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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
강 정 기
율곡 이이는 서부지역의 DNA를 지니고 있으며 퇴계 이황은 동부지역의 DNA를 지니고 있다.
이이의 관향은 덕수이다. 덕수는 황해도 개풍군이다. 이이는 강릉에서 태어났으나 생애의 대부분을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보냈다. 이이의 뿌리는 서부지역이다.
이황은 영남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진보다. 진보는 영남이다.
이이와 이황은 둘 다 환경과 기질이 정반대다. 이이는 서부기질이고
이황은 동부기질이다.
두 사람의 어머니 특성도 완전히 다르다.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한국 여인의 전범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여인상을 보여준 비범한 여인이다.
그런 반면 이황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난 뒤 여덟 명의 아이를 데리고 양반집 체면도 버린 채 양잠과 길쌈을 하며 손수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 나간 평범한 주부다.
서부지역은 태생의 환경이나 성격 등이 다원 체제고 동부지역 은 그것이 일원 체제다.
이이는 서부기질이라 했지만 강원도 강릉, 경기도 석담, 황해도 개풍 한양 등 여러 곳의 풍토 영향을 받아 똑 부러지게 어디 기질이라 하기 힘든 면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서부 기질이다.
서부 지역은 어느 한 곳에 메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과 구름처럼 떠다니는 기질이 있다.
그러나 이황은 죽으나 사나 영남 한곳이다. 이것이 동부지역 기질이다. 영남 사람에게는 태양이 오직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서부지역은 태양 말고도 달이 있으며 별이 있고 촛불이 있으며 등잔불이 있고 횃불이 있다. 그래서 서부지역은 모든 것이 화려한 반면 동부지역은 그저 순박할 뿐이다.
이이는 신이한 기운이 확연하고 활달하면서도 과감하고 굳세다. 어느 누구한테 은총과 사랑을 받거나 아니거나 오해나 미움을 받거나 아니거나 털끝만큼도 개의치 않는 강직함이 있다.
이것은 황해도의 기질이며 서부 기질이다.
이이는 나면서부터 특이하였고 확연히 큰 뜻이 있었다. 총기가 특출하여 7세에 이미 경서를 통달하고 글을 잘 지어 사방에 이름이 알려졌다. 이이는 13세로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전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이라 하였다.
그런 반면 이황은 이이와는 아주 딴판이다. 이황의 어머니 박씨 부인은 과거 급제 등의 영재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식들에게 "공부도 잘 해야지만 특히 행실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만약 행실이 올바르지 않으면 아비 없이 자라 버릇이 없다고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라는 교육을 늘
시켰다. 이황 어머니는 그저 인성 교육을 뭣보다 중요시하였다. 퇴계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행동하였다. 가정 형편이 워낙 어려워 스승을 모시고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혼자 절에 가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설치면서 몸이 허약해지는 지도 모르고 학업에 열중하였다. 박씨 부인은
벼슬길에 나가는 퇴계에게 "너는 심성이 착하고 물욕이 없어 높은 벼슬자리는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벼슬을 하더라도 중앙에 요직은 오르지 말고 외직을 하여라. 작은 고을의 현감 정도면 너에게 충분 할 것이다.네 신상을 위해서 그것이 좋을 것이다."고 훈계했다.
퇴계는 벼슬을 하면서 어머니의 훈계를 잊지 않았다. 단양이나 풍기 정도의 작은 고을원 등을 즐겁게 지냈다.
이이는 그와 정반대이다. 그는 특수 전문 교육을 받았으며 고속 승진을 하여 47세에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이는 야망이 대단하여 한 시대를 구제하는 것을 급선무로 여겼다. 이이는 활동이 다채롭고 능력이 다양한,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유능한 고위 행정가이며 전술, 전략에 능한 국방 정책의 최고 책임자이며 거물급 정치가이며 10만 양병술을 주장하여 병란에 대비책을 제시한 예언가이다.뿐만 아니라 풍속을 순화하고 폐정을 바로 잡으며 생민을 구제하고자 노력한 민중의 영도자이다.
임금 앞에서 사심 없이 할 말을 다하는 최고의 언관이며 퇴계 이황과 성리학에 쌍벽을 이룬 위대한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다.
