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야 알랴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양하여
잠 못 드러 하노라
은하수가 흐르는 자정 무렵, 달빛에 비친 배꽃이 희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슬피 우는 두견새가 나의 이 한 가닥 연심(戀心)을 알겠느냐마는 이렇게 잠 못 들어 하니 다정도 병인가 한다.
고려 충혜왕 때의 문신 이조년(李兆年)이 쓴 연시다. 시조의 초창기 때 사대부가 이런 사랑의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야말로 연애시의 백미(白眉)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조년은 27대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자 억울함을 호소하여 환국에 공을 세워 예문관 대제학에 이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28대 충혜왕의 방탕한 생활에 간언하였지만 듣지 않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은거하다가 사망했다.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던 시절, 고려 중기의 호족이었던 이장경(李長庚)은 아들들의 장수를 빌며 이름을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라고 지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형제가 길을 가다 황금 두 덩이를 주웠으나 의가 상할까 봐 강에 던졌다는 ‘의좋은 형제’는 억년과 조년의 이야기로 전한다.
시조창 강권순
첫댓글 출근전 잠시 들러 읽은 글에 픙류가 흐릅니다.
백년 천년 억년 조년의 이름에 얽힌 사연이
간절해 보입니다.부모마음이 그러네요.
옛 시조로 감상하는 시간이 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