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동석동호회단톡방에서]
[채동석회장님제공]
🍃 기다려주는 사랑...^^
어린 여자 아이가 양손에 사과를 들고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네가 사과 2개가 있으니
하나는 엄마 줄래?"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왼손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엄마를 빤히 바라 보다가,
이번에는 오른쪽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엄마는 깜짝 놀랐다.
아이가 이렇게 욕심 많은 아인지 미쳐 몰랐다.
그런데 아이는 잠시 뒤 왼 손을 내밀면서,
“엄마! 이거 드세요. 이게 더 달아요.”
이 아이는 진정으로 사랑이 많은 아이였던 것이다.
만약,
엄마가 양쪽 사과를 베어 무는 아이에게 곧 바로,
“이 못된 것, 너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니?”
라고 화를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섣부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면,
아픔과 상처가 남을 수밖에 없다.
조금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 퍼 온 글입니다.
(2)===============
#유머
.🍒우리남편,,🍒
딸만 셋을 만든 남푠이
아들 낳은 법 강의한다고
거품물고 까불랑거릴 때...,
나는 고만 칵 죽고 싶어지데예.
저 양반이 내 남편인가 하고
멀건히 쳐다 보이더락꼬예.
비 온다했는데도 세차하고 들어올 때...!
우찌 저리도 멍청한지 미치겠더라고예.
"비온다 켔는데 뭐 할라꼬 세차는 했는교?"
하면 뭐라는 줄 압니꺼?
"야 씻거 놓은 거 헹가야 될 것 아이가"
아이고 내 몬 산다 쿤께네.
팍 도라삘라 칼 때가 많아예~
샤워하고 나서 조깅하러 나간다나 뭐라나.
아, 조깅 갔다와서 샤워하면 안 되나?,
그기 순서가 맞는 거 같은데...
또 한 마디 하면
"똑똑한 체 하고 있네. 어쩌네 해뿌거든예"
빌어묵을 서방,
지 아니면 남자가 없나 어디에.
골초가 꼴에 담배 해롭다고
사람들한테 이야기 하면서
남들보고 담배끊어라 할 때...
"속으로 웃기고 자빠졌네,
지 담배도 몬 끊어삐면서...."
중얼중얼 욕이 절로 나온다카이.
외상술 먹고 와서는 팁은 팍팍 썼다고
자랑할 때는 쥑이삐고 싶다카이..
뭐 다른 사람들 팁도 안 쓰고 하는 거 보이
추자버서 뭐 어쩌구 저쩌구...
지랄 하고 자빠져라 제발.
딸내미들 겨울옷도 없는데...ㅠ.ㅠ
와 그런 못 된 버릇은 들었는지
밥 묵을 때 보면 꼭 젓가락으로 밥 묵꼬
숟가락으로 반찬을 퍼 묵으니 더러바서
참말로 환장 하겠다카이..
이혼하자고 하먼 이왕 산 김에
한 20년만 더 살고 하자니
내가 고마
딱... 숨통이 막히는기라예.
우짜지도 몬하고 이리 살고 있는데
그나마 밤에는...........
그냥 할 수 업시 참심니더..
이래 살아도 되겠심니꺼?
돌발퀴이즈~
그나마 밤에는 할 수 업시 참심니더 라고 했는디
왜 참았을까용?
정답 맞히시는 분들 없을꺼 같사옵니다요.
https://youtu.be/8SaqBoW-Q8k
(3)=====
🔊방랑자(노래)
https://youtu.be/qEwSR4aXfzc
================================================
[장영봉대표님 제공]
ㅡ(삶의 지혜/양초 2개)ㅡ1015.
어느 한 가족이 한 고을에 이사를 했지요.
그런데 이삿짐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정전이 되어, 양초와 성냥을 겨우 찾았을 때 "똑똑"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한 아이가 서있었습니다.
"아저씨 양초 있으세요?"하고 말했지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사 온 첫날부터 나에게 양초를 빌려달라고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달라고 할거라는, 이런저런 생각에 무의식 중에,
"얘야 우리 집에는 양초가 없단다."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이사 온 첫 날부터 정전이 되어 불편하실까봐 제가 양초를 가지고 왔거든요."
