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개인 방송국이 유행처럼 번졌다. 우리 온 가족은 이 개인 방송을 즐겼고, 이들이 벌이는 축제에도 여러 곳 방문하고 즐겼다
실증 난 사람들의 장비나 잉여 장비들의 사고 파는 정크 시장도 부산에 개설하고 밀양에도 저변 확대를 위하여 밀양 대학교에 홍보국을 개설하여 운용하기도 하였다.
2003년 지인이 방송국을 퇴직하여 소출력 방송의 개국을 조언 하여 개국하였으나 인근 방송국의 주파수와 중첩되고 허가청의 미온적 태도에 소출력 방송 개국에 회의적으로 생각이 바꿨었고
취미 생활도 점점하지 않겠되었다.
그러나 방송 환경도 많이 변화였다.
2024 내란 정국으로 본 한국의 방송 환경은 기존 언론은 발빠른 유튜브 완전히 녹 다온 된 느낌이다.
2025새해 아침에 문턱 생각이 나 소출력 방송이 공동체 라디오로 자리 잡고 여기에 유튜브(보이는 라디오),인터넷으로 무장하여 지역 라디오가 인터넷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도 듣고 볼수 있는 방송국이 되었다.
옥천,성주 부산 연제,남해 여러곳이 나온다.
지금 남해의 방송을 들어면서 글을 쓴다.
소출력 방송(공동체 라디오)은 개인 방송과 달리 아나운서나 진행자가 매달려 있지 않아도 되는 무기가 있다, 사전 녹화, 녹음방송, 음악등 이용 할수 있는 기기는 많았졌다.
자원 봉사, 지역 공동체 활력등 도시에야 맞을 것 같았는데 고령화와 인구 감소 전원형 마을로 가는 비도시지역이 더 합리적이다.
동네 스피커를 통하여 공지 사항을 알리다 보니, 어떤 곳에서는 못 들었다. 어떤 곳에서는 시끄럽다 민원이 들어오고 어떤 이장은 아예 방송을 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시,군은 카카오 톡을 통하여 알림톡을 날린다. 아직 마을 이장이 자기 동네 주민에게 알림톡을 보내는걸 보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 통장은 800세대를 관리하는 데 2,000명의 민방위, 전입주민세대확인,시니어 관리, 주변 안전상태, 환경등을 보지만 지역이 좁다.
여기 비하면 마을 이장은 지역 범위는 도시 인구10만명이 거주하는 범위와 같다.
이장은 마을의 대소사는 물론 도시에 그리 많지 않는 지켜봐야하는 시니어이 많다.
언어와 혼돈의 역사에서 앞만 보고 가야했던 일제강점기의 사람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갔다.
한글로 무장한 정예화된 국민은 새로운 깃발 아래 섰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이들은 각개전투를 요한다.
새해에는 밀양에도 공동체라디오 방송국 개국이 되기를 이 아침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