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군가 문을 두드렸기에 나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의 안쪽에는 나와 기원이 있었다
나는 기원을 바라보며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기원은 내게 잘못된 일은 없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올여름의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했다
이무런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뜨거운 빛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2.
물탱크가 있다
환기구가 있다
창문이 있다
5층의 건물이 있다
간판이 있다
전신주가 그 앞에 있다
내가 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내가 있다
무작정 올라갔더니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옥상으로 통하는 문을 지나가면
옥상이 있다
거기에는 물탱크가 있다
푸른 물탱크가 있다.
3 (연인)
낮에도 겨울은 어두웠다
그 애는 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추워서 그래? 물었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둡구나, 말해도 고개를 저었다
겨울은 낮에도 어두웠다
열려 있는 문이 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 애는 악령이 아니었다 그 애는 빈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애가 악령이 아니었다면 그 애는 대체 누구였는가?
악령도 없이 세월이 흘렀다.
4 (얼룩)
얼룩이 번지다 검은 벽이 검은 얼룩으로 변하는 것을 모른다 검은 얼룩이 검은 벽이 되는 줄도 모른다 애꿋게 할머니만 탓한다 할머니? 깜짝 놀라 할머니를 쳐다보는데 할머니는 죽고 없다 죽은 할머니를 생각하니 가슴도 아프고 눈가에 얼룩이 번지는 것도 같은데 눈앞을 가로막는 무엇이 있어 만져보니 단단해서 캄캄하다 이것도 검은 벽이니 아니면 얼룩이니 물어보는 사람이 할머니였나 자꾸만 생각나는 이것이 무엇인 줄을 모르고 얼룩이 번지다 얼룩과 벽과 내가 상관이 없는 줄로만 알고 캄캄해서 단단한 곳에 갇힌 줄을 모르고 얼룩이 얼룩으로 벽이 벽으로 검은 색을 벗어나서 검은 벽으로 검은 얼룩으로 번지려고 한다 번지고 있다.
5
여름
성경학교에
갔다가
봄에
돌아왔다.
첫댓글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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