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여간들 엇더리
[풀이]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아,
빨리 흘러간다고 자랑 마라.
한 번 넓은 바다에 다다르면 다시
청산으로 돌아오기 어려우니
밝은 달이 산에 가득 차 있는 이 좋은
밤에 나와 같이 쉬어감이 어떠냐?
정가 김월하
김난영, 김희영
황진이는 조선 전기의 유명한 기생으로 본명은 황진, 일명 진랑, 기명은 명월입니다. 개성 출신으로 확실한 생존 연대는 미상입니다. 그녀의 사료는 직접적인 건 없으며 간접 사료인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진이가 기생이 된 동기는 15세기경에 이웃 총각이 혼자 황진이를 연모하다 병으로 죽자 서둘러서 기생으로 들어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용모가 출중하며 뛰어난 총명과 민감한 예술적 재능 가지고 있어 그녀에 대한 일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서사에도 정통하고 시가에도 능하여 당대의 석학 서경덕을 사숙하여 거문고와 주효를 가지고 그의 정사를 자주 방문하여 당시를 전공하였다고도 합니다. 당시 1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이라 불리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걸로도 유명하며, 서경덕을 유혹하려 하였으나 실패한 뒤에 사제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박연폭포, 서경덕, 황진이를 송도삼절이라고 합니다.
'청산리 벽계수야'는 당시 종친의 한 사람인 벽계수라는 사람이 하도 근엄하여 여자를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높았다고 합니다. 벽계수는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황진이를 보더라도 유혹받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마침 그때 벽계수가 개성에서 달밤에 나귀를 타고 만월대를 산책할 때에, 소복 차림을 한 황진이가 이를 시험해 보려고 그에게 다가가 이 노래를 건네었더니 그토록 큰소리를 치던 벽계수는 황진이의 시재와 미모에 끌려 황진이의 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흥을 즐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