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고지(白馬高地) /김운기* 백마고지 잔인한 어머니, 그 품속에 말없이 누워 하늘의 별을 세는 땅 위의 별들을 본다. 우람한 원시의 생명과 작은 들꽃의 향기와 새들의 노래 대신, 포탄의 잔해와 화약냄새와 그 밑의 생명이 별이 되어 쉬고 있는, 그 산은 백마고지 다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다가서고 싶은 그리움도 민통선에 묶이는 산 395고지 백마산, 이름 없는 능선이 세계의 戰史에 떨친다 언제면 별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산은 산으로 돌아오려나. * 제9사단 제28연대 제6중대장
“내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내 죽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담담하고 절제된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 부대장을 치러주는 부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요구사항과 장례절차를 줄여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의 마찰을 빚는 일은 말아야겠다. 위로금 일부를 떼어 반드시 부대와 대대에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조국이 나를 위해 장례를 치러 주는 것은 나를 조국의 아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명심해 가족의 슬픔만 생각하고 경고 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나로 인해 조국의 재산과 군의 사기가 실추 되었음을 깊이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군인은 오직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해도 군인은 변치 말아야 한다. 영원한 연인, 조국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을 보여야 한다” 이 글은 2010.3월 비행 중 순직한 고 오충헌 공군대령이 조종사로서 죽음의 길을 예상이라도 한 듯 순직 8년 전에 쓴 일기이며 그의 사후 처리는 일기대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안보, 안전 의식, 질서, 법 집행 등 모두가 국민들의 입장에서 걱정거리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입니다. 자기자신의 미래도 불안한 상태에서 대통령을, 국회를 아니 삼성의 미래까지 걱정하는 민초들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서와 같이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를 요구하기 전에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즉 사국심(思國心)을 발휘해야 할 상황인 듯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대한 민국 구성원 각자의 입장에서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고, 조금 더 인내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노력의 자세를 갖는 것이 시민적 우국심(憂國心)입니다.
한국전쟁 당시에 어느 장교가 사병에게 “내가 만약 하느님이라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너에게 무엇을 줄까?” 하고 물었더니 그 사병은 “내일을 주십시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전쟁의 절박함을 보여주는 상황입니까? 6.25 한국 전쟁에서 대략 298만 명이 죽었고, 그 가운데 한국인 사망자는 대략 280만 명인데 당시 남북한의 총인구 약 2,966만1,000명(남한의 2018만9000명과 북한의 947만2000명) 가운데 9.5%가 죽은 셈이며, 나누어 말하자면 북한 인구의 18%가 죽었고, 남한 인구의 6%가 죽었습니다.(‘통계로 본 6·25전쟁'국방부·2014)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는 32만 명이 참전하여 5,099명이 전사하고 1만1,232명은 부상을 당해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다 지금은 시름시름 세상을 하직하고 있습니다.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요, 열 명을 죽이면 살인마이고, 백 명을 죽이면 살인귀이며, 천 명을 죽이면 영웅이고, 만 명을 죽이면 정복자요, 십만 명을 죽이면 정벌자고, 백만 명을 죽이면 황제이며, 천만 명을 죽이면 악마이며, 일억 명을 죽이면 신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 속의 죽음의 숫자는 그저 통계상의 의미만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미국 청년이 30만 명이 넘었지만, 아들과 남편을 일선에 보내고, 두려움과 염려에 빠진 나머지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참전하여 죽은 군인의 수보다 이를 지켜보는 가족이 더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전쟁에서 젊은이들의 죽음은 살아있는 부모들과 가족들은 이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한 평생을 가슴앓이로 통한의 세월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미 군사 고문관이자 6·25 당시 미군 대위였던 짐 하우스먼은 회고록에서 "미국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미국의 희망'을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보냈다. 한국에서도 많은 학도병이 전사했다. 하지만 한국은 전후(戰後) 팔을 잃은 국회의원, 눈이 날아간 국방장관을 갖지 못했다. 연회장 같은 데서도 마주친 적이 없다." 