아이는 양초 2개를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아이의 맑은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촛불은 방을 밝힌 것이 아니고 평생을 어둡게 살았던 자신의 마음을 밝히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러한 종류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얘기를 가끔 접하실 것입니다.
무의식 중에 자기 자식에게 거짓을 가르친 것과 같은 것이지요.
순박하고 정직한 아이가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 동네 이웃으로 맞이 하며 도와주려는 마음을 처음부터 거절한 결과이지요.
아마도 핵가족 시대에다가 개인주의 사고가 넘치다 보니, 한 이웃으로 함께 더불어 좋은 관계를 맺고져 하는 마음 자체가 고갈되거나 또는 아예
소멸된 상태가 아닌가 봅니다.
우리는 최소한 아이들에게 만은 거짓말이나 행동은 지극히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애초부터 어린 싹에게 태양의 빛을 막고 오수를 공급하는 것과 같지요.
그 잘못된 상처를 회복하기가 어렵다는 사실과
언젠가는 어른이 되여서 그들도 그 거짓됨을 꺼닫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경우든, 비록 아이가 딴 마음을 가진 것을 알아차렸어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나 본인 자신을 위해서도 좋을
것입니다.
남의 자식이라고 할 지라도 순진하고 맑아야 할 아이를 가슴에 품을 때 그 따스함으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상대기 누구이든 간에 자기 스스로 결론을 낸 다음에 반응을 할 것이 아니라 "왜지요?"라고 한 다음에 반응을 해도 늦지 않기에
모든 사람에게 귀한 손님을 맞이 하듯 일단 방석을 깔아 드린 다음에 여유 있게 대처한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최소한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거나 사소한 것, 사람이라도 보배처럼 취급하다 보면, 귀한, 것, 귀한 사람이 될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이세상에 단 한 분이십니다.
당신을 알고 싶고 또한 존경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赤松. 許璋.
(2)============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지"
《이야기 한마당》
숙종대왕이 어느 날, 미행 중 수원성 고개 아래 쪽
냇가를 지나는데 허름한 시골총각이 관을 옆에 놓고
슬피 울면서 물이 나오는 냇가에다 묘자리를 파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무리 가난하고 몰라도 유분수지 어찌 묘를 물이 나
는 곳에 쓰려고 하는지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무슨 연고가 있지 싶어 그 더벅머리 총각에게로 다가가 "여보게 총각, 여기 관은 누구의 것이요?"하고 물었다.
"제 어머님의 시신입니다."
"그런데 개울은 왜 파는고?"하고
짐짓 알면서도 딴청을 하고 물으니,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합니다."
미루어 짐작은 했지만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보게 이렇게 물이 솟아나고 있는데,어찌 여기다 어머니 묘를 쓰려고 하는가?"
하고 재차 다그쳐 물으니...
그 총각은
"저도 영문을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갈 처사'라는 노인이 찾아와 절더러 불쌍타 하면서 저를 이리로 데리고 와
이 자리에 묘를 꼭 쓰라고 일
러 주었습니다.
그 분은 유명한 지관인데, 저기
저 언덕 오막살이에
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라고 힘없이 대답을 하고는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자신의 곤혹스런 처지를 처음 보는 양반 나리에게 하소연하듯 늘어 놓았다.
숙종이 가만히 듣자 하니,
'갈 처사'라는 지관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궁리 끝에 지니고 다니던 지필묵을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여기 일은 내가 보고 있을 터이니 이 서찰을 수원부로 가져가게. 수문장들이 성문을 가로
막거든 이 서찰을 보여주게."
총각은 또 한번 황당했다.
아침에는 어머님이 돌아가셨지,
유명한 지관이 냇가에 묘를 쓰라고 했지,이번에는 왠 선비가 갑자기 나타나 수원부에 서찰을 전하라 하지...
도무지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총각은 급한 발걸음으로 수원부로 갔다.
서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어명! 수원부사는 이 사람에게 당장 쌀 삼백 가마를 하사하고, 좋은 터를 정해서 묘를 쓸 수
있도록 급히 조치하라."
수원부가 갑자기 발칵 뒤집혔다.
