의거가 발생한 것입니다. 즉,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한일병합이 일어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가 죽지 않았어도 결국엔 한일 합병은 정해진 미래였던 것이에요. 우리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상 하나로 여러분의 역사관이 흔들리진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적 이념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처럼 생략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생략된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이런 식의 폄하하는 영상은 오히려 독입니다. 여러
이 영상을 보면서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이토가 조선이 독립하길 바랬다면 1907년 당시 조선 정규군을 굳이 해산시킬 이유가 있었냐는 겁니다. 당시 조선의 정규군을 해산 시킨것을 본다면, 이토는 한일합병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중파에 가까운 사람이고 이는 당시 일본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러일전쟁에서 막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청일 전쟁 승전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받아낸 배상금을 포츠머스 조약 때는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생긴 막대한 부채를 근근히 갚아야하는 처지의 일본이 만약 무리하게 조선을 합병했다간 일본 자체가 박살날 상황이기에 이토는 신중하게 조선을 합병하려고 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역사는 한쪽에 치우쳐서 공부하면 안된다. 사실 그대로를 알려줘야한다. 사실을 모를시 한쪽에 치우쳐서는 절대 안된다.
아마 이토히로부미가 일제강점기 이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 많을걸요
고종의 행적은 진짜 알면 알수록 가슴이 옹졸해진다.
1909년4월 이또히로부미 통감시 시행한 호주제또한 엄청난 개혁이였다 생각 합니다. 10%양반만쓰던 본관 쓰던 이름을 전국민이 만들어 쓰고 기록 하였습니다
이전 김돌쇠 ,쇠똥... 사라지고
한국의 현대화 시대에 지나온 구한말 상황을 용감하게 역사 현장을 파헤치다
영상물 제작자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이토는 조선을 식민지 보다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처럼 서로 타협해서 같이 발전하는 연합국가를 생각했던 같아요. 사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된데에는 스코틀랜드와의 불필요한 대립과 전쟁을 피하고 갈이 손잡고 인도로 미주로 아프리카로 진출했기 때문이죠. 심지어 많은 아일랜드인도 영국 식민지 건설에 동참했고 그 결과 그들도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되었지요. 인도주둔 영국군의 80% 이상 아일랜드인이고, 식민지 관리인들은 모두 스코틀랜드인. 이토가 생각했던 것은 조선과 일본이 동반자되는것이 더 큰 이익이라 생각했던 같아요.
이토히로부미 는 대영제국 에 유학 가서 영국이 통솔하는 식민지국 에 돈 과 인력 재정 의 단점 을 파악 했기에 조선 식민지화 를 거부한 인물
인데 이나라에선 이부분을 감추고있었음.
https://www.youtube.com/watch?v=XkswK-qeBfQ
만약에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PLAY
매우 다루기 힘든 소재였을텐데 수고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선생님께서 다루신 내용에 많은 부분 공감합니다. 실제로 일본내에서도 이토히로부미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어왔고 그가 입양되기전 본래 출신이 조선계였고 그에따라 조선에 우호적이었다고 분석하는 일본학자들도 있는걸로 압니다. 당시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그레이트 게임을 이해한다면 이토가 설치한 통감부가 후에 설치되는 총독부와는 성격이 전혀 다름을 알수가 있지요. 조선의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조선의 군대를 육상병력 중심으로 근대화 시켜 러시아의 남하와 청을 견제하려는 목적에 부합하죠. 그것이 이토의 이상을 실현 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역시도 사카모토료마와 같은 심부름꾼일 거라생각합니다.
맞아요 이토 히로부미는 온건파였으며 친한파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 의사의 총격에 사망하고 이 사건이 오히려 정한론자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죠
민족의식도 좋지만 역사는 객관적으로 봐야합니다
안그래도 안중근 아들이 이토 아들을 찾아서 과거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걸 들었을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는걸 알게되었네요... 요즘들어 이런 내용을 알게 될 수록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제가 아는 역사 지식과의 괴리감이 커서 과연 내가 얼마나 왜곡된 역사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전 오히려 일본인인 이토가 절대 조선을 위해서 저런 행동들을 했다고 생각이 들진 않고
조선을 총칼 무력으로 급진적으로 확 병합하는거보단
챙겨주고 존중할거 존중해주고나서 천천히 병합시키려고
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나라가 500년간 쇄국하고 이웃과 교류하지 않으면 무슨일이 생기는지 가르치지 않는게 교육의 문제이지요.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 쌍둥이 빌딩을 폭파한거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거나 별반 차이 없음.
