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윤석열 대통령 권력실세 '그때 그 사람’...두 명의 대통령, 두 번의 탄핵
안녕하세요. 일요서울입니다.
12.3계엄으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보수진영은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보수진영 대통령의 연이은 탄핵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박 전 대통령 당시 핵심 인사들이
윤 대통령의 핵심 인사가 되어
또다시 탄핵사태가 벌어져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8년 전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의 권력 실세인
‘탄핵 데자뷰’의 ‘그때 그 사람들’을 추적 분석합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후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어두운 표정으로
"국민의 엄중한 요구에 국회가 응답한 것"이라며
"안타까운 일이고, 우리 헌정사에 불행한 일이지만
이제 국정 혼란은 이쯤에서 일단락지어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2024년 12월 14일 오후 5시 우원식 국회의장이
탄핵 가결을 선포한 직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던
'대통령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전광판이 바로 꺼졌답니다.
대통령실을 총괄하는 윤석열 대통령 정진석 비서실장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 비서실장에게
‘탄핵’은 결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입니다.
긴급호출로 뒤늦게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
윤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사실을 들었을 때
이미 그는 8년 전 탄핵을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을지도 모릅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당시 정 실장은
집권여당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답니다.
당시 정 실장은 명시적인 친박은 아니었으나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첨예한 갈등을 빚던
박 전 대통령에게 화해 제스처로 원내대표 추천을 요청,
동의받아 정무수석에 임명됐다고 할 정도로
박 전 대통령과 가까웠답니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더 각별합니다.
2016년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대전고검으로 좌천돼 있던
‘검사 윤석열’을 만나 친구가 되었답니다.
정 실장은 2021년 윤 대통령이 정치입문을 고심할 때
가장 적극적으로 권유,
같은 해 6월 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대선출마 선언식에
직접 24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을 불러 모으는 등
대통령 윤석열의 일등 공신입니다.
그러나 불운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범박·범윤’이었지 ‘찐박·찐윤’ 실세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비서실장도 마땅한 후임자를 찾지 못한
윤 대통령이 간곡하게 요청해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아마 그는 본능적으로 순탄치 않을 앞날을
예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형님 동생, 누님 부르며 찐박·찐윤 실세 윤상현
박·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탄핵사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사가
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을) 의원입니다.
이번 탄핵 파동 중에도
‘탄핵 반대해도 다 찍어주더라’ 등
거침없는 발언으로 관심받은 그는
박 전 대통령 때 잠시 정무특별보좌관을 맡았을 뿐
내각이나 청와대 요직에 기용되지 못했답니다.
윤 대통령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박·친윤 두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무관(無冠)의 실세’입니다.
박 전 대통령과는 누님-아우로,
윤 대통령과는 형님 동생으로 각별하게 지냈지만,
윤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나 윤 대통령 모두
대통령 이전에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답니다.
본인 스스로가 측근으로 발돋움한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왕의 남자 등극 직전 불운한 호남 보수 대부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도 탄핵의 남자입니다.
신한국당 당직자로 시작해 2007년 공보특보로
‘박근혜의 입’으로 불렸고 박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청와대 정무, 홍보수석을 맡아
‘박근혜의 남자’로 불릴 정도로 최측근이 됐답니다.
특히 새누리당 볼모지 전남 순천곡성에서
19, 20대 연속 당선되고 집권당 대표까지 올라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 아이콘이 되었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대표이던
2016년 영원한 보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막지 못했고
그는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비서실장 교체 때마다
이 전 대표를 최우선으로 검토했다고 합니다.
지난 22대 총선 참패 후 한덕수 총리가 사표를 냈을 때는
유력한 총리 후보로 하마평이 돌 정도로
윤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악연이라면 악연인데요.
박 전 대통령을 구속시킨 이가
바로 윤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초 정진석 비서실장의 사표설이 돌았는데요.
이때 유력한 후임으로 이 전 대표가 다시 거론됐답니다.
현역 의원 중심의
친윤 영남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용산친윤계(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그룹)의
강력한 추천으로 검토 중이었다고 합니다.
계엄만 없었다면 다시 한번 ‘왕의 남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을 수도 있답니다.
두 번의 대통령, 두 번의 탄핵 직면한 권영세...파당 수습까지
큰소리 한번 없이 박·윤 두 대통령을 만든
‘킹 메이커’가 권영세 의원입니다.
권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중립 모임을 만들어 이명박 후보와의 갈등 조정에 나섰답니다.
중립모임 인사 대부분이 이 전 대통령 당선 후
친이계로 옮겼으나 권 의원은
‘중립’ 지대에 남아 있던 것이 박 전 대통령과
두터운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윤 대통령과의 인연은 40년이 넘는 시간인데요.
서울대 법대 77학번으로 윤 대통령 2년 선배로
학회활동과 사법고시 준비를 함께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답니다.
특히 2022년 윤석열 후보 진영이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을 때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당선까지 대선을 진두지휘했답니다.
14년 전인 2012년 박 전 대통령 선거 때도
선대위 상황실장을 맡아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권 의원은 2011년 박 전 대통령이
비대위원장 사무총장을 맡아 19대 총선 공천을 주도,
야권연대가 우세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총선 승리를 끌어냈답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주중 대사로 나가 있어
정치적 공방에서 벗어났으나
이번 윤 대통령 탄핵에는 비대위원장으로
정국의 한복판에 섰답니다.
본인이 만든 대통령의 마지막을
파면(탄핵인용)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 복귀(기각)의
기적을 끌어낼 것인지 궁금합니다.
12.3 계엄 후 탄핵안 처리 과정에서
국정 혼란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추경호 전 원내대표는
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 당 원내대표를 맡는 등
대표적인 친윤계 실세입니다.
윤-한동훈 갈등에서
한동훈 패싱 논란을 일으킬 정도로
자의든 타의든 반한 최전선을 맡아 지휘했답니다.
박 전 대통령 때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에 발탁되어
20대 국회 총선에서 박 전 대통령 지역구인
대구 달성을 물려받아 당선되는 등
공직 출신 친박계 대표였습니다.
김재원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에 이어
정무수석을 맡아 대표적인 친박계 실세입니다.
윤 대통령에 의해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기소됐다
무죄 선고받은 악연이었으나
윤 대통령 대선 경선 당시 당 최고위원으로 경선승리에,
선대위 클린선거전략본부장으로
윤 후보 위기 때마다 탁월한 언론 감각으로
당선에 기여, 친윤계 몫으로 최고위원을 지냈답니다.
박·윤 탄핵 위기 지근거리 비서관 정호성...악연 또는 능력
실세급은 아니지만 두 대통령 탄핵 때
모두 대통령비서실을 지키고 있던
비서관이 정호성 시민사회3비서관입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던
두 대통령이 탄핵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개인적으로 심정이 어떨지 알 수 없답니다.
아이러니는 박 전 대통령과 본인을 수사,
구속시킨 장본인이 윤 대통령이라는 점입니다.
구속하고 사면복권시켜 비서관까지 발탁한 배경에는
여러 소문이 있으나 중요치는 않아 생략하고
안봉근·이재만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정 제3비서관은 비서관 발탁 후
김 여사 라인으로 알려졌으며
김 여사 담당 부속실 신설 및 지원·관리
방향 수립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사태를 막지 못한 핵심 실세들.
한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실력이라고 합니다.
두 대통령의 실세 측근으로 권력에 정점에 있던
그들의 두 번째 탄핵은 누구의 탓일까.
8년 만에 다시 처한 보수진영을 존멸의 위기에서
그들의 선택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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