허름한 시골 총각에게 유명한 지관이 동행하질 않나,
창고의 쌀이 쏟아져 바리바리 실리지를 않나...
"아! 상감마마, 그 분이 상감마마였다니!"
총각은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냇가에서 자기 어머니 시신을 지키고 서 있을 임금을 생각하니, 황송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기쁨보다는 두려움과 놀라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한편 숙종은 총각이 수원부로 떠난 뒤, 괘심한 '갈 처사'라는 자를 단단히 혼을 내 주려고 총각이 가르쳐 준 대로 가파른 산마루를 향해 올라갔다.
단단히 벼르고 올라간 산마루에 있는 찌그러져가는 '갈 처사'의 단칸 초막은 그야말로 볼품이 없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한참 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게 뉘시오?"
방문을 열며 시큰둥하게 손님을 맞는 주인은 영락없는 꼬질꼬질한 촌 노인네 행색이다.
콧구멍만한 초라한 방이라 들어갈 자리도 없다.
숙종은 그대로 문밖에서 묻는다.
"나는 한양 사는 선비인데 그대가 '갈 처사' 맞소?"
"그렇소만 무슨 연유로 예까지 나를 찾소?"
"오늘 아침 저 아래 상을 당한 총각더러 냇가에
묘를 쓰라 했소?"
"그렇소."
"듣자니 당신이 자리를 좀 본다는데, 물이 펑펑 솟아나는 냇가에 묘를 쓰라니 당키나 한 일이요?
골탕을 먹이는 것도 유분수지,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이요?"
숙종의 참았던 감정이 어느새 격해져 목소리가 커졌다.
갈 씨 또한 촌 노인이지만 낮선 손님이 찾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선비란 양반이 개 코도 모르면서 참견이야. 당신이 그 땅이 얼마나 좋은 명당 터인 줄 알기나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통에 숙종은 기가 막혔다.
(속으로 '이놈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어디 잠시 두고 보자'하고 감정을 억누르며)
"저기가 어떻게 명당이란 말이요?"
"모르면 가만이나 있지, 이 양반아! 저기는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쌀 3백가마를 받고 명당으로 들어
가는 땅이야.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발복을 받는 자리인데,물이 있으면 어떻고 불이 있으면 어때?
개 코도 모르면 잠자코 나 있으시오."
숙종의 얼굴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갈 처사 말대로 시체가 들어가기도 전에 총각은 쌀 3백가마를 받았으며, 명당으로 옮겨 장사를 지낼
상황이 아닌가!
숙종은 갈 처사의 대갈일성에 얼마나 놀랬던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공손해졌다.
"영감님이 그렇게 잘 알면 저 아래 고래등 같은 집에서 떵떵거리고 살지 않고, 왜 이런 산마루 오두막
에서 산단 말이오?"
"이 양반이 아무 것도 모르면 가만이나 있을 것이지 귀찮게 떠들기만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인지?"
숙종은 이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저 아래 것들은 남을 속이고 도둑질이나 해 가지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 가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그래도 여기는 바로 임금이 찾아올 자리여.
지금은 비록 초라하지만 나랏님이 찾아올 명당이란 말일세."
숙종은 그만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이런 신통한 사람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었다.
꿈속을 해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왕이 언제 찾아옵니까?"
"거, 꽤나 귀찮게 물어 오시네. 잠시 기다려 보오.
내가 재작년에 이 집을 지을 때에 날 받아 놓은 것이 있는데, 가만.... 어디에 있더라?"
하고 방 귀퉁이에 있는 보자기를 풀어서 종이 한장을 꺼내어 먼지를 털면서 들여다보더니...
그만 대경실색을 한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에 나가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종이에 적힌 시간이 바로 지금
이 시간이었다.
임금을 알아본 것이다.
"여보게... '갈 처사', 괜찮소이다.
대신 그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 묻힐 자리 하나 잡아주지 않겠소?"
"대왕님의 덕이 높으신데 제가 신하로서 자리 잡아 드리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옵니다. 어느 분의 하명이신데 거역하겠사옵니까?"
그리하여 '갈 처사'가 잡아준 숙종의 왕릉이 지금 서울의 서북쪽 서오릉에 자리한 '명릉'이다.
