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이 그동안 소장한 국내외 미술 작품들이 3월 초 곧 공개 경매 처분에 들어간다고 한다. 외국 미술 작품 중에는 대만 것도 포함되어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 한 가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지난 전두환 정권 시절, 문교부 장관인 이규호씨가 대만 교육부 초청으로 대만을 약 1주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1980년대 한국과 대만 정부 사이에 제일 관계가 밀접한 부처 중에 하나가 문교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 교육부에서도 파트너인 문교부 관리들이 대만을 방문하게 되면 극진히 대접할려고 노력한 것이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 역대 문교부 장·차관이 대만 정부의 초청으로 대만을 공식 방문하게 되면 꼭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된다. 하나는 ‘명예박사 학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양화’ 그림이다.
지난 전두환 정권 시절, 문교부 장관인 이규호씨가 대만 교육부 초청으로 대만을 약 1주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1980년대 한국과 대만 정부 사이에 제일 관계가 밀접한 부처 중에 하나가 문교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 교육부에서도 파트너인 문교부 관리들이 대만을 방문하게 되면 극진히 대접할려고 노력한 것이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 역대 문교부 장·차관이 대만 정부의 초청으로 대만을 공식 방문하게 되면 꼭 두 가지 ‘선물’을 받게 된다. 하나는 ‘명예박사 학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양화’ 그림이다.
- 전두환 전 대통령
한국 속담에 ‘천생연분’이란 말이 있다. 나는 전두환 대통령 일가와도 이런 관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대만서 전 대통령의 친형의 통역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전 대통령의 친형은 순수한 민간인 신분이었다. 하지만 왜 대만 국방부 장관이 직접 나서 접대했는지, 그리고 화련 대리석 산 꼭대기에 거의 공사가 완성 단계인 ‘비밀 굴속 전투기 비행장’을 시찰했는지 궁금점이 아직도 뇌리속에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후담이지만 이 ‘비밀’ 비행장은 대만 전투기가 자주 비행하는 모습이 중국 군 당국의 레이다에 잡혀 이젠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일반에도 공개된 상태라고 한다. 화련에서의 1 박은 전 대통령의 친형도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도 있는 지진을 겪어 다들 놀라서 잠을 제대로 못 잔 경험을 오늘날까지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집 ‘가사’(家史)에 남을 일도 한가지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임기 중, 어느날 경북 고령 군청을 순시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초등학교 등교, 하교 길에 지나가던 그 중국집 유리창에서 흘러나오는 ‘짜장면’ 볶는 구수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 중국집이 아직도 개업하고 있는냐?”고 군청 직원들에게 물었던 일이 있다고 모 군청 간부로부터 전해 들었다.
사실 오래 전 우리집은 고령읍내에서 유일한 중국요리집 ‘중앙반점’을 경영하였다. 읍내 관청, 시장과도 가깝고 또 큰 길가에 위치한 덕분에 지나가는 사람도 차량도 꽤나 많았다. 합천이 고향인 전두환 대통령은 아마 어렸을 때, 우리집 앞을 지난 사람들 중 한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이 또한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주한국 대만대표부에 근무할 무렵,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의 칠순 잔치에 초대되어 서울 시내 호텔에서 전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면대면’으로 볼 기회가 있었다. 연회 중, 그 ‘중국집 아들’이라고 전 대통령에게 직접 소개할려고 용감하게 접근 시도를 했으나 결국 경호원들의 저지로 불발되었다. 물론 그 당시는 경호원들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전두환 대통령의 대만 그림과 우리집 가사에 얽힌 사연은 이미 오래된 추억이 되었지만 사실은 사실대로 기록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