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 모델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나 임무 따위에서 본받을 만하거나 모범이 되는 대상을 일컷는다. 그냥 닮고 싶은 사람이다. 어릴적 롤 모델은 상당수가 아버지 어머니였다. 그러다가 부모가 그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는 것을 깨닳는 순간 위인들이 거론했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그 관련 위인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결혼 대상자는 바로 자신이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빠 엄마가 대부분이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해당되었다.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정말 닮고 싶은 인물들이었다는 말이다.
롤 모델의 상징으로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미국의 나다니엘 호손이 185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미국의 작은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이라는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다. 이 동네에 사는 아주 평범한 어린이 어니스트는 어릴 때부터 이 바위산을 바라보고 살았다. 어머니로부터 언젠가 저 바위산과 닮은 얼굴을 가진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것이고 그 인물은 나라전체를 평온하고 행복한 장소로 만들 것이다라고 들었다. 어니스트는 그 이후 온갖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경제인, 군인, 정치인, 시인, 종교인 등 수많은 인물들은 자신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으스댔다. 어니스트는 그때마다 실망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언젠가는 필히 제대로된 큰 바위 얼굴이 도착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살아간다. 어니스트도 늙고 힘든 상황에서도 언젠가 등장할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는 중 동네사람들은 그 어니스트의 모습에서 큰 바위 얼굴을 발견한다.
세상 어느 분야에서든 큰 바위 얼굴 그러니까 롤 모델이 없을까. 모든 분야에서 그 당시까지 멋지게 자신의 분야를 이룬 그런 사람들을 롤 모델로 삼는다. 현재 세계 스포츠의 핵이라고 하는 세계 프로축구에서도 롤 모델은 당연히 존재한다. 펠레를 롤 모델로 삼은 마라도나, 그리고 마라도나를 롤모델로 삼은 메시, 메시를 롤모델로 삼은 네이마르, 반니 스텔루이를 롤모델로 삼은 손흥민, 네이마르를 롤모델로 삼은 이강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롤모델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롤 모델은 살아있는 신이다. 절대적 능력자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롤모델이 사라진 집단도 많다. 내세울 인물이 없기때문이다. 롤 모델이란 것은 한두개 특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해당분야의 실력뿐 아니라 선한 영향력 그리고 타인을 우선하는 이타주의가 결합하지 않으면 결코 롤 모델로 인정받지 못한다. 큰 바위 얼굴처럼 말이다.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인성이 결핍되면 그냥 월클에 불과하다. 롤 모델은 절대 될 수 없다. 그래서 롤 모델은 희귀하다. 당연히 귀하다. 그래서 더욱 칭송을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롤 모델이 존재하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롤모델... 나아가 큰 바위 얼굴로 생각하는 그런 인물을 우리는 지니고 있는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이 존재하지만 현대인들이 롤모델로 삼기에는 그들의 존재 시간이 오래되었다. 적어도 일제 강점기 그뒤 해방후 우리들에게 롤모델로 삼을 그런 인물을 우리 사회는 가지고 있는가.물론 각자의 취향에 따라 롤모델이 각양각색이겠지만 적어도 상당수 한국인의 마음속에 큰 바위얼굴로 남는 인물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나도 한국에서 지지율 50%를 넘기며 퇴임하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한국인의 반은 칭송해도 한국인의 반은 폄하한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죄송하지만 롤모델 즉 큰 바위 얼굴감은 아니다. 큰 바위얼굴은 이육사 선생의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아니라도 박수를 받으며 퇴임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인 특성상 나무에 올린 뒤 흔들고 나무에서 떨어지거나 내려오면 그냥 깔보는 풍토가 고착화되어 있다. 슬프지만 말이다.
너무도 심한 갈등속에 한국의 인물들은 반쪽짜리 인물이 되고만다. 그래서 지지율 50%를 넘는 퇴임 지도자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어느 학자의 지적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롤모델이 사라지면 그 사회는 희망을 잃는다. 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의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없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그 인물의 언행을 본받으면서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고 앞으로 살아야할 방향을 삼을 그런 인물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암담한 현실이다. 어니스트가 저녁무렵 황혼이 지는 큰 바위얼굴 아래에서 낙심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와 흡사하다. 이런 상황은 한국뿐 아니고 미국 중국 유럽 등등 모든 나라가 공통되어 있다. 롤 모델이 사라지는 사회 그런 지구촌의 미래는 암담하다. 롤모델은 그냥 생기는 것이 정말 아니다. 그런 롤모델 그런 큰바위 얼굴이 등장하기를 바라며 노력하는 그런 사회 그런 사회구성원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 것이다. 인재를 키우고 기다리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자신들의 리더를 그냥 지역감정으로 순간적인 욱하는 성질에서 판단하는 국민들은 평생 제대로 된 롤모델 그리고 큰 바위얼굴을 그들편에 두기 불가능할 것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3년 9월 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