고 회고 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들인존 아이젠하워 중령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으며,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아들에게 “포로가 될 경우 목숨을 버려라”라고 포로 시 미 대통령의 아들이란특수성을 감안해서 사전에 이토록 명령하였고, 당시 낙동강 전투에서 ‘사수하라, 아니면 죽음을!(6.25중 등장한 가장 유명한 말)’ 외쳤던 미 8군 사령관인 윌튼 워커의 아들인 샘 워커 도 한국전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전방 순시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맥아더 장군이 아버지 시신을 모시고 미국으로 돌아 가라고 하자 ‘부하를 두고 갈 수 없다’고 버티자, 맥아더 장군은 군 명령을 발동하여 샘 워커가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귀국 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밴프리트 장군의 아들인 밴프리트 2세 중위도 공군 B-26폭격기 조종사로 적진 공격 후 돌아오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한국 전쟁에는 미 장성 아들 142명이 한국전에 참전하여, 그 중 35명이 사망 또는 중상을 입었으며, 이런 통계는 일반 사병의 2배 높은 비율이라고 합니다. 하물며 적군이었던 마오쩌둥 역시 북한군 지원에 참전한 아들을 잃고도 그 시체를 다른 중공군 전사자들과 똑같이 한반도에 묻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야 말로 이들이 당시 폐허가 된 한반도에 남기고 간 가장 귀중한 교훈입니다.
백년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 “칼레”라는 해안 도시를 점령하게 됩니다. 전쟁과정에서 너무나 애를 먹인 전쟁이었기에 영국에서는 칼레시 전체를 멸살시키려 하였으나 영국 여왕이 임신 중이라 태교상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여 시민 대표 6명만 처형하기로 결정하고 통보합니다. 그런데 시민을 대표하는 죽음의 대표가 자발적으로 나옵니다. 거기에는 최고 법률가, 최고 정치가, 최고의 갑부등 시민들의 명망과 존경을 받고 있는 분들이 처형을 지원을 한 것입니다. 그 모습에 감동하여 영국 정부는 처형 중단하게 됩니다. 바로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해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브리주는 여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월터루 전쟁(1815년)에서 영국의 웰링턴 장군 휘하에 15,000명 전사자가 발생하였는데 그 중 다수는 영국의 명문학교인 이튼 스쿨 졸업생이었으나, 나폴레옹이 지휘한 프랑스는 40,000명 전사 중 대부분 평민이 평민출신이었다고 합니다. 명문의 이름도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튼 스쿨은 이런 명성에 걸맞게 지금도 지도자를 배출하는 인재의 산실이라고 합니다. 이런 전통으로 영국의 왕실은 지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레오나르드 보프는 자신의 저서 <해방자 예수 그리스도> 에서 지난 3,400년 동안 인류는 3,166년은 전쟁을 하였고 나머지 234년은 전쟁을 준비하는 기간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싸웠느냐? [평화를 위하여...]라고 하지만 한마디로 인류는 전쟁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과 내전은 150-160회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는 총 3천만-4천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 1945-1990년의 2,340주 중에서 지구상에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겨우3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탄두는 반경 12km에 이르는 지역을 완전 파괴하였으며, 히로시마에서만 78,000여명 사망, 84,000여명 부상, 행방 불명자 수 천명에 이르렀습니다. 한국국방 연구원에 의하면 만약 1메가톤급의 핵탄두가 세종로 사거리에 터질 경우 폭발 지점부터 반경 7km 이내 모든 사람 즉 업무 시간대에 이 범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3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낙진에 의한 피해 제외)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상상만해도 끔찍한 상황입니까? 일찍이 아인슈타인은 ‘핵 전쟁이 인간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다’라고 경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내전과 종교의 불씨는 물론 영토의 분쟁 등 으로 전쟁의 씨앗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오듯이 역사에서 영웅으로 추앙을 받는 사람은 대부분 전쟁의 영웅의 성격이 강합니다.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이순신 장군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 해전에서 “지금 싸움이 고비를 넘기고 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겼고, 대영제국을 구한 ‘바다의 신‘이란 부제가 붙은 영국의 넬슨 제독은 최후 전장인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내 의무를 다했노라”며 장렬한 죽음을 맞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조선 침공을 좌절시켰다면, 넬슨 제독은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의 영국 침공을 단념케 만들었습니다. 200년의 시차를 두고 펼쳐지는 이순신과 넬슨의 해전에서의 눈부신 승리는, 마치 두 사람이 운명적인 끈으로 연결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입니다.
