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십자가에 달린 구세주 예수님 몸 구약성경 곳곳에서 구세주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분이 오시면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게(마태 11,5; 이사 26,19; 29,18-19; 35,5-6; 61,1)” 된다. 실제로 예수님을 만난 모든 이들이 회복되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하느님을 몰라도 알 수 있는, 모든 사람이 바라는 거다. 모든 사람이 온전해지고, 마귀들이 쫓겨나고, 불의한 이들이 벌 받는 거 말이다. 성경은 또 메시아의 품성에 대해서 예언한다. 이사야는 ‘주님의 종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은 노래 4개를 예언한다. 그중 첫째 노래는 메시아는 이런 분이라고 알린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 12,18-21; 이사 42,1-4).” 예수님은 바리사이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마태 12,15). 불의한 이들과 맞서 싸우지 않고 그 자리를 피하셨다. 비겁한 게 아니라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하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거다. 그분이 구세주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같지 않다. 우리는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구세주가 악당들을 모두 물리치는 걸 상상하지만 하느님의 영은 그분을 물러나 다른 곳으로 가게 이끄셨다. 그분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불의한 현실에 답답하고 화난다. 불의한 이들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싶어서 마음과 온몸이 뜨거워진다. 자신이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글거리는 분노 안에, 시끄러운 곳에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다. 하느님이 엘리야를 만나셨을 때, 강풍과 지진 그리고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말씀하셨다(1열왕 19,11-12). 예수님은 갈등과 싸움을 피해 물러나셨다.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이도 구원받아야 하는 불쌍한 이들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그분, 예수 그리스도님이 우리 구세주 메시아다.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다.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이사 52,13-15).”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요한 3,31).” 십자가의 예수님이 구세주 메시아다. 그것이 신비인 건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보게 됐고, 그분처럼 사랑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구원 방식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사랑이 아니면 생명을 잉태하고 낳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요 어머니이신 하느님, 그러나 실제로는 그 이상이신 하느님, 볼 수 없고 알아들을 수 없지만 믿음으로 하느님을 압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 몸에서 슈퍼맨이 아닌 참 하느님을 믿음이 생겨납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깊고 순수한 믿음이 자라나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