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좌도 병마사 이민승
----이민승(李敏承)
1841년(헌종 7)~1912년. 조선 말기 무신. 자는 공눌(公訥)이고, 호는 현계(玄溪)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거주지는 한양(漢陽)이다.
1858년 무과 급제하였다. 관직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全羅左道水軍節度使)‧경상좌도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 등을 역임하였다.
1889년(고종 26)에 왕세자가 태묘(太廟)의 동향대제(冬享大祭)를 섭행(攝行)한 뒤 아헌관(亞獻官)‧종묘서도제조(宗廟署都提調)의 관리들에게 차등 있게 시상(施賞)할 때 병방(兵房)의 소임을 수행한 공로를 인정받아 가자(加資)되었다. 1896년(건양 1) 정2품으로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에 임용되어, 칙임관(勅任官) 2등에 서임(敍任)되었다. 성재(性齋) 허전(許傳)이 주축이 되어, 유장희(柳長熙)‧박치소(朴稚紹)‧유낙희(柳洛熙)‧이치승(李致承) 등과 함께 녹양시회(綠楊詩會)를 결성하여 학문과 시를 교유하였다.
향년 7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한국역대인물종합시스템에서 발췌하였다.
슬하에 5남을 두었는데, 이근호(李根澔)‧이근택(李根澤)‧이근홍(李根洪)‧이근상(李根湘)‧이근목(李根沐)이다.
위에 나열된 아들 이근호 이근택은 친일인명에 등재 된 인물들이다....
경상좌병사 이민승의 비가 광양 유당공원에 있으며, 광앙에는 대부분의 선정비가 이곳에 있다.
그리고 이 유당공원에는 이민승의 아들인 관찰사 이근호의 비가 같이 있는 것이다.
다행이 이민승은 친일 일제강점기 시작되기 초기인 1912년에 사망하기에 친일은 아니 하였다.
다만 그의 아들 들이 친일 인사 된 것이다.
광양 유당공원에 있는것은 광양현감을 지낸 이민승의 비석이다.
광양현감에 제수 되는 기록은 고종 21년 6월 28일 경자 18/32 기사 1884년 光緖(淸/德宗) 10년이다.
아들은 친일인사 이기에 같이 세우지 말고 아들은 단죄비를 세워서 눕히던가 하여야 하지만 아직 까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다.
광양현감 이민승의 비에 보이는 선정비 명문은 다음과 같다.
행현감이후민승애민청덕선정비
召杜何侯 소공(召公)과 두공(杜公)이 어떤 제후인가?
心旣浹化 마음이 이미 (서로에게) 두루 미쳐 화합하니
冈專于前 산등성이가 오로지 눈앞에 있으나
口難表贒 입으로는 현명함(또는 어진 행실)을 드러내기 어렵구나
萬率耀日 만물을 거느리는 (만 가지의 규율/모범)이 해처럼 빛나니
外他賑惠 밖으로 다른 사람에게 구제하고 은혜를 베풀었도다
一碑永年 비석에 새긴 공적이 영원히 전해지니
靡以指偏 공적이 공평하고 흠잡을 데 없구나
乙酉 三月日 1885년 삼월
이민승이 경상좌도병사마에 임명되는 시기는 다음과 같다.
고종실록23권, 고종 23년 4월 29일 임진 1번째기사 1886년 조선 개국(開國) 495년
이민승(李敏承)을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로 삼았다
이민승이 아들 들을 친일인사에 두는 것은 죽은 후에 일이기에 별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필자로서는 울산지역에서 벼슬을 한 인물을 찾아 낸 것으로 만족 해야 된다.
많은 인물이 울산지역에서 벼슬을 하고 이야기를 남기든 안 남기든 간에 사람의 일생이
비석 하나로만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지역사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옥산 이희득 쓰다
첫댓글 이민승의 묘는 남양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