이이의 다채로움은 덕수이씨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며 한국의 서부지역의 다재다능과 부화(富華), 특히 황해도의 생활력의 강인함, 용맹성, 특출함 등을 대변한 것이다.
이이가 47세에 이조판서를 지내고 나서 십년이 더 지나서야 이황은 정삼품 당상관인 부제학에 오르고, 공조참판 등에 임명되었다. 67세가 지나 예조판서에 임명 되었으나 사양하였다. 그 동안 140여 직종의 벼슬이 내렸으나 79회를 사임했다.
69세에 이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퇴계는 어머니의 "2품 이상은 하지 말라는 훈계"를 지키려는 듯 역시 사양했으며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좌의정 상진이 경연에서 아뢰기를,
“이황은 몸가짐이 맑고 간소하여 서울에 있을 때에 쓸쓸하기가
가난한 선비와 같았다.”고 하였다.
이황은 오로지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유교의 종장으로 의리를 깊이 연구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이황 개인의 특성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 동부지역의 단골 메뉴인 참된 도리, 지극한 정성, 착한 마음, 천성의 아름다움을 드러냈으며 한국의 동부지역 특히 영남 사람들의 광명정대한 도를 크게 드러냈다.
이이는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비탄에 잠긴 나머지 잘못 선학에 물이 들어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도를 닦았다. 이때 승려들이 난리가 났다. 그 실력에 깜짝 놀라 생불이 출현했다고 소문이 자자하였다. 불교는 유교 국가에서 금기 사항이며 이단이다. 이일로 하여 이이는 유자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영남에서는 이런 이단이 드문 편이다. 특히 이황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이의 특이한 행동은 서부 지역의 특성이다.
세상을 떠날 때도 두 성현의 모습이 아주 다르다. 이이는 병조 판서로 있을 때부터 과로로 인하여 병이 생겼는데, 이때에 이르러 병세가 악화되었다.
서익이 순무어사로 관북에 가게 되었다. 임금이 이이에게 찾아가 변방에 관한 일을 묻게 하였다. 자제들은 병이 현재 조금 차도가 있으나 몸을 수고롭게 해서는 안 되니 접응하지 말도록 청하였다. 그러나 이이는 말하기를,
“나의 이 몸은 다만 나라를 위할 뿐이다. 만약 이 일로 인하여 병이 더 심해져도 이 역시 운명이다.”하고, 억지로 일어나 맞이하여 입으로 육조의 방략을 불러주었는데, 이를 다 받아쓰자 호흡이 끊어졌다가 다시 소생하더니 하루를 넘기고 졸하였다. 향년 49세였다.
이황은 병이 위독하자 문인들을 불러 더불어 영결하려 하므로 자제들이 권고하여 말리니, 선생이 이르기를, “죽어 가는데 그들을 보지 않을 수 없다.”하였다. 옷을 몸에 걸치도록 명하고 문생들에게 이르기를, “평소에 그릇된 견해로써 제군과 더불어 강론하였으니,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였다.
죽던 날 아침에 모시던 사람에게 매화나무 화분에 물을 주라고 명하고, 저녁에 눕는 자리를 정돈하게 하고 조용히 서거하였다. 향년 69세이다.
이와 같이 두 성현의 마지막 모습은 각자 자기의 특성을 드러내 보였다.
이이는 이 나라 최고의 군사 전략가의 비장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반면에 이황은 위대한 스승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황은 70 가까이 천수를 다했다. 그러나 이이는 50을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이는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신이(神異)한 일의 연속이었다.
동부 지역은 바르고 밝고 큰 것이 최고다. 상식 밖의 일을 경계하고 별난 것을 피하며 파격을 싫어하고 급격한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정상적인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서부 지역은 파격을 좋아하며 변화를 바라며 개혁을 즐긴다. 또한 이 서부지역에는 상식 밖의 일이 빈발하고 기상천외한 일이 생겨 사람들을 라게 한다.
특히 이 지역은 신이(神異)한 일이 많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다. 덕수이씨는 이 지역을 표하는 엘리트 집단으로 신이성(神異性)이 무척 강하다. 율곡 이이는 덕수이씨를 대표하여 서부지역의 신이성(神異性)을 크게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