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일시: 7월 1(월) ∼ 7월 5일(금) / 저녁 7시 ∼7시 30분
기획의도: 한국축구의 신화, 그들은 가난과 눈물의 아들이었다!
월드컵 4강의 위업을 달성한 자랑스런 한국축구팀.
그 신화의 주역들 중 차세대 한국축구의 리더로, 월드스타로 급부상한
젊은 선수 5인방 박지성, 설기현, 이천수, 김남일, 이영표의 부모와 가족들을 통해 그들의 감춰진 삶을 밀착 취재한다.
아직 20대 초반, 무엇이 그들을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는가 .
그칠 줄 모르는 그들의 투혼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작은 체구와 평발! 신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남모르는 땀과 눈물을 흘려야 했던 박지성!
가난한 살림에 입 하나 덜기 위해서 축구부에 들어가야 했던 광부의 아들 설기현!
아버지의 실직으로 남이 버린 스타킹을 빨아서 신으며 축구를 했던 이천수!
막노동을 하는 부모님에게 돈을 안겨드리려고 웨이터 생활까지 했던 김남일!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허드렛일... 가난이 지긋지긋해 축구를 포기하려고 했던 이영표!
그들은 모두 가난의 아들이었고, 가난속에서 길을 찾았던 투혼의 아들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내 아들!
가난한 살림에 제대로 된 뒷바라지 한번 못했던 부모들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기까지 남모르는 한숨과 눈물을 흘려야 했던 사람들이다.
평발로 축구선수가 된 몸집 작은 아들을 보면서 늘 걱정과 한숨 속에서 살았던 박지성의 어머니
식구 하나 줄이겠다고 축구부에 들어간 아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설기현의 어머니
7년동안 빚쟁이에 쫒겨 다니면서 아들이 주워온 헌 스타킹을 빨아야 했던 이천수의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월드컵 경기를 하는 동안에도 공사장 함바집에서 밥을 지어야 했던 김남일의 어머니
오랜 막노동으로 몸이 아파 경기장에도 가보지 못한 이영표의 어머니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부모들이기에
아들을 보는 마음은 더 아프고 애처롭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이 캄캄해 보일 때에도 스스로 길을 찾아 우뚝 선 내 아들.
그래서 그 아들이 고맙다,미안하다.
자랑스런 아들을 보면서 이들 부모들이 느끼는 회한과 눈물, 기쁨 등을 담는다.
주요내용:
1부 (7월 1일 - 월)
준결승전을 끝내고 부모님을 만나자마자 터진 첫마디
'용돈 좀 주세요' 박지성
박지성과 그 부모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 것은 왜소한 체격조건이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머리 하나가 작을 정도여서 선발에서 탈락하는 것은 예사였고,
더구나 군대도 못간다는 '평발'의 소유자였다.
저런 체격으로 끝까지 축구선수로 뛸 수나 있을 것인가. 계속 축구를 하겠다는 아들을 보면서도 부모는 걱정이 끊이질 않았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학을 휴학하고 진출한 일본 무대에서였다.
편견과 소외감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던 것.
그런 아들을 보다 못해 어머니는 1년간 일본에 따라가서 밥을 해줘야 했다.
박지성이 연습하러 나가면 어린아들이 이국땅에서 소외감에 시달리는 걸 생각하면 혼자서 울기도 많이 했다는 어머니.
그러나 이제 일본에서도 박지성은 스타가 됐다.
독일과의 경기 다음날. 짧은 개인시간을 틈타 부모님을 만난
박지성이 한 첫마디는 '용돈 좀 주세요!' 였다.
그런데 수억원대의 몸값을 가진 박지성이 '용돈 좀 주세요'라니...
일약 스타덤에 오른 아들과 그런 아들 덕분에 겹치기 방송 출현중인 부모..
그러나 그 세 식구에게는 여느 가정과 다를 것이 없는 소박함이 있었다.
작은 눈에 더벅머리 청년 박지성과 그의 부모님을 만나본다.
2부 (7월 2일 - 화)
탄광에 아버지를 묻고 그 아버지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설기현
6월18일 이탈리아 전 후반 43분 극적이 동점골의 주인공 설기현.
한국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라는 명성이 서러울 정도로 경기내내
침묵과 부진에 빠져있던 설기현이 드디어 역사적인 "한방"을 터뜨렸다.
이날 설기현은 그라운드에 누워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의 눈물 뒤에는 바로 가난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 어머니가 있었다.