백제 계백장군은 “처자들이 잡혀가서 노비가 될까 두렵다”라면서 아내와 자식을 다 죽이고 결사대 5,000명과 황산벌로 향했습니다. 김유신의 동생 김흠춘은 황산벌 전투에서 거듭 패하자 아들 반굴을 불러 “신하가 돼서는 충성이, 자식이 돼서는 효도보다 더한 일이 없는데, 나라가 위급함을 보고 목숨을 바치는 일은 충성과 효도를 모두 완전하게 하는 일이다”라고 독전하였습니다. 반굴은 곧바로 백제 진영으로 돌진해 싸우다 죽습니다. 상관의 아들이 죽은 것을 목도한 품일이 아들 관창에게 “너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의지와 기개가 있다”며 반굴의 뒤를 따를 것을 요구합니다. 두 장군의 아들이 죽는 것을 목도한 신라 군사들이 궐기해 전세를 뒤엎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현장에는 지장, 덕장, 용장 등 다양한 리더쉽이 작동되지만 무서운 장군에게는 부하들이 충성을 바치지만, 덕 있는 장군에게는 부하들이 목숨을 바치듯이 덕장의 사례가 역사의 기록이 다양하게 하는 듯 합니다.
어느 날 초나라 왕이 장군과 연회 중 광풍이 불어 촛불이 꺼지자, 왕이 총애한 여인이 갑자기 소리를 지릅니다. 어느 장군이 캄캄한 틈을 타 자기 몸을 만졌는데, 그 사람의 갓끈을 끊어 놓고 불을 켜고 범인을 잡자고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왕은 모든 장군들에게 갓끈을 끊어 모자를 바닥에 던지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왕은 범인을 위기 상황에서 구출합니다, 훗날 전쟁터에서 그 왕이 궁지에 몰렸을 때 그는 사력을 다해 왕을 구출하고 승리를 거둡니다. 왕이 장군의 용기를 칭찬하자 그는 오래 전 연회의 무례를 범한 장군이라 고백하고, 비로서 그 은혜를 갚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이것은 <사기세가>에 나오는 갓끈을 끊고 상대방의 잘못을 숨겨주었던 연회 <절영지연(絶纓之宴)>의 이야기 입니다.
위(魏)나라 장군인 오기의 부하 병사 가운데 한 사람이 종기가 났습니다. 당시에 장군과 병졸 사이의 신분적 차이는 대단한 것이어서 장군은 언제든지 병졸에게 군법을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시기인데도 장군 오기는 졸병의 종기 난 부분을 입으로 빨아서 치료하는 감격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전해들은 그 병사의 어머니는 통곡을 합니다. 이를 본 어떤 사람이 그 병사의 어머니에게 ‘그대의 아들은 졸병인데 장군이 스스로 그대 아들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치료하여 주었소. 그런데 어찌하여서 그렇게 운다는 말이요?’이 말을 듣고 그 졸병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소. 예전에 내 아들의 아버지<그녀의 남편>가 종기가 났을 때 오장군이 그 종기를 빨아서 고쳐 주었더니 이에 감격한 그가 전쟁터에 나아갔을 때 물러설 줄 모르고 싸우다가 죽었소. 지금 내 아들의 종기도 그가 빨아 주었으니 내 아들의 시체를 어디 가서 찾게 될지 모르게 된 셈이요.’졸병의 어머니는 오기가 자기 남편에게도 은혜를 베푸는 바람에 전사하게 되었는데, 자기 아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었으니, 그 아들도 감격한 나머지 용감하게 싸울 것이고, 그러다 보면 전사할 것이 틀림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니 통곡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입니다.
지금 내가 법에 굴복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 뽑는 것밖에 안 되는 하찮은 행동, 사람은 누구나 다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도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도 가벼운데, 이는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사마천의 생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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