그 후 숙종대왕은 '갈 처사'에게 3천 냥을 하사하였으나, 노자로 30냥만 받아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갔다는 이야기가 지금껏 전해오고 있다.
"신묘하도다. '갈 처사'여!
냇가에 묘를 쓰고 산마루 언덕에 초막을 지으니
음택 명당이 냇가에 있고
양택 명당은 산마루에도 있구나.
임금을 호통 치면서도 죄가 되지 않으니
풍수의 조화는 국법도 넘어가네.
볼품없는 초라한 몸이라도,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하고
나랏님께 충성하노니,
그 이름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리라."
*왜 요즘은 '갈 처사' 같은 사람이 없나?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데...
(3)==================
●사인을 하지 않은 이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 미켈란젤로는 고집이 세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내키지 않으면
결코 작품을 제작해 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또한 독특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작품에 결코 사인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끌어안고 슬퍼하는
(피에타)상을 제외하고는 어느 작품에도 사인을
남기지 않았다.
이러한 습관은 바티칸의 시스티나성당의 천장에〈천지창조〉를
그리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508년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시스티나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는 사람들의 성당 출입을 막고 무려
4년 동안 성당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물감을 칠해나가는 고된 작업이었다.
그는 나중에 목과 눈에 이상이 생길 정도로 이 일에
온 정성과 열정을 다 바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인을 한 뒤 흡족한 표정으로 붓을 놓았다.
그리고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하려고 성당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성당 문을 나섰을 때 그는 눈앞의 광경에 감탄하고 말았다.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 높게 날고 있는 새들…. 아무리
뛰어난 화가라도 눈앞에 있는 대자연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미켈란젤로의 마음에 작은 울림이 들렸다.
‘신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고도 어디에도 이것이
자신의 솜씨임을 알리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데 나는 기껏
작은 벽화 하나 그려 놓고 나를 자랑하려 서명을 하다니….’
그는 즉시 성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작업대 위에 서서 자신의 사인을 지워 버렸다.
이후부터 미켈란젤로는 그 어느 작품에도 자신의
사인을 남기지 않았다.
https://www.geimian.com/wx/91168.html
(4)==========
부부간 노사문제🚫
❌배꼽잡습니다.♐
🐮함께 한번 웃어 볼까?^.~✨😆
♂고추들이 띠를 두르고 파업에 나섰다.
🔼자신들의 중노동에 대한 임금 인상 요구가 이유였다.🔽
✨첫째..♡
우리는 주로 야간이나 시간 외 근무를 하며..
🔴둘째....♡
조명도 없이 어두운 곳에서 일하고....
🔴셋째....♡
습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넷째....♡
간혹 숨통을 조이는 고무장비를 쓰고 일할 때도 있다.
💫이것은 3D업종으로 임금을 2배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 이에 대한 홍합측 답변은..
💢임금 인상은 절대 불가..💢
🔥첫째....
고추는 8시간 일한적이 없으며...
💥둘째....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근무 성적을 낸적도 없고....
✔셋째....
야간근무 시간을 지키지도 않았으며....
✔넷째....
사용자의 요구와 상관없이 아무때나 일을 시작하기도 하고..
✔다섯째....
제 멋대로 퇴근해 버린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여섯째....
일은 못하면서 오물만 버려 사업장 청소만 귀찮게 한적도 많다.
✔일곱째....
시간이 갈수록 숙련은 고사하고 사용주를 만족시키지 못 할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여덟째....
일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사용주 몰래 사업장을 바꾸려고 껄떡 거린다.💨
⚠그러므로 임금 인상은 고사하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바이다.🔥
😊웃으면 복이 온다니 오늘 하루 신나게~ 즐겁게~
한번 실컷 웃어 볼까?😄
화이팅^^
♡ 좋은 친구님께서 보내주셨네요.
사용자의 말이 맞습니다.
고추노동자를 배격합니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주제에 임금 인상....... ?
주제파악도 못한 놈이
ㅎ ㅎ ㅎ
★★★어렵게 구한글이오니
친구들한태 돌려
보세요♥희망봉♥
가만히 생각하니 둘다 맞는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