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행동하는 신앙 김민기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 부고에 가슴이 먹먹하고 슬프다. 그와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의 광팬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걸까. 몇 안 되는 그에 대한 영상들을 찾아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그는 삶을 참으로 진지하게 살았다. 그의 삶은 깊은맛을 지닌 음식 같다. 1970, 80년대 군사독재 엄혹하고 암울했던 시기에 그의 노래들은 민중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표현하게 해주었다. 권력자들은 그의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그에게 실제로 고문을 가했고 늘 그를 감시했다. 그의 삶에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가 새겨져 있는 거 같다. 십자가의 예수님 몸에 있는 상처들을 연상시킨다.
어느 방송사와 한 대담에서 그가 소외된 이들 편에 서서 노래도 만들고 활동했다는 말을 듣고 그는 살짝 발끈하며 화를 내는 듯했다. 그들은 제외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의 대답은 그늘에 있던 그들 덕분에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마치 식물의 뿌리가 어두운 땅속에 있어서 꽃과 열매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 현장과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허드렛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을 하는 이들 덕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는 실제로 공장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농사를 짓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위장취업을 하거나 농민운동을 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곳으로 갔고 거기서 열악한 현실을 보고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때 만든 노래가 아침이슬에 버금가는 상록수라고 한다. 돈이 없어 결혼식을 하지 못하는 가난한 부부들 합동결혼식 축하곡이었다. 그 곡 또한 금지곡이 됐다. 민중가요를 만든 게 아니라 자신과 삶을 성찰하며 만든 노래가 국민의 노래가 된 거라고, 그래서 그건 더 이상 자신의 노래가 아니라고 했다.
청년 시절 미래를 꿈꾸며 잠을 설쳤던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사업을 하고 거기서 나오는 수익을 직원들과 투명하고 공평하게 나눠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이가 행복하게 되는 걸 상상했다. 그 꿈에 설레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유명한 소극장 학전을 그렇게 운영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그리고 수익을 말 그대로 1/n로 거기서 일하는 모두와 나눴다. 그는 소위 돈 안되는 일, 그러나 꼭 필요한 일에 투신했다. 청소년과 아이들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린 게 그것이다. 그는 깨어 있는 사람, 선각자, 서민들과 가까운 사람이었던 거 같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를 만들기 위해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고 생명을 얻는 길을 만들어 주시려고 오셨다. 그의 삶은 예수님의 삶을 많이 닮았다. 그는 예수님을 많은 위인 중의 한 분 정도로 여겼던 거 같았다. 아마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랬을 거다. 온갖 엄격한 계명과 규율을 쏟아내서 백성의 삶을 더 무겁고 짐스럽게 하는 종교의 창시자 정도로 여겼을지 모르겠다. 예수님을 잘 알았더라면 그는 예수님을 정말 사랑했을 거다. 그는 소위 말하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다.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실생활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사람 말이다.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처럼 그는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예수님을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성당에 다닌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그런 이들이 예수님의 가족이다.
예수님, 그는 주님을 만나 많이 아쉬워했을 겁니다. 주님을 더 잘 알았더라면 여기서 사는 게 훨씬 더 기쁘고 좋았을 텐데 하면서 말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기쁨을 알게 해주시고 더 잘 지키게 도와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 마음이 주님 계명으로 기울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