8살에 아버지가 탄광사고로 돌아가신 후 과일행상으로 생계를 이어오신 억척스러운 어머니. 고만고만한 아들 넷을 키우느라 가난을 헤어날 길이 없던 어머니는 '내 입이라도 덜려면 축구부에 들어가겠다'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설바우두' '설감자'라는 별명처럼 가난을 헤어날 길이 없었지만 어린 설기현이 늘 다짐했던 것은 '탄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자랑스런 아들이 되겠다'는 것.
다른 부모들처럼 뒷바라지를 해 줄 수 없었던 어머니는 지금도 알아서 커준 아들이 대견스럽기만 한데..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벨기에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들.
그런 아들과의 만남은 짧기만 하고..
옆에 두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더 잘 아는 어머니.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와 동행해 본다.
한국축구대표팀 히딩크 사단의 '샛별'이자 '당돌한 밀레니엄 스타' 이천수.
172cm, 63kg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라운드 여기저기를 누비며
예리하게 상대 빈틈을 파고드는 플레이로 대표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은 이천수.
지는 모습만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이천수.
독종, 악발이, 미꾸라지...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천수는 자기 앞에 온 공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
작은 전기회사의 노조위원장으로 20여년간 노조일을 해온 아버지.
그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실직한 노조간부를 어디에서도 써주지 않았던 것.
그렇게 시작된 이천수 가정의 가난은 당장 잠잘 곳, 한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궁핍했다. 7년동안 빚쟁이에 쫒겨 다닌 적도 있다.
축구화는 물론, 축구 스타킹 한 켤레 살 돈이 없어서 동기들이 신다 버린 스타킹을 가지고 와 어머니에게 빨아달라고 했던 이천수.
그 아들을 위해 가족들은 가난함 속에서도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형은 동생이 축구의 길을 가도록 고등학교마저 중퇴하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무릎 수술까지 했어야 했다.
이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의 뒤에는 언제나 묵묵히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형이 있는데... 그런 형을 위해 골을 쏘겠다는 이천수와 그의 형을 담아본다.
4부 (7월 4일 - 목)
'너만은 막노동꾼이 되어선 안된다, 아버지처럼 되지
말아라' 아버지의 눈물을 가슴에 담고 뛴 김남일
그라운드의 진공청소기라는 별명이 붙은 세계적인 스타들의 공격을 차단한 미드필더 김남일.
한국의 한 무명 선수에서 일약 주목받는 월드스타로 떠오른 그의 과거엔 지독한 가난과 방황이 있었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집에도 들어오지 못한 채 이 공사장 저 공사장을 돌아다니면서 함바집에서 밥을 지어온 어머니.
그런 부모님을 대신해서 어린 김남일은 할머니 손에서 커야 했다. 부모님이 그립고 가난한 것이 싫을 때마다 오기로 공을 찼던 김남일.
고등학교 때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너무 싫어 축구를 그만 두겠다고 팀을 이탈해서 한달간 방황한 적도 있다. 그때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는 여관에서 잠을 자며 웨이터 일을 하던 아들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다시 축구부로 돌아가 축구를 계속해라, 아버지는 막노동꾼이지만 너마저 막노동꾼으로 만들 수는 없다'
'컴펙트 사커'라는 별명을 얻고 월드컵 신화를 만들기까지, 김남일은 그날 아버지가 흘린 눈물, 너만은 막노동꾼이 되지 말라는 간청을 기억한다.
5부 (7월 5일 - 금)
거친 노동에 병들어 경기장을 한번도 찾지 못한 부모님.
이제 더 이상 눈물은 없다. 초롱이 이영표
포르투갈과의 경기 후반 25분. 박지성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한 이영표.
두 번의 벤치 신세가 답답했었는지 결국 이날 경기에서 결정골을 어시스트하는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또한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는 안정환의 골든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이영표의 활약은 계속 되었다.
6남매중의 막내인 이영표.
그의 가족들은 대한민국의 태극전사 이영표에게 한없는 미안함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허드렛일로 생활비를 벌던 어머니가 축구를 하는 아들에게 뒷바라지 한번 제대로 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이 싫어서,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오직 그 이유로 공을 찼던 이영표. 남들은 몰라도 부모님과 그 가족들만은 이영표의 가슴속에 있는 한과 투지를 안다.
그 아들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아들로 떠오르는 동안에도 오랫동안 거친 노동에 시달렸던 부모는 몸이 아파 경기장을 한번도 찾을 수 없었다.
아들의 영광을 미안함속에서 지켜보면서도 그 아들이 못내 자랑스럽고 고마운 늙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들의 감춰진 애환을 밀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