그래서 이승만은 김구한테 미련하게 폭력을 쓰지마라 쓰지마라 했던것임.
결국 이승만의 외교 지향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였음.
저는 조금 다르게 알고 있는 부분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바로 합병하지 않은 것은 당시 일본의 경제력이 그에 미치지 못해서 지금 북한과 남한의 통일이 어렵듯이 조금 더 성장한 후에 합병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정한론자들에게도 그렇게 이유를 대며 불만을 잠재워 왔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봤던 것이 오래되기도 해서 제가 틀릴 경우도 있습니다만 조금 더 알아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조선에 비교적 호의적 이었다 해도 결국은 속국화 하려고 헀고 그 부분에서 자국(일본) 에 이득을 취하려고 한 양반이에요 이건 변하진 않음 한반도를 병합하는데 부정적이었던 이유는 이토 스스로 말헀듯 많은 반발과 저항에 직면할수 있었고 동시에 직접 경영은 일본으로서도 경영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 해서 임 투자 비용 대비 이득이 크지 않아서 죠 (일본도 경제 상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음 직접 통치는 많은 경제적 부담을 줄수 있죠 식민지 통치는 쉬울거 같아도 결코 만만 하지 않음) 직접 통치 않으려고 했다고 한반도의 번영과 안정을 바란건 아니라고 봄. 뭐 그럼에도 이토를 너무 미화하거나 나쁘다고 탓할 인물은 아님.. 열강 시대에 일본에서 나온 위인은 맞지
우선 우연히 이 채널을 접하고 여럿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후에 일제강점기에 대해서 내가 왜곡된 역사를 배운 것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만 이 영상을 보고 그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영상에서 설명한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을 위하고 아끼는 것처럼 묘사되었는데 이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급진적인 한일병합을 반대했던 거지 한일병합 자체를 반대했던 것이 아니었어요. 영상에서 설명한 것과 달리 한국 병합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한 뒤 통감 자리에서 사임했으며 4개월 뒤에 하얼빈 의거가 발생한 것입니다. 즉,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기 때문에 한일병합이 일어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가 죽지 않았어도 결국엔 한일 합병은 정해진 미래였던 것이에요.
우리 역사를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상 하나로 여러분의 역사관이 흔들리진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배운 역사는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토 히로부미의 정치적 이념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처럼 생략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생략된 이야기를 접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이런 식의 폄하하는 영상은 오히려 독입니다. 여러
이토는 합병에 처음엔 반대한거 맞습니다,,,러일전쟁으로 러시아식민지를 막앗는데 고종이 헤이그특사로 러시아황제에게 보내는걸 보면서 합병에 찬성하기 시작햇죠
차라리 이토의 생각처럼 한반도는 보호국으로 남기는 게 더 나앗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시 조선 말기는 사람이 살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부패하고 비참했으니깐요
실제로 한복도 입었고 나름대로 한반도를 개혁시킬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네요
이 영상을 보면서 한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은 이토가 조선이 독립하길 바랬다면 1907년 당시 조선 정규군을 굳이 해산시킬 이유가 있었냐는 겁니다. 당시 조선의 정규군을 해산 시킨것을 본다면, 이토는 한일합병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신중파에 가까운 사람이고 이는 당시 일본의 현실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러일전쟁에서 막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한반도와 만주에서 활동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청일 전쟁 승전 이후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받아낸 배상금을 포츠머스 조약 때는 받지 못했습니다.
전쟁 기간 동안 생긴 막대한 부채를 근근히 갚아야하는 처지의 일본이 만약 무리하게 조선을 합병했다간 일본 자체가 박살날 상황이기에 이토는 신중하게 조선을 합병하려고 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