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웠습니다.
객지생활이 외롭다할 나이를 훌쩍 지났기에 일에 매달리는 생활이 좋았습니다.
허나, 옆구리의 찬바람이 마냥 드나드는 듯한 외로움의 출처는 음악을 나눌 그 누군가가 나의 가까이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더해 갔습니다.
1월초순 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낼즈음, 30년지기 언니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입버릇처럼 인생말년에는 음악감상실을 하며 살거라던 언니가 30년 가까운 생활을 몸담았던 독일선급협회를 명예퇴직하고
감상실을 차린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러고도 늘 쫒기는 삶인지라 한 번 가보지도 못한 빚진 마음을 지난 월요일, 부산 집에 가는차에 늦은 저녁 방문했습니다. 부산교대근처에 자리잡은 감상실은 작고 소박했으며 인테리어 하나하나까지 직접 신경쓴 것이 역력했습니다.
우리의 음악적인 교류는 삼십년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광복동 필하모니와 국도레코드를 거쳐, 눈으로만 인사를 하던 세월을 통해 그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또 누군가는의사가 되기도 하고, 첼리스트를 아내로 맞고, 떠꺼머리 총각은 교수가 되었고, 누군가는 풍월당의 안주인 역활을 하기도 하고,서로의 삶에 묶여 자주 만날 수는 없었지만, 필하모니가 화재로 사라지고, 광안리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무리는 흩어지고 뭉치기를 수차례, 끊임없이 만나왔던 그 세월속에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32번, 말러 2번,
대우합창단......
언니의 딸이 음악을 전공하고, 그랜드피아노를 들이고,어느새 딸과 함께 음악회를 다니는 언니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내가 처음 텐슈테드의 말러 2번 음반을 소개한 후, 서로 다른 공간에서 생활했지만 함께 말러에 빠져드는 온통 대화속에 말러라는 남자와 연주자에 대해 집중하며 몇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냈지요.
이미 내 것같은 익숙한 음반들과 DVD, 책들
아마도 많은 부분이 닮아있어 음반을 구매할 때도 서로 긴밀한 소통을 하고는 했지요.
영화매니아이기도 했던 언니는 한동안 '종려나무숲'이라는 한국 영화에 매료되어 감독과 메일을 주고 받으며, 내게 그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즐거워했어요.
난 아직도 일에 매달려 곁을 돌아볼 여유도 없는 생활이 이어지지만, 너무도 오랜만에 찾은 언니의 달라진 모습을 보니 반가워
그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그 끼를 어떻게 달래며 일에 매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격려했습니다.
오십을 넘기는 언니는 늘 말해왔던 발레를 시작한다했고,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난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은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한 3년 가까운 세월동안 각자가 구입한 음반중에 같은 것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광고의 문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를 확인하는 순간이였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꺼내 하나씩 들으며
추억을 함께 했습니다. 우린 행복을 말했습니다. 음악과 함께 살아온 오늘을 감사하며 더욱 더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기로
약속했으며, 아름다고 풍요로운 모습으로 늙어가자고 그리고, 언제고 삶에 지칠때 찾아오라 했습니다.
감상실옆 아주 아주 작은 이름없는 빵집의 단팥빵 맛이 일품입니다. 또 먹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은 추억이 많은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는 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많은 것을 함께 추억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행복한 추억을 담을 그릇이 생겨 기쁩니다.
꽃과 나무, 그리고 바람에 여지없이 흔들릴 이 봄을 설레이게 기다립니다.
이 바람위에 어떤 음악을 얹어 내 마음을 흔들어 볼까요?
첫댓글 사십을 불혹이라 한 말은 거짓이더이다.
이 봄에도 흔들리며, 눈물로 공감하며 읽게 해 주시네요.
잘 살고 계신 분을 마음으로 꼬옥 안아드립니다.
음악 감상실, 아름다운 글, 그리고 멋진 사진들 너무 좋습니다. 저 곳에서 함께 풀레나무님, 그리고 주인되시는 분과 음악을 정답게 듣고 싶어집니다.~~
근데, 어찐지 말러를 틀었다가는 저 유리창문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고, 잘 사는 사람은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제 마음 속에도 고이 새겨봅니다.
그런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이들이 언제나 곁에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일겁니다.
물푸레나무님의 행복한 고백을 듣고나니 진정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젠 정말 봄이네요!! ㅎㅎ
전 외롭고 마음이 많이 지칠때 5번 교향곡들을 듣습니다. 베토벤 5번, 말러의 5번. 닐센의 5번.
저는 저런곳을 가지지는 못하더라도
저런곳 근처에서나 살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요즘 우보님이 무진장 부럽습니다. 걸어서 주말이면 다락에 가신다는데
플래밍고님~ 저두 동감입니다.
하늘나리님~ 요즘 우보님이 살짝 부럽긴해요.
걸어서 갈 거리지만 걸어간 적은 없구요...ㅋㅋ 저도 저런 곳을 꿈꾸는데 어느 분은 현실이군요. 부산에 간다면 들를 곳이 생겨서 좋네요.^^
우보님,<다락>에 6월 6일 현충일,말러5번 특별감상회 올라온 거 보셨어요?^^
그런가요? 현충일이 수요일같은데 휴일이어도 주중엔 가기 힘들어요. ㅠㅠ
우와... 꼭 가야지...
물푸레나무님~^^*우와~~멋지고 소담한 꿈의 공간이네요~^^멋지게 소개해주셨는데 왜 제가 다 마음이 뿌듯하고 뭉클할까요~!!부러워요~~오랜 30년지기 언니분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그리고 그랜드피아노..제 소원인데ㅋ..^^요즘,좀 바빠서 정신없었는데, 덕분에 저도, 봄바람을 잊지 않겠어요~감사해요**
물푸레나무님!
말씀처럼 글도 참 예쁘고 보기 좋게 쓰시네요....
자주 올려주시면 리플은 꼭 달게요...
스피커가 아발론이어서 참 낯이 익네요... 저도 아발론 복각 에이들런을 사용하는 지라....
멋진 음악 감상실이예요...
부산에 가면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에 있나요 .한 번 가 볼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