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심는 감나무
지석동
작은 마당이지만 봄이면 장미가 빨갛게 담을 넘고 자목련이 지붕 위로 쑥 올라
멀리서도 알아 보이던 집, 어느 날 3층 올리라는 말에 없어지고
골목에 가을 들면 담 넘어오는 이웃 집 새빨간 감 대추 부러워
젓가락 하나 꽂을 자리 없는 서러움 몇 년을 가슴에 담고 꿍시럭대다
높은 건물 옥상에 감나무 앵두나무 대추나무 선 녹지를 보고
우리도 못 할 것 없다고 나서
손자들 추억의 봄에 앵두 대추 감 꽃을 피우고
그 추억 가을에 감과 대추를 뻘겋게 달아 준다고
해마다 채소 일구던 옥상에 과수를 심어 키우는 꿈을 꾸다.
이봄 들어 처음이라 생각되는 맑은 날씨는 아침부터 마음을 들뜨게 해
날 좋으면 간다고 벼르던 길을 나선다.
소원이던 생각을 이루려 가는 발은 가벼워 좀 멀다 싶은 전철역으로 간다.
햇볕 쏟아지는 길을 걸으며 언제 저리 왔나 싶은 봄을 느낀다.
일요일 전철은 늙은이로 차, 지팡이 집고 처음 서서간다.
젊은이들은 쉬고 늙은이들은 움직일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나이 들면 갈곳이 새끼치듯 늘기 마련이다.
누구 칠순이나 회갑이 늙은이를 걸리고 또 그들의 누가 시집장가를 보낸다고
가는 마음이 전철을 메우고 식장을 채우고.
사촌이나 팔촌이 거기다 어려운 사돈까지 아프다 병 문안이다 조문이다
몸을 내세운 세대들의 행렬이다.
벼르다 가는 묘목시장은 종로5가 충신동골목이라 전철 타고 5번째 동대문 역에서 얼마 안 걷는 길.
종로 5가변에서 옮겨 온지 얼마 안되어 복잡해야될 곳이, 찾는 사람 없어 쓸쓸한 길을 안쓰러움 안고 지나,
그래도 안면이 낮다싶어 찾아간 아줌마가 겨우내 거리서 찬바람 안 맞고 쉬었나
검어야 할 얼굴이 뽀얗게 웃으며 반긴다.
싸 가지고 간 마음을 흙 묻은 아줌마 앞치마에 놓자
"작년에는 매실묘목이 비쌌는디 올케는 감나무가 엉캉 비싸요".
"얼마나 하는 데".
"묘묵은 오천원은 주셔야 허유".
"흙 붙은 거는 어때요".
"흙 무든 거는 몇 배는 더 줘야뒈유".
"실한 놈으로 한 뿌리 주슈, 잘못 되면 두고두고 욕먹을 테니 잘 골라요".
남편인가 싶은 얼굴 컴컴한 사람이 부지런히 움직여 들고나와
"이만하면 될뀨, 이 맹콤 자르면 돼쥬". 전지가위로 순 줄 곳을 물어
"가지고가 더 자르더라도 넉넉히 둬요, 그리고 대추묘목도 한 뿌리 줘요".
아줌마가 두터운 입을 움직여
"저 뒤에 것으로 골라봐요. 대추알이 엄청 굵어 한 입 될 꺼네유".
둘을 같이 묶어 꺼먼 봉지에 담아주며 남자가 말한다.
"갖다 걸음 하지 마시고 갈게나 멀찌감치 묻어줘유".
묘목을 받으며 언제 달리느냐고 남자 눈을 들여다보며 묻는 말에
"감은 아무래도 한 2년은 공들여야 할 꺼구, 대추는 올 갈게 구경 할거구먼유".
돌아서며 그들의 정까지 안는다.
오는 길에 호두 알만한 꼬마 선인장 목숨 하나에 천 원이래
키워보고 까다롭지 안은 습성이 좋아
작아도 두서너 개의 꽃망우리를 단 생명을 싸 달래 들고 오는 마음 가뿐해 나는 기분이다.
대문을 들어서다 계단을 쓸고 내려오는 여사 엉덩이에 밀려 주춤하고 섰는 얼굴에 대고
"어디 갔다 오슈?"
"서울 갔다 오우"
"서울이라니 무슨 말요?"
"응 당신이 그리 소원하던 감나무 사왔어"
"대추도 있나본데, 집안에 대추는 안 들이는 거라던데"
"괜한 소리야, 아 옛날 큰집 치고 울안에 대추 없는 집 봤어?"
"윗집에도 해마다 뻘겋게 달려 잘 얻어먹지 안았냐 구!"
"그래도 대추는 끌어들이는 게 아니라는데"
애들도 온다는 데 이런 날 청소나 좀 하면 얼마나 좋으냐고 울라오는 등에
못마땅한 소리를 바르는 여사를 의식하며 올라가 혹시나 들킬라 살피고
묘목 싸온 비닐봉지에 숨겨 들어온 소주병을 급히 따 두어 모금 벌컥벌컥 넘기고
집 올리고 십 수년 가꾼 옥상을 치워 사온 묘목 심을 자리를 마련한다.
다행이 산밑이라 등산가방으로 2년 봄내 흙을 져 날라
생선전이나 딸기 철 과일 가게서 주어온 스티로폼박스에 담아
키운 파 상추 쑥갓 부추 토마토 고추로 여름내 입맛을 즐겼다.
어느 해는 서리태를* 갈아 그 무성한 입에 후둑이는 빗소리와
바람에 쓸리는 군무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어느 해는 들깨를 놓아 인근서 몰려드는 참새들과 가을내 싸웠고,
어느 처서머리 김장을 심어 배추가 제법 폭이 지는데 생각도 못한 굼벵이가 달려들어 속태우던 일.
고추를 근 50폭씩이나 놓아 여름내 풋고추를 즐기고 가을에는 빨갛게 말려 서너 근
갈무리해 겨우내 즐겁던 추억을 안타깝게 가슴에 묻고
김치냉장고 나와 구석에 엎어두었던 큰 통 올려다 스티로폼에서 십 수년 걸어진
흙을 채워 사온 감나무 대추나무 뿌리를 정성으로 묻으며
꽃보고 웃을 여사와 그 옆에서 웃을 나를 보고
빨갛게 익는 열매보고 탄성을 소리를 낼 손자얼굴을 그리다,
앵두 꽃피는 달 밝은 밤, 함께 나눌 벗이 그리워.
기러기 오는 붉은 감 철
찬바람 앉고 앉아
이곳에서 따 담은 국화주 잔 놓고 앉아 꺼이꺼이 외로울 늙은이를 봐. 2010. 3. 27.
첫댓글 국화주... 그 맛이 죽이겄습니다. 갑자기 술이 땡기는 토요일 입니다.
감사합니다. 앵두꽃 피는 아